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09.05.03 02:45

비빔밥 VS 한정식



위의 글은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하여 쓴 글로써 서두를 진지하게 시작한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글씨의 크기를 조절하는 편집 가정에서 서두 부분이 날아가 버렸더군요. 그래서 이상하게 시작하고 말았습니다. 아무튼 그대로 두렵니다^^


이미지 출처:http://www.flickr.com/photos/15093326@N03/1574662583/


먹도널드교와 새로운 신분 제도 에서 본 것 처럼 한쪽에선 비만으로 건강을 잃고 있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기아로 목숨을 잃고 있는 참담한 실정이다. 이러한 비극은 도대체 왜 발생하는 것일까? 

얼마 전 식당을 소개하는 TV 프로를 보았다. 식사에 딸려 나오는 반찬의 가지수가 무려 15가지를 넘는 식당을 소개했다. 한 상  가득 접시들이 놓여지고 손님들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또 칭찬 일색이었다. 손님들을 위해 저렴한 가격으로 정성껏 반찬을 마련하고 그 맛을 대접하는 것은 식당을 운영하는 주인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많은 손님들이 식당을 찾게 될 것이고 식당도 번창할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우려스러운 것은 그렇게 많이 나온 반찬이 얼마나 버려지느나 하는 것이다. 만약 적정한 반찬이 나와서 버려지는 것이 거의 없다면 이런 우려를 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러나 한끼의 식사를 위해 너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가지수가 많은 반찬들이 나온다면 아깝게 버려지는 음식들이 없다고 말하기 어려워 진다. 그렇다면 낭비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미지 출처:http://www.dkbnews.com/?mn=news&mode=read&nidx=4017&dom=1


우리의 음식 문화에 대해 제고해 보아야 한다. 더우기 이러한 제고의 시간을 가져야 할 방송 매체에서 오히려 그러한 방송을 버젓을 내 보낸다는 것은 음식을 그저 방송의 호재로만 취급하는 얄팍한 사고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한 번 생각해보라, 한끼에 십 수가지의 반찬이 제공되는 현실이 말이다. 우리의 비빔밥과 한정식의 극단적인 모습에 언제나 마음 한 편이 무거워 지지만 말이다. 언제가 필자도 우리 음식의 한 그릇 운동을 벌이자는 제안을 한 적이 있고, 그러한 선상에서한 그릇으로 먹는 음식 을 포스팅하기도 했다. 산업 폐기물과 쓰레기로 가득한 21세기에 우리의 비빔밥 만큼 유용하고 건강에 좋은 음식이 없다고 생각한다. 음식물 찌꺼기가 나올 여지가 없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정식은 음식 쓰레기를 발생시킬 확륭이 대단히 높다.

우리는 광우병 소고기 문제로 촛불 시위를 하고 건강에 대한 국민의 권리 주장하고 보호하고자 했다. 국민들은 건강에 대해 무시하고 신중하지 못한 MB정권에 대해 분노까지 일었다. 그러나 이 광우병 소고기 문제 못지 않게 우리 스스로에게도 '식량 낭비' 에 대한 자기 비판을 냉철하게 할 시점이라고 본다. 식당에서 나오는 그 많은 가지수의 반찬에 대해서 무턱대고 좋다고 한 것은 아닌지......좋은 식당의 기준으로 그런 식당을 생각해온 것은 아닌지......냉정하게 바라보았으면 한다. 필요없이 많은 음식이 대접되는 것은 미덕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다. 

맥도날드나 KFC, 롯데리아를 건강에 해롭고 자연 파괴적인 패스트 푸드라고 비판하지만 사실 음식 낭비는 그다지 없다. 이와는 반대로 채소가 많이 있는 우리 음식이 건강에는 좋지만 한정식의 음식 낭비는 심각한 지경이고 무언가 대안적인 비판이 있어야만 한다. 오랜 전통처럼 굳어져 고쳐지기 어렵겠지만 반드시 지나친 음식 낭비는 막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한 쪽에서는 비만으로 건강을 잃고, 다른 한 쪽에서는 기아로 비참하게 죽어가는 현실을 보면서 우리가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는 듯한 행동을 한다면 그건 죄악이라는 생각까지도 든다. 부처님 오신날에 채식을 하는 불교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음미해 보았으면 한다. 부처님 오신날에 한정식이 아니라 왜 산채 비빔밥을 공양 받는지도 한 번 꼼꼼히 되새겨 볼 일이다


사찰 음식에 대한 정보 참조: http://buddhistnews.net/archive/72655/200608081154996141.asp


2008/08/13 - [음식과 건강] - 순두부 찌개 비빔면 & 덮밥
2009/03/04 - [생각 돌아보기] - 삼겹살 데이를 맞이하여.....
2009/02/23 - [음식과 건강] - 야끼 만두, 그 정체성을 아십니까?
2009/02/23 - [음식과 건강] - 떡볶기 국물에 볶은 라면
2009/02/19 - [음식과 건강] - 맛있는 카레우동 & 비빔우동
2009/02/17 - [음식과 건강] - 삼겹살의 세계화를 위하여!
2009/02/08 - [일상의 흔적들] - 결혼 기념일에 먹은 아구찜, 아니 스파게티
2009/02/07 - [일상의 흔적들] - 맛있는 베이컨 드세요.
2008/10/03 - [음식과 건강] - 가을 전어의 맛
2008/09/01 - [음식과 건강] - 주방이 아름다운 나라
2008/08/31 - [음식과 건강] - 미국산 소고기를 앞에 두고
2008/08/21 - [음식과 건강] - 발우공양: 개인의 자각으로써의 생태주의
2008/08/07 - [음식과 건강] - 족발 초밥
2008/08/06 - [음식과 건강] - 베이컨 초밥
2008/08/03 - [음식과 건강] - 식사에 대한 단상(1)
2008/08/01 - [음식과 건강] - [한그릇]카레 양념삼겹살
2008/07/29 - [음식과 건강] - [한 그릇] 카레 낙지 볶음
2008/07/23 - [음식과 건강] - 카레 삽결살
2008/07/18 - [음식과 건강] - 카레 토스트
2008/07/10 - [음식과 건강] - 한우, 참 오랫만이다
2008/06/29 - [음식과 건강] - [음식]즉석 토스트피자
2008/06/29 - [음식과 건강] - 정통 이탈리안 스파게티(?) 만들기
2008/06/25 - [음식과 건강] - 돼지고기 피자 만들기

Trackback 0 Comment 11
2008.06.21 15:31

[꽁트] 전어



 

전어

사용자 삽입 이미지

bbs2.hani.co.kr/board/ns_world

나는 그 늦가을의 전어를 잊을 수가 없다. 맛 때문은 아니다. 그런 잊혀지지 않는 인상 속에는 이해할 수 없는, 그리고 부조리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한 사건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해할 수 없고 부조리적이라 이름 붙였지만, 다른 이름을 달아주어야 하는 건 아닐런지 모르겠다.


흔하게 지나치는 자잘한 일상 속에서 역시나 흔하고 자잘한 일이 왜 그토록 돌발스럽게 내 가슴속에 각인 되었는지 모르겠다. 인간의 주위에는 부조리한 일들이 언제나 넘쳐나는데도 말이다. 인간인 나의 눈에 비치는 세상 속에는 수많은 부조리들로 우글거린다. 이를테면 전쟁에서 학살되는 인간들이나 도살장에서 도살되는 동물들의 운명 같은 것들이 그렇다. 부조리의 경우로 말한다면 도살되는 동물들이 그러한 경우에 가깝다. 전쟁이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인간의 노력에 의해 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차 대전도 피할 수 있는 전쟁이었다(피할 수 있는 것임에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부조리한 사실일까.) 그러나 인간의 식욕은 끊임없는 육고기를 원하고 끊임없이 동물들을 죽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살기 위해 죽여야 하는 이 모순! 삶과 죽음이 서로를 집어  삼키는 이 순환의 부조리함.


내가 그 늦가을 어느 횟집의 수족관 속의 전어를 보면서 평화롭고 낙관에 가득 찬 이 세상에도 불구하고, 느닷없는 세상의 어찌 할 수 없는 부조리에 대한 강한 인상과 회의와 무기력은 이상할 정도로 강한 것이었다. 내가 전어의 세계를 인간의 입장에서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전어로 <변신>이 되어 수족관에서 <이방인>의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기 때문이었을까? 이전의 무수한 부조리 앞에서도 무감각하게 지나쳐 온 나 자신을 생각해보면 그것은 너무나도 강렬하고 인상적이었다. 친구와 함께 전어회를 먹고 출입문 밖으로 나와 커피를 홀짝이며 수족관에 있는 전어를 보면서 친구가 내게 한 말이 그러한 감정을 촉발시켰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 친구의 말은 그다지 대수로운 것도 아니었다.


“저 놈들은 저들의 운명을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면 얼마나 큰 공포에 휩싸여 있을까? 모를 꺼야! 모르는 게 약이란 이런 경우에는 딱 어울리지 않을까.”


그 친구의 그 말을 듣고 나는 강한 전류에 휩싸인 듯 전율했던 것이다. 나는 저 놈들의 어미나 새끼들을 맛있게 먹고 나왔을지 모르며 저 놈들의 눈에 비친 현실은 얼마나 부조리하며 나의 모습이 얼마나 가증스러울까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던 것이다. 불고기집, 보신탕집, 곰장어집, 횟집 등등의 앞에서는 전혀 느껴보지 않았던 그러한 감정이었다. 친구는 계속해서 수족관의 전어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불쌍한 자식들. 한 치 앞 제 운명도 내다보지 못하는 구나. 하지만 그게 낫지. 이렇게 유유한 것이 나아. 저 유유함에 은근히 화까지 나는데.”


나는 그때 전어들이 ‘살육 청부업자‘ 인 나와 친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하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을 전어가 한다고 한들 뭐 대수냐! 전어가 그 따위 철학적인 생각을 해, 제기럴! 나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괜한 감상이려니 생각했다. 나는 애써 그러한 병적인 감상을 막으려 먹이사슬이나 생존 욕구 따위의 단어들을 들먹거렸다. 그러자 내 마음도 조금 위안이 되었지만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전어들 앞에서 뱃속에 한 가득 전어회를 채우고 포만감에 만족하며 커피를 홀짝이는 나 자신이 구토를 느낄 정도는 아니었지만, 무기력하고 무각감하다는 생각은 완전히 지울 수가 없었다. 그것은 나를 둘러싼 주위의 자그마한 부조리한 현실의 영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어에게 나의 존재처럼 나에게 세상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닐까란 무기력과 무능력과 더 나아가 무감각 같은 것 말이다. 나는 수족관을 보고 있는 친구 옆에 나란히 서서 초조(?)하게 유영하는 전어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다 나는 괜한 감정 따위를 떨쳐낼 요량으로 친구에게 말했다.


“야, 2차 노래방 가야지! 뭐 그리 쓸데없는 소리를 주절거리고 있냐, 너는!”


친구는 계속 전어에 시선을 드리운 채 입을 열었다.


“야, 정말이지 모르는 게 약이야, 약!”


나는 친구에게 다시 한 번 모르는 게 약이다, 약 하고 퉁명스럽게 쏘아대고는 친구의 팔짱을 끼고 근처의 노래방으로 향했다. 노래방에서의 이야기는 노래를 계속 불렀다는 것 외에는 그다지 언급할 것이 없다. 허전한 김에 한 가지 언급한다면, 나는 서툴긴 했지만 팝송을 연속으로 불렀고 친구는 평소와는 달리 센티멘탈한 노래를 불렀다는 점이 될 것이다. 마흔에 이른 우리는, 제목을 [마흔 즈음에]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마지막으로 함께 목이 터져라 부르고 난 뒤 노래방을 나왔다. 그 날 밤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다음 날 아침, 부고가 날아들었다. 그 친구의 부고였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정말이지 모르는 게 약이었을까? 아무 준비도 없이 이 세상을 떠나버린 친구에게 모르는 것이 정말 약이었을까? 모를 일이다.






'꽁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꽁트] 몰입은 구원이요, 희망이다.  (0) 2008.06.25
[꽁트] 몰입은 너의 운명  (0) 2008.06.24
[꽁트] 전어  (0) 2008.06.21
[꽁트] 그 나무  (0) 2008.06.15
[꽁트] 기억의 교차  (0) 2008.06.09
[꽁트] 영재를 위한 몰입식 교육법 특강  (0) 2008.05.19
Trackback 0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