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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5 23:57

허니와 클로버

 
이미지 출처는 여기입니다.


 
허니와 클로버


초원을 만들려면 꿀과 클로버가 필요하다

- 에밀리 디킨슨

젊은 시절이 아름다웠던가? 이 질문의 시점은 젊은 시절을 거친 자들의 질문이다. 그들에게 젊음이 사라지고 난 뒤, 젊음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향유할 수 없는 젊음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결코 반복해서 누릴 수 없는 시간으로 추억이란 박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치도록 돌아가고 싶지만 그저 회상으로만 가능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은 아름다운가? 정녕, 아름다운가? 지금 청춘들에게 이 질문은 불필요한 질문이다. 청춘이 아름답다는 말은 되돌아보는 자들의 회상 속에서나 가능하다. 삶이 완성된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라면 청춘은 격렬한 붓놀림이다. 덧칠에 덧칠을 거듭하는 한계를 뚫으려는 욕망이다. 수많은 좌절과 상처를 끊임없이 덧칠하면서 하나의 완성된 그림으로 나아가거나, 때론 부수거나, 무의미한 붓놀림으로 제자리에 맴돌기도 한다. 그림과 조각으로 정신을 승화하려 하지만 유형의 캔버스와 나무속에 젊은 영혼의 자유로움을 넣는 것은 참으로 고뇌가 아닐 수 없다. 자유를 부자유의 틀 속에 넣으려는 역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역설이 있기에, 고뇌가 있기에 또한 젊음이 아름다워 지는 것이다.(이 영화조차 한 편의 그림처럼 느껴진다. 젊음의 순수와 서툼, 상처와 이해가 헝클어지고 복잡한 혼돈의 추상화를 이루어진 영화). 젊음의 시기를 지나 매너리즘에 빠진 기성세대들을 생각해 본다. 아주 부자유한 자연스운 삶과 자유로운 영혼이 고착의 상황에 처할 때 그림이나 조각은 한낱 물질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미지출처는 여기입니다.



그래서 초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또한 파괴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질곡에 대한 혐오와 부자유에 대한 경멸에도 불구하고 젊음은 ‘젊음이란 시기’ 속에 박제된 된 시간으로 남는다. 그것은 모든 인간의 숙명이다. 시간은 젊음의 시기를 그들이 뒤돌아 추억해야할 시간으로 마련하기 위해 조용히 거두어 간다. 그리고 인간의 육체에서 젊음이 분리되고 나면 추억이란 이름으로 내보인다. 그것이 그림이라면 혼돈의 추상화일까? 꿀과 클로버가 있는 초원일까? 그 추억은 하나의 액자처럼, 그림처럼, 조각처럼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 부자유함과 질곡 속에 우리의 젊음은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그래서 젊음은 아름다워진다. 눈물겹도록 아름다워진다.

그러니 젊음은 아름답다고 하는 바로 그 ‘젊음’ 을 마음껏 향유하는 것이야 말로 인간들에게 그토록 소중해 진다. 슬픔마저도, 상처마저도, 절망마저도, 상실마저도 순수하기에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바로 이 젊음의 영화다. 순수함과 솔직함으로 장식되는 젊은 날의 그림들이다. 감정의 과장도 엿보이고 서툼도 보이지만 이것이야 말로 이 영화가 의도한 바일 것이다. 정형화된 현실로 이 젊음들을 바라본다면 그야말로 한편의 넌센스가 되고 말 것이다. 눈물 겹지 않는가? 감정의 과장과 서툼들이. 영화 속의 저런 젊음들도 회상 속에 묻혀져 버릴 것이란 그 피할 수 없는 사실이. 그러니 속으로 눈물을 삼길 만한 영화라고 한 들 그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2009.2.25.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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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0 Comment 14
  1. Favicon of https://vobkr.tistory.com BlogIcon 카르밍 2009.02.26 11:5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초원을 만들려면 꿀과 클로버가 필요하다~~ 왠지 멋진데요^^

    • Favicon of https://conteworld.tistory.com BlogIcon 컴속의 나 2009.02.26 12:01 신고 address edit & del

      영화의 시작 장면에 이 구절이 나오죠.
      참 아름다운 말 같습니다^^

  2. Favicon of https://blue2310.tistory.com BlogIcon 드자이너김군 2009.02.26 13:0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참 멋진 영화. 제목도 어딘지 모르게 매력적이고 말이죠.
    잠시 청춘을 돌아보게 했던 영화 입니다. 색감이 참 예뻐요.ㅎ

    • Favicon of https://conteworld.tistory.com BlogIcon 컴속의 나 2009.02.26 21:49 신고 address edit & del

      재미라는 면에서는 좀 지루할 수 있는데
      저도 좋더군요^^

  3. Favicon of https://moneyamoneya.tistory.com BlogIcon 머니야 머니야 2009.03.01 15:0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그런데 개봉한영화인가요??? 와이프가 좋아할만한 영화라서 소개해줘야 겠네요~

    • Favicon of https://conteworld.tistory.com BlogIcon 컴속의 나 2009.03.01 20:36 신고 address edit & del

      현재 개봉중인 영화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모님께서 실망하면 괜히 제가...^^

  4. Favicon of https://www.kimchi39.com BlogIcon 김치군 2009.03.01 17:0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영화도 좋지만..
    애니메이션을 보면 정말 감동이 배가 되는 녀석이죠^^..

  5. Favicon of https://mimic.tistory.com BlogIcon 미미씨 2009.03.01 21:0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그나마 애니는 좀 재밌는거 같았는데..물론 성질나서 애니는 보다 말았어요. 만화책 그대로라 짜증나고...영화는 또 너무 이야기가 함축되어서 또 대략 난감인 영화가 되었더라구요.

    • Favicon of https://conteworld.tistory.com BlogIcon 컴속의 나 2009.03.01 23:05 신고 address edit & del

      그래요, 영화가 지루한 면이 있어서 끝까지 보기가 어렵긴 어렵더군요^^

  6. Favicon of https://dogguli.net BlogIcon 도꾸리 2009.03.08 12:1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저도 허니와클로버 봤어요~
    나름 깜찍발랄 대학생 이야기~
    좋더군요~~

    • Favicon of https://conteworld.tistory.com BlogIcon 컴속의 나 2009.03.08 18:39 신고 address edit & del

      젊음이 서투르고 설익는 시기이기만, 그럼에도 풋풋한 생동감이 넘치는 참 아름다운 시기이죠. 항상 그렇게 살고 싶은데 생물적으로 어려울 것 같습니다^^

  7. Favicon of https://skyplot.tistory.com BlogIcon skyplot* 2009.04.26 17:5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깔끔하고 예쁜 이야기.
    혼자가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지만
    이 만화를 보면서는 아, 연애란 건 참 에쁜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죠^^

    • Favicon of https://conteworld.tistory.com BlogIcon 컴속의 나 2009.04.26 22:59 신고 address edit & del

      skyplot님 잘 지내시죠^^
      블로그 포스팅이 멈춰있어 무슨 일일까 생각했는데
      많은 일들이 있었군요. 몸건강 하시구요, 항상 즐거운
      일이 있기만을 바랍니다^^

2008.05.15 03:20

[꽁트] 만숙, 우리들의 천사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미지 출처: www.lythastudios.com/swarovski

 



만숙, 우리들의 천사


21세기도 7년이나 지났다. 올 것 같지도 않던 21세기였다. 그러나 7년은 21세기에 누적된 시간이 아니라 2000년이란 긴 세월을 한 순간에 폭발, 분열, 그리고 융합시키면서 스며든 변화의 시간이었다. 이러한 폭발로 사회, 정치 문화적으로 소외되어온 주변부와 타자가 파편처럼 떠오른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한 개인에게는 어떠한가? 개인의 이성과 합리성이 오히려 억압되고, 테크놀로지와 멀티미디어가 양산하는 고상한 이름으로 포장된 유행, 트렌드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온갖 욕망들의 부유가 개인의 정체성 해체, 곧 자아 해체라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개인의 중심은 뻥 뚫려버리고 그 구멍 속에는 온갖 타자의 욕망들만이 채워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아를 잃어버린 현대인의 초상에 덧붙여 자아를 빼앗긴 현대인의 초상화라 말해도 될까?


진정한 자아의 의미란 타인과의 의미 있는 관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다. 억압되는 이성과 합리성을 회복하고 상업주의에 의해 인위적으로 강요되는 욕망을 벗어난 자리에 진정한 자아, 즉 타인을 존중하고 진실하게 사랑할 수 있는 개인이 탄생하지 않을까? 그러한 개인들이 모일 때 바람직한 공동체가 만들어 지지 않을까?


그러나 모두들 제 잘난 맛에, 제 기분 꼴리는 대로 아주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는 착각 속에 오만한 콧대를 세우고 있다. 어떤 거대한 것에 매달려 살아가고 있는 줄인형이란 사실을 모른 체 말이다. 이제 텅 빈 구멍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자아에 대해서 말하자면, 내가 우연히 알게 된 만숙의 이야기는 빠질 수 없지 싶다.


만숙이가 나를, 아니 내가 근무하고 있는 <청소년 문제 상담소>를 찾은 건 작년 가을이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불행하게도 몇 가지 경우에 한해서는 너무 늦어있었다. 그녀의 목에 찍힌 ‘이빨’ 자국이나 양팔에 새겨진 온갖 문신들과 약물 중독은 없애거나 치료하기에 늦지 않았지만 그녀의 뱃속에서 자라는 아이는 어쩔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술과 담배에 찌들고 약물에 중독 된 상태로 보아 만숙이의 뱃속 아이는 기형의 가능성이 아주 높았지만 막상 산부인과에서 검사를 해 본 결과 다행히 기형은 아니었다. 하지만 낙태를 하기엔 늦어 있었다.


만숙이에게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 물었을 때 만숙이는 멍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기만 했다. 그러면 인생이 더욱 불행해진다는 말에도 그저 넋이 나간 모습으로 “몰라“ 라는 버려진 짐승의 신음 같은 단음만을 내뱉을 뿐이었다. 불행하게도 만숙이가 모르는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본명은 물론이고 나이, 주소도 몰랐다. 그러니 그녀 부모의 얼굴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녀는 목욕탕에 한 번도 안 가 보았는지 자신의 몸무게도 몰랐다. 그녀가 아는 것은 거의 없었다. 만숙이가 아는 것이라고는 그녀의 부풀어 오르는 뱃속에 아이가 들어있다는 그 단 하나의 사실이었다. 말하자면, 그녀가 아는 것이 있다면 내가 임신한 것 외엔 아무 것도 모른다는 명언 같은 그 사실 하나 밖에 없는 셈이었다. 마치 나 , 만숙이를 알기 전에 너 자신을 알라는 항변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만신창이가 된 만숙이에게 그 자신의 존재는 ‘죽은 시체‘ 아니 ’살아있는 시체’ 와도 같은 모순적인 존재였을까? 어쩌면 그렇게 만숙이는 자신의 존재조차도 잊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인간과 세상에 대해 한없는 원망과 저주를 퍼붓기도 할 법 했지만 오히려 ’몰라‘ 라는 말만을 반복해 대던 만숙이는 텅 빈 구멍 바로 그것이었다. 새 생명이 자라고 있는 그녀의 자궁과 불러오는 배의 충만함에도 불구하고 만숙은 마치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검은 구멍 같이만 여겨졌다. 


무엇이 만숙이를 그토록 공허와 자학으로 몰아가게 했는지 누구나 짐작할 수는 있을 것이다. 만숙이의 육체에 가해진 폭력의 검은 손길이 누구의 것인지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욕망의 성격을 쉬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숙이의 정신에 검은 얼룩을 드리운 자들이 누구인지도 또한 쉬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검은 손길의 실체들을 짐작에만 근거해 털어 놓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 검은 실체들은 도처에 검버섯처럼 퍼져 또 다른 만숙이를 잉태하겠지만 어찌할 수 없는 슬픈 현실이었다. 만숙이의 상처와 고통과 공포는 그녀 자신으로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 역설을 잉태했다. 인간의 관계가 인간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비극, 만숙이의 모습이었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이해하고, 이해받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아니라면 차라리 그것은 비극이었다. 만숙은 그것을 증거했다.   


그러나 끝까지 만숙이가 붙잡은 것은 그녀가 잉태한 아이였다. 그녀의 공허한 검은 가슴에서 잉태된 밝은 생명이기라도 하듯 만숙은 어린 생명을 꼭 붙잡고 놓지를 않았다. 그녀의 가슴으로 꼭 보듬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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