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트레인스파팅(Trainspotting), 젊음과 현실의 불협화음

by 컴속의 나 2008. 10. 29.

트레인스파팅(Trainspotting), 젊음과 현실의 불협화음(1996)

왜 젊음은 현실로부터 도피를 꿈꾸는가? 생물적인 현상인가? 아니면 사회적인 현상인가? 어쩌면 이러한 질문은 참 어리석은 질문인지도 모른다. 타락한 현실과 그 타락한 현실속에서 성장하는 젊음이 반항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은 자명한 것이니까.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위엄있고 고귀한 것으로, 젊음은 그 위엄과 고귀함을 더럽히고 추락시키려는 타락하고 파괴적인 존재로 전도되는 이 모순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현실은 자기 정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현실은 무엇으로도 상처받지 않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그것에 저항하는 젊음은 참 한심해 질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트레인스파팅은 비극인가? 희극인가?

그들은 현실을 선택하지 않았고 현실의 일부로서의 자기 자신들을 철저히 부정했다.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단지 젊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그들이 일상화된 삶을 거부하고 선택한 것은 마약과 술과 섹스였다.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도피의 세계였다. 하지만 그들은 현실보다도 더 지독하게 그것들로부터 파괴된다. 마약과 섹스와 술 중독. 그들이 선택한 것에 의해서 철저하게 파괴되며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통로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단지, 자신들을 파괴 할 수 있을 때만이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역설적인 상황에 도달한다. 자기 존재를 파괴하지 않고서는 현실을 벗어날 수 없는 한계가 곧 현실일까? 그렇다면 그들은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

그들이 철저하게 타락할수록 현실은 패배할 수밖에 없다. 그들 타락의 근원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현실은 그들의 타락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현실이 그토록 삭막하고 인간성이 메말라 있음은 바로 현실의 무기력함이다. 현실이 그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던가? 경찰과 정신병원과 물기 없는 가족이다. 역설적이게도 파괴적인 그들에겐 인간 영혼의 상처와 고통이 스며들어 있지 않던가. 그들이 이유 없이 산으로 오르려는 장면과 아이의 죽음에 미쳐 흐느끼는 그들에게서 인간의 냄새가 스며있지 않던가. 그러한 상처와 고통은 바로 현실 속에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은 현실의 병적 징후를 반영하는 것이지 단순히 개인적인 병적 징후들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곧 그들은 현실이 투영된 현실 그 자체이며, 현실의 제물인 셈이다. 그래서 그들을 보는 우리는 가슴이 아프다. 현실이 가슴 아프다.

트레인스파팅은 영원히 화해 할 수 없을 것 같은 젊음과 현실의 불협화음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그럼에도 또 다른 출구에 대한 탐색이 없는 것이 못내 아쉽기도 하다. 자기 파괴적인 양식만을 추구하는 그들이 왠지 어리석고 답답하게 보인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선택의 범위가 그토록 좁을 수밖에 없는 것인지 그들은 자문해 보았으면 한다. 하지만 트레인스파팅이 젊음이라는 한 시기의 단편적인 관찰이기에 그 시기 이후의 현실과의 관계는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진다. 불협화음의 진정한 의미는 결국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그 성숙함에 있지 않을까?(*)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일 선물(Birthday Present)  (2) 2009.01.19
아무도 모른다  (6) 2008.11.09
♥한국, 한국인과 관련된 일본영화  (8) 2008.10.04
젊은 날의 초상, 하나와 앨리스  (6) 2008.09.08
사토라레  (2) 2008.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