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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7. 9. 18:34

[꽁트] 몰입 가족






 

몰입 가족

― 몰입의 양상들


내가 영어 학원을 운영하고 숱하게 많은 아이들을 보아왔지만 초등학교 5학년인 K 만큼 영어에 몰입하는 아이를 본 적이 없다. 학교를 마치고 곧장 학원으로 달려와서는 수업 시작하기 한 시간 전쯤부터 어학실 TV에서 CNN 방송을 틀어 몰입하는 것이다. 주위에는 시선 한번 두지 않고 아무 말도 없이 오직 TV 스크린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것이다. K의 모습이 어떠하리란 것을 쉬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어학실의 격리된 부스에 앉아 구부정한 자세로 입을 벌린 체 TV 스크린에 몰입해 있는 모습을. 말도 없고 웃음도 없다. 그냥 앉아 TV에만 몰입하는 것이다.


하루는 내가 너무 궁금해서 원장실로 K를 불렀다. K의 그런 모습이 걱정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몰입식 교육의 관점에서 보면 K의 행동은 결코 비정상적이지 않았다. 아니 아주 바림직한 자세였다. 그러나 어학원의 원장으로서 학부모들에게 언제나 몰입, 몰입하고 강조해 오긴 했지만, K의 그런 모습을 보자니 나도 K의 그런 모습에 일정부분 책임이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약간 몰려왔다.


“너무 영어에만 몰입하는 게 아니니?”

“당연한 거잖아요. 저 영어 몰입하지 않으면 아빠한테 맞아 죽어요. 아빠는 영어가 밥 먹여 준데요. 영어를 잘하지 못하면 굶어 죽는데요. 영어가 사람을 잡아먹는데요. 아빠처럼 된데요.”

“아니 아빠가 그런 말씀을 하셔? 영어가 밥 먹여 준다거나 영어 못하면 굶어 죽는다는 말은 영어가 아주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겠니?”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아빤 제가 영어에 몰입하지 않으면 정말 절 때려요. 아빤 영어 때문에 직장을 쫓겨났다고 했거든요. 그 놈에 영어라고 영어를 저주하면서도 저에겐 영어를 하라고만 하세요.”

“네 아빠가 영어 때문에 직장을 쫓겨났다는 말은 꼭 영어 때문이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기 때문이란다. 이를테면, 회사를 그만둘 나이가 되었다거나, 건강상의 이유라거나, 아빠가 개인적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있다거나,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단다. 이 원장 선생님도 말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이 어학원을 시작했단다. 영어를 못해서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는 없단다. 아빠도 만찬가지란다. 네가 영어를 잘해 주었으면 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지.”


나는 K와 이런 대화를 이끌 가면서 서글픔을 느꼈다. K에겐 아니라고 부인을 했지만 실상 영어가 사람을 잡아먹고 있다는 말은 사실 같았다. K의 아버지가 영어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사실이나, 영어가 밥 먹여준다는 사실은 나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었으니 말이다. 나 또한 영어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었고 영어 어학원을 운영하며 밥을 먹고 있으니 말이다. 몰입이 어학원의 운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달고 있는 간판이 <영어 몰입식 전문 어학원>이라고 적혀있으니 말이다.


비록 먹고 살기 위해 그럴싸한 <영어 몰입식 전문 어학원>이란 이름으로 영어를 가르치고는 있지만, 왜 영어에 이토록 발악에 가까운 몰입을 해야만 하는지 여전히 이해하지도 못한다. 영어가 국가 경쟁력을 높인다는 것이 진실인지도 확신할 수 없다. 잘하면 좋긴 하지만 그렇게 모두들 잘하면 정말 국가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일까? 경쟁력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일까? 그건 아직 확신하지 못한다. 나는 그저 돈을 벌어야하고 그러기 위해서 ‘몰입’이란 단어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부끄럽기까지 하다.


“아빤 술에 몰입해 있어요. 매일 매일 술이에요.”

“아빠에게 괴로운 일이 있나보구나?”

“엄마 때문이에요.”

“엄마 때문이라구?”

“예, 엄마 때문이에요. 엄마는 지난주에 집을 나가버렸거든요. 연락도 없구요. 아빠 말로는 애인에 몰입하고 있데요. 돈 없는 아빠보다 돈 많은 애인이 더 좋아 나가버렸데요. 아빤 그런 말을 하면서 또 화를 내세요. CNN만 계속 들으래요. 영어 모르면 굶어 죽는데요.”


K의 엄마를 몇 번 본적이 있다. 밀린 학원비를 내기위해 몇 번 학원을 찾아왔었고 날마다 전화를 해서 K의 진도나 성취도에 대해 직접 체크를 했다. 정말이지 귀찮을 정도였다. 어제도 통화를 했다. 그런데 가출이라니 믿기지가 않았다. K의 엄마는 K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방학 때 마다 해외 어학연수를 보냈고, 전화영어를 했고, 수십만원씩을 투자해서 영어 동화 교재와 CD들을 구입했다. 몰입식 영어교육에 누구보다도 관심이 많았다. 자식의 교육에 몰입하는 것은 모든 부모의 인지상정이지만 K 엄마는 더욱 그랬다. 그런 K의 엄마였기에 가출이니 애인이니 하는 말은 의외였던 것이다. 그녀에겐 자식인 K가 모든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아니, 엄마가 집을 나갔다니, 그게 사실이냐. 네가 잘못 알고 있겠지. 할머니 집이나 친구집에 가 계시지 않을까?”

“절대 아니에요. 아빠가 그랬어요, 이제부터 둘이 같이 살자구요. 엄마가 보고 싶어 죽겠어요. 아빠 그러던데요, 내가 영어를 잘해서 유명한 사람이 되면 엄마를 찾을 수가 있데요.”

“……그럴 수도 있겠구나. 영어에 몰입해서 영어를 유창하게 하게 되면 엄마를 찾을지도 모르겠구나.”


나는 영어를 잘하면 엄마를 찾을 수 있다는 어이없는 말을 내뱉고 말았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 K가 입을 열었다.


“우리 가족은 모두 몰입해 있어요. 아빠는 술에요, 엄마는 애인에요, 난 영어에요. 우린 몰입가족이에요.”    

(2008.07.07.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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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6. 28. 15:25

몰입은 구원이요, 희망이다

몰입은 구원이요 희망이다


내가 처음 영어 몰입식 교육이란 말을 들었을 때 막혔던 길이 확 열리는 것처럼 눈부신 희망의 빛을 보았다. 공식적으로 몰입이 인정된다는 사실은 공식적으로 나의 행위를 정당화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DUJNBgbVmAD/Bdc7MzoMOB+YzuoNPPjUz9ZJCKHGIUM=


나는 20살, 대학교 1학년이다. 내 삶의 약 3분의 1 정도는 영어라는 신성한 제단위에 바쳐졌다고 해도 그리 과장은 아니다. 부모부터 발 벗고 나서서 영어 공부를 시켰다. 방학이면 어학연수다 특별과정이다 해서 영어와 살도록 했다. 그런데 영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하는 사실에 자신의 지적인 능력에서부터 언어감각에 이르기까지 원망하고 또 원망을 했다.


내가 영어와 더불어 살아 온 삶은 동시에 분노와 절망과 실의의 나날이기도 했다. 왜 유창하게 안 되는가? 이 질문은 그저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하는 처절한 질문이기도 했다. 그 엄청난 돈과 시간들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가? 그 엄청난 돈과 시간들은 무엇을 남겼는가?  


영어 몰입식 교육이 공식적으로 발표되면서 나는 가장 먼저 몰입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했다. 그 엄청난 돈과 시간에도 불구하고 내게서 부족했던 것은 바로 영어에 대한 몰입이었던 것이다. 몰입! 나는 진정으로 영어에 몰입했던 적이 있는가? 답은 아니오였다. 방학 때의 어학연수도, 특별과정도 진정한 몰입이 아니었던 것이다. 바로 답은 몰입에 있었다. 오랜 동안 지쳐있던 내게 몰입은 구원이고 희망이었다. 동시에 큰 위안이 되어주었다. 몰입하지 않았던 나, 이제 몰입하자! 나는 이렇게 결심을 했던 것이다.


나는 내 삶에서 한국말을 완전히 지워버리기로 했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그렇다고 한국말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건 기본적인 상식이 아닌가. 넌센스일리도 없다.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몰입이란 단어를 보통명사화 하고 있지 않은가. 몰입을 위해 영어 외에는 당분간 모든 것들을 몰수하기로 한 것일 뿐이다. 몰수! 그렇다 바로 몰수였다.


누가 무어라 하던 나는 한국인이 아니라는 자기 최면을 하루에도 수십 번 씩 했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언어는 영어 밖에 없다. 영어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I am not Korean. I am not Korean. I can just speak English. I couldn't live without English!)’ 나는 이렇게 철저하게 한국인인 자신을 지우고 부정했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내 모국어는 영어다.


몰입을 하려면 이토록 자신의 정체성과 언어마저 부정하면서 철저하게 몰입하기로 했던 것이다. 몰입이란 단어가 보통명사화 되어가는 마당에 그렇게 영어에 몰입하는 삶을 어느 정도는 이해해 줄 것이라고 자기 변병처럼 중얼거리기도 했다. 물론 더듬거리는 영어로 말이다.


‘People around me will understand me speaking only Enlgish in my daily life! 오렌지 wrong, 오뤤지 right!’


가족들은 대체로 나를 이해해 주는 입장이었다. 부모님은 영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알고있기에 나의 이러한 몰입에 대해 가끔씩 짜증을 내기도 했지만 지지해주었다. 아버지는 카튜샤 출신으로 미군들로부터 영어 못한다고 수모를 많이 당했다고 한다. 욕과 일상적인 언어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욕을 들어도 흰 이를 드러내 놓고 히죽거리곤 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미국 대사관 근처에서 사진관을 하는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미국인들을 많이 목격했다고 한다. 가끔씩 사진을 찍으러 오는 미국인들과 손짓 발짓을 하며 의사소통을 하려고 했다 한다. 그러면서 영어에 호기심이 생겼고 카튜샤 출신의 아버지와 만났다는 것이다.  


나의 형은 더욱 나의 편이 되어주었다. 형은 미국 LA 유학시절 슬럼가에서 흑인들과 몰려다니면서 흑인영어를 배웠다. 형은 LA 코리아타운에서 한국말을 하는 한인들을 무시했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지, 영어를 배우지 않고 한국말만 하는 태도는 미국을 너무 무시하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아무리 그렇지, 위대한 나라 미국에서 위대한 영어를 마다하고 한국어를 사용하다니!’ 형은 언제나 이렇게 중얼거렸다.


형은 한국을 증오했다. 한국말이 촌스럽다고 했다. 한국의 문화가 쪽팔린다고도 했다. 형이 왜 이런 삐뚤어진 생각을 갖게 됐는지는 잘 모른다. 단지 형은 유학시절 한국에 남아있던 여친으로부터 배신을 당한 적이 있고, 방학 중에 귀국해 한국에서 마리화나와 LSD를 하다 불구속 입건이 된 적이 있고, 영어를 뒈지게 못하면서도 잘난척하는 인간들을 자주 욕했던 것으로 판단해 보면 그런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가족 외의 주위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기에는 수준 차이가 났다. 그들은 몰입이라는 말을 들어보기는 했을 테지만, 진정한 몰입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나의 진정성을 이해하기에 그들이 나와 영어로 소통하기란 불가능 할 것 같았다. 동네 이발소 최씨 아저씨나 정육점의 박씨 부부, 패밀리 마트의 아르바이트생이 어떻게 몰입에 대해 영어로 소통을 할 수 있겠는가. 


' Please, understand me! I am not Korean. I can't speak Korean. Please try to speak in Enligsh. '


이런 말이 입속을 맴돌았지만 침묵해야 했다. 단지 나는 그들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영어로만 말을 했다. 이발소 최씨 아저씨는 이해한다고 고개를 끄덕거려주곤 했지만 그것이 다였다. 그리고는 입을 딱 닫아버렸으니 말이다. short cut 정도에서 멈춰버리는 것이다. 대화는 대충 이런 식이었다.


정육점 박씨 아저씨: 어서와 오랜만이네!

나: How's everything ?

정육점 박씨 아저씨: 만사형통

나: Can you speak English?

정육점 박씨 아저씨: 물론이지

나: What is your favorite movie?

정육점 박씨 아저씨: 오케이, 오케이



길거리에서 외국인을 만나면 가장 이상적이다. 의도적이지만 자연스럽게 접근을 하여 가능하면 많은 영어를 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한가한 외국인을 만나는 것이다. 흑인이나 백인을 가릴 필요도 없다. 나의 몰입에는 인종적인 편견이나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영어만 하면 되지 흑, 백 따질 필요가 없다. 또한 빈부귀천, 학벌도 따질 필요가 없다. 영어에만 몰입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사 오케이인 것이다. 본국에서 노숙자를 했던, 마약자던, 전과자던, 범죄인이던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나 그녀가 미국인이면 되고, 영어를 하면 되는 것이다.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이면 되는 것이다. 오로지 영어에 몰입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앞으로 10일 후에는 3개월째 영어에만 몰입한 100일이 된다. 하늘에 두고 맹세코 말하지만 단 한 번도 한국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누가 뭐라건 영어만 했다. 진정한 몰입의 실천이라고 자신한다. 진정한 몰입! 앞으로도 나에게서 모든 한국적인 것을 몰수해 버리고 오직 영어에만 몰입할 것을 다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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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ngello 2008.07.01 14:08 address edit & del reply

    잘 읽었습니다. 항상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재밌는 글,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건필하세요.

  2. Favicon of https://conteworld.tistory.com BlogIcon 컴속의 나 2008.07.01 15:2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Angello님,
    부족한 글 좋게 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2008. 6. 25. 01:57

[꽁트] 몰입은 구원이요, 희망이다.



 

몰입은 구원이요 희망이다


내가 처음 영어 몰입식 교육이란 말을 들었을 때 막혔던 길이 확 열리는 것처럼 눈부신 희망의 빛을 보았다. 공식적으로 몰입이 인정된다는 사실은 공식적으로 나의 행위를 정당화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나는 20살, 대학교 1학년이다. 내 삶의 약 3분의 1 정도는 영어라는 신성한 제단위에 바쳐졌다고 해도 그리 과장은 아니다. 부모부터 발 벗고 나서서 영어 공부를 시켰다. 방학이면 어학연수다 특별과정이다 해서 영어와 살도록 했다. 그런데 영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하는 사실에 자신의 지적인 능력에서부터 언어감각에 이르기까지 원망하고 또 원망을 했다.


내가 영어와 더불어 살아 온 삶은 동시에 분노와 절망과 실의의 나날이기도 했다. 왜 유창하게 안 되는가? 이 질문은 그저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하는 처절한 질문이기도 했다. 그 엄청난 돈과 시간들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가? 그 엄청난 돈과 시간들은 무엇을 남겼는가?  


영어 몰입식 교육이 공식적으로 발표되면서 나는 가장 먼저 몰입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했다. 그 엄청난 돈과 시간에도 불구하고 내게서 부족했던 것은 바로 영어에 대한 몰입이었던 것이다. 몰입! 나는 진정으로 영어에 몰입했던 적이 있는가? 답은 아니오였다. 방학 때의 어학연수도, 특별과정도 진정한 몰입이 아니었던 것이다. 바로 답은 몰입에 있었다. 오랜 동안 지쳐있던 내게 몰입은 구원이고 희망이었다. 동시에 큰 위안이 되어주었다. 몰입하지 않았던 나, 이제 몰입하자! 나는 이렇게 결심을 했던 것이다.


나는 내 삶에서 한국말을 완전히 지워버리기로 했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그렇다고 한국말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건 기본적인 상식이 아닌가. 넌센스일리도 없다.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몰입이란 단어를 보통명사화 하고 있지 않은가. 몰입을 위해 영어 외에는 당분간 모든 것들을 몰수하기로 한 것일 뿐이다. 몰수! 그렇다 바로 몰수였다.


누가 무어라 하던 나는 한국인이 아니라는 자기 최면을 하루에도 수십 번 씩 했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언어는 영어 밖에 없다. 영어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I am not Korean. I am not Korean. I can just speak English. I couldn't live without English!)’ 나는 이렇게 철저하게 한국인인 자신을 지우고 부정했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내 모국어는 영어다.


몰입을 하려면 이토록 자신의 정체성과 언어마저 부정하면서 철저하게 몰입하기로 했던 것이다. 몰입이란 단어가 보통명사화 되어가는 마당에 그렇게 영어에 몰입하는 삶을 어느 정도는 이해해 줄 것이라고 자기 변병처럼 중얼거리기도 했다. 물론 더듬거리는 영어로 말이다.


‘People around me will understand me speaking only Enlgish in my daily life! 오렌지 wrong, 오뤤지 right!’


가족들은 대체로 나를 이해해 주는 입장이었다. 부모님은 영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알고있기에 나의 이러한 몰입에 대해 가끔씩 짜증을 내기도 했지만 지지해주었다. 아버지는 카튜샤 출신으로 미군들로부터 영어 못한다고 수모를 많이 당했다고 한다. 욕과 일상적인 언어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욕을 들어도 흰 이를 드러내 놓고 히죽거리곤 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미국 대사관 근처에서 사진관을 하는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미국인들을 많이 목격했다고 한다. 가끔씩 사진을 찍으러 오는 미국인들과 손짓 발짓을 하며 의사소통을 하려고 했다 한다. 그러면서 영어에 호기심이 생겼고 카튜샤 출신의 아버지와 만났다는 것이다.  


나의 형은 더욱 나의 편이 되어주었다. 형은 미국 LA 유학시절 슬럼가에서 흑인들과 몰려다니면서 흑인영어를 배웠다. 형은 LA 코리아타운에서 한국말을 하는 한인들을 무시했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지, 영어를 배우지 않고 한국말만 하는 태도는 미국을 너무 무시하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아무리 그렇지, 위대한 나라 미국에서 위대한 영어를 마다하고 한국어를 사용하다니!’ 형은 언제나 이렇게 중얼거렸다.


형은 한국을 증오했다. 한국말이 촌스럽다고 했다. 한국의 문화가 쪽팔린다고도 했다. 형이 왜 이런 삐뚤어진 생각을 갖게 됐는지는 잘 모른다. 단지 형은 유학시절 한국에 남아있던 여친으로부터 배신을 당한 적이 있고, 방학 중에 귀국해 한국에서 마리화나와 LSD를 하다 불구속 입건이 된 적이 있고, 영어를 뒈지게 못하면서도 잘난척하는 인간들을 자주 욕했던 것으로 판단해 보면 그런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가족 외의 주위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기에는 수준 차이가 났다. 그들은 몰입이라는 말을 들어보기는 했을 테지만, 진정한 몰입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나의 진정성을 이해하기에 그들이 나와 영어로 소통하기란 불가능 할 것 같았다. 동네 이발소 최씨 아저씨나 정육점의 박씨 부부, 패밀리 마트의 아르바이트생이 어떻게 몰입에 대해 영어로 소통을 할 수 있겠는가. 


' Please, understand me! I am not Korean. I can't speak Korean. Please try to speak in Enligsh. '


이런 말이 입속을 맴돌았지만 침묵해야 했다. 단지 나는 그들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영어로만 말을 했다. 이발소 최씨 아저씨는 이해한다고 고개를 끄덕거려주곤 했지만 그것이 다였다. 그리고는 입을 딱 닫아버렸으니 말이다. short cut 정도에서 멈춰버리는 것이다. 대화는 대충 이런 식이었다.


정육점 박씨 아저씨: 어서와 오랜만이네!

나: How's everything ?

정육점 박씨 아저씨: 만사형통

나: Can you speak English?

정육점 박씨 아저씨: 물론이지

나: What is your favorite movie?

정육점 박씨 아저씨: 오케이, 오케이



길거리에서 외국인을 만나면 가장 이상적이다. 의도적이지만 자연스럽게 접근을 하여 가능하면 많은 영어를 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한가한 외국인을 만나는 것이다. 흑인이나 백인을 가릴 필요도 없다. 나의 몰입에는 인종적인 편견이나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영어만 하면 되지 흑, 백 따질 필요가 없다. 또한 빈부귀천, 학벌도 따질 필요가 없다. 영어에만 몰입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사 오케이인 것이다. 본국에서 노숙자를 했던, 마약자던, 전과자던, 범죄인이던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나 그녀가 미국인이면 되고, 영어를 하면 되는 것이다.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이면 되는 것이다. 오로지 영어에 몰입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앞으로 10일 후에는 3개월째 영어에만 몰입한 100일이 된다. 하늘에 두고 맹세코 말하지만 단 한 번도 한국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누가 뭐라건 영어만 했다. 진정한 몰입의 실천이라고 자신한다. 진정한 몰입! 앞으로도 나에게서 모든 한국적인 것을 몰수해 버리고 오직 영어에만 몰입할 것을 다짐한다. (*)

몰입과 관련된 또 다른 꽁트: 몰입은 너의 운명
 

(2008.6.25.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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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6. 24. 18:29

[꽁트] 몰입은 너의 운명



 



몰입은 너의 운명


난 지금 굉장히 심각하다. 이렇게 심각한 적이 별 없었다. 초등학교 2학년때 “내게 왜 엄마가 없냐” 는 질문에 할머니가 “너를 낳다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참 심각했었다. 할머니는 너무 솔직하셨다고 생각한다. 그냥 ‘죽어다‘ 라는 표현보다는 좀 더 인간적이긴 하지만 나를 너무 사실적으로 개입시킨 것은 너무 비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의 판단으로는 별 대수롭지 않게 한 말이었겠으나 나에게는 크나큰 슬픔이었고 절망이었다.   


그리고 아빠가 중 2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을 때 난 또다시 참으로 심각했었다. 나에게 아빠가 있다는 사실을 아빠의 죽음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내게 아빠가 있었다니! 한 밤중에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외할머니는 아빠의 존재를 확인했다. 길바닥에서 얼어 죽은 아빠! 엄마가 죽기 전에 이미 내게서 죽음보다도 더 하얗게 지어져 버린 아빠의 존재. 그렇게 아빠의 죽음으로 아빠의 존재를 알았던 것이다.


엄마는 내가 세상에 태어나면서 세상을 떠났고, 아빠는 당신의 죽음으로 내게 다시 살아났던 것이다. 세상에 죽음과 삶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 동전의 양면처럼 잇닿아 있다는 생각을 그 어린 시절부터 했던 것이다.


외할머니와 외삼촌과 함께 살아온 지 이제 4년, 내게 또 다른 위기가 찾아 들었다. 연세가 많이 드신 할머니는 경제적으로 어렵다. 외삼촌을 부양하기에도 힘이 드신다. 외삼촌이 머리가 비상해서 경제적인 부담보다는 도움을 많이 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삶은 고달프시다. 당신은 손녀 용돈이라도 쥐어주려고 봄이면 시장통 구석진 한 모퉁이에 앉아 상추를 팔곤 하시고, 여름이면 바닷가에서  환경정화 활동으로 젊은 사람들이 생각 없이 버린 오물이나 휴지를 처리하거나 주우시고, 가을에는  각종 스티커나 광고물들을 나누어 주신다. 추운 한겨울도 예외는 아니다. 연말연시 대목을 맞은 식당에서 청소도 하고 주방에서 일당으로 일을 하시기도 한다. 그러나 나의 위기가 할머니 때문은 아니다.


외삼촌은 비상한 머리의 소유자라고 이미 말했다. 과외 한 번 시킨 적도 없고, 좋은 책 한 번 사준 적이 없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혼자서 척척 잘해서 외할머니가 입에 댄 적이 단 한번 도 없다고 하셨다. 지금은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그곳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다. 나도 외삼촌 같은 사람이 되어 외할머니를 호강시켜 드리고 싶다. 그러나 나의 위기가 또한 외삼촌 때문은 아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전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나의 위기는 영어 때문이다. 영어 몰입식 교육에 대해 그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에 대해 나는 어떤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당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영어에 몰입해야 하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다. 알지도 못하는 영어의 웅웅거림에 스스로 최면상태처럼 몰입해야 한다는 사실이 정말이지 고역이 아닐 수 있겠는가? 내게 들리는 것이라곤 한국의 지명이나 인물의 이름들, 그리고 숫자들이 고작이기 때문이다. 사실  남들에게는 대수로운 일이 아닐지 모르지만 나는 정말 심각하다. 나는 국문학자나 사학자가 되는 것이 장래의 꿈이다. 국문학자가 되기 위해 영어권 대학으로 유학갈 일이 있을까? 나는 또한 학자가 아니라면 멋진 한정식 식당 주인이 되고 싶다.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해 영어가 정말 필요한 것일까?  


내가 생활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두 가지의 상반되는 경우가 나를 심각한 딜레마로 빠지게 한다. 어쩌면 아이러니인지도 모르겠다. 영어 몰입에 몰 자도 모르고 살아오신 외할머니를 보면 영어는 필요 없는 것 같은데, 오히려 할머니는 “앞으로 니가 이 할미처럼 고생 안할라믄 영어는 꼭 유창하게 해야 하닌기라, 알겠나! 니 외삼촌을 바라, 영어 잘하니까 유학도 가고 얼매나 좋아.” 하고 마치 영어의 필요성을 간절하게 느끼시고 있는 것처럼 강조를 하신다. 언젠가는 영어 몰입교육이 무엇인지를 교회에서 듣고 오셨다고 하시면서 “몰입 거, 좋은 거라더라! 니는 영어에 몰입해서 영어 그거 콱 아작을 내비리야 하는 기라. 알겠나! 한국말은 몰라도 영어는 유창하게 해야 되는 기라, 알겠나!” 나는 할머니께서 살아오신 삶을 되돌아보면서 할머니가 몰입되어온 신산스러운 삶이 나를 영어 몰입으로 내 모는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당신께서는 어려운 삶을 살아오셨지만 내게 만은 그런 삶을 물려주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리라.


할머니와는 달리 국비 유학을 떠나 작년에 영국 옥스포드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빋고 교수생활을 시작한 외삼촌은 영어 몰입 교육에 조소를 보내기만 한다. 삼촌의 빈 방 책꽂이에 꼽혀있는 영문 원서들하며, 논문 자료들, 각종 서류들을 보면, 또한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것을 보면 외삼촌은 영어 몰입식 교육의 필요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외삼촌은 영어 몰입식 교육에 조소를 보내면서 “모든 국민들이 영어를 다 유창하게 할 필요가 어디에 있냐? 할머니를 봐라, 할머니가 영어가 필요하냐? 영어가 없이도 잘 살아 오지 않으셨냐? 삶에는 영어보다 더 필요한 가치들이 너무나도 많은 데 모든 사람들을 영어에 몰입시킬 필요가 어디에 있겠냐. 심지어 영어 공용어를 주장하는 분들도 있더라. 가슴 아픈 건 내가 존경하시는 분이 영어 공용어를 주장하시는 거야. 몰입도 안되고 영어 공용어도 안되는 거야. 영어 때문에 좀 불편은 하겠지만 말이야. 그건 말이야,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기독교인으로 전도하려는 생각과 같은 거야, 알겠냐.” 외삼촌의 편지를 읽고 있노라면 외삼촌이 영국에서 보내 온 편지가 맞는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할머니와 외삼촌의 영어 몰입에 대한 상반된 생각 사이에서 혼란스럽다기보다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그 상반된 생각들이 할머니와 외삼촌사이에서 뒤바껴 주장된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했던 것이다. 즉, 할머니야 말로 영어 몰입식 교육에 대해 영어 없이도 다 살아가는데 뭐 필요한가하고 비판을 했어야 하고, 외삼촌이야 말로 외국물 먹은 경험으로 봐서 영어 몰입식 교육에 대해 적극적인 수용을 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반대였던 것이다.


사실 나는 몰입식이니 비몰입식이니에 관심이 없었다. 나라에서 한다면 할 수 밖에 없고 뭐 별수 있나 하는 식의 체제와 정책에 순종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그런데 자꾸만 주위에서, 특히 할머니와 외삼촌의 영어 몰입식 교육에 대한 상반된 생각에 몰입에 가까운 강요를 당하면서 그것의 타당성에 대한 나 자신의 생각이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영어 몰입식 교육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과 호기심은 무학의 할머니에서부터 최고지식층이랄 수 있는 외삼촌에 이르기까지 커지면서 다양한 의견으로 폭발하고 있는 것이기에 이제 나 자신도 국가와 민족을 떠나 나 자신을 위해 과연 영어 몰입식 교육이 필수적인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자 했던 것이다.


할머니는 영어를 배우신 적이 없다. 영어와는 상관없는 삶을 살아오셨다. 그런데 할머니는 영어 몰입식 교육을 찬성하신다. 이러한 할머니의 태도는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자신은 영어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삶을 살아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영어 몰입식 교육이 꼭 필요하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긍정적이고 개방적인 자세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이 배우지 못한 것을 손자에게는 시켜보겠다는 그 한의 읊조림일까?


또 외삼촌은 어떤가? 외삼촌은 누구보다도 영어가 필요한 사람이다. 영어가 외삼촌의 삶의 근거마저도 지탱하는 일부가 되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외삼촌은 영어 몰입식 교육에 대해 비판하고 심지어 조소를 보내기까지 한다. 삼촌의 그 태도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깊이 안자의 깊이 있는 통찰의 결과일까? 그럴 수 있다는 생각도 충분히 들었다. 그렇다면 영어 몰입교육이 외국에 여행 몇 번 하면서 영어가 필요하더라, 의사소통이 필요하더라는 피상적인 판단에서 나온 것일까? 오렌지가 아니라 오뤤지로 정확하게 발음하기 위해 몰입식 교육은 정말 필요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할머니와 외삼촌의 상반된 주장은 우습기까지 하다. 영어가 절실히 필요한 외삼촌은 몰입이라는 단어에 조차 알레르기와 스트레스를 보이고, 영어가 전혀 불필요한 외할머니는 몰입이라는 단어 하나가 벌써 나의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는 것이라는 듯이 찬사를 보내시니 말이다.


나는 외할머니와 외삼촌의 생각을 블렌딩하기로 했다. 그리고 쉐이킹하고 스티어링해서 내어 놓기로 했다.


할머니는 영문도 모른 체 당신의 삶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영어를 죽어라고 하라는 것이다. 할머니에겐 놀랍도록 영어가 도구화 되어 있는 것이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너무나 순박한 생각을 하고 계신거다. 즉, 할머니는 영어의 가치를 너무 일방적이고 맹목적으로 성공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고 계신 것이다.


그러나 삼촌은 달랐다. 비록 나의 생각 속에 할머니의 생각과 외삼촌의 생각을 뒤섞여 놓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외삼촌의 생각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영어에 대해 왜? 라는 질문을 심각하게 던지는 것이다. ‘내게 영어는 무엇인가?’ ‘나는 왜 영어를 배우는가?’       삼촌에게도 영어가 수단인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할머니와 다른 것은 영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 목적인 경우에까지 영어를 수단화하고 도구화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가 되겠지만 영어가 필요 없는 할머니의 삶에서 영어는 그야말로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할머니처럼 삶에 대한 간절하고 절실한 의지를 보일 것. 그러나 맹목적이지는 말 것! 

외삼촌처럼 삶의 목적에 따라 다양한 수단들을 생각해 볼 것. 영어가 정보화 세계화의 도구로 긍정적으로 작용하긴 하겠지만 인간의 삶은 정보화 세계화가 다가 아니라는 것! 실용화가 다가 아니라는 것!


그래서 나의 영어 몰입식 교육에 대한 가치 판단은 상대적이라는 것! 민족과 국가이전에 나의 외할머니와 외삼촌의 생각이 나의 생각을 잉태하고 있다는 것! 몰입을 절대적인 가치처럼 주장하는 인간들과 교육제도에 대해서는 중이 절을 떠날 수 없는 상황에서 몰입을 강요하더라도 몰입하지 않을 것임!

그러나 나는 내 수동적인 독백에 불만스러워 이렇게 덧붙인다
몰입은 그저 니 운명이라고, 내 삶에 몰입을 강요하지 말라고!(*)

(2008.6.22.14:10)   



몰입과 관련있는 또 다른 꽁트: 몰입은 구원이요,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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