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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생일 선물(Birthday Present)

by 컴속의 나 2009. 1. 19.


사진출처:http://www.maxmovie.com/



생일선물(Birthday Present)



인간은 관계와 더불어 살아간다. 그래서 사회적인 동물이란 말도 있다. 관계에서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관계의 대상보다 우위적인 위치를 점하고자 한다. 인간은 그 관계 속에서 보다 나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바로 그것이 사회적인 신분이랄 수 있다. 그러한 노력에 더해 현실적으로 도달하고 획득한 사회적인 신분을 넘어 과시나 과장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이미 차지하고 있는 사회적인 신분에 더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이상적인 모습으로, 또 상대가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추측하는 모습으로 과시하고 과장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이성과의 사랑이라는 다소 동물의 본능에 가까운 관계에 처하는 경우 이러한 과시나 과장은 더욱 강해진다.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액세서리를 하는 등 보다 화려한 치장에서부터 직업등을 과시하고자 한다. 더해 사회적 신분이나 자신의 생물적인 조건을 과장하기까지 한다. 이런 과시와 과장이 이성간의 관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인간의 현실이다. 선사시대 남녀들의 문신이나 장식도 과시와 과장에 속할 것이다. 현실은 인간과 인간의 꾸밈없는 관계가 아니라 과시와 과장이 게재된 불필요한 요소들로 거품이 이는 곳인지도 모른다.

인간을 판단하고 관계를 맺을 때 인간 그 자체만을 보고 판단하는 것은 어렵게 되었다. 아니 판단을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아주 비중있는 판단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대신 직업과 사회적인 신분에 따라 인간 그 자체를 판단하는 것이 관습처럼 일반화되어있다. 이것은 순환적인 상승을 일으키면서 사회를 경쟁의 관계로 몰아넣고 있다. 보다 나은 신분을 위해, 직업을 위해 남들보다 앞서고 우위에 서야 하는 것이다.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것이다.

사진출처:http://www.maxmovie.com/



<생일선물(Birthday Present)>은 이러한 과시와 과장의 경쟁적인 사회 속에서의 관계(특히 이성간의 관계)의 성격을 살펴볼 수 있어 의미있게 본 영화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전도연을 닮은 영배우가 나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동경해 마지않는 파리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도 그렇긴 했지만 무엇보다도 바로 이성간의 관계의 성격을 살펴보는 것 보다 크지는 않았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주인공 마사요시(키시타니 고로)나 아키코(와쿠이 에미) 모두 관계에 대해 인간 그 자체보다는 현실에서 이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적인 신분과 직업이 만들어 내는 과시와 과장된 모습에 익숙해져 있다. 그들이 속물적인 것이 아니라 속물적인 현실에서 지속적으로 강요되고 쇠뇌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질곡에서 예외적일 수 있는 인간이 우리중에서 과연 몇이나 될까?

마사요시는 여행사의 관광안내원으로 영화내내 자신이 관관관안내원이란 사실을 숨긴다. 우연히 화가로 자처하게 되었지만 의도적으로 화가라고 신분을 속인다. 이것은 화가로서의 사회적인 지위가 관광안내원보다 낮았다면 계속해서 화가라고 속이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을 솔직하게 들러내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사회적인 신분에 자신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또 우연히 식당에서 아키코의 약혼자였던 변호사와 조우하게 되고 아키코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은 변호사를 향해 주먹을 날리긴 하지만 오히려 자신이 혼이 나는 것은 변호사라는 신분이 호락호락하지 않는 직업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아키코에게 사랑의 상처를 심어준 것이나 아키코가 그렇게 당한 것은 알고 보면 변호사라는 신분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아키코는 어떤가? 아키코는 비행기 여승무원이다. 그녀의 신분은 그다지 낮은 것이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비행기 여승무원에 대한 인식이 낮지 않은 것을 보면 일본 또한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라 본다. 또한 관관안내원인 마사요시가 다소 부담을 느끼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마사요시와는 달리 아키코는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거나 고과장하기 보다는 상대의 신분을 너무 높이 잡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물질적인 보상을 위한 설득력 있는 이유가 존재하지만, 결국 인간을 그 자체로 보는 관점과는 먼 인간에 대한 판단이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차라리 사랑과 물질을 동시에 추구한다면 더 나을 것이다. 사랑은 온데, 간데없고 물질적인 보상만을 바란다는 것에서 아키코도 속물적인 관습에 익숙해 있는 것이다.

이것을 이성간의 사랑이라는 좁은 영역에서가 아니라 인간 일반의 관계로 넓혀서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 영화의 갈등은 과시와 과장에 가려진 관계에 의해 일어난다. 또 이러한 과시와 과장을 벗어버리고 인간 그 자체를 바라보고, 그 진실을 바라보는 가운데 갈등은 해소된다. 그러나 영화속의 이러한 갈등의 해소가 우리의 마음속에 동요를 일으키기에는 다소 부족한 것 같다. 한 순간의 감동이나 위로를 제공하고 그칠 것 만 같다. 왜 그런 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쩐지 현실의 높은 벽과 싸우기에는 이 영화가 다소 무기력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