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은 구원이요 희망이다
내가 처음 영어 몰입식 교육이란 말을 들었을 때 막혔던 길이 확 열리는 것처럼 눈부신 희망의 빛을 보았다. 공식적으로 몰입이 인정된다는 사실은 공식적으로 나의 행위를 정당화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나는 20살, 대학교 1학년이다. 내 삶의 약 3분의 1 정도는 영어라는 신성한 제단위에 바쳐졌다고 해도 그리 과장은 아니다. 부모부터 발 벗고 나서서 영어 공부를 시켰다. 방학이면 어학연수다 특별과정이다 해서 영어와 살도록 했다. 그런데 영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하는 사실에 자신의 지적인 능력에서부터 언어감각에 이르기까지 원망하고 또 원망을 했다.
내가 영어와 더불어 살아 온 삶은 동시에 분노와 절망과 실의의 나날이기도 했다. 왜 유창하게 안 되는가? 이 질문은 그저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하는 처절한 질문이기도 했다. 그 엄청난 돈과 시간들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가? 그 엄청난 돈과 시간들은 무엇을 남겼는가?
영어 몰입식 교육이 공식적으로 발표되면서 나는 가장 먼저 몰입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했다. 그 엄청난 돈과 시간에도 불구하고 내게서 부족했던 것은 바로 영어에 대한 몰입이었던 것이다. 몰입! 나는 진정으로 영어에 몰입했던 적이 있는가? 답은 아니오였다. 방학 때의 어학연수도, 특별과정도 진정한 몰입이 아니었던 것이다. 바로 답은 몰입에 있었다. 오랜 동안 지쳐있던 내게 몰입은 구원이고 희망이었다. 동시에 큰 위안이 되어주었다. 몰입하지 않았던 나, 이제 몰입하자! 나는 이렇게 결심을 했던 것이다.
나는 내 삶에서 한국말을 완전히 지워버리기로 했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그렇다고 한국말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건 기본적인 상식이 아닌가. 넌센스일리도 없다.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몰입이란 단어를 보통명사화 하고 있지 않은가. 몰입을 위해 영어 외에는 당분간 모든 것들을 몰수하기로 한 것일 뿐이다. 몰수! 그렇다 바로 몰수였다.
누가 무어라 하던 나는 한국인이 아니라는 자기 최면을 하루에도 수십 번 씩 했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언어는 영어 밖에 없다. 영어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I am not Korean. I am not Korean. I can just speak English. I couldn't live without English!)’ 나는 이렇게 철저하게 한국인인 자신을 지우고 부정했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내 모국어는 영어다.
몰입을 하려면 이토록 자신의 정체성과 언어마저 부정하면서 철저하게 몰입하기로 했던 것이다. 몰입이란 단어가 보통명사화 되어가는 마당에 그렇게 영어에 몰입하는 삶을 어느 정도는 이해해 줄 것이라고 자기 변병처럼 중얼거리기도 했다. 물론 더듬거리는 영어로 말이다.
‘People around me will understand me speaking only Enlgish in my daily life! 오렌지 wrong, 오뤤지 right!’
가족들은 대체로 나를 이해해 주는 입장이었다. 부모님은 영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알고있기에 나의 이러한 몰입에 대해 가끔씩 짜증을 내기도 했지만 지지해주었다. 아버지는 카튜샤 출신으로 미군들로부터 영어 못한다고 수모를 많이 당했다고 한다. 욕과 일상적인 언어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욕을 들어도 흰 이를 드러내 놓고 히죽거리곤 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미국 대사관 근처에서 사진관을 하는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미국인들을 많이 목격했다고 한다. 가끔씩 사진을 찍으러 오는 미국인들과 손짓 발짓을 하며 의사소통을 하려고 했다 한다. 그러면서 영어에 호기심이 생겼고 카튜샤 출신의 아버지와 만났다는 것이다.
나의 형은 더욱 나의 편이 되어주었다. 형은 미국 LA 유학시절 슬럼가에서 흑인들과 몰려다니면서 흑인영어를 배웠다. 형은 LA 코리아타운에서 한국말을 하는 한인들을 무시했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지, 영어를 배우지 않고 한국말만 하는 태도는 미국을 너무 무시하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아무리 그렇지, 위대한 나라 미국에서 위대한 영어를 마다하고 한국어를 사용하다니!’ 형은 언제나 이렇게 중얼거렸다.
형은 한국을 증오했다. 한국말이 촌스럽다고 했다. 한국의 문화가 쪽팔린다고도 했다. 형이 왜 이런 삐뚤어진 생각을 갖게 됐는지는 잘 모른다. 단지 형은 유학시절 한국에 남아있던 여친으로부터 배신을 당한 적이 있고, 방학 중에 귀국해 한국에서 마리화나와 LSD를 하다 불구속 입건이 된 적이 있고, 영어를 뒈지게 못하면서도 잘난척하는 인간들을 자주 욕했던 것으로 판단해 보면 그런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가족 외의 주위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기에는 수준 차이가 났다. 그들은 몰입이라는 말을 들어보기는 했을 테지만, 진정한 몰입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나의 진정성을 이해하기에 그들이 나와 영어로 소통하기란 불가능 할 것 같았다. 동네 이발소 최씨 아저씨나 정육점의 박씨 부부, 패밀리 마트의 아르바이트생이 어떻게 몰입에 대해 영어로 소통을 할 수 있겠는가.
' Please, understand me! I am not Korean. I can't speak Korean. Please try to speak in Enligsh. '
이런 말이 입속을 맴돌았지만 침묵해야 했다. 단지 나는 그들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영어로만 말을 했다. 이발소 최씨 아저씨는 이해한다고 고개를 끄덕거려주곤 했지만 그것이 다였다. 그리고는 입을 딱 닫아버렸으니 말이다. short cut 정도에서 멈춰버리는 것이다. 대화는 대충 이런 식이었다.
정육점 박씨 아저씨: 어서와 오랜만이네!
나: How's everything ?
정육점 박씨 아저씨: 만사형통
나: Can you speak English?
정육점 박씨 아저씨: 물론이지
나: What is your favorite movie?
정육점 박씨 아저씨: 오케이, 오케이
길거리에서 외국인을 만나면 가장 이상적이다. 의도적이지만 자연스럽게 접근을 하여 가능하면 많은 영어를 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한가한 외국인을 만나는 것이다. 흑인이나 백인을 가릴 필요도 없다. 나의 몰입에는 인종적인 편견이나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영어만 하면 되지 흑, 백 따질 필요가 없다. 또한 빈부귀천, 학벌도 따질 필요가 없다. 영어에만 몰입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사 오케이인 것이다. 본국에서 노숙자를 했던, 마약자던, 전과자던, 범죄인이던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나 그녀가 미국인이면 되고, 영어를 하면 되는 것이다.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이면 되는 것이다. 오로지 영어에 몰입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앞으로 10일 후에는 3개월째 영어에만 몰입한 100일이 된다. 하늘에 두고 맹세코 말하지만 단 한 번도 한국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누가 뭐라건 영어만 했다. 진정한 몰입의 실천이라고 자신한다. 진정한 몰입! 앞으로도 나에게서 모든 한국적인 것을 몰수해 버리고 오직 영어에만 몰입할 것을 다짐한다. (*)
몰입과 관련된 또 다른 꽁트: 몰입은 너의 운명
(2008.6.25.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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