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과 늙음
이해하지 못할 무지(無知)같은 것이 있다. 젊음과 늙음이란 현상에 대한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너무나도 단단히 고정이 되어있어 마치 두 개의 사과처럼이나 독립된 어떤 것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젊음과 늙음 사이에는 연속하는 시간으로 이어져있고 미분할 수 있는 변화들이 연속적으로 내재한다. 결코 독립된 두 개의 실체가 아닌 것이다.
우선, 젊음은 인간들에게 맹목의 믿음 같은 것을 심어주는데 ‘젊음이란 현상’ 이 그것이다. ‘젊음이란 현상’은 절대적으로 존재할까? 그렇지 않다. 절대적인 젊음의 현상은 일종의 언어의 유희일 뿐이다. 단지 존재하는 것이 있다면 변화하는 ‘생명’의 긴 기간에서 좀 더 활동적이고 좀 더 생기있는 시기가 있을 뿐이다. 도대체 젊음이 있다면 그 젊음이란 어떻게 정의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늙음에 대해서는 더욱 더 무지한 인식이 존재한다. 늙음은 젊음과 동떨어져 존재하는 아주 초라하고 볼품없으며 실용성도 없는 어떤 현상이란 믿음이 그것이다. 모든 인간들이 통과해야할 일종의 의식으로서 늙음에 대해 특히 ‘젊은이’ 라고 자처하는 인간들은 극단적으로 거부하기를 즐긴다.
하지만 늙음과 젊음이 이토록 이분화된 현상은 근대 산업사회의 부산물이라 감히 주장하고 싶다. 특히 오늘날의 정보화시대에서는 이러한 생각이 더욱 팽배해 있다. 사실 전통적으로 늙음에 대한 인식은 삶의 경험이 누적된 지혜와 권위의 상징이었다. 늙음이 결코 피상적인 현상으로 삶과 유리된 소외되고 무기력한 추상화된 관념적 존재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나이던 어른들은 언제나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나무의 나이테와 같이 인간에게 나이는 그 자체로서 존경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늙음은 삶의 저 바깥으로 추방당해 버렸다. 우리의 삶과는 관계없는 덜떨어지고 낡은 것으로 말이다. 경험과 지혜 따위는 현대적 가치들과는 공존하기 힘들게 되었다.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아도 이러한 때는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늙음이 이토록 무시되어 버린 다는 것은 자기 학대인 것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늙음을 통해 사라진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다. 젊음과 늙음은 동떨어진 것이 아니며 다른 실체가 아니다. 젊음과 늙음은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체에 나타나는 다른 현상일 뿐 독립된 두 개의 현상이 아니다. 늙음을 동떨어진 현상으로 취급하는 것은 젊음의 부정이며 삶의 부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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