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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일본영화] 클럽 진주군(1)

by 컴속의 나 2008.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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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진주군


1.영화 또는 역사적 사실 해석의 인류 보편적 가치

영화를 어떻게 보느냐는 개인의 취향이겠지만 사실에 대한 해석만큼은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개인의 소속이 국가 단위로 확대가 되면서 민족이나 국가 그리고 역사라는 문제가 게재되면 일어난 ‘사실‘ 도 ’역사적인’ 이란 수식을 받으며 ‘역사적인 사실‘ 로 화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민족, 국가 중심의 왜곡된 해석이 서로 충돌하면서 사실에 대한 해석은 공존할 수 없는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어느 국가나 민족이고 역사적인 사실을 민족위주로 해석하려는 국가이기주의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클럽 진주군>은 한국인의 관점에서는 상당한 사실 왜곡과 감정적인 편향을 나타내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감독이자 각본을 쓴 사카모토 준지의 사실에 대한 이해가 아무리 객관적이라거나, 그 마음이 따뜻하다고 해도 그 한계를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일본의 침략 전쟁에 의해 희생된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참회나 반성적 사고가 철저하게 배제되고 단순히 전쟁 피해자로서 일본인의 상처와 승자로 주둔한 미국과의 화해적인 제스쳐 만을 언급하는 몰역사적인 태도가 그의 시각에 배여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에는 인간을 사지로 내몰아 비인간화시키는 잔혹한 전쟁에 대한 반전 논리가 인류 보편성의 추상성(이데아)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인간의 잔혹한 행위와 비극에 대한 철저한 규명은 그 거대한 추상성의 그림자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요구하는 아시아 나라들을 실망시키고 있는 일본 정부의 사고나 의식과도 상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전쟁으로 인한 일본 젊은이들의 비극적인 삶의 갈래들을 다양하게 드러내면서도 정작 전쟁을 일으키고 타 국가를 침략해 식민지로 삼은 일본제국주의와 잔인하고 잔혹한 인간 본성이나 인간의 행위에 대한 비판이나 성찰은 정치탈색 이란 예술적인 모토 아래 의도적으로 빠트렸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다. 따라서 영화 속의 젊은이들의 삶이 과연 인류가 공감하는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을지는 아주 의심스럽다. 오히려 보편성의 획득은커녕 역사적인 사실의 왜곡이란 측면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일본영화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보는 것도 문제가 되지만, 영화라는 창백한 텍스트만을 외부적인 맥락이나 연관성 없이 보는 것도 문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클럽 진주군>을 영화만으로 보기에는 영화의 정치, 사회, 문화적인 영향력과 그 파급력을 고려해 본다면 다소의 문제 제기는 필요하다고 개인적으로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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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영화의 줄거리
이제 이러한 비판적인 전제하에서 먼저 영화의 줄거리를 언급해보고자 한다. 영화는 2차 대전 당시 필리핀의 밀림(필리핀이라는 것은 작중 겐타로의 대사에서 밝혀진다) 속에서  패잔병으로 남겨진 켄타로와 전쟁 종결, 천황 성명이라 적힌 전단지를 뿌리는 비행기로 시작한다. 전단을 뿌리는 비행기에서 울려 퍼지는 재즈 음악과 전단지보다는 재즈 음악에 넋을 잃고 비행기를 바라보는 겐타로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렇게 전쟁이 끝난지 7일 만에 밀림에서 나온 겐타로는 귀향을 하고 버스에 내리면서 마을에서 벌어지는 미군들을 위한 쇼를 보게 된다. 그곳에서 음악 단원으로 콘트라 베이스를 연주하는 고야마 학교 군악대 2기 선배인 히라야마 이치로와 만나게 된다. 그들이 하는 대화는 약간은 심드렁하게 느껴지는데 다소 인상적이라 그 대화의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겐타로 이제 돌아 온 거야?”
“저 살아있죠?
“당연하지.”
“이 악단은 뭐죠?”
“악단? 이거 마셔봐.”
“무슨 맛이 이래요.”
“군악대 사람은 지금 재즈로 먹고 살아.”

이렇게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겐타로와 히라야마의 대화는 너무나 일상적이라 권태로움마저 느끼게 된다. 이러한 권태감은 아마 전쟁으로 인한 체념이나 허무감을 반영하기 때문일까? 마셔보라고 준 ‘병콜라’ 나 ‘재즈’ 가 미주둔군과 미국 문화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겠다. 

2년후 1947년(소화 22년 봄) 쇼단을 모집하는 미군 군용 트럭이 나타나고 겐타로, 이치로, 아키라, 쇼죠, 히로유키 등이 미군 기지내  클럽(Enlisted Men's Club)에서 연주를 하게 된다. 이중에 트럼본을 부는 히로유키는 클럽내에서 겐타로에게 스카웃(?)되고 밴드의 이름을 담배 이름을 딴 Lucky Strike 정하게 된다. 쇼조(오다리기 조)는 드러머로 모집이 되었지만 실상은 드럼에 문외한이다. 또 이들 외에 비중 있는 등장인물은 밴드(특히 겐타로)와 갈등을 일으키는 대척적인 인물인 러셀이라는 미군이다. 일본 주둔군은 주로 유럽전에 참전한 미군들로 구성되었는데, 러셀의 경우는 예외로 일본군에 의해 동생을 잃어 일본군에 대한 분노가 지배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하나같이 전쟁의 상처들이 있다는 것은 앞서도 말했다. 이들의 음악을 매개로 만났듯이 음악이 주로 상처를 추스르고 위로하는 통로가 된다. 이렇게 음악을 매개로 만난 이들이 전개해 나가는 이야기이다. 우선 그들의 상처를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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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전쟁으로 상처 받은 개인들

겐타로는 필리핀 밀림에서 종전이 된지 7일 후에 미군 전단지를 보고 귀향하게 된다. 영화에서 켄타로의 상처는 구체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여지의 폭은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겠다. 필리핀 정글에서의 생명이란 한 낱 피라 목숨처럼 처절했을 것이다. 군악대 단원이었던 겐타로가 부여잡을 수 있었던 것은 음악 외에는 달리 없었을 법도 하다. 히라야마는 먹고 살기 위해 재즈를 한다고 했지만 그러한 이유는 어쩌면 겐타로에게는 부차적인 이유가 될 것이다. 겐타로의 아버지는 중고 악기점을 경영하고 있고 그다지 경제적으로 궁핍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음악을 한다는 것이 다소 퇴폐적이고 현실 도피적인 의미도 부여할 수 있다면 겐타로의 경우도 그런 경우가 아닐까 한다.

히라야마 이치로와 아사카와 히로유키의 경우는 (물론 전쟁이 상처의 본질적인 원이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치로가 형과의 불화와 갈등(이념적인 갈등)으로 괴로워하고 히로유키가 마약 중독으로 자기 파멸으로 나아가는 것은 전쟁이후의 시대적 상황의 상징적인 의미를 제공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이치로의 형의 공산주의 이념 신봉과 히로유키의 마약은 음악이나 콜라 아이스크림과는 달리 인간의 정신을 토막내고 경직되게 하는 공산주의 이념과 저질의 미국문화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오노 아키라의 쇼조의 경우는 전쟁으로 비롯된 비극적인 가정사가 그들 상처를 잉태하고 있다. 아키라의 경우는 전쟁으로 풍지 박산이 된 가족과 이복 동생의 가출로 상처받고 있고 나가사키 출신의 쇼조의 가족은 직접적인 원폭의 피해자이다. 동생이 병원에 입원하고 있고 쇼조는 동생의 병원비를 위해 도쿄로 온 것이다.

이 영화는 전쟁의 비극적인 상처를 안고 있는 다섯 명의 일본 젊은이와 한 미군의 이야기가 줄거리를 이끌어 가고 있다. 이들의 상처는 다양한 갈래에서 함께 모여 음악으로 그 상처들을 서로 위로하고 있지만 그들 상처를 잉태한 뿌리는 전쟁과 맞닿아 있다. 그 외에도 영화의 군데군데에 기지촌의 여성들, 유기된 아이들, 민중시장, 부랑자들의 모습을 통해 전쟁의 비극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상처를 품고 있는 그들의 만남과 삶은 전패 이후 상처 받은 일본인이 처한 정신적인 상처와 고뇌의 축소로 읽어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축소가 일본의 민족주의나 국가 이기주의라는 특수성으로 해석 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확대지향적인 보편성으로 나아가기에는 이들의 상처가 너무 일본이란 테두리에 머물며 옹색한 자기변명,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시대적인 배경이 1945년을 걸쳐 본격적으로 1947년 봄에서 1950년 여름에 걸쳐있다. 즉 2차 대전의 종결과 6.25 한국전쟁의 발발 사이에 놓여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인 배경은 그 배경 자체뿐만 아니라 그 배경에 놓여있는 인간들의 인식과 사고에 대한 많은 의미 해석을 제공해 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전쟁의 비극을 체험한 일본군과 미군에게는 인간과 세계, 죽음과 삶 따위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잉태하리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반전사상과 전쟁고발의 주제가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고 말 할 있으나 이미 언급하였듯이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