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내 삶의 흔적들을 담아 놓고 싶을 때가 있다(아래 사진들은 2월의 사진들이다.) 2월말쯤으로 기억된다. 나는 먹는 욕심이 별로 없다. 아니 먹는 욕심이 참 많다. 나의 상상 속에는 음식이 많이 자리하고 있다. 언젠가는 그럴듯한 식당에서 그럴듯하게 식사를 즐기려는 욕망이 반영된 상상이 아닐까.
내게 올 해 2월은 참 잔인한 달이었다. 1, 2월 내내 꽁트만을 썼기 때문이다. 사실 꽁트라고 해봤자, 알아주는 독자들도 없거니와 평해주는 평자들도 없는 꽁트 축에도 들지 못하는 잡글에 불과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꽁트라는 쟝르를 계속 붙잡고 싶다. 그리고 또한 누군가 읽어주고 평해주었으면 하는 것도 솔직한 바램이다. 변변찮은 외출, 외식, 여행 한 번 해보지 못했다. 아마 시티 투어 버스를 타고 별 의미없는 도시 관광을 한 것외에는.....
아침 늦게 일어나니 밥이 없었다. 냉장고를 열어 반찬꺼내 먹어라는 아내의 말을 이행하기도 전에, 밥상(밥상인지 책상인지 아니면 테이블인지 구별이 안되지만) 위에 전날 아이가 먹다 남은 정체불명의 밥을 발견하고 맛있게 먹었다.
콩나물 밥인지, 김치 복음밥인지 구별이 안되는 퓨전 요리
요상한 요리에 그래도 참기름은 많이 부은 탓인지 고소하기는 했다. 나는 참기름을 참 좋아한다. 이유는 알수 없지만 고소한 맛이 참 좋다. 그래도 기름은 기름인지라 또 커피를 타서 마셨다. 언제나 똑같은 버릇이지만 커피가 빠질 수가 없다. 아이들이 사용하는 잔에 탄 일회용 커피인데 허연 프림기름(?)이 둥둥 떠있다. 커피는 참 좋다. 이 순간이 하루 중 제일 행복한 시간이었다. 항상 그랬다. 그러다 시계 바늘이 돌고 돌아 4~5시쯤이 되면 갑자기 우울해 지면서 센티멘탈 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방콕족의 비극적인 운명(?)을 닮은 저녁무렵이기 때문일까?
화려한 퓨전음식을 먹은 후 배에 낀 기름기를 씻어내어야 한다.
기억이 좀 흐릿하다. 아래의 식단이 아내가 차려준 것인지 내가 차려먹은 것인지. 몇일 밖에 지나지 않은 사진인데도 기억이 정확하지가 않다. 조명조차 단서가 되질 않는다. 넙치 조림에 비친 조명이 사진을 찍기 위해 켜 놓은 것인지 아니면 저녁이라서 켜 넣은 것인지 불분명하다. 아무튼 그건 별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넘어가기로 하고, 한가지 분명한 것은 넙치 위를 무우로 가린 이유는 분명히 기억을 한다. 밥을 두어 숫가락을 떠 먹고 넙치도 살을 발라 먹고 나서 갑자기 사진을 찍고 싶어 넙치의 드러난 맨살을 무우로 덮었던 것이다. 좀 이상하긴 하다.
넙치 조림과 국물에 비친 형광등 불빛
넙치와 콩나물을 담고 있는 그릇은 모 인터넷 사이트 쇼핑물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사은품으로 얼마전에 받은 것이다. 식기들이 각각 다로 놀고 있다. 밥그릇, 반탄통들이 제각각들이다. 사은품 접시들이 빛을 잃은 모습이다.
그릇 모양이 달라 이상해 사진의 이름(날짜로 되어있다)을 보니 날짜가 다르다. 제일 빠른 사진이 2월 21일 늦은 사진이 2월 29일이다. 하루에 다 찍은 사진이라 생각했는데 기억이 영 사실을 벗어났다. (위 커피 사진이 2월 29일 찍은 사진이니, 식후 마신 커피라는 것은 거짓말이 되어 버렸다. 아무튼 용서해주시고, 그때의 커피는 아니나 커피를 마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아래 넙치 조림 사진이 2월 26일로 되어있고 위의 넙치 조림 사진이 2월 21일이라 같은 넙치 조림인지 확인 할 수 없다. 만약 같은 넙치 조림이라면 냉장고의 성능이 참 자랑스럽다.
위의 넙치 조림과 같은 넙치 조림인지 참 궁금하다.
상추인지를 버무려 내놓았는데 그런대로 먹을 만 하다(계속 빌어 먹을려면 이런 표현을 쓸 수 밖에 없다.) 솔직한 말이지만 아내의 음식 솜씨는 좀 떨어진다. 그러나 질은 높다. 건강을 생각하는 채식, 상추와 콩나물, 그리고 무우가 더 많은 넙치 조림을 부면 건강에 상당한 신경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석에서 버무린 상추조림
음식 사진들이 참 그럴 듯하단 생각이 든다. 사진 찍는다고 식탁을 닦고 가리고 치우고 위장을 하니 그럴 듯하게 보인나 보다. 이렇게 속여서는 안되는데, 뭐 음식을 위한 코디라고 생각하니 별 양심의 가책을 받지는 않는다. 먹음직스럽게 보이게 하는 것이 음식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먹고 사라진 음식인데 무슨 탄로(?)가 나겠는가?
오랫만에 먹은 멸치 조림이다. 태워서 좀 쌉살한 맛이 나긴 했지만 지나간 추억을 생각나게 하는 멸치였다. 사진으로 보니 뜨거운 불에 사정없이 볶였을 멸치들이 왠지 애처로워진다. 말라 비틀어진 멸치의 모습에서 인고의 흔적, 뜨고 있는 작은 눈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다. 집단 학살된 멸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싶은 밤이다. 멸치의 비극이 인간의 비극으로 이어지는 밤이다.
떡볶기는 저녁의 간식으로 해 준 것이 분명하다. 날짜를 보니 2월 29일이다. 무슨 일로 떡볶이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다. 가끔씩 떡볶이를 하는데 맛은 그런대로다. 싱겁게 하는 이유는 건간상의 이유이다. 색깔이 그렇게 곱지는 않지만 간식거리로는 괜찮다. 나 떡보다는 어묵을 좋아한다. 아내와 딸은 떠을 더 좋아하고 아들 녀석은 나처럼 어묵을 더 좋아한다. 찍은 사진이 좀 그렇다. 먹음직스럽게 확대를 해놓을 걸 후회스럽다. 떡이 대부분인걸 보니 어묵을 다 먹고 나서 찍은 것 같다. 음식이란 음식 자체보다 주변의 꾸밈새가 음식을 더 먹음직스럽게 보이게 하는 것 같다. 숫가락은 좀 빼고나 찍지, 쯧쯧......
그릇에 담긴 떡볶기도 멸치의 모습처럼 애처로워 보인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의 마음이 여유가 없고 활기가 없고 의기소침해 있었던것 같다. 정말 떡볶기가 주인을 잘못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너무했다. 떡볶기에게 용서를 빈다.
이 빵과 커피 사진의 날짜를 보니 2월 24일이다. 이건 분명 기억하고 있는데 아내가 전날 친구를 만나고 사가지고 온 빵이다. 뒷 날의 저녁인지 낫인지는 확인할 수가 없지만 간식으로 먹은 것 같다. 커피는 딸내미가 타 준것이다. 아내나 나나 커피잔에 물만 부어 수저로 대추대충 젓어 마시기 때문이다. 커피 잔도 사용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3학년인 딸아이가 이렇게 한다. 하루는 자기가 꼭 커피를 타보고 싶다기에 그래라고 했더니 요렇게 정성스럽게 탔다. 이렇게 탈 줄은 생각도 못했다. 커피 맛도 달라 보인다.
아내가 사 온 빵이다. 맛이 있었다. 내가 모르는 말레이지아의 빵가게에서 산 것이라고 하는데 빵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이 빵을 파는 가게가 이 빵 하나만을 판다는 것이다. 아무튼, 씹을 때 기름이 짜르르 빠져나오면서 입속에서 감돌았다. 맛이 좋았다. 빵모양을 보면서 이제부터는 먹기 전에 사진을 찍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 꼭 먹고 나서 사진 찍을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식탐 때문일까?
아래 케익을 찍은 날짜는 2월 21일이다. 아들 녀석의 초등학교 졸업식날이 맞을 것 같다. 밤이다. 이 케익도 초를 다 끄고 나서 찍은 사진이다. 예쁜 모양이라고는 없다. 데크레이션이 거의 폭격을 맞은 상태이다. 올리기도 민망하지만 흔적이란 느낌에는 이미지가 맞는 것 같다. 다음에는 꼭 예쁜 케익을 예쁘게 찍어보고 싶다.
이렇게 지나간 시간들의, 음식들에 깃든 삶의 흔적들을 남겨놓고 나니 부끄러움이 반을 차지한다. 그래도 이것은 삶의 기록으로 계속되어야 할 작업이 아닐까 한다.
댓글도 좀 남겨주시고 트랙백도 좀 해주시고 그러면 멋없는 주인 대신에 악조건에서 모델이 되어 준 음식들에게 커나큰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읽어 주시고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2008.3.1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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