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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꽁트] 이혼, 그 욕망의 그늘

by 컴속의 나 2008. 7. 14.






이혼, 그 욕망의 그늘


존재가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머리가 부서질 정도로 괴롭다면 생각을 멈추는 것이 낫다. 잠시 생각을 멈추었다고 해서 존재가 아닌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주장할 작정이다.


‘나는 잠시 생각을 멈춘다. 그래도 나는 존재한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은데 머리는 너무 작다는 자책은 언제나 나를 괴롭힌다. 사실 ‘할 일’ 이라고 표현했지만 주로 정신적인 노동(?)에 국한된다. 이를테면, 머리를 깎고 절로 들어갈까, 하는 생각에서부터 콩트 습작에만 미친 듯이 빠져들거나, 주식 투자로 수지를 맞거나, 놀면서 먹을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거쳐 결국 무능력을 인식해야 하는 작은 머리에 대한 자책으로 이어지는 그런 공상들 말이다. 또한 작은 머리에도 화가 치미는데 거느리고 있는 식솔들이 작은 머릿속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이런 족쇄를 효과적으로 분쇄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더해지는 것이다. 이런 꿍꿍이속을 알기라도 하는지 마누라는 마누라대로 절묘한 타이밍으로 바가지를 긁어대고 쌍둥이는 쌍둥이대로 공상의 자유로움에 앙앙거림을 투하해대니 하루하루가 불협화음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어쨌든 직장 일을 핑계로 방문을 걸어 잠그고 방구석에 앉아 사각의 천장을 그저 말똥말똥 쳐다보거나 컴퓨터를 켜고 콩트랍시고 자판을 두드리고 있노라면 도피인지 바램인지 공상은 시작되는 것이다.


[직장을 때려치워......그럼 무슨 돈으로 가족들을 먹여 살려......인생은 이래도 저래도 굴러가는 것 아냐......자유롭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거야, 박제는 자유의 상실이지, 날아오르는 거야......헌데 콩트는 아무나 쓰는 게 맞아, 아냐......뭐 지금부터라도 습작을 시작하는 거지......콩트는 내 체질에 맞는 것 같아. 그다지 심각한 무게에 눌리지도 않고 스케일에 억압당하지도 않고......난 말초적인 인간인가......그래도 대하 꽁트나 꽁트 전집 만드는 거사를 한 번 시작해 보는 건 어때, 만들면 되는 거 아냐......시장에서 붕어빵을 파는 건 어때......자유가 있어 좋지 않아......그리고 밤엔 미친 듯이 콩트를 습작하는 거지......재미있지 않을까......콩트의 소재도 더 얻을 수 있을 거고......글이란 게 그저 머리 속에서 나오는 게 아니잖아 발로 뛰어야지. 헌데 난 지금껏 발로 뛰어 쓴 글이 하나도 없잖아......헌데 붕어빵 장사는 잘 될까.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우유값이라도 건질 수 있을까......]


이런 식이다. 이러면서 현실과 공상 사이에서 마누라와 쌍둥이의 채찍질이 더 보태져 삐꺼덕 소리는 커져만 가는 것이다. 현실과 공상사이의 이빨은 어긋날 대로 어긋나 이럴 때면 돈 많은 과부나 하나 낚아 놀고먹으면서 살고 싶은 욕구도 커지고 머리 깎고 절로 들어가 의, 식, 주 구애받지 않으면서 살아가고도 싶어지는 것이다.


더욱이 불면증까지 얻어 시달리다 보니 마누라의 은근한 재촉에도 지친 심신 탓에 무관심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고 아이들의 보챔이나 투정에는 짜증을 앞세우고 직장에서는 토끼 눈처럼 빨갛게 해 가지고는 졸기가 일쑤이니 단골 지적 대상으로 정리해고 1순위이고, 뻔한 일이지만 일의 능률은 더 떨어질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바닥을 친지가 오래건만 상승 기류는 전혀 보이지가 않는 것이다. 인생은 선택이다는 말은 누군가의 말장난이란 걸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듯이 나는 현실과 공상의 끼인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다. 못난 인간이라고 되뇌어보기도 하고, 미친놈이라 입 주먹질을 해보기도 하지만 바람난 년 작심삼일이듯 허파에 든 바람은 빠져나가질 않는 것이다.


           

설상가상 마누라가 떠난 것이다. 종이쪽지 한 장과 쌍둥이와 나만을 남겨 놓은 채 말이다. 그것은 설거지가 나의 독차지임을 의미하고 현실과 공상의 줄타기를 하던 내가 현실 쪽으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쌍둥이를 먹여 살려야 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인 셈이다. 나의 공상 속에 이런 류의 공상이 없었던 것이 못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마누라가 언제나 나를 견뎌 주리라는 기대는 참으로 이기적이었다. 관찰컨대, 마누라는 잘 견디는 듯 했다. 나의 무기력한 공상 놀음에도 잘 적응하면서 그녀 자신은 현실감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의 육아와 교육, 의, 식, 주의 가사일과 허드렛일, 때로는 부업에 이르기까지 현실적인 삶 속에서 무언가 이루어 놓으려 발버둥치는 듯 했다. 간혹 마누라와 대화를 하는 경우, 그녀는 미래의 장미 빛 목표를 위해 어떻게 현실적인 계획을 설계하고 통제해야 하는지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듯 했다. 따지고 보면 그것은 돈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했다. 마누라는 효율적인 돈의 소비를 통해 저축하는 것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았다. 미래를 담보한 최선의 전략이었다. 한 가정을 지키고 책임져야 하지만 엉뚱한 공상에 젖어있는 가장인 나에 대해 마누라는 현실적인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그랬기에 마누라가 마지막 남긴 종이쪽지 보다 더 기억에 생생하게 남는 건 나 자신이 나의 세계에 빠져있을 때 간간이 울려대던 그녀의 목소리이다.


“여보, 설거지 좀 해요.”


설거지. 나는 멍하니 마누라의 설거지를 도와주기는 했지만 식기들의 기름때를 씻으면서도  나의 머릿속에는 언제나 공상들이 가득 차 있었다. 주말 가족나들이나 생일 파티에서조차도 나의 작은 머릿속에는 잡다한 생각들로 가득했다.


“여보, 설거지 좀 해요.”


나는 마누라가 왜 떠났는지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을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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