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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돌아보기

[생각 돌아보기] 돈과 신경증

by 컴속의 나 2008. 3. 31.


                                                           돈과 신경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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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회의 동기는 궁극적으로 경제적인 것이다” 라고 말한 사람은 칼 마르크스가 아니라 프로이트였다고 한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노동의 가혹한 필요성이 쾌락과 만족에 대한 욕구를 억압한다는 것이다. 즉 현실원리가 끊임없이 쾌락원리를 억압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도한 억압은 곧 인간들의 신경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인간은 신경증을 앓는 동물’ 이란 말은 프로이트의 이론을 적절하게 해석하는 표현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실원리와 쾌락원리의 억압 정도는 ‘돈’ 에 의해 대체로 정해지는 것 같다. 우리의 교육과 윤리와 종교는 돈에 대해 절제와 봉사나 심지어 악의 근원으로 까지 규정하기도 하지만 현실에서의 돈의 의미는 사실 절대적이다. 교육보다도 윤리보다도 종교보다도 절대적인 신봉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돈을 가진 사람들은 노동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며 따라서 쾌락원리을 억압해야만 할 이유도 없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쾌락의 원천인 까닭이다. 물론 돈 이외에 다른 원인들이 있을 수 있다. 복지 국가인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같은 나라에서의 높은 자살율이 그것을 입증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복지의 단계가 아니라  아직도 ‘경쟁적 자본주의 사회’ 의 단계이므로 돈에 의한 상대적인 박탈감이 주요한 원인임을 부인할 수 없다. 프로이트 이론을 다시 상기해 보면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가진자들이 못가진 자들에 비해 신경증을 덜 앓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주위를 둘러보면 쾌락원리가 억압된 채 신경증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을 목격하게 된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떠들썩한 대포 집의 샐러리맨들과 시장에서 배추 한 포기, 감자 한 소쿠리를 팔기 위해 고함을 질러대는 중년의 아줌마들과 한끼의 끼니를 위해 공사판에서 몸을 내던지는 아저씨들이 가혹한 노동의 필요성 때문에 신경증을 앓고 있는 것이다. 프로이트를 적용해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사회의 신경증은 이제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집단적, 사회적인 차원에서 심각한 증세를 나타내고 있다. 최근의 주식투자와 벤쳐투자와 돈과 관련된 사회범죄는 사회적인 차원의 증세라고 할 수 있다. ‘신종 한탕주의’ 라고 한다면 지나친 표현이겠지만 그 만큼 돈에 대한 욕구가 크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물론 신경증이 창조적인 욕구로 승화될 수도 있으나 주식투자의 경우는 ‘승화’의 차원이 아니며 벤쳐의 경우도 도태의 두려움이 상시적으로 도사리고 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우리 주위의 신경증을 앓고 있는 신음소리들이다. 소수의 가진자들을 제외하고 돈 때문에 신경증을 앓고 있는 다수의 사람들의 모습들. 이들은 언제쯤 돈으로부터 자유로와 질 수 있을까. 신경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