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독립선언서
꽁트 선언
글을 읽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고 한탄한다. 그건 당연하다는 반발도 만만치 않다. 글을 대체하는 수많은 매체들이 등장했고, 이제 글은 낡은 전축과 LP 레코드판처럼 시대와는 걸맞지 않다고들 한다. 글이 문학의 유일한 매체였을 때 문학은 문화 그 자체로서 인식되곤 했다. 그러나 수많은 매체들의 등장으로 문화의 영역이 확대되고 대중화됨으로써 이제는 문학이 문화의 하위 개념으로 저 한 구석을 자치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런데 의문이다. 왜 짧은 꽁트는 그다지 인정받지 못하는가? 단숨에, 가볍게 읽을 수 있고 부담 없이 시간을 때울 수 있는 꽁트가 왜 그 가치와 유효성을 인정받지 못하는가 말인가? 화장실에서 똥을 누는 시간에 읽을 수 있는 정도의 분량인 꽁트가 왜 똥 같은 취급을 받아야 할까? 이건 정말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다. 꽁트가 재미있고 유쾌하면서, 경박하지 않고 진지하기까지 하다면 속도의 시대에 적합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 말이다. 문학비평가나 문화 비평가들은 왜 이런 가능성에 대해서 언급하지는 않을까? 저속한 통속소설이나 저질문화를 강하게 비판하기는 해도 꽁트에 대한 적절한 언급이 없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꽁트가 비평가의 애정 어린 관심 대상이 되지 못해왔다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문학의 위기 운운하면서도 순수의 노스텔자에 빠져 대하소설이나 장편소설, 그리고 순수소설을 옹호하거나, 마지못한 현실과의 타협인 냥 문학 영역의 확장으로써 판타지 소설이나 유사 역사소설 등 대중소설에 관심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도대체 왜 꽁트는 아닌가? 도무지 이러한 현상을 이해 할 수가 없다. 비평가들은 꽁트는 문학 위기의 시대에 애정과 관심을 보낼 수 있는 장르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진지함과 깊이가 없다는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 의문은 풀리지가 않는다.
그러나 비평가들만을 탓을 것도 아니지 싶다. 정작 당사자인 소설가들의 꽁트에 대한 태도 또한 비평가들의 무관심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한 것은 아니다. 그들 또한 꽁트가 작품을 쓰는 중에 간간히 빼내는 배설물 정도로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여간 가슴 아픈 일이 아니다. 왜 이러한 비극적인 일이 백주대낮에 태연하게 자행되고 있는가? 이건 테러고 강간이다. 소설을 쓰면서 억눌린 욕정을 푸는 강간행위에 다름이 아니다.
미국독립선언서
대중들은 또 왜 변덕스럽고 괴팍스러운가? 다매체시대의 대중성에도 불구하고 진지함을 부여하면서 읽기의 편리성을 고려한 적정한 길이와 읽기의 재미를 왜 인정하지 않는가? 코미디나 개그에 빠져들면서도 짧은 꽁트에는 왜 그토록 무관심한가? 똥을 누지 않는가? 똥을 누면서 꽁트 정도는 느긋하게 읽을 수 있지 않는가? 적어도 중급의 문학의 질을 보장 할 수 있는 꽁트가 순수와 대중, 고급과 저급의 중첩부분으로 양자를 만족 시킬 수 있는 장르가 될 수 있지 않는가? 양극단, 이를테면 고급과 저급, 고질과 저질, 순수와 비순수로 양분되는 문화의 극단적인 분리현상을 완화시킬 수 있는 장르가 될 수 있지 않는가?
꽁트는 소설 엘리베이트의 1층이다.
이 말은 꽁트를 위한 중요한 선언이다. 대중들은 위로는 꽁트와 연속적인 선상에서 순수소설과 더 많은 접점을 가지게 될 것이며, 동시에 아래로는 꽁트와 연속선상에서 대중소설과 더 많은 접촉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러한 중요한 문제를 비평가와 소설가와 독자 모두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꽁트 자체에 대해 무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제 비평가, 작가, 그리고 대중들로부터 소외받고 있는 꽁트를 시대의 한 트렌드로 세우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부지런히 꽁트를 쓸 것이다. 경멸과 멸시의 시선도 감수 할 것이다. 박쥐같은 처세라고 비난도 할 것이다. 그러나 꽁트를 문학의 지평 확대를 위한 튼실한 기반으로 세워 놓고 말 것이다.
*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정권접수위원장님에게 간곡하게 의견을 개진하는 바입니다. 차기 정부에서는 문화부의 명칭을 문화꽁트부로 추진해 주셨으면 합니다. 또한 학교의 정규교과에 꽁트 과목도 신설해 주셨으면 합니다. 문학의 세계화란 차원에서 영어로 꽁트를 쓰는 것도 고려해 볼만 하다고 봅니다. 이것은 동시에 기러기나 펭귄 아빠와 사교육비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영어교육의 일대 혁명적인 방법으로 정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소 황당하고 사소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아주 중차대한 조치로써 모든 건물의 엘리베이트 1층을 [꽁트층]으로 표기할 수 있도록 건축법으로 명시해 주셨으면 합니다. 4층을 F층으로 표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노력을 꽁트를 통한 문화 진작에 거대한 기여를 할 것입니다. 부디 통촉하여 주시기를 앙망합니다.
*
당신이 보낸 선언서 답잖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좀 무리가 아닐까 합니다. 당신의 꽁트에 대한 그 열정은 치하합니다. 우선 당신이 간과한 사실 하나를 언급하자면 언론의 관점입니다. 당신의 그 의미있는 발상을 언론은 얼마나 유치하게 치부해 버릴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하는 충고이니 언론에는 이런 선언서 따윈 보내지 말았으면 합니다. 당신이 정신병자나 사기꾼이나 위선자로 매도되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꽁트 따윈 이 세상에 별 상품성이나 가치가 있다고 여기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우리의 대중문화의 우상인 나모씨 같은 가수와 꽁트를 결코 동일한 가치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 더 강조하거니와 진심어린 충고 반드시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꽁트 부지런히 써십시오.(*)
'꽁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꽁트] 아픈 사랑의 노래 (0) | 2008.02.17 |
---|---|
[꽁트] 거시기를 위하여 (0) | 2008.02.16 |
[꽁트]청국장의 맛 (0) | 2008.02.13 |
[꽁트] 바람의 신화 (0) | 2008.02.04 |
[꽁트] 거울 (0) | 2008.0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