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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4 23:07

다시 듣는 타이타닉 밴드 & 음악


타아타닉호 하면 아마도 셀린 디옹이 부른 주제가와 디카프리오가 떠오를 것입니다. 이 중에서도 그 잘 생긴 디카프리오 보다는 주제가가 더 인가가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타이타닉의 침몰이라는 비극보다도 오히려 이상할 만치 연인들에게는 아주 달콤한 사랑의 연가로 불려지기도 합니다. 비극을 초월하는 애틋한 사랑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미지 출처:www.sarimuseum




그러나 영화라는 가상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에서는 타이타닉호의 침몰과 함께 떼놓을 수 없는 음악이 있습니다. 물론 영화에서도 이 음악이 연주되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주었습니다. 바로 타이타닉호 밴드 또는 오케스트라이며, 그들이 연주한 Nearer, My God, to Thee 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상충되는 추측이 존재하지만 말입니다(아래의 글에서 이러한 추측들을 언급하고 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타이타닉호의 밴드




타이타닉과 관련된 가장 유명한 이야기들 중에 하나는 밴드에 대한 것이다. 1912년 4월 15일에 월리스 하틀리(Wallace Hartley)가 이끄는 타이타닉호의 8인조 밴드(8인조 밴드라고 하지만 사실은 완전히 분리된 두 그룹이었으며, 다른 장소에서 다른 시간대에 5인조, 3인조로 연주를 했다)는 승객들을 차분하고 밝게 하려고 일등급 라운지에 모였다. 후에 그들은 배 갑판의 앞쪽으로 나아갔다. 밴드는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게 되었을 때도 음악을 계속해서 연주했다.




Wallace Hartley, 밴드의 리더






밴드 멤버들은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고, 그들의 마지막 노래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많은 추측들이 있었다. 일등급선실의 캐나다 승객인 베라 딕 여사(Mrs. Vera Dick)는 연주된 마지막 노래가 찬송가 “"Nearer, My God, to Thee." 였다고 주장했다. 하틀리는 만약 침몰하는 배 위에 있다면 "Nearer, My God, to Thee." 가 그가 연주하게 될 노래들 중에 하나가 될 것이라고 한 친구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워터 롤드(Walter Lord)의 책 A Night to Remember이 배가 침몰하기 직전 "Autumn"을 들었다는 무선 교환원 해롤드 브라이드의 설명을 대중화시켰다(popularized). 브라이드는 "Autumn" 이라고 불리는 찬송가이거나 또는 그 당시에 인기곡인 "Songe d'Automne" 둘 중 어느 하나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브라이드는 타이타닉이 침몰하는 순간에 밴드에 가까이 있어서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목격자이다. 딕 여사는 1시간 20분 일찍 구명보트로 떠났기 때문에 밴드의 마지막 곡을 듣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최후의 연주곡(swan song)으로 "Nearer, My God, to Thee"을 연주한 사연은 아마도 1906년에 캐나다에서 광범위한 언론의 조명을 받았던 SS Valencia호의 난파로부터 기원한 신화 때문이 아닐까 하는데, 이 신화가 딕 여사의 회상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생각된다. "Nearer, My God, to Thee." 에 대한 두 가지의 다른 음악적인 곡들이 있다는 것이 또한 주목되어져야 한다. 하나는 영국에서 인기가 있었고 다른 하나는 미국에서 인기가 있었는데, 그 둘은 아주 유사했다. 크리프톤 웹(Clifton Webb)이 주연한 1953년작 Titanic은 미국 곡을 사용한 반면, 1958년에 제작된 영화 A Night to Remember은 영국의 곡을 사용했다.




Nearer, My God, to Thee(영국 곡) 1958년 A Night to Remember 중에서





Nearer, My God, to Thee(미국곡), 1997년 타이타닉


*위의 이미지들은 영문위키피디아와 http://www.titanic-titanic.com/titanic_band.shtml 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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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1 15:31

[꽁트] 전어



 

전어

사용자 삽입 이미지

bbs2.hani.co.kr/board/ns_world

나는 그 늦가을의 전어를 잊을 수가 없다. 맛 때문은 아니다. 그런 잊혀지지 않는 인상 속에는 이해할 수 없는, 그리고 부조리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한 사건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해할 수 없고 부조리적이라 이름 붙였지만, 다른 이름을 달아주어야 하는 건 아닐런지 모르겠다.


흔하게 지나치는 자잘한 일상 속에서 역시나 흔하고 자잘한 일이 왜 그토록 돌발스럽게 내 가슴속에 각인 되었는지 모르겠다. 인간의 주위에는 부조리한 일들이 언제나 넘쳐나는데도 말이다. 인간인 나의 눈에 비치는 세상 속에는 수많은 부조리들로 우글거린다. 이를테면 전쟁에서 학살되는 인간들이나 도살장에서 도살되는 동물들의 운명 같은 것들이 그렇다. 부조리의 경우로 말한다면 도살되는 동물들이 그러한 경우에 가깝다. 전쟁이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인간의 노력에 의해 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차 대전도 피할 수 있는 전쟁이었다(피할 수 있는 것임에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부조리한 사실일까.) 그러나 인간의 식욕은 끊임없는 육고기를 원하고 끊임없이 동물들을 죽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살기 위해 죽여야 하는 이 모순! 삶과 죽음이 서로를 집어  삼키는 이 순환의 부조리함.


내가 그 늦가을 어느 횟집의 수족관 속의 전어를 보면서 평화롭고 낙관에 가득 찬 이 세상에도 불구하고, 느닷없는 세상의 어찌 할 수 없는 부조리에 대한 강한 인상과 회의와 무기력은 이상할 정도로 강한 것이었다. 내가 전어의 세계를 인간의 입장에서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전어로 <변신>이 되어 수족관에서 <이방인>의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기 때문이었을까? 이전의 무수한 부조리 앞에서도 무감각하게 지나쳐 온 나 자신을 생각해보면 그것은 너무나도 강렬하고 인상적이었다. 친구와 함께 전어회를 먹고 출입문 밖으로 나와 커피를 홀짝이며 수족관에 있는 전어를 보면서 친구가 내게 한 말이 그러한 감정을 촉발시켰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 친구의 말은 그다지 대수로운 것도 아니었다.


“저 놈들은 저들의 운명을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면 얼마나 큰 공포에 휩싸여 있을까? 모를 꺼야! 모르는 게 약이란 이런 경우에는 딱 어울리지 않을까.”


그 친구의 그 말을 듣고 나는 강한 전류에 휩싸인 듯 전율했던 것이다. 나는 저 놈들의 어미나 새끼들을 맛있게 먹고 나왔을지 모르며 저 놈들의 눈에 비친 현실은 얼마나 부조리하며 나의 모습이 얼마나 가증스러울까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던 것이다. 불고기집, 보신탕집, 곰장어집, 횟집 등등의 앞에서는 전혀 느껴보지 않았던 그러한 감정이었다. 친구는 계속해서 수족관의 전어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불쌍한 자식들. 한 치 앞 제 운명도 내다보지 못하는 구나. 하지만 그게 낫지. 이렇게 유유한 것이 나아. 저 유유함에 은근히 화까지 나는데.”


나는 그때 전어들이 ‘살육 청부업자‘ 인 나와 친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하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을 전어가 한다고 한들 뭐 대수냐! 전어가 그 따위 철학적인 생각을 해, 제기럴! 나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괜한 감상이려니 생각했다. 나는 애써 그러한 병적인 감상을 막으려 먹이사슬이나 생존 욕구 따위의 단어들을 들먹거렸다. 그러자 내 마음도 조금 위안이 되었지만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전어들 앞에서 뱃속에 한 가득 전어회를 채우고 포만감에 만족하며 커피를 홀짝이는 나 자신이 구토를 느낄 정도는 아니었지만, 무기력하고 무각감하다는 생각은 완전히 지울 수가 없었다. 그것은 나를 둘러싼 주위의 자그마한 부조리한 현실의 영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어에게 나의 존재처럼 나에게 세상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닐까란 무기력과 무능력과 더 나아가 무감각 같은 것 말이다. 나는 수족관을 보고 있는 친구 옆에 나란히 서서 초조(?)하게 유영하는 전어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다 나는 괜한 감정 따위를 떨쳐낼 요량으로 친구에게 말했다.


“야, 2차 노래방 가야지! 뭐 그리 쓸데없는 소리를 주절거리고 있냐, 너는!”


친구는 계속 전어에 시선을 드리운 채 입을 열었다.


“야, 정말이지 모르는 게 약이야, 약!”


나는 친구에게 다시 한 번 모르는 게 약이다, 약 하고 퉁명스럽게 쏘아대고는 친구의 팔짱을 끼고 근처의 노래방으로 향했다. 노래방에서의 이야기는 노래를 계속 불렀다는 것 외에는 그다지 언급할 것이 없다. 허전한 김에 한 가지 언급한다면, 나는 서툴긴 했지만 팝송을 연속으로 불렀고 친구는 평소와는 달리 센티멘탈한 노래를 불렀다는 점이 될 것이다. 마흔에 이른 우리는, 제목을 [마흔 즈음에]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마지막으로 함께 목이 터져라 부르고 난 뒤 노래방을 나왔다. 그 날 밤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다음 날 아침, 부고가 날아들었다. 그 친구의 부고였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정말이지 모르는 게 약이었을까? 아무 준비도 없이 이 세상을 떠나버린 친구에게 모르는 것이 정말 약이었을까?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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