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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31 20:38

[도움 부탁] 블로그가 왜 이럴까요?


블로그가 얼마 전 부터 글이 크지고 이상해졌습니다. 조금 있으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계속 이렇네요. 아래에 보시면 아시겠지만 완전히 엉망진창입니다. 또 저와 같은 스킨을 사용하시는 모든 블로그들도 다 이렇게 보입니다. 왜 이렇는지 모르겠습니다. 도움 부탁드립니다.  꼭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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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31 11:37

쥐잡기 운동 대책회의


과거엔 이런 회의도 있었군요. 이름하여 쥐잡기 운동 대책회의! 추억의 그 시절, 지나간 빛바랜 사진입니다. 너무나도 인상적인 쥐잡기 운동 대책회의 모습입니다. 쥐에 대한 자료들을 보고 필기까지 하는 참석자들의 진지한 모습에서 반드시 쥐잡기 운동을 성공시키려는 강한 결의가 묻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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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잡기 운동 대책회의 이미지 출처:http://wow.seoul.go.kr/wow/pho


http://kr.blog.yahoo.com/ekfvoddl2002/362.html

1953년 쥐잡기운동



50, 60, 70년대의 쥐잡기 운동이 다시 부활하여, 40여년만에 서울 한복판, 그것도 정치의 1번지라는 종로에서 쥐잡기 운동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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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30 11:28

다시 보는 쥐잡기 운동




http://www.flickr.com/photos/happiestplaceonearth2005/231859192/

멀리 중앙에 쥐교(Ratolic) 교주 탄생 50주년을 알리는 꽃 장식물 위에 교주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도 가까이서 찍지 못하도록 인간의 벽을 쌓고있다. 인간의 위에 군림 하는 선량한 쥐의 탈을 쓴 쥐새끼가 가증스럽다. 



제 경험으로 볼 때, 쥐는 아주 악착같은 동물입니다. 집의 천장을 뚫고 침대로 뚝 떨어진 황당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천장에 붙어있는 플라스틱 환풍기를 갉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설마 그걸 뚫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기에 너무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두 이빨로 무언가를 한 번 갉기 시작하면 아주 끝을 보는 특성이 있습니다. 쥐의 앞 이빨은 평생동안 자라기 때문에 갉지 않으면 입 천장을 뚫게 되어 생존 자체가 어렵게 되기 때문입니다. 경계심과 겁이 많은 동물이지만 더럽고 지저분한 환경에서 인간과 더불어 살아오다 보니 생존의 기술 만큼은 탁월합니다. 황량한 사막에서 조차 생존할 수 있는 모래쥐가 그렇습니다. 또한 남극에서 쥐를 보았다는 기록이 있는 만큼 쥐의 생존력은 추위 마저도 극복하지 않을까 합니다(난파선에서 옮겨진 듯.) 남극에서 천적이 없이 살아간다면 머지 않는 미래(?)에 괴물로 진화하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북극에서는 레밍이라는 쥐가 서식합니다. 실제로 실험용 동물로 쥐를 많이 사용하는 것도 번식력뿐만 아니라 쥐의 DNA가 인간과 유사한하기 때문입니다. 집쥐의 경우 인간과 함께 살아가다 보니 인간에 대한 정보가 탁월하게 축척되어 있을 것입니다. 

*아래의 포스트는 이전에 올린 것을 다시 올립니다



먹을 것이 부족하던 과거에 쥐는 주식을 축내는 도둑이었고,
의약품이 부족하던 과거에 쥐는 역병을 돌게하는 더러운 존재였다.

경제가 발전해 먹을 것 걱정없는 이제,
의학이 발달해 쥐가 옮기는 전염병이야 쉬 고쳐지는 이제.
문득 쥐들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다.
쌀뒤주를 갉던 그 쥐들 사라졌지만
그 유전자를 고스란히 이어 받은 오늘날의 쥐들은
여전히 세상속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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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잡기 포스터 그리기 대회 입상자 수상 이미지 출처:http://wow.seoul.go.kr/wow/pho[원출처:서울시 언론담당관, 촬영일:1971-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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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잡기 운동 대책회의 이미지 출처:http://wow.seoul.go.kr/wow/p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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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http://kr.fun.yahoo.com/NBB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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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http://kr.fun.yahoo.com/NBB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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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http://kr.fun.yahoo.com/NBBS/n


쥐는 쥐덫, 쥐끈끈이,쥐약 심지어 방망이로 잡았다. 학생들은 쥐를 잡아 그 증거로 쥐꼬리를 잘라 학교에 가져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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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를 잡던 방망이의 이미지가 없어 야구방망이 이미지를 사용했다.(야구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미지출처:스포츠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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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눈에 보이는 실리를 위해 조심없이 덤비다 화를 자초한 쥐들. 눈에 보이는 실용도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가치들도 아주 중요하다는 교훈을 깨우쳐 준다. 이미지출처:http://kr.fun.yahoo.com/NBB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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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http://kr.blog.yahoo.com/kim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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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http://kr.fun.yahoo.com/NBB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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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www.HANK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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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들이 큰소리를 쳐대는 요상한 세상 이미지출처:한겨레 신문



이제 쌀 뒤주도 옛 것으로로 사라진 지금 뒤주 대신 쥐들은 무엇을 노리고 있을까요.
이제 뒤주를 대신하는 것들이 무엇이던 간에 우리 마음 속 뒤주를 꼭 쥐들로 부터, 수퍼 쥐들로부터,
인간의 모습을 한 신종 변형 쥐들로 부터 지켜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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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http://kr.blog.yahoo.com/kimho



소중한 우리의 마음 속 뒤주 옛날의 그 소박한 쥐들이 아닌 교묘하고 영악한 쥐들로부터 우리가 지켜야 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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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4 20:25

살아있는 권력 수사하겠다는 검찰, MB 역풍 잠재우려는 수작이 아니길!


살아있는 권력 수사하겠다는 검찰, MB 역풍 잠재우려는 수작이 아니길!



이미지 캡처: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4&articleid=2009052417174676880&newssetid=1331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 운운하고 있다.  조은석 검찰 대변인이 앞으로 "검찰이 부패 수사를 해야 하며 하게 도와줘야 한다. 남은 수사는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라고 검찰의 의욕을 대변하고 있는데 과연 이 말을 얼마만큼 신뢰할수 있을까? 살아있는 권력이라면 MB를 비롯한 그 주변의 실제 권력자들이 될텐데 과연 검찰이 얼마나 정의의 칼날을 부패와 부정의 심장에 겨눌수 있을까? 몇 몇 주변의 피라미들만 잡아들이고 수사 종료를 선언하겠지. 살아있는 권력 운운하는 기세가 요두사미격이 될 것이 틀림없을 것 같다.  낯 뜨거운 검찰의 생색이고 국민을 속이는 제스처처럼 여겨진다. 

하여튼 부끄러운 검찰이다. 이번 검찰의 살아있는 권력 운운하는 하는 기개가 MB역풍에 미리 생색용 꼬리를 쳐주는 검찰의 쇼가 아니였으면 좋겠다. 국민을 기만하고 속이고 한 순간을 모면하려는 시정잡배적인 모습이 아니라 진정으로 국민들을 위하고 국가를 위하고 정의와 양심을 세우는 바른 모습이었으면 한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원하건데, 살아있는 권력 수사하겠다는 검찰, MB 역풍 잠재우려는 수작이 아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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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3 18:57

경찰, 노 前 대통령 추모집회 봉쇄 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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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3 18:54

노무현 전 대통령 정치적 타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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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3 18:10

전두환-이명박, 이 한 장의 사진




이미지 출처:http://media.hangulo.net/831



전 재산이 23만원 이라는 전두환, 그는 여전히 이 세상을 활개치고 있다.  그는 여전히 대저택에서 호의호식하고 있다. 고작 23만원으로! 왜 이토록 진실과 정의가 사라진 세상이 되고 있는가? 이런 세상을 바로 잡아야 하는 정의가 바로 검찰의 몫이고 책임이 아닌가?

그런데 검찰은 지금 뭐하고 있나? 이게 진실인가?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세상의 진실이란 말인가? 이렇게 세상을 꼬아놓고만 있는 인간들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진보고 보수고, 좌파고 우파를 떠나 부패와 타락에 대한 원칙은 전직 대통령이던 일개 소시민이던 그 적용의 원칙이 같아야 하지 않는가?

도대체 검찰은 무엇을 하고 있나? 검찰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정의로와야 할 검찰은 왜 이러한 전두환을 수수방관만 하고 있는가? 전두환을 이토록 수수방관만 하려면 애당초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도 시작하지 말았어야 하지 않는가? 도대체 정의로와야 할 검찰을 이토록 부정의하고 타락하게 만든 세력이 도대체 누구인가? 도대체 누구인가?

희대의 독재자와 광주 원흉, 그리고 부정부패의 화신인 전두환이 활개치는 이 세상은 도대체 정상적인 사회가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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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3 16:29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삼가 애도를 표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서거에 삼가 애도를 표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유서



1. www.newshankuk
2. http://kr.blog.yahoo.com/lov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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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0 19:34

세계의 누드 비치


여름을 맞아 피서 특집입니다. 찾다 보니 사진을 그다지 많이 모으지 못했습니다. 시간되는 대로 성별(?), 국가별, 대륙별 등등으로 누드 비치를 업데이트 하고 싶지만......



http://www.greece-nudist-beaches.com/
 


http://www.greece-nudist-beaches.com/skiathos-beaches/



*위의 사진중 출처가 있는 외의 사진들의 출처는 영문판 위키피디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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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0 03:00

해운대 해수욕장 vs 누드 비치



요즘 여름이 다가온 듯 무덥습니다. 계절의 여왕 5월도 이 때이른 무더위에 어디론가 훌쩍 피서를 떠난 듯 합니다. 아마 그녀의 목적지가 바다일 것 같습니다. 아니 산일 것 같습니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여왕 대접 제대로 받지 못하는 슬픔에 궁전에 틀어 박혀 일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벌써부터 파리 모기까지 극성이니 여왕의 품위가 말이 아닙니다. 


아무튼 이제부터 해운대 해변은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합니다. 7월, 8월에서 대통령, 국회의원 투표에도 항상 기권했을 사람들을 포함하지 않으면 그토록 많은 성원이 되지 않을 것 같은 거대한 군중이 형성됩니다. 하지만 이 해변의 인파들은 촛불이나 집회와는 별 상관이 없는 자연에 몸을 내던지고 싶어하는 예술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교양있고 세련된 행위 예술가들인지 모릅니다. 그러니 경찰 병력이야 주차 단속이나 야간 음주 운전 때로는 수상 안전과 미아 예방 및 분실 신고에 집중되어 있는 것입니다. 조금 더 나아가면, 소매치기나 폭행등의 범죄 예방 정도일 것 같습니다.


혼자 만의 생각입니다만, 해운대 해수욕장을 해운대 누드 비치 로 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아래 사진으로 오해할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말하는 누드 비치는 자연 그대로의 해변을 의미합니다. 오해는 하지 마시길. (낚기셨다구요.) 참 로맨틱한 생각이긴 합니다만, 받아들이는 분들의 취향에 따라서 로맨틱이 아니라 황당하고, 엽기적이고, 기분 나쁘고 재수 없는 생각으로 추락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혹 제가 좀 이상스럽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Fuerteventura, Spain. 사람은 누드지만 해변은 사람들을 털어내고 싶을 것입니다.



스페인의 한 누드 해변. 이 정도라면  사람과 해변이 함께 누드로 일체가 된 모습. 과연 여자는 몇 사람 일까?



Praia do Abricó, Brazil. 거의 파라다이스의 수준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해운대 해수욕장은  매년 여름만 되면 전국에서 몰려드는 피서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면서 마치 거대한 공중 목욕탕 같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또 거대한 쓰레기통 같다는 인상도 받습니다. 재차 말씀 드리지만 순전히 제 개인적인 인상입니다. 저렇게 사람들이 많아 불편하고 짜증내는 곳을 왜 사람들이 모여들까 하고 해 마다 생각합니다만, "그건 니 생각이고" 하고 반박할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틈새에서 부대끼는 재미, 그리고 물로 뛰어드는 시원함과  바다의 확트인 느낌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 비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틈새에서 부딪기는 사람들의 살가움과 바다에서의 자유로움이라는 상반된 감정이 빗어내는 희열을 "네가 아냐"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거의 누드에 가까운 해운대 백사장
 


해운대 해수욕장의 체모에 해당하는 해운대 해수욕장 뒷편에 있는 송림공원의 소나무들
 


거의 누드로 싱그러운 모래 살깣을 드러내고 있는 해운대 해변. 멀리 달맞이 언덕이 보입니다
 

이렇게 여름이 지나고 몰려들었던 사람들이 마치 이제는 바다가 신물 나게 싫다는 듯 아니면 아쉬운 마음으로 태양에 탄 얼굴에 하얀 이가 드러나는 완소를 지으며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이러한 대형 공중 목욕탕이나 쓰레기통의 인상은 조금은 가시겠지만, 여전히 해운대 해변의 뽀얀 살갗에는 수많은 상처들이 남습니다. 온갖 피부병으로 고생합니다. 해운대 해변의 입장에서는 인간이 얼마나 고역스럽겠습니까? 어휴, 불쌍한 해운대 해변 " 언제 허락했다고 추잡한 알몸들을 비벼대고 x랄들이냐!" 하고 고함을 내지를지도 모릅니다.



백사장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해운대 해수욕장
이미지 출처: [한겨레] 2008년 08월 03일(일) 오후 10:16http://kr.news.yahoo.com/servi




중국의 풀장 또는 해수욕장?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 이건 해수욕장이 거의 압사 직전입니다.
이미지 출처:http://www.joystart.com/24029
 


곧이어 9월 해운대 해변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 갈 때쯤 부산 비엔날레가 열리면서 해운대와 광안리 백사장 위에 세계적인 미술가, 조각가들의 설치 작품들이 전시를 위해 찾아옵니다.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간 자리에 예술 작품들이 그 백사장에 자태를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참 역설적입니다. 상처받은(?) 해운대 해수욕장(광안리 해수욕장도 포함해서)을 위안하고 그 상처를 어루만지는 예술적인 안정제인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수십만 수백만의 인파가 몰려든 해운대 해수욕장 백사장의 찌는 여름이 서서히 지나가면서 선선한 가을 바람과 함께 그 작품들이 백사장을 어루만져 주는 것입니다. 올해는 어떤 작품들이 설치 될지는 모르지만 기대가 됩니다. 이렇게 바다는 약간 쓸쓸하고 조용해 집니다. 자연의 제자리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겨울 바다가 좋은 이유도 바로 이래서 일겁니다.


부산 비엔날레는 2년마다 열리는 예술축제로 재작년 2008년도의 대회 주제는 <낭비>였습니다. <낭비>라는 말을 되돌이켜 보니 왠지 쓸쓸한 해운대의 바다가 더 쓸쓸해지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해운대 자체가 쓸쓸함을 잉태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마도 그러한 감정은 자조 띤 쓸쓸함에 더 가깝지 않을까 하는데, 밤낮 흥청망정 불야성을  이루는 인간들의 소비에 둘러싸인 자연으로써의 해운대 백사장과 푸른 바다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낭비>는 좀 더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런 괜한 감정은 털어버리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광안리 해변에 설치된 비엔날레 출품 조형물
이미지 출처:http://cafe.daum.net/yunyang31/AkRs/172?docid=16CI7|AkRs|172|20081007230301



자 이제 쓸데 없는 사설은 그만두고, 과연 해운대 해수욕장을 해운대 누드 비치로 탈바꿈 하는 것이 어떤가에 대한 생각으로 자판기 키보드를 방향 전환하고자 합니다. 해운대 누드 비치화가 가능할까요? 아까도 말했지만 제가 말하는 누드 비치는 자연 그대로의 해변을 의미합니다. 오해는 하지 마시길. 확신컨대, 현실적으로 올해도, 내년도 앞으로 지구가 멸망할때까지 불가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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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8 20:37

해운대, 추리문학관







해운대 달맞이 언덕에 있는 추리문학관을 찾았습니다. 우리나라 추리소설계의 거목이신 김성종 선생님께서 사비를 털어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만들어진 추리문학관입니다. 도서관과 카페로 구성된 복합적인 문화 공간으로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더해져 달맞이 언덕의 자랑들 중에 하나입니다. 현재 추리문학관의 운영이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소중한 공간이 개인의 사비로 운영된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녹색성장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 이러한 문화 공간을 부산시 당국이나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고 홍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예술과 문화야 말로 녹색 성장의 요체인 것입니다. 녹색 성장이 마치 대체 에너지나 공해없는 IT산업 등에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녹색 성장이란 궁극적으로 인간의 마음의 문제이며 인간의 마음이 진정으로 녹색의 싱그러움으로 가득할 때 녹색 성장은 그 가치를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저 자전거를 타고, 나무 심고, 강 정화 한다고 해서 녹색 성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녹색으로 물결쳐야만 진정으로 녹색성장은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마음을 일깨우는 성숙한 문화의 발전 없이는 녹색 성장은 사상누각에 불과한 것입니다.


달맞이 언덕에 올라갈 때 마다 항상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이 무절제한 난개발 입니다. 아마도 김성종 선생님이 추리문학관을 이 달맞이 언덕에 세운 것은 달맞이 언덕이 문화의 공간으로 성장하고 개발되기를 바래서였을 것입니다. 화랑이 들어서고, 박물관이 들어서고, 미술관이 들어서고, 갖가지 예술 행사가 이루어지는 예술의 공간이 들어서기를 바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달맞이 언덕에는 빌라가 들어서고, 식당이나 카페가 들어서면서 달맞이 언덕을 프랑스의 몽마르트 언덕처럼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꼭 서구의 문화 공간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의 전통적인 예술의 공간으로 은은하게 가꾸어졌어도 좋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은 비단 달맞이 언덕 뿐만이 아니라 도시 전체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학교 근처에 유흥 업소가 난립하고, 식당과 주택가와 공장이 뒤섞여 있는 난개발이 도처에 이루어져왔습니다. 건축에 대해 무지한  주제에 이런 언급을 하기도 어색합니다만 하도 안타까워서 하는 넋두리입니다. 


현재 문화 공간이 지속적으로 늘어가는 추세이긴 합니다. 그러나 달맞이 언덕의 현실이 웅변하고 있는 것 처럼 도시 속에서 녹색 문화와 예술의 공간을 한가롭게 음미하면서 걷기란 쉽지 않습니다. 인간의 마음을 푸릇하게 만드는 진정으로 녹색의 문화에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이렇게 변화한 인간의 녹색의 마음이야 말로 진정으로 녹색 성장을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추리 문학관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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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4 01:37

악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악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여러분들 중에는 악플에 시달려 본적이 있을 것이다. 이웃 블로거 중에서도 악플로 인해 블로그를 그만둔 경우를 보았다. 아마도 악플 그 자체보다는 인간에 대한 회의감이 몰려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통을 표방한다는 블로그 스프어스가 한 순간에 허상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글은 즉각적인 말보다  시간을 가지고 생각하며 써야하기 때문에 진실에 더욱 가까운 표현 수단이다. 순수하게 진실을 내보이는 글에 돌아오는 악플로 인한 상처는 더 클지도 모른다.


이런 악플 여러분들은 어떻게 극복하는가?



비정상적인 댓글 하나

오늘 댓글 하나, 아니 댓글이 아니라 얼마 전에 어느 블로거의 글에 단 댓글에 대한 답글를 보고 깜짝 놀랐다. 댓글에 대한 답글이라기 보다는 일방적인 매도와 험담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그가 어떤 이유로 답글을 그렇게 달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실상 심각한 인격 모독이고  언어 폭력에 해당된다고 보며 정중히 사과해야 할 정도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그런 걸 요구한다면 나도 똑같은 인간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댓글에 대해 비판하거나 무시할 수는 있겠지만 악플로 인격까지 무시한다면 그것은 비정상적인 의식을 가진 사람의 비정상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무시하는 것이 최고의 방책

사실 이런 문제를 몇 차례 겪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저 무시하는 것이 최고의 방책' 이란 것도 스스로  체득하고 있다. 그리고 이상적인 사회니 소통이니 하는 말들이 블로그 공동체에서조차도 불완전한 언어의 유희일 수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별 개의치 않고 무시해 버린다. 현실은 이것보다도 더 추잡한 경우를 숱하게 보지 않는가. 무시의 경우, 개인차가 있을 수 있다. 단호하게 무시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속앓이를 하거나 감정을 참지 못하고 분노하는 경우에 까지 그 감정의 스펙트럼이 꽤 넓을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도 잘 살아가고 있는 데 뭘! 사실 기분 나빠 할 하등의 이유도 없다. 그것은 쌍방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악플을 단 인간의 정신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감정을 실어 악플을 쓰고 달았을 그 모습이 여간 우습지 않다. 오히려 불쌍하기 그저 없을 정도다. 가엾고 안타깝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감정도 일으키지 않는 편이 낫다. 이런 류의 이상스러운 인간은  온라인, 오프 라인을 불문하고 어디에고 존재하기 때문이다.  



블로그 스피어스는 현실의 축소판

나는 세상을 다소 소심하게 살아 온 편이라, 가능하면 앞으로의 삶은 무덤덤히 살고자 하고 있다. 특히 인간의 관계에 있어서는 가능한 복잡한 것을 피하고 일방적인 관계조차도 너그럽게 수용하려고도 한다. 즉 의견의 개진보다는 상대의 주장이나 의견을 겸허하게 수용하고자 자박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실천은 무척 어렵겠지만 말이다. 때로 언어는 목을 혹사시키는 채찍이 되기도 한다. 언어가 만들어 내는 오해의 사슬들이 숨통을 틀어 막기도 한다.  블로그 스피어스는 현실을 빠져나온 이상적인 공간이거나 소통의 공간만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현실의 축소판에 가깝기도 하다. 현실에 존재하는 것은 다 존재한다. 심지어 살인도 존재할 수 있다. 최진실씨의 사례가 입증한다. 비정상적인 댓글은 자극이나 분노의 대상이 아니라 동정과 염려의 대상이기에 마음의 평온을 깰 필요가 전혀 없다. 현실에서 살아가 듯이 블로그에서 살아가는 것도 이 또한 마찬가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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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3 03:12

왜 일본에는 돔 야구장이 많을까?






이미지 출처: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041567548&ltype=1&nid=003&sid=0103&page=2


왜 일본에는 돔 야구장이 많을까?


최근 우리나라에 돔(Dome) 야구장 건립이 추진 되고 있다. 몇일 전 이승엽 선수의 도쿄돔 천장에 맞는 홈런성 타구로 돔 야구장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는 것 같다. 돔 야구장은 천장이 없는 일반적인 야구장에 비해 장점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야구인들의 숙원 사업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제야 돔 야구장을 건립하는 우리이고 보면 이미 돔 야구장을 여러개 가지고 있는 미국과 일본의 현실이 부럽다. 물론 이 나라들은 프로야구의 역사가 오래되었고 오랫동안 야구와 관련된 인프라가 축척된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아마 그 중에 하나가 돔 야구장일 것이다. 필요가 기발한 창조물을 낳은 셈이다. 아니 경제적인 이익이 낳은 작품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많은 수의 야구팬들을 수용할 수 있는 돔 야구장이야말로 야구를 통한 수익 창출의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한다.


1988년에 건립된 일본 도쿄 돔을 예로 들어보면, 단순히 야구장으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문화 공간으로 여러가지 스포츠 레저, 관광, 예술, 쇼핑 등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시설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것은 야구와 다른 산업들이 결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거두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스포츠 산업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돔 야구장 하나 없는 우리의 스포츠 산업과 비교하는 것은 넌센스같기도 하다. 또한 미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치로의 연봉이 우리나라 야구 선수들의 연봉을 다 합친 것보다도 많다고 하니 말이다. 
 

사실 이 포스트를 작성하면서 단순히 돔 야구장 건립 계획에 대해 적으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따라서 이 포스트는 우리나라에 돔 야구장을 짓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아니다. 서두를 돔 야구장 건립으로 시작한 것은 '우리는 참 많이도 뒤쳐져 있구나' 하는 생각의 표현일 뿐이다.

도쿄돔


그렇다면 왜 이 글을 쓰고 있는가?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왜 일본에는 돔 야구장이 많을까?' 이 질문은 어리석은 질문처럼 보인다, 지었으니까 많은 것이다. 바로 그게 정답니다. '그렇다면 왜 지었을까?' 라고 물으면 질문이 조금 질문 다워진다. 그래도 좀 어리석은 질문이기는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야구팬에 대한 고려라거나 도시 미관이나 환경을 고려했다고 한다면 그건 좀 오버같다. 위에서도 이미 말했지만 최대한의 수익 창출이 돔 야구장 건립의 가장 주요한 동기가 아닐까 한다. 사람들이 몰려 들 수 밖에 없는 세련되고 멋진 옷 가게나 식당을 하나 차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니면 유명 블로그가 블로그를 세련되고 멋지게 블로그를 디자인해 수익을 높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돈 이야기하면 천박하게 여길지는 모르겠지만 돈이란 그다지 천박한 것은 아니다. 그 돈을 천박하게 쓰는 인간이 문제인 것이지.
 


얼마 전에 롯데와 SK전에서 롯데팬 한사람이 경기장에 난입 해서 소동을 일으켰다. 롯데팬의 한 사람으로서 이 소동을 뉴스를 통해 접하고 과거 야구장에서 보았던 달갑지 않은 추억들이 떠올랐다. 외야의 선수들에게 병을 던지고 쓰레기를 투척하고 심지어는 관중석에서 불을 피워 쓰레기를 태우는 소동들이었다. 승부에 불만을 품고 상대 선수들의 버스를 가로막고 욕설을 하고 스프레이를 뿌리는 것도 목격했다. 야구 응원이랍시고 술에 취해 고성방가를 즐기는 것도 숱하게 목격했다. 정정당당하게 겨루는 스포츠 경기를 교육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끔찍할 정도이다. 아이와 함께 야구장을 찾는 것은 그야말로 끔찍하다. 그런데 왜 우리의 부모들은 아이들을 야구장에 데리고 가서 이런 장면들을 대수롭지 않게 노출시킨다. 스포츠란 이름으로 말이다. 열성팬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정말 얼굴이 화끈 달아 오른다.
    


WBC에서는 일본의  이치로가 (정확치는 않지만) ' 한국이 일본을 이길려면 30년은 더 걸린다' 는 식의 도발을 서슴치 않았고 이후로도 우리를 자극하는 말을 가래 뱉듯이 토해 내었다. 상대에 대해 겸손하지 못하고 막말을 퍼붓는 이치로를 보면서 화가 나고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정치인들의 한국에 대한 망언을 많이 접한 우리로서는 프로 야구 하나에는 유명할지 언정 큰 권력이나 무력을 갖추지도 못한 프로야구 선수 하나가 한국 프로야구, 야구선수, 야구팬, 심지어 더 나아가 한국민 전체를 상대로 그런 막말을 하는 것은 의외였다. 이치로는 솔직히 '나쁜놈' 이다. 절대로 그런 망언을 해서는 안된다. 권투 선수들끼리의 개인적인 신경전이나 눈싸움과는 격이 다른 것이다. 일개 개인이 한 국가의 자존심을 뭉갠다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짓이다. 


그런데 분노와 자존심을 누그러뜨리고 이치로의 저 자신감이 도대체 어디에서 나올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즉, 이치로의 망언을 비난하고 분노를 표출하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는 작은 원숭이 같은 이치로라는 선수가 왜 그토록 자신감이 있는지 좀 더 근원적인 물음을 던져도 봐야 하는 것이다. 그 서슴치 않는 도발의 배경에 일본 야구의 저변에 흐르는 인프라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동시에 그런 일본을 능가할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을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36년 동안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았지만 이제 우리가 일본을 압도하고 능가하는 국가가 되겠다는 어떤 의지를 품어야 하지 않을까? 단순한 일회적인 감정이 아닌, 한 풀이 식이 아닌......우리가 일본의 36년의 지배를 받았지만 아직도 일본보다 뒤처져있다는 것이 정말이지 가슴이 아프다. 이치로 같은 저런 망언이 나올 수 있도록 얕잡아 본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

일본이 돔야구장을 세우고 야구 인프라를 확충하는 동안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자문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것은 야구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돔 야구장이라는 가시적인 현상을 놓고 보니 우리가 얼마나 뒤뒤처져 있는가 하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승엽 선수가 도쿄돔 구장의 천장에 맞는 타구를 치지 않았다면 나를 이런 생각도 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야구장 난입이라는 가시적인 현상을 목격하면서 우리의 야구 문화가 선진국 다운지 분명하게 드러난다.


물론 미국이나 일본이라고 해서 야구장 소동이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개인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일반적인 풍토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문화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복합 스포츠 단지로써의 야구 경기장, 야구와 관련된 관광 문화시설, 쇼핑시설, 여행등  시너지 효과라는 일반화된 현상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일본의 돔 야구장들을 보면서 그저 부러움이 아니라 우리의 능력과 자질을 살리는 각오를 새롭게 하는 것이 어떤가? 물질적으로는 풍족하나 아직도 정신 차리지 못하는 일본의 정치인들, 스포츠인들, 예술인들의 망언을 접하면서 그저 분노만이 아니라 우리가 일본을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앞서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도쿄돔


오사카 교세라 돔


나고야 돔


세이부 돔


세이부 돔 내부


후쿠오카  야후 돔



삿포로 돔


삿포로 돔



*위의 미이지들은 위키피디아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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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0 11:00

도꾜돔 천장을 맞힌 이승엽의 홈런성 2루타



도꾜돔 천장을 맞힐 정도니 이승엽의 힘은 역시 대단하다. 일본의 한 복판에서 한국인의 강한 힘을 보여주어 참 흐뭇하다. 국민 타자답다. 괴력의 이승엽 선수 계속해서 홈런 기록 세워 나가기 바랍니다. 이승엽 아자 아자! 파이팅!



동영상 출처: http://blog.daum.net/joy1004tv/16880511
 
 
 
도꾜돔은 북합 경기장으로 주위의 놀이시설 및 관광시설로 복합적인 문화 공간으로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참 부러운 시설이다. 우리나라도 이런 복합적인 스포츠 문화시설이 생겨 도시의 랜드마크, 아니 세계적인 랜드마크가 되었으면 한다. 
 






1989년 위성사진. 지금의 모습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도꾜돔에 대한 이미지와 정보출처: http://ko.wikipedia.org/wiki/%EB%8F%84%EC%BF%84_%EB%8F%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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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0 08:44

목욕탕의 추억(5)



이미지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011732355&code=210000



지금 내가 사는 작은 서민 아파트에서 보면 강 너머로 거대한 최신식 리조트 건물이 보인다. 이전에는 파라다이스 사우나였던 그 건물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가 않다. 아니 단 둘 밖에 없다. 나와 때밀이 이모 단 둘 밖에.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서민 아파트는 오래 전에는 달동네였다. 슬레이트 지붕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던 작은 동네였다. 바로 지금의 최신식 리조트 건물인「복합 리조트 단지」는 1980년대초에는 우리 집이 있던 산 중턱에서 멀리 바라보면 주위의 나지막한 건물들과는 어울리지 않게 우뚝 솟아 있는 건물 — 사실 건물은 4층 밖에 되지 않았고 굴뚝이 무척이나 높았기 때문에 그런 인상으로 남아있을 것인데 — 인 파라다이스 사우나였다. 즉 파라다이스 사우나는 「복합 리조트 단지」의 전신인 셈이다. 그 부근에서는 하나 밖에 없던 기존의 목욕탕을 확장 개수해 세련된 파라다이스 사우나란 이름으로 재개업을 한 것이다. 밤에 보면 그 파라다이스 사우나는 너무나도 화려해서 마치 아이들의 놀이동산을 연상시켰다. 당시에는 공중목욕탕이 꽤 호황을 누리던 때였다. 그리고 한 몇 개월 뒤쯤에 우리 동네에도 낙원탕이란 공중목욕탕이 생겼던 걸로 기억한다.


두 목욕탕은 이름부터가 희한하기도 해서 한 동안 동네의 화젯거리가 되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동네를 가로 질러 흐르는 작은 하천의 남쪽에 파라다이스사우나가, 하천의 북쪽에 낙원탕이 서로 마주하고 자리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천지남(川之南) 사우나, 천지북(川之北) 탕이라고 불렀다. 또 그 형세가 서로 마주하고 으르렁거리는 기세라 하여 사우나 ‘사’ 자와 탕의 ‘탕’ 자를 따서 사탕지기세라고 부르기를 즐겨했다. 하지만 이것은 동네사람들이 재미삼아 붙여 준 것일 뿐 워낙 동네 인구에 비해 목욕탕의 숫자가 적었을 뿐만 아니라 가정 내의 목욕이나 샤워 시설이 일반화 되지 않아 서로간의 과다한 경쟁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천남의 사우나나 천북의 탕이 서로 상업적인 과다 경쟁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름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보이지 않는 갈등의 자력권을 형성했다. 그것은 천남 지역과 천북 지역의 경제적, 교육적, 문화적 차이를 ‘사우나’ 와 ‘탕’ 이란 말이 대변해 주는 듯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동네는 고래로부터 천의 북은 산이 많아 토질이 척박한데다 전쟁 피난민들이 산기슭 곳곳에 정착하면서 판자촌을 형성했다. 이와는 달리 천의 남은 평야지대로 농사를 지으며 천석꾼, 만석꾼들이 많았다. 그래서 천남에는 농사일을 돕는 천북 사람들이 많이 옮겨가 살았다. 설상가상으로 평지에다 천(川)을 끼고 있는 천남은 대규모 위락단지와 주거단지가 들어서면서 알토란 같은 돈을 챙기는 주민들이 부지기수로 생겨났던 것이다. 파라다이스 사우나는 바로 이런 변화와 더불어 리모델링된 것이다.


파라다이스 사우나의 주인은 상호와는 달리 기독교인은 아니었다. 그러나 반쪽의 기독교인이라고는 할 수 있었다. 그가 사우나의 이름을 파라다이스로 붙인 이유는 세계에서 제일 큰 「대망교회」가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주일마다 뻔질나게 교회를 드나들면서 형제, 자매, 자녀 같은 단어들을 불러대는 것도 파라다이스 사우나가 세례의 장소로 이용되기를 바랬기 때문이었다. 그는 예수의 존재는 믿지 않았지만 천국은 믿었다. 신은 믿지 않았지만 파라다이스는 믿었다. 즉 그는 사후에 그 자신이 가야할 천국의 존재만을 믿었을 뿐 그 외의 것들은 깡그리 부정하는 단세포적인 위인이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나 그는 원래 외지인으로 패밀리를 거느리고 천남 지역에 거주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사업적인 역량을 발휘해 파라다이스 사우나의 사장에 이르게 된 것이다. 패밀리에 대한 오해가 있을 것 같아 조금 부가하면 그들은 여자라고는 한 명도 없는 모두 건장한 사내들로 구성된 검은 선글라스에 검은 양복을 즐겨 입고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약간은 혐오스러운 사람들이었다. 등짝에 그려진 용문신이 인상적이었다.


이와는 달리 천북의 낙원탕 주인은 전쟁 피난민으로 판잣집에서부터 슬레이트집 다시 시멘트, 콘크리트 집으로 이어져 마침내 낙원탕의 굴뚝을 우뚝 세움으로서 성공의 반열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 표현은 천북 지역으로 국한해서만 가능한 표현이었다. 천의 남 파라다이스 사우나와 비교를 한다면 그 초라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낙원탕의 주인은 반쪽짜리 종교인이 상대조차 할 수 없는 진실한 불교신자였고 선량한 위인이었다. 무엇보다 그의 식솔에서 차이가 났다. 선량한 얼굴의 아내와 부모의 마음을 항상 헤아리고 이웃들을 공경하는 착한 두 남매가 그들이었다.


물론 나는 천북 지역에 살았다. 판자집이나 천남지역에서 일품을 파는 집은 아니었지만, 경제적으로 그다지 풍족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빠는 외항선을 탔고 엄마는 천남 지역에 있는 작은 가내공장에서 일했다. 그 공장은 파라다이스 사우나와 낙원탕, 그리고 숙박업소들의 목욕용 타월을 세탁했다. 당시에는 세탁기가 일반화 되지 않아 엄마는 그곳에서 타월 손빨래를 하고 다림질을 하고 정리를 했다.


엄마는 나를 낙원탕에 자주 맡겼다. 낙원탕에는 엄마 친구가 때밀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녀를 ‘때밀이 이모’ 라고 불렀다. 때밀이 이모는 천남에 살았다. 원래부터 천남에 산 것은 아니고 천남 사내와 결혼을 해서 천남으로 이주를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천남에 사는 부자 집안에 시집을 간 것은 아니다. 결혼할 당시 때밀이 이모의 남편은 파라다이스 사우나의 전신인 천남탕 보일러실에서 일했다. 이후 파라다이스 사우나로 재개업을 하면서 보일러실의 책임자가 되었지만, 말이 책임자지 여탕, 남탕 각각 두 명씩 있는 보일러실의 고참 사원격이었을 뿐이었다. 때밀이 이모도 원래 천남탕에서 때밀이를 하다가 파라다이스 사우나로 바뀌면서 낙원탕으로 옮겨왔다. 외모와 학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보일러실과는 달리 때밀이 이모는 때밀이가 요구하는 학벌과 용모에 적합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벼락부자들과 벼락 부자들인 외지인들이 모여들면서 천남탕의 고객들과는 달리 파라다이스 사우나의 고객들의 수준이 벼락의 진원지처럼 높아진 탓이었다고 한다. 때밀이 이모에게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마치 불가촉 천민이기라도 한 것처럼 파라다이스 사우나의 고객들이 때밀이 이모를 경원시 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괴로워 하던 때밀이 이모는 다행이도 천남탕에서의 경력을 발판 삼아 낙원탕으로 그다지 어렵지 않게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때밀이 이모가 낙원탕으로 옮겨 온 이유에는 외모와 학벌에 대한 차별이 있었다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것은 때밀이 이모 대신에 파라다이스 사우나의 때밀이로 취업이 된 여자가 박사 학위 소유에 출중한 미모를 가진 20대의 아가씨라는 사실이 입증하는 것이다.


사실 때밀이 이모는 낙원탕으로 옮기기 전 한 달 정도 파라다이스 사우나에서 계속 일했다. 당장 때밀이가 구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말 고달픈 나날들이었다고 한다. 그 한 달 동안 때밀이 이모는 천남 귀부인들로부터 갖은 설움과 수모를 받은 모양이었다. 때밀이로 대우해 주기 보다는 하녀처럼 부려 먹기가 일쑤였다고 한다. 설상가상 그녀들이 하는 이야기들이 죄다 때밀이 이모와는 다른 별 세계의 이야기들로 가득하였으니 참으로 참기 어려운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물론 재력이나 명예에 대한 이모 자신의 열등감 또한 속으로 삭이기 힘들 정도로 컸을 것이다.


때밀이 이모가 겪었던 이런 다른 세상(파라다이스 사우나)을 그녀는 마치 갈 수 없는 동화나라라도 되는 것처럼 내게 들려주었다. 일하러 나가는 엄마가 나를 때밀이 이모에게 맡겨 놓을 때면 때밀이 이모는 나를 무릎에 앉혀 놓고 마치 동화를 이야기 하듯이 자신의 신세 한탄을 한 것 같았다. 그것은 어린 나의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반복되어 아직도 생생한 영상처럼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그때 때밀이 이모는 이렇게 말했다.


“파라다이스 사우나에는 악어들이 많이 산단다. 욕탕은 아주 넓어서 악어들이 느리게 헤엄을 치고 논단다. 악어들은 말을 할 수 있는 데 목욕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단다. 주인님, 어디를 밀어 드릴까요? 그러면 목욕하는 사람들, 아니 악어의 주인들은 이렇게 말한단다. 황금 이쑤시개 2개를 줄 테니 등껍질로 등을 좀 밀어봐! 그러면 옆에 있는 또 다른 주인이 이렇게 말하지. 난 말야, 발바닥을 네 꼬리로 좀 문질러죠. 황금 물고기 세 마리를 주마. 그런데 악어는 그 주인의 냄새, 즉 황금의 냄새가 나지 않는 사람들은 가차 없이 잡아 먹어 버린단다.”


그리고 또 이런 이야기를 했다.


“파라다이스 사우나의 체중계의 숫자와 발판은 다이아몬드로 장식되어 있단다. 귀여운 원숭이들이 체중계의 발판을 항상 눈이 부실 정도로 깨끗하게 닦는 단다. 원숭이들은 말할 수 있는 데 이렇게 말한단다. 주인님, 갈수록 몸매가 날씬해 가시네요. 그러면 주인들은 원숭이에게 황금 과일 꾸러미나 황금으로 된 소고기를 준단다. 원숭이들은 그 주인의 냄새, 즉 황금의 냄새가 나지 않는 사람들은 ‘흥’ 하고 무시를 해버린단다.”


때밀이 이모가 내게 왜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그저 추측만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마치 동화를 이야기 하듯이 자신의 신세 한탄을 한 것이라고 말이다. 때밀이 이모에게 그 이유를 물어 본적도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동화책 하나 없는 내게 들려준다고 한 게 그렇게 지어낸 동화 같은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이모의 이야기는 참 재미있었다. 파라다이스 사우나에 악어와 원숭이가 있고 황금물고기와 황금 이쑤시개, 그리고 황금 과일 꾸러미와 황금 소고기가 있다는 것은 정말 신기했다. 황금을 던져주는 그 주인들도 어떻게 생겼을지 정말 궁금했다.




이모는 내게 이런 사실을 아무에게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 이야기를 하면 엄마, 아빠가 죽을 지도 모른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때밀이 이모가 그렇게 내게 겁을 준 것은 그다지 현명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제거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때밀이 이모의 그런 말만 없었더라도 나는 엄마에게 파라다이스 사우나에 대해 물었을 것이고, 드물게 보는 아빠이지만 파라다이스 사우나에 데려달라고 생떼를 섰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내게는 크나 큰 고통이었다. 6살 밖에 되지 않는 꼬마에게 말하는 악어와 원숭이는 함께 놀아야 될 대상이었다. 가슴 설레는 동화나라였다. 지금도 그 감정은 너무나도 강렬하다. 파라다이스 사우나에 대한 호기심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만 갔다. 세상에, 내가 사는 마을 산 중턱에서 멀리 보이는 파라다이스 사우나의 거대한 건물에 말하는 악어와 원숭이가 있다니!


내가 모험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악어와 원숭이와 말하고 싶었다. 모험을 떠난 첫날로 그 모험은 막을 내리고 말았다. 결론적으로 그 모험은 참담한 실패였다. 우리 마을에서 바라보던 손에 잡힐 듯한 그 건물이 내가 막상 찾아 나서는 순간 어딘가로 사라지고 보이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하루 종일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매고 다녔다. 어둠이 밀려왔고 방향감각은 완전히 상실해 버렸다. 그 화려하던 파라다이스 사우나의 불빛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다 좁은 골목길의 전봇대 밑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잠이 들고 말았다.


깨어보니 때밀이 이모의 무릎 위에 머리를 배고 누워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몰랐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몰랐다. 시간이 흐물거리는 듯한 느낌이었고 뒤죽박죽 혼돈된 느낌이었다. 이 이해하지 못할 현상은 시간의 흐름이 만들어 놓은 무뎌진 내 기억 탓인지는 모르겠다. 이제 이 기억 속을 다시 헤집고 들어가기에는 지나온 시간이 너무나 긴 듯하다. 파라다이스 사우나의 그 말하는 악어와 원숭이를 만나 함께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파라다이스 사우나의 기억은 그렇게 내 마음 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말하는 악어와 원숭이와 함께.


사족: 2010년에 파라다이스 사우나는 최신식 리조트, 즉 「복합 리조트 단지」로 재개발 되었다. 그 건물의 21층에 있는 아이들의 놀이시설인 「Children's Playground 」에는 말하는 악어와 원숭이가 있다. 아니 말하는 자동차와 로봇도 있다. (*)

(2009.5.9.01:30)

위의 사진 모든 이미지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011732355&code=2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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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0 03:18

부산 광복동 PIFF광장





얼마 전에는 해운대 동백섬의 해안 산책로 따라 걸으면서 찍은 사진들을 올렸는데요, 5월 3일 함께 찍은 사진들로 이번에는 광복동 PIFF광장을 사진으로 담아보았습니다. 



지하철 자갈치역에서 내려 출구로 올라가면서 찍은 사진입니다. 검은 실루엣으로 보이는 노숙인의 모습과 밝은 하늘의 모습이 묘한 대조를 이룹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PIFF광장을 알리는 아치 조형물과 자갈치 시장의 아치 조형물이 마주보고 있습니다




자갈치 역에서 걸어서 PIFF광장으로 들어 가기 직전에 찍은 사진입니다.




PIFF광장의 군것질 거리, 오징어와 쥐포. 개인적으로 이것의 인상은 좋지 않습니다. 우선 포장이 되어 있지 않고, 유통기한이 분명치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에 까지 인정 많은 우리 한국 사람들이 관대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 데...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위생이나 유통의 측면에서 얼마든지 더 개선된 방식으로 팔 수 있을 것 같으며 그렇게 된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매상을 올리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PIFF광장의 바닥에는 배우들의 핸드 프린팅으로 장식이 되어 있는 데 깜빡 잊고 사진으로 남기지를 못했습니다.



PIFF광장의 먹거리 고구마 튀김과 옥수수. 간판에 적힌 '현장 튀김' 이 신조인것 같습니다.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은 때문인지 일본어도 보입니다.





최근에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떡볶기와 어묵&고기 꼬지 



어묵과 군만두, 그리고 떡볶기


PIFF광장의 군것질 거리, 오징어와 쥐포. 개인적으로 그다지 인상은 좋지 않습니다. 우선 포장이 되어 있지 않고, 유통기한이 분명치 않기 때문입니다. 조리된 것이 아니라 더욱 그렇구요. 이러한 것에 까지 인정 많은 우리 한국 사람들이 관대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 데......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위생이나 유통의 측면에서 얼마든지 더 개선된 방식으로 팔 수 있을 것 같으며 그렇게 된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매상을 올리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아래 사진들은 찍지 못한 핸드 프린팅 참고한 사진들입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 PIFF 광장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 PIFF 광장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DSK_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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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7 20:19

전업 주부를 마치고 나면 녹색 운동가가 되겠다






전업 주부를 마치고 나면 녹색 운동가가 되겠다


며칠 전 7, 8년쯤 된 낡은 구식 휴대폰을 공짜폰으로 교환을 했다. 순전히 아내가 나의 의견과는 무관하게 강제적으로 바꾸어 버렸다. 낡은 휴대폰을 구입할 때도 그랬다. 나는 휴대폰을 가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때까지 휴대폰 없이 잘 생존해왔고 잘 생존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홈쇼핑으로 신청한 휴대폰이 도착했을 때 아내에게 투덜거렸다. 왜 이렇게 괜한 짓을 하느냐고 말이다. 그렇게 해서 어쩔 수 없이 사용하게 된 폰이었다.

그걸 새로운 휴대폰으로 바꾼 것이다. 내 의견을 무시하고 커플폰 휴대폰이 생활의 필수품이니 어쩌니 하는 아내의 잔소리에 인상만 한 번 찡그렸을 뿐이다. 어차피 사용해야 할 것이라면 더 이상 말하기도 귀찮았다. 7, 8년 동안 그 낡은 휴대폰은 별 유용하게 사용되지 않았다. 휴대폰 자체는 유용한 것이고 나 자신이 그것의 유용성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한 달에 몇 통화 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휴대폰 요금은 꼬박고박 2만 원 이상씩 청구되었다. 차라리 이 돈으로 적금을 드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휴대폰을 없애지도 적금을 들지도 못했다.

아내는 직장을 다닌다. 매일 아침 7시에 고등학교 1, 2학년 연년생인 큰 딸, 아들과 함께 집을 나선다. 아내는 아이들을 학교에 실어다 주고 자신의 직장으로 간다. 아내는 인터넷 포탈 업체에서 애니메이터로 근무하고 있다. 벌써 10년째이다. 그 사이 나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만 두었다기보다 쫓겨났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10년째 살림을 도맡아 왔으니 전업 주부(主夫)인 셈이다. 그러나 전업주부 답지 않게 일탈적인 주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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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6 20:09

최시중의 놀랄만한 문학적 표현과 어지러운 박쥐춤(Bat Dance)


문학적 표현이란 무엇일까? 참 난감한 질문이다. 사실 나는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본적이 없다. 문학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꽤 본듯하고 그에 대한 답을 나름대로 생각해 본 적은 있지만, 문학적 표현에 대해서는 별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언어로 세계를 구축해야 하는 소설의 경우라면 날카롭고 섬세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허구의 세계를 마치 리얼한 현실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적나라하게 묘사하자면 언어 자체 뿐만 아니라 언어가 빗어 놓는 느낌이나 분위기, 촉감이 절대적이다. 주제의식이나 구성이나 스토리야 경험이나 노력으로 얻어지는 측면이 있지만 언어에 대한 감수성, 즉 언어의 절대성을 포착하는 섬세한 감수성이야 말로 작가의 본래적인 밑천에 가깝다. 소설상의 문학적인 표현방식은 허구의 구축이지만 더 현실적이어야 하며 진실을 드러내 보여야 한다. 따라서 그것은 현실을 반영한다기 보다는 현실을 비추는 것이라 하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 얼마나 타락하고 더러운 곳인가? 그래서 아름다움이 저 한 편에도 있지 않는가 하는 식의 비춤. 

시어는 어떠한가? 세계의 구축보다는 세계를 전복하고, 낯설게 만들고, 일탈하고, 감정을 자극하는 시어의 경우는 일상적인 언어로는 불가능하다. 일탈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시어로써의 의미는 반감되고 만다. 시인들에게 언어란 일상속에서 초라해지고, 오염되고 의미가 속화된, 무관심하게 나뒹구는 언어를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려 놓은 부활하고 재생된 언어이어야 한다. 오염되고 속화 된 언어로 쓰여진 시는 이미 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한 권력자중의 한 사람. 최시중씨의 입에서 터져나온 현실을 전복시키는 시적 언어이기도 하고, 진실을 드러내는 언어의 구조물이기도한 문학적 표현을 접하고서 엄청나게 놀랐다. 바로 이런 표현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완벽하게 합법적으로 선거 운동을 했다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그의 발언은 합법이란 언어의 허구성을 선거운동의 타락성을 절묘하게 표현한 문학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나의 생각에 대해 조소를 보낸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말하지 않는다' 는 그 무언의 표현 속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들의 아우성을 본다. 이것이 시적인 언어이고 시적 표현이 아니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이러한 시적 표현이야 말로 이명박 대통령의 위선과 거짓, 합법을 가장한 불법,  타락한 권력과 인간군상의 적나라한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최시중은 위대한 시인이다. 또한 소설가이기도 하다. 자신이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단 하나의 문장 속에 타락한 현실을 전복시킨 언어의 혁명가적 감수성을 그에게서 본다.

그의 시는 씨가 될것이고 이 씨는 다시 새싹이 될것이고 세상을 파릇 파릇 생명의 녹색으로 물들게 할 것이다.

 





최시중의 시어 "이명박 대통령이 완벽하게 합법적으로 선거 운동을 했다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는 "퇴임하면 녹색 운동가가 되고 싶다." 는 속화되고 멋없는 대통령의 권위적인 문장마저도 전복시켜 놓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는 녹색이 허구적일 가능성이 있임을 일깨우고 있다. 크나큰 충격으로 합법의 의미를 새롭게 느끼게 했듯, 녹색이 회색일 수 있는 개연성을 높이고 있다. 나는 말하지 않는다......그 속에 함축되어 있는 수 많은  의미의 사슬들이 춤을 춘다. 그 의미들의 춤속에 녹색이란 말, 운동가란 말들이 어지럽게 박쥐처럼 날아다닌다. 박쥐처럼......박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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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6 00:37

해운대 동백섬 해안 산책로




지난 5월 3일 해운대 동백섬에 갔다가 동백섬 해안 산책로 따라 걸으면서 찍은 사진들입니다. 설마 이런 사진들을 영화의 스포일러처럼  생각하시는 분들은 없으시겠죠. 아니라구요, 그럼 직접 구경하시겠다는 분들은 사진은 뛰어 넘으시고 댓글만 달아주세요^^



최치원 선생의 동상 입구 입니다. 깜빡잊고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최치원 선생의 동상으로 올라가는 길에 동백나무와 노송들이 품위있는 운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백꽃이 피어있으면 더욱 눈부시게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동백꽃 잎 하나 없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산책로 한 바퀴 돌고 들른 다는게 그만 누리마루로 가버렸습니다.



이건 흔들다리 산책로인데 아직 개방이 되지 않아 위로 걸을 수는 없습니다. 이게 개방이 되고 나면 바다와 하늘 사이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을 만끽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사실 과장되었구요, 그다지 길고 큰 흔들 다리는 아니랍니다)



산책로를 따라 지천에 널려있는 사스레피나무 입니다.



찬책로에서 찍은 멀리 달맞이 언덕이 보입니다. 저 달맞이 언덕은 난개발로 인해 보시는 데로 경관이 아주  훼손되어 있습니다. 그리스의 나폴리에 비유하기에는 좀, 저곳에는 다양한 식당가, 주택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김성동 선생의 추리 문학관 으로 유명합니다(추리문학관은 김성동 선생의 사재를 털어 만든 카페 겸용 문학관으로 재정적으로 상당히 어렵다고 합니다. 해운대에 오시면 해수욕장에만 들리시지 마시고 이곳에서 환담을 나누면서 바다의 경치를 즐기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산책로에서 찍은 해운대 해수욕장과 호텔 같은 빌딩들입니다. 갯바위 위 작은 동상은 황옥공주 의 상입니다. 보통 인어공주와 닮아 인어상이라고 합니다.



산책로 주위의 갯바위 입니다. 이 갯바위들은 우리가 딛고 있는 땅과 바다와의 접점, 그래서 발톱처럼 딱딱하게
뻗어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상상하게 합니다(괜한 혼자 만의 상상)



산책로가 해안을 따라 죽 이어져 APEC 누리마루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바다와 갯바위와 노송과 어우러진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참 왜소하게 보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어디 자연 만 할까요







산책로에서 해수욕장쪽으로 다시 한 컷. 한가롭게 낚싯대를 들고 있는 강태공이 마치 황옥공주를 닮아 있습니다.







해안 산책로의 끝에 있는 등대 모양의 조형물입니다. 조형물의 오른쪽으로 누리마루의 입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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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4 01:31

정화의 배와 남해 대원정




유럽의 콜럼버스와 바스코 다가마, 그리고 마젤란등의 이름에 익숙한 이들에게 명 성조의 환관으로 1405년부터 1433년까지 '남해 대원정'를 이끌었던 정화(鄭和,Zhèng Hé 1371년~1434년)는 낯선 이름인지 모르겠다. 정화를 기억하는 이들도 콜롬버스나 바스코 다가마, 마젤란 처럼 위대한 항해가나 신대륙의 발견자 같은 별칭을 붙이는데 주저할 것이다. 아니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역시 역사란 그 결과를 중시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화가 아무리 27년 동안 일곱 차례에 걸쳐 동남아시아와 인도, 그리고 페르시아까지 항해했으며 심지어 그의 분견대는 아프리카의 케냐 말린디까지 항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가 가져다 준것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에 가려져 버리고 만다.  


정화의 대원정 루트들: http://www.lcsd.gov.hk/ce/Museum/History/en/rteachingkits_route_zhenghe.php


만약 정화가 신대륙을 먼저 발견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가정을 허용하지 않는 역사가 못내 안타깝다. 서구 문명의 식민주의에 점철된 동양의 역사이고 보면 더욱 그런 아쉬움이 남는다. 신대륙에 어느 정도 힘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세력이 존재했더라면 서구의 식민주의와 대량의 학살과 문명 파괴, 그리고 착취가 존재했을까?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럴 개연성은 높다고 볼 수 있다. 아메리칸 인디언이나 남미의 원주민들에게 중국인들이 백인들에 비해서는 그다지 이질적이도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필자의 추측일 뿐이다. 



우선 정화의 함대와 콜럼버스와 바스코 다가마, 그리고 세계 일주를 한 마젤란의 함대의 규모를 비교해 보면 정화의 함대가 얼마나 큰 규모 였던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정화의 함대는 27,000명 내외의 승무원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선박의 수도 60여척에 이르렀다. 이에 비해 콜럼버스의 함대는 3척의  배에 승무원이 120명(88명이라고도 함)에 불과했다. 바스코 다가마의 함대도 배 4척(3척 이라고도 함)에 170명이었다. 마젤란의 함대의 경우는 배 5척에 265명의 승무원이 전부였다.  이러한 규모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정화의 함대는 왜 세계를 제패하는 힘의 원천이 되지 못했을까?


정화의 배와 콜럼버스의 산타 마리아호의 비교. 정화의 배가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http://en.wikipedia.org/wiki/Zheng_He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주제로 한 <1492년>이란 영화를 보면 콜럼버스는 대단한 모험가였음을 알 수 있다. 영화에 의하면 이미 이 시기에 콜럼버스는 지동설을 믿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실제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1520~1530년경에 집필이 되는 데 이것은 종교적인 엄격함 때문에 늦추어진 것인지도 모르며,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은밀하게 지동설이 신봉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시기는 또한 지동설과 더불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종교개혁을 잉태하는 새로운 종교 운동의 기운이 팽배하고 있을 즈음이다. 또한 과학적인 혁명이 싹트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영화 <1492년>에 의하면 콜럼버스가 기존의 종교적인 세계와 상당히 많은 마찰과 갈등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콜럼버스의 항해는 천문학, 합리적인 과학 지식, 지동설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가능하게 되었으며, 동시에 개인적인 모험 및 상업적인 이익이 큰 동기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그 당시 몽고 제국과의 교역을 통한 막대한 이익이 많은 대상들과 항구, 무역 도시의 팽창을 가져오고 있었다. 즉, 지구가 둥글다는 지동설에 대한 믿음과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통한 상업적인 이익에 대한 기대가 유럽의 항해를 촉발시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것은 당시 원나라와 그 뒤를 이은 명나라의 중앙 통제적인 경직된 무역과는 달리 유럽은 개인이 중심이 되어 이익을 추구하는 과장되게 말해서 독점적 자본주의의 요소가 내재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개인적인 이익 추구가 능동적이고 끈질기다는 측면에서 유럽의 여러 항해들의 성격을 규정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http://www.flickr.com/photos/flungingpictures/2045333854/


유럽과는 달리 중국 명나라 정화의 '남해 대원정' 은 그 엄청난 규모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정화의 대원정은 정치적임 목적을 가지고 시작했고 지동설과 같은 합리적인 의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지 않았다. 물론 개인적인 이익 추구라는 동기도 희박했다. 또한 몽골의 원나라를 이은 명나라는 원의 코스모폴리탄적인 개방성과는 달리 민간인들의 대외 무역을 금지하고 무역을 정부의 조공무역으로 제한시켰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항해에 치명적인 조치는 해금령이었다. 이 해금령이야 말로 동양과 서양의 무역을 급격하게 줄이며 중국을 페쇄의 대륙으로 이끌어 갔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한계에서 이루어진 정화의 대원정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는 어려운 일이었던 것이다.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화의 배
http://www.flickr.com/photos/thevortext/66122999/



정화에 대한 정보 참조:http://ko.wikipedia.org/wiki/%EC%A0%95%ED%99%94_(%EB%AA%85)
                               http://en.wikipedia.org/wiki/Zheng_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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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3 02:45

비빔밥 VS 한정식



위의 글은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하여 쓴 글로써 서두를 진지하게 시작한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글씨의 크기를 조절하는 편집 가정에서 서두 부분이 날아가 버렸더군요. 그래서 이상하게 시작하고 말았습니다. 아무튼 그대로 두렵니다^^


이미지 출처:http://www.flickr.com/photos/15093326@N03/1574662583/


먹도널드교와 새로운 신분 제도 에서 본 것 처럼 한쪽에선 비만으로 건강을 잃고 있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기아로 목숨을 잃고 있는 참담한 실정이다. 이러한 비극은 도대체 왜 발생하는 것일까? 

얼마 전 식당을 소개하는 TV 프로를 보았다. 식사에 딸려 나오는 반찬의 가지수가 무려 15가지를 넘는 식당을 소개했다. 한 상  가득 접시들이 놓여지고 손님들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또 칭찬 일색이었다. 손님들을 위해 저렴한 가격으로 정성껏 반찬을 마련하고 그 맛을 대접하는 것은 식당을 운영하는 주인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많은 손님들이 식당을 찾게 될 것이고 식당도 번창할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우려스러운 것은 그렇게 많이 나온 반찬이 얼마나 버려지느나 하는 것이다. 만약 적정한 반찬이 나와서 버려지는 것이 거의 없다면 이런 우려를 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러나 한끼의 식사를 위해 너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가지수가 많은 반찬들이 나온다면 아깝게 버려지는 음식들이 없다고 말하기 어려워 진다. 그렇다면 낭비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미지 출처:http://www.dkbnews.com/?mn=news&mode=read&nidx=4017&dom=1


우리의 음식 문화에 대해 제고해 보아야 한다. 더우기 이러한 제고의 시간을 가져야 할 방송 매체에서 오히려 그러한 방송을 버젓을 내 보낸다는 것은 음식을 그저 방송의 호재로만 취급하는 얄팍한 사고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한 번 생각해보라, 한끼에 십 수가지의 반찬이 제공되는 현실이 말이다. 우리의 비빔밥과 한정식의 극단적인 모습에 언제나 마음 한 편이 무거워 지지만 말이다. 언제가 필자도 우리 음식의 한 그릇 운동을 벌이자는 제안을 한 적이 있고, 그러한 선상에서한 그릇으로 먹는 음식 을 포스팅하기도 했다. 산업 폐기물과 쓰레기로 가득한 21세기에 우리의 비빔밥 만큼 유용하고 건강에 좋은 음식이 없다고 생각한다. 음식물 찌꺼기가 나올 여지가 없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정식은 음식 쓰레기를 발생시킬 확륭이 대단히 높다.

우리는 광우병 소고기 문제로 촛불 시위를 하고 건강에 대한 국민의 권리 주장하고 보호하고자 했다. 국민들은 건강에 대해 무시하고 신중하지 못한 MB정권에 대해 분노까지 일었다. 그러나 이 광우병 소고기 문제 못지 않게 우리 스스로에게도 '식량 낭비' 에 대한 자기 비판을 냉철하게 할 시점이라고 본다. 식당에서 나오는 그 많은 가지수의 반찬에 대해서 무턱대고 좋다고 한 것은 아닌지......좋은 식당의 기준으로 그런 식당을 생각해온 것은 아닌지......냉정하게 바라보았으면 한다. 필요없이 많은 음식이 대접되는 것은 미덕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다. 

맥도날드나 KFC, 롯데리아를 건강에 해롭고 자연 파괴적인 패스트 푸드라고 비판하지만 사실 음식 낭비는 그다지 없다. 이와는 반대로 채소가 많이 있는 우리 음식이 건강에는 좋지만 한정식의 음식 낭비는 심각한 지경이고 무언가 대안적인 비판이 있어야만 한다. 오랜 전통처럼 굳어져 고쳐지기 어렵겠지만 반드시 지나친 음식 낭비는 막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한 쪽에서는 비만으로 건강을 잃고, 다른 한 쪽에서는 기아로 비참하게 죽어가는 현실을 보면서 우리가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는 듯한 행동을 한다면 그건 죄악이라는 생각까지도 든다. 부처님 오신날에 채식을 하는 불교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음미해 보았으면 한다. 부처님 오신날에 한정식이 아니라 왜 산채 비빔밥을 공양 받는지도 한 번 꼼꼼히 되새겨 볼 일이다


사찰 음식에 대한 정보 참조: http://buddhistnews.net/archive/72655/200608081154996141.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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