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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6

[꽁트] 거시기를 위하여 거시기를 위하여 모년(某年) 모월의 어느 여름 전국을 강타한 태풍이 지나가자 그 작은 마을의 주민들이 서서히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주민이라고 해봤자 고작 200명 안팎이지만 놀랍게도 그들 모두는 졸부들이었다. 최근 마을 근처에서 발견된 세계 최대의 금광 때문이었다. 가난한 산촌 마을에 내려진 횡재라면 횡재였다. 자신들의 땅과 집 밑에서 금 덩어리가 솟아져 나와 적게는 수억에서 수 십억이 굴러들어 왔으니 갑작스러운 돈벼락이었다.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는 다소 이상스런 표현은 순박하던 촌사람들이 처음에는 그 돈벼락에 어리둥절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개의 졸부들에게서 볼 수 있는 행태들을 자연스럽게 체득했다는 의미이다. 그들의 돈을 유혹하는 온갖 검은 마수들이 달려들면서 마을은 과거의 순수하고 순박했던 모.. 2008. 2. 16.
[꽁트]청국장의 맛 청국장의 맛 이 간단한 진리를 부모들은 왜 이다지도 모르는지 몰라. 식빵에 이렇게 치즈와 햄을 놓고 다시 식빵 한 조각을 올려먹는 것이, 포크로 돌돌 말아 쪽쪽 빨아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 얼마나 편하고 좋은가를 말야. 악취(?)가 나지도 않고 얼마나 좋아. 그리고 먹으면서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설거지 따위의 노동이 필요 없어 시간을 유용할 수 있고 말야. 그런데도 우리나라 음식의 위대성만을 주입하려는 그 얼빠진 부모들이, 아니 모든 한국인들이 난 정말이지 싫어. 아주 객관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음식이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지고 케케묵은 것인지 몰라. 밥과 국그릇을 비롯해서 그 많은 반찬그릇들이 얼마나 공간적, 시간적으로 비효율적인가 말이야. 자원의 낭비는 물론이고, 이동.. 2008. 2. 13.
[일본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2)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2) 영화가 끝날 무렵 조카인 쇼는 마츠코를 신이라 부른다. 과장된 표현이지만 그녀의 비극적인 삶이 종교적일 정도로 희생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의 제목은 ‘성스러운’ 마츠코가 아니라 ‘혐오스런’ 마츠코이다. 그녀가 혐오스럽다는 단서는 강가의 낡은 아파트에서 한 마리 더러운 벌레처럼 살아가는 모습이다. 그곳에서 마츠코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지 먹고 마시고” 하면서 “화장도 치장하는 것도 청소도 하지 않고 숨 쉬는 것도 귀찮아져 이대로 죽는구나” 할 정도로 삶을 포기한 상태이다. 마츠코는 그녀의 인생 속으로 더 이상 아무도 허락하지 않는다. 마츠코에 대한 혐오의 시선은 마츠코의 방 옆에 살고 있는 전위적인 메탈 밴드의 멤버인 듯한 오쿠라 슈지의 것이 대표적이다. 오쿠라 .. 2008. 2. 10.
[일본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인간의 삶이란 한 편의 서사(긴 이야기)와도 같다. 그러나 의도한데로 구성하고 전개할 수 없는 서사이다. 동화적인 상상과 환상으로 서사를 이끌어 갈 수도 없다. 언제나 폭죽을 터트리고 꽃이 만발하고 음악으로 가득 찬 동화의 세상으로 바꾸어 놓을 수도 없다. 이 세상 어느 인간도 작가가 소설을 쓰듯이 자신의 삶을 의도대로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겨우 불확실한 미래를 추측가능하게 하려고 노력하거나 지뢰밭을 걷듯이 조심스럽게 나아갈 수밖에 없다. 원고지에 쓰다가 찢어버리고 다시 쓸 수는 없는 것이 인생이다. 마츠코의 남자중 하나인 소설가 야마카와 처럼 삶의 원고를 찢어버린 다는 것은 바로 죽음인 것이다. 아무리 불행한 삶이라도 다시 번복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넝마처럼 끌.. 2008. 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