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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31 22:52

시월의 마지막 밤





잊혀진 계절
이용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

지요. 그 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 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그 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 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

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나를 울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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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31 20:45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일품 짜장면

얼마전 매스컴에서 식당 위생 문제 를 다룬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문제가 불거지면서 무엇을 먹어야 할지 고민이었다. 설상가상 중국발 멜라민 사태는 도대체 음식 자체에 회의를 느끼게 만들 정도였다. 음식 위생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반짝하고 관심을 일으키고 나면 또 그 위생 문제가 고개를 쳐드는 악순환은 여전히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음식이 우리의 건강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기에 이러한 음식 위생에 대한 불감증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일으키게 하기도 하고 심지어 세상에 대해 체념적이고 회의적일 정도로 만들기도 한다. 왜 사람들은 음식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가? 자기 자식들에게도 비위생적이고 건강에 치명적인 음식을 먹일 수 있을까? 음식 앞에서 좀 더 경건해졌으면 하는 바람은 비단 혼자 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즐겨 시켜 먹던 중극음식, 통닭, 족발, 피자 등 배달 음식들을 다 끊어버렸다. 특히 중국 음식은 냄새조차 맛기 싫어졌다. 멜라민의 영향이 큰 듯 했다. 멜라민 하면 중국이 떠오르고 또 중국하면 짜장면집이 생각나는데 아무리 먹고 싶어도, 이런 판국에 중국요리 시켜 먹는 것도 여간 통 큰 자세가 아니지 싶었다. 그래서 집에서 직접 짜장면을 만들어 먹기로 했던 것이다. 

자 이제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일품 짜장면의 맛에 빠져 봅시다. 

감자, 당근,양파, 호박을 굵직 굵직하게 썰어 놓는다.



면과 춘장을 준비한다. 사정상 우동면을 준비했다.



돼지고기와 고명으로 올릴 오이도 썰어서 준비해 놓는다.



야채와 돼지고기를 볶는다.



준비한 춘장에 식용유를 약간 넣고 볶는다



볶는 야채와 돼지고기에 볶은 춘장을 넣고 함께 섞는다.


물을 큰 컵으로 3번 부워준다


삶은 면에 짜장을 얹고 오이채를 올려면 맛있는 짜장면 완성





식성에 따라 고추가루를 뿌려 먹어도 좋다




집에서 만든 짜장면 대성공이었다(물론 사람들 마다 다르겠지만) 정말 맛있게 먹었다.



보기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정말 맛있게 먹었다. 중국 식당에서 먹었던 틀에 박히고 느끼한 짜장면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이 정도의 가정표 짜장면이라면 궂이 시켜 먹을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손이 그다지 많이 가지 않았고 비용도 저렴하며, 무엇보다도 위생에 대한 걱정 없이 마음 편히 억을 수 있어 가정에서 만들어 먹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한그릇 맛있는 음식]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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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30 21:58

변소 기행




변소기행(便所奇行)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남녀가 한데 모여 있어야 돌아가는 이 세상에는 그와는 반대로 남자와 여자를 엄격하게 구분해야 하는 공간들이 있습니다. 바로 공중목욕탕과 화장실이 그러한 공간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의 경우는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대체로 우리와 마찬가지라 봅니다. 이렇게 남녀를 구분하는 이유가 사회적인 금기로 관습화된 것은 나라마다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원천적으로 이성을 허용하지 않는 목욕탕과는 달리 사실 화장실은 목욕탕처럼 남녀 구분이 엄격하지는 않습니다. 너무 급한 경우에 여자가 남자 화장실로, 남자가 여자 화장실로 뛰어 들지 못할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남자가 여탕으로 뛰어들었다고 하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또한 화장실이 이성에 관한한 목욕탕에 비해 아주 너그럽다고 해도 상습적으로 남자가 여자 화장실을 들락거린다면 그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내가 있었습니다. 들락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그 사내는 여자 화장실에 상주하면서 인기척이 끊어지는 새벽이나 늦은 밤에 아무도 모르게 살짝 빠져나와 화장실 주위를 어슬렁거리고는 다시 여자 화장실로 살며시 들어갔습니다. 사내는 끼니도 대변기 위해서 소리 없이 해결했습니다. 끼니라고 해봤자 미숫가루 한 숟가락을 입으로 털어 넣고는 물 한 모금 마시는 것이 다였지만 말입니다. 화장실의 내벽은 온갖 음란한 낙서들과 그림들로 도배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배설물의 냄새도 고약했습니다. 사내는 하루 종일 조용히 앉아 화장실의 벽면을 뚫어져라 쳐다볼 뿐, 움직임을 극도로 자제하고 정물처럼 앉아 있기만 했습니다. 간혹 몰려오는 낮잠을 깨우느라 대변기에 앉아 심호흡을 크게 하거나 사지를 뻗는 정도가 움직임의 전부였습니다. 밀폐된 공간을 좋아하는 인간 같았습니다. 어떻게 밀폐된 공간이 그 사내에겐 아주 평온하고 아늑한 공간이 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내의 생활공간이 마치 여자 화장실이 된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http://kr.image.yahoo.com/GALL


만약 사람들이 이러한 사내의 행동을 알게 된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요? 비정상적이고 변태적이며 엽기적인 짓이라 경악할 것입니다. 사회의 일탈 행위로 격리되거나 수감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야말로 연구 대상이 될지도 모릅니다. 물론 사내가 그런 사실을 알 만큼 정상적이기에 아무에게도 띄지 않으려고 아주 은밀하게 화장실을 드나드는 것이겠지만 사실 그의 행동이 알려지고 공개가 되는 경우 사건의 심각성은 커지는 것입니다. 하이에나 같은 언론과 방송은 줄기차게 반복적으로 이 사내를 집중적으로 발가벗겨 놓을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그 사내가 그러한 사실을 더 잘 알 것입니다. 그 사내는 사회 통념상 변태성욕자나 성도착자나, 파렴치범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고 여자 화장실에서 머무르는 고약한 짓을 하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런데 뜻하지 않게 그 사내의 기괴하고 엽기적인 행동의 이유가 드러났습니다. 그 사내의 친구들, 다시 말해 도반승 둘이 화장실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화장실 밖에서 둘 중 키 작은 스님 한 분이 이렇게 소리쳤던 것입니다.


“청송스님, 동안거의 처소(處所)치고는 퍽이나 황홀경(怳惚境)이요, 화계대택(花界大宅) 이외다! 참으로 감탄이 절로 나오는 구려! 오탁(汚濁)의 연(蓮)이요, 진세(塵世)에 열반(涅槃)이로군요! ”      


이제 사내라는 단어 대신에 스님이란 단어를 쓴다면 이러한 엽기적인 상황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스님이 동안거를 위해 여자 화장실을 선택했다면 이 사회의 인식은 어떠할까요? 비록 범부의 생각으로는 그 경지를 헤아릴 수는 없겠지요. 그랬던 것입니다. 동안거를 여자 화장실에서 끝마치며 그 사내, 아니 청솔 스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일갈(一喝)했습니다. 남녀분별 분별지생, 분별계교 변태자생(男女分別 分別智生, 分別計巧 變態者生). 남녀동인, 변소위인(男女同人, 便所爲人).


*이전 올렸던 글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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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30 00:11

사랑이 저 만치 가네!

사랑이 저만치 가네요.  남아 있는 사람의 심정조차 이해하고는 있는지요. 사랑이란 참 아픈 거죠. 완전한 이해란 존재하지않으니까요. 사랑이 저만치 가네요.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따라가 붙잡고는 싶지만 조용히 보내드리는 것이 바로 순리! 사랑이란 추상일뿐 현실에서 그 사랑을 찾기란 힘이 들죠. 그 현실의 사랑에는 이상보다는, 맹목보다는, 눈물과 아픔보다는, 계산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당신도 그렇게 떠나는 가요! 사랑이 저 만치 갈 정도로 당신의 발걸음이 그렇게 빠른 이유도 바로 그런 계산 때문인가요. 사랑이 저 만치 가네요! 저 만치 가는 사랑에 약은 시간이겠지요! 시간이 흐르면 저 만치 가던 당신의 뒷모습도 잊혀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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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9 19:46

젊음의 야성

젊음의 야성(野性)


어느 시대나 세대간의 차이는 있게 마련이지만 요즘처럼 세대간의 단절이 심각한 적도 없지 싶다. 흔히 신세대와 구세대간의 공통적인 대화의 주제가 상실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급격한 사회의 변화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저 휴대폰의 문자 메시지가 그렇고 인터넷  그렇고 컴퓨터 게임이 그렇다. 즉 급격한 사회의 변화와 함께 급격한 의식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신세대와 구세대가 공존하는 사회의 최소 단위로서 가정은 이러한 차이를 효과적으로 극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파괴되는 가정 또한 얼마나 증가하고 있는가. 외견상 부모와 자식은 인륜, 혈연적이고 전통적인 가치로 서로 단단히 묶여있는 듯하지만 사회, 문화적 의식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은 심각한 수준이 아닐까 한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기대는 다소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편향을 보여준다면 자식들은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편향에 저항한다. 비록 노골적인 저항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그들의 마음속 깊이에서 싹트는 저항의 감정은 강렬할 수 있다.

요사이 학교가 무너졌다고 하지만 사실상 그것은 가정이 무너졌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학교를 누가 무너뜨렸는지 모르겠지만 학생으로서의 신세대들이 책임의 일부를 면할 수 없다. 하지만 가정을 지키지 못하는 기성세대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고 하겠다.

신세대들은 자신들의 행위와 의식이 속박되기를 싫어한다. 이러한 속박에 대한 혐오증은 기성세대들이 끊임없이 교육시키고자 하는 속성으로서 야성(野性)이 아닌가 한다. 반항과 저항은 신세대들의 트레이드 마크가 아닐 수 없다.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과 저항은 이성적인 판단이라기보다 맹목적인 불신에 가깝다. 이것은 동시에 기성세대들이 갖는 신세대들에 대한 맹목적인 불신과 함수의 관계에 있다. 서로 이해해 주지 않으려는 아집 때문이다. 아니 이해 할 수 없는 벽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모순의 충돌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세대차이의 벽을 허물 수 없다. 하지만 신세대들의 야성은 인간적인 특성이기 이전에 생물학적인 특성이다. 생물학적인 특성임을 이해한다면 기성세대의 아량이 더 필요하다. 곤충의 세계를 보면 그 어미가 자식들의 먹이가 되는 경우를 보지 않는가. 기성세대가 먼저 다가가 대화의 시간을 만들고 그들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신세대들의 입과 마음을 열게 하고 궁극적으로 믿음을 싹트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비록 세대차이가 완전히 극복될 수는 없지만 소통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 본다.

신세대들의 야성(野性)은 대체로 맹목적이다. 기성세대의 관점에서 교육이란 이름으로, 사회제도의 관습과 전통이란 이름으로 그들의 목에 속박의 사슬을 묶는다면 신세대들의 야성(野性)은 더욱 사나워 질 것이다. 기성세대가 노력해야 한다. 먼저 아집을 꺾고 “전통은 단지 논증할 수는 없지만 정당성을 가진다” 는 집착을 버려야 한다. 중심이 아닌 주변의 문화에도 마음을 열 필요가 있다. 신세대의 야성을 누그러뜨리는 것은 속박이 아니라 섬세한 관심이며 보살핌인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병든 신세대들의 모습을 보지 않았으면 한다. 기성세대의 모습을 거울처럼 반영하는 그들의 모습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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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9 00:11

트레인스파팅(Trainspotting), 젊음과 현실의 불협화음

트레인스파팅(Trainspotting), 젊음과 현실의 불협화음(1996)

왜 젊음은 현실로부터 도피를 꿈꾸는가? 생물적인 현상인가? 아니면 사회적인 현상인가? 어쩌면 이러한 질문은 참 어리석은 질문인지도 모른다. 타락한 현실과 그 타락한 현실속에서 성장하는 젊음이 반항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은 자명한 것이니까.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위엄있고 고귀한 것으로, 젊음은 그 위엄과 고귀함을 더럽히고 추락시키려는 타락하고 파괴적인 존재로 전도되는 이 모순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현실은 자기 정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현실은 무엇으로도 상처받지 않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그것에 저항하는 젊음은 참 한심해 질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트레인스파팅은 비극인가? 희극인가?

그들은 현실을 선택하지 않았고 현실의 일부로서의 자기 자신들을 철저히 부정했다.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단지 젊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그들이 일상화된 삶을 거부하고 선택한 것은 마약과 술과 섹스였다.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도피의 세계였다. 하지만 그들은 현실보다도 더 지독하게 그것들로부터 파괴된다. 마약과 섹스와 술 중독. 그들이 선택한 것에 의해서 철저하게 파괴되며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통로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단지, 자신들을 파괴 할 수 있을 때만이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역설적인 상황에 도달한다. 자기 존재를 파괴하지 않고서는 현실을 벗어날 수 없는 한계가 곧 현실일까? 그렇다면 그들은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

그들이 철저하게 타락할수록 현실은 패배할 수밖에 없다. 그들 타락의 근원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현실은 그들의 타락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현실이 그토록 삭막하고 인간성이 메말라 있음은 바로 현실의 무기력함이다. 현실이 그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던가? 경찰과 정신병원과 물기 없는 가족이다. 역설적이게도 파괴적인 그들에겐 인간 영혼의 상처와 고통이 스며들어 있지 않던가. 그들이 이유 없이 산으로 오르려는 장면과 아이의 죽음에 미쳐 흐느끼는 그들에게서 인간의 냄새가 스며있지 않던가. 그러한 상처와 고통은 바로 현실 속에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은 현실의 병적 징후를 반영하는 것이지 단순히 개인적인 병적 징후들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곧 그들은 현실이 투영된 현실 그 자체이며, 현실의 제물인 셈이다. 그래서 그들을 보는 우리는 가슴이 아프다. 현실이 가슴 아프다.

트레인스파팅은 영원히 화해 할 수 없을 것 같은 젊음과 현실의 불협화음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그럼에도 또 다른 출구에 대한 탐색이 없는 것이 못내 아쉽기도 하다. 자기 파괴적인 양식만을 추구하는 그들이 왠지 어리석고 답답하게 보인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선택의 범위가 그토록 좁을 수밖에 없는 것인지 그들은 자문해 보았으면 한다. 하지만 트레인스파팅이 젊음이라는 한 시기의 단편적인 관찰이기에 그 시기 이후의 현실과의 관계는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진다. 불협화음의 진정한 의미는 결국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그 성숙함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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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8 20:46

스키와 키스의 차이점


1. 스키는 혼자 타지만 키스는 둘이서 해야만 한다.

2. 스키는 푹신해야 하지만 키스는 촉촉해야 한다.

3. 스키는 발로 비비지만 키스는 입술로 비빈다.

4. 스키는 넘어지지 않으려 하지만 키스는 넘어지거나 넘어뜨리려는 경우가 많다.

5. 스키는 미끄러지지만 키스는 짝짝 달라붙는다.

6. 스키는 폴이 있어야 하지만 키스는 입술만 있으면 된다.

7. 스키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록 짜릿하지만  키스는 길수록 더 짜릿하다.

8. 스키는 주로 계절적 제약을 받지만 키스는 제약이 없다.

9. 스키는 순수한 흰색을 연상하지만 키스는 달콤한 분홍색을 연상시킨다.

10. 스키는 차갑지만 키스는 뜨겁다.

11. 스키는 대체로 입을 닫아야 하지만 키스는 입을 열어야 한다.

12. 스키는 평행해야 지만 키스는 교차해야 한다.

13. 스키는 딱딱하지만 키스는 말랑말랑하다.

14. 스키는 누구나 탈 수 있지만 키스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5. 스키는 돈이 필요하지만 키스는 마음만 맞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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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6 10:41

죽음과 더불어 삶을 아름답게 살자

서구인들은 40이 넘어면 유서를 많이 쓴다는 글을 읽었던 것 같다. 그 숫자나 정도는 알 수 없지만 유서를 쓰고 공증을 거친 뒤 은행의 금고 등에 보관한다는 것이다. 이게 사실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생각해보면 그럴 것 같기도 하다. 어느 나라고 재산 문제로 분쟁이 끊이지 않지만 우리나라처럼 칼부림이나 칼부림은 아니더라도 혈연관계를 끊거나 남보도 못한 가족들이 되는 경우를 많이 목격하게 되는 것을 보면 분명 유서를 쓰는 것에는 좀 인색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이러한 현실이 사실이라면, 그렇다면 왜 우리는 유서를 쓰는 것에 인색할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 된다. 개인적으로 그 이유를 생각하다가 혹 묘지 문화와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공동묘지와는 달리 서구의 공동묘지는 도시속에서 산자들과 함께 존재한다. 심지어 일본도 그렇다. 일본영화들 보면 간혹 마을이나 도시속의 공동묘지를 볼 수 있다. 그 공동묘지에 앉아 놀거나 데이트를 즐기는 것을 목격하게도 된다. 가까운 아시아의 일본이 그러하다는 것은 약간 예외가 아닐 수 없다. 유럽등 서구의 경우는 더해서 공동묘지가 문화의 공간, 예술의 공간 심지어 관광의 공간이 되고 있다고 알고 있다. 인구 87만의 프랑스의 마르세유에는 21개의 공동묘지가 있다고 한다. 그 위치가 어떠하던 이러한 사실만으로 사자들이 산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역사적인 배경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또 파리에는 파리지엥의 영원의 안식처인 페르 라쉐즈 공동묘지가 있다. "이 묘지는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같은 녹지 공간중에 하나 이기도 하다. 이묘지는 프랑스 건축가 부로냐르가 최초의 정원식 묘지로 설계해 유명해진 이후유럽 각국과 미국에 선보인 공원묘지의 효시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묘석, 기념조형물 등이 지닌 역사적 예술로 등록되어 사실상 박물관 묘지로 대접받고 있다"(세계묘지 문화기행 p.33, 박태호, 서해문집)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파리지엥들이 일상적으로 찾는 공원임을 알 수 있으며 죽은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Cimetiere Saint Pierre

이미지 출처:http://www.flickr.com/photos/70463156@N00/50309065/


cimetière Saint Pierre à Marseille

이미지 출처: http://www.pakhomoff.net/eos/cimSP.html


Cimetière du Père-Lachaise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Cimetière du Père-Lachaise 이미지 출처:위키피디아



Cimetière du Père-Lachaise 이미지 출처:위키피디아




이러한 사실을 다소 추상화 또는 일반화시켜보면 죽음이 삶과 함께 어우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손을 잡고 공원을 거닐고,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고, 명상을 하고, 운동을 하면서 죽음이란 자연스럽게 삶의 일부로 깊숙히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죽음과 더불어 하는 사색이란 얼마나 깊이가 있을까?  죽음과 더불어 하는 박물관 산책은 얼마나 예술적인 묘미가 있을까? 유명한 파리지엥의 묘비 앞에서 그 글귀를 함께 읽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우리느 무엇을 연상할 수 있는가? 프랑스가 예술과 문화의 나라라는 것에는 바로 이런 사실들이 밑바탕이 되는 것은 아닐까?


우리들에게는 너무나도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에게 공동묘지는 월하의 공동묘지, 공포의 공동묘지이고 보면 이러한 살아있는 자들 속의 사자들을 상상하기는 약간은 힘이 든다. 우리들에게 사자란 함게 생활하는 존재가 아니라 의식으로 제례로 불러 내어야만 하는 혼이고 귀신이고 유령같은 존재이다. 이러한 사실은 산자와 사자와 분리되어 있는 세계, 분리되어 있는 공간에서 싹틀 수 있는 문화가 아닐까 싶다. 아무튼 이러한 사실은 일반화 하거나 어떤 근거로 내세울 수는 없지만 묘지를 공원처럼, 박물관처럼, 예술과 관광의 견학지처럼 드나드는 문화와는 분명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명절에 제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는 우리의 경우와는 너무나도 다르다. 그렇다고 우리가 사자들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느 나라들 보다도 사자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마음이 한의 문화를 응어리리지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수 많은 외침과 죽음이 그것을 대변해 준다.

이미지 출처: http://www.flickr.com/photos/misteriddles/228049760/



그러나 다 함께 마음으로 일상적으로 죽음을 소통하는 그러한 공간이 없기에 죽음은 자꾸만 멀리에만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는 개인의 마음 속에 응어리로 남은 한이 남은 것은 아닐까? 이것은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고 느끼고 체험하는 것이다.  다 함께 공유하기에는 힘든 것이다. 젊은 자식이 비로소 어머니의 한을 이해하는 데에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돌아 돌아 그렇게 또 아비와 어미가 되었을 때가 아닌가? 가슴에 묻어두는 것은 어찌 글로 표현할 수 이쓰을까만, 우리는 너무나도 소통부재 속에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이로할진대, 심지어 사자들과의 소통은!


죽음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은 죽음과 친근할 것이다. 죽음을 많이도 생각할 것이다. 시간에 대해서도 각별할 것이다. 공원묘지의 벤치에 앉아 보는 하늘은 각별할 것이며, 흐르는 강은 더욱 의미있게 다가올 것이다.이것은 아무리 과장이라고 해도 약간은 인정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의 사자들은 산으로 추방된 것은 아닐까?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서구인들이 유서를 일찍 쓴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 유서는 꺼림칙한 무언가는 아닐까? 재수없는 짓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런 시간에 과외를 하고 경쟁의 늪속으로 빠져드는 것은 아닐까? 명상과 사색이 없는 삶, 우리가 다 거쳐야 하는 죽음 조차에도 눈을 감고 살아가야하는 건조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마지막 죽음에 이르러 유언을 남기고 떠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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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5 18:22

이 빌어 먹을 놈의 신용카드

이미지 출처: http://kr.news.yahoo.com/servi.

신용카드, 이름은 듣기만 해도 좋지만 실용성을 놓고 볼 때는 완전히 빵점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현금 가지고 다니는 것에 비해 약간 편할 뿐 전혀 인간적으로 용서할 수 없는 잔인함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 신용카드다. 사용한도액이 있지만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자제력을 잃기라도 하면 펑펑 쓰고 만다. 

자제력을 잃는 데는 술만한 것이 없다. 술은 참 좋은 데 내일을 사자리게 한다. 오늘만 있게 한다. 지금 이 시간만 있게 한다. 지금 이 시간의 쾌락만이 있다. 카프 디엠. 내일이 사라지면 돈도 오늘 다 써야 한다. 아니 그런 생각은 하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지금 이 시간에 자본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신용카드를 긁는 것은 지금 이 시간에, 지금 이 밤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가장 최악의 조합이 술에 지배당하는 영혼과 신용카드의 결합니다.  술이 영혼을 조정하는 것은 리모콘으로 TV 채널을 바꾸는 것이나 마찬지이다. 그리고 술이 빠져 나간 자리에는 마음을 뻥 뜷는 공허함과 고통만이 덩그런히 남는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 전날 밤의 시간을 되새김해보지만 흐릿한 영상 뿐이다.

술과 신용은 비례한다. 술에 취해갈수록 신용은 점 점 더 높아진다. 술집 사장도, 주점의 언니들도, 나이트의 웨이터들도, 아니 밤에 일어나는 모든 역사적 현장의 주역들은 신용을 하염없이 보내준다. 신용카드로 긁어대는 건 돈을 뿌려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어떻게 백주 대낮에 말짱한 정신으로 돈을 뿌려 볼 수 있겠는가? 이게 가능키나 한 일인가? 그러나 이 빌어먹을 놈의 콤비네이션, 술과 신용카드 듀엣은 가능하게 해준다. 인간에게 보내주는 신용이라기보다는 신용카드에 보내주는 신용이다. 밤은 그렇게 지나간다. 밤은 점 점 적막속으로 미끄러져 간다. 그 새벽의 적막감은 무섭기까지 하다.

시린 속을 부여잡고 도둑 고양이처럼 방으로 기어들어가서는 영혼을 회복하는 죽음의 의식을 치루기 시작한다. 잠과 함께 서서히 영혼을 지배하던 술은 조금씩 빠져나가고 술이 빠져 나간 자리에 다시 자리 잡은 이런 빌어먹을 이성이란 것은 온갖 근심 걱정들을 불러 놓고, 혹 부주의해 아내가 영수증 뭉치를 먼저 발견하고 앙탈을 부리기라도 하면 현실은 악몽이 되어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신용카드를 앞세워 그토록 자신만만해 하던 밤의 기품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건 한 낱 꿈이었을까? 이 빌어 먹을 놈의 신용카드는 왜 아무 말도 없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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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5 18:00

구글인가, 구걸인가?

블로그를 시작한 계기가 사실 전적으로 네티즌들과의 소통에 있지만은 않았다. 블로그 그 자체가 너무나도 신기했고, 또 광고 수익이 있다는 사실도 너무나도  신기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블로그를 꾸려나가면서 많은 좋은 이웃들을 만나고 정보를 얻고 교훈과 감동까지 받으면서 블로그의 가치가 더욱 확대되었다고 하는 편이 더욱 솔직할 것이다. 신기함에서 시작해서 이제는 일상화되고 그 신기함이 약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블로그 하면 그 신기함을 빼놓을 없지 싶다. 

그 신기한 구글 광고를 처음 달 때의 즐거움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마치 천국에서 떨어진 사다리 같았다. 내가 글을 쓰고 그 글의 댓가를 광고로 받을 수 있다는 그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황홀하기까지 했다. 2008년 1월쯤이었으니 너무 늦게 알았다는 원망도 스쳐지나가기까지 했다. 아무튼 많은 블로거들에게 유익한 정보, 감동적인 글을 쓰면 댓가를 받는 다는 생각에 들떠 만약 이게 잘되면 내심 전업까지도 생각하기도 했다. 농담이 아니다. 사실 수입이 꽤 될거라고 생각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오프의 직장보다도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직업의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얼마나 생의 본질적인 문제인가! 미래가 보였다. 아니 돈을 벌고 싶었다. 최소한의 생계를 블로그를 통해 유지할 수 있다면 좀 손해를 보더라도 모든 것들을 버리고 싶었다. 이 또한 농담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데. 이 모든 생각  착각들을 이제서야 깊이 깊이 자각하고 있다. 참 삶을 한가하게 살고 있다. 우선은 참 슬프다. 황홀감이 사라졌는데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꿈이 게거품이 되었는데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열도 엄청나게 받았다. 결국 나의 인생은 이렇게 정해져 있는 것인가, 하고 맥없이 한숨이 나왔다. 왜 나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없는가, 새로운 방식으로 삶을 살 수 없는가? 이러나 나이들고 늙어 죽거나 병들어 죽어야 하나, 하고 신세 한탄 원망도 많이 했다. 사람이 말이지 좀 재미있게 살다가 가야지 하기 싫은 일 어기로 하면서 가는 게 행복일까? 사실 사람들 마다 처지가 다르고 나의 불행이 남들에게는 큰 행복으로 보이기도 하겠고, 행복을 보는 시선도 다 다르겠지만, 아무튼 나를 중심으로 생각해 보면 나의 꿈은 깨어졌고 황홀감과 기대는 사라지고 만 것이다. 

이제 구글 광고를 붙이다 보면 마음으로 찬 바람이 불어온다. 서글픔도 몰려온다. 슬프고 가슴이 아프다. 온갖 잡다한 생각들이 낙엽들을 온몸을 휘감는다. 구글 광고 클릭이 그리도 어려울까? 댓글 다는 것 보다 훨씬 쉽지 않는가? 손해날 일도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그런데...왜....내 글의 구글 광고는 찬밥 신세여야 하는가? 광고 수익의 그 신기함이 사라져 버리면 난 어떻게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자신의 글에 붙어 있는 구글 광고를 보면 마치 구걸하고 있는 내 마음을 보는 것 같다. 어쩌다가 이렇게 노숙자의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는지 가슴이 너무 심하게 아려 온다. 나의 꿈이었던 광고 수익, 나를 황홀과 신기함으로 몰아넣었던 광고수익이 이제는 구걸로 전락해 버렸다니 나는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다. 

오늘도 구글 광고 코드를 가져와 붙이면서 한탕  로또 만큼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내 글의 댓가만큼(물론 쥐꼬리겠지만) 밭을 수만 있다면 그리고 최소한의 생계(자녀 어학 연수나 고액 과외 포함)만 유지 할 수 있다면 이 블로그가 곧 나의 직업이요, 직장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또 눈을 한 번 깜빡여보면 착각인었던 것을......구걸이 되어 가는 구글 광고를 보면서 다시 슬픔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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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3 22:24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아내는 비행기를 내리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 탈 때는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었다. 아내는 버스를 타기만 해도 심한 멀리를 하는 체질이었다. 공항에서 멀미약을 사서 마신다, 멀미 방지용 테입을 귀밑에 붙인다 하고 부산을 떨었다. 가족들의 마중을 뒤로하고 비행기를 탈 때까지 아내는 아들을 만난다는 기쁨보다도 멀미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대장부 같은 아내도 멀미 앞에서는 꼼짝을 못했다. 그런 그녀였기에 옆에서 지켜보던 나도 내심 덩달아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비행기가 이륙할 때 소스라치게 놀라며 한 동안 눈을 감고 나의 목을 꽉 잡는 것을 끝으로 그녀의 멀미에 대한 근심이 막을 내렸다. 다행스럽게도 아내는 멀미에 시달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멀미의 걱정에 가리어졌던 기대감과 흥분감을 천진난만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긴한 걱정을 했시유. 멀미는키녕 기부니 허버러지게 상쾌해 지구먼요.”

아내는 마치 놀이터의 아이들처럼 자유롭게 기내를 돌아다녔다. 사람들의 눈총 같은 것은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아내는 언제나 그랬다. 주위 눈치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기내의 신기함이 그녀의 호기심을 더욱 강하게 일으킨 탓도 있지만 땅위에서도, 물위에서도 언제나 장소를 가리고 않고 나서길 좋아했다. 오죽하면 그녀의 별명이 이웃들 간에 꼴깝댁이고,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망둥이년으로 통했을까. 원래 아내의 기질이 그런 식이었다. 남편인 나로서도 막을 재간이 없었다. 그러나 아내는 그런 꼴갑짓과 망둥이짓 만큼이나 순수하고 악의가 없었다. 아무튼 땅에서의 버릇이 하늘에서 달라지지는 않았다. 기내를 돌아다니면서 아들 자랑을 늘어놓기도 하고 외국인들에게는 ‘알라뷰‘ 하고 손을 흔들어 대기도 했다. 같은 또래의 노인네들에게는 노래 한가락 뽑아보라고 청하기도 했다. 아내는 승무원들에게 몇 번 제지를 당하고 경고를 받고는 조금 시들해지기는 했지만 경미한 변화였을 뿐 기내를 활개치고 돌아다니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들내미 만내러 미국가구먼요. 하바든가 히바든가 하는 시계에서 치고로 조은 디학서 공부하고 있시유. 갸는 마 허벌나게 공부만 했구먼유.”

거머리 달라붙듯 척척 달라붙어 아들 자랑을 늘어놓았다. 승무원들이 재차 아내를 만류했지만 아내의 행동은 달라지지 않았다. 교양이나 공중도덕적인 관점에서는 작은 흠(?)이 될 수 있으나 승무원이 강제할 만큼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안전벨트 착용과 화장실 앞에서의 질서 등 승객으로서의 의무들을 충실하게 수행했으니 말이다. 나는 처음 몇 번 아내를 잡아 좌석에 앉히고 할 때마다 참 많이도 민망했지만 이내 익숙해졌다. 시간이 약이라는 생각에 심호흡 크게 한 번 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미운 구석, 정겨운 구석 그것이 사람 살아가는 냄새가 아닌가, 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오히려 가슴 한 구석으로 무료함과 허전함이 몰려왔다.

젊었을 때 중동 건설현장에서 뛰던 나는 비행기를 타보기도 했고 바깥세상을 호흡해 보았지만 아내는 사정이 달랐다. 남편이 부재하는 동안 아내는 악착같이 돈을 벌기위해 재래시장에서 야채장사를 했다. 중동에서 송금해 주는 돈으로는 자식교육이나 미래의 삶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아내는 오직 자식과 남편을 위해 자신의 삶을 유보하거나 포기했다. 내가 중동에서 귀국하고 그런대로 편안해질 쯤엔 막내아들 녀석이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의대로 편입 하면서 아내의 삶이 다시 신산해지기 시작했다. 그기다 졸업 후 유학을 가면서 또 다시 아내의 등이 휘어지기 시작했다. 시장 모퉁이에서 붕어빵 장사를 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도무지 피핍한 삶에서 헤어나지를 못했다. 아내가 이 치료와 틀니를 포기한 것도 바로 그맘때였다. 두 개의 윗니와 한 개의 아랫니가 없이 뻥 뚫려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아내는 주위의 눈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군데군데 빠져 있는 이를 드러내고 호탕하게 웃었다. 그렇게 웃노라면 희화화된 인물 같았다. 8년 동안 그렇게 불편하게 생활해왔다. 이제는 이 없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편하다고 치료나 틀니 말만 꺼내도 손을 내젓는 아내다.

아내는 마치 제비 새끼처럼 엉거주춤 반쯤 일어난 자세로 손을 들어 비행기승무원이 제공하는 다과와 음료수를 수시로 주문했다. 손을 들고 큰 소리로 승무원을 부르는 아내의 모습이 추상화처럼 어렵고 당혹스러워 보인다. 포도주를 마시다가 맥주를 주문하고, 콜라를 마신 후에 오렌지쥬스도 마셨다. 그러더니 급기야는 옆 좌석의 외국인의 무릎위에 음료수를 쏟는 실례를 범하기도 했다. 그가 영어로 무슨 말을 했지만 아내는 그저 웃기만 했고 나는 연신 쏘리, 쏘리라 하며 고개를 숙였다. 한국인들이 대다수인 국내 항공사 비행기라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또 한 번은 화장실에서 손찌검을 하며 언성을 높이는 촌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화장실 앞에서 줄서 기다리던 아내는 화장실에서 나오는 한 사내에게 대뜸 욕을 해댄 것이다. 사내에게서 나는 담배연기 냄새 때문이었다. 그 사내는 한국 사람이어서 다행히 아내의 욕이 섞인 한국말은 효과가 있었다. 그런 요란한 싸움에 앞서 화장실 센서가 작용해 비상벨이 울렸고 승무원들이 화장실 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중이었다. 이 사건은 그나마 아내의 공헌으로 평가되었다. 승무원들은 아내에게 미소를 지으며 기내 흡연에 대한 분노는 당연한 것이었지만 욕설은 자제하는 것이 좋았다고 말했다. 난 혹 이러다가 기내 바닥에 앉아 화투판을 벌이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한 지경이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멀미에 대한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고 오히려 다른 승객들이 멀미를 일으키게 했다. 망나니 칼춤 추는 꼴이었다. 막 죽어가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 기내를 휘저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내가 승무원들을 가끔 곤혹스럽게 하긴 했지만, 기내를 휘저었다는 식의 나의 표현은 다소 과장된 면이 없지는 않았다. 아내에 대한 다른 승객들의 반응이 그다지 불쾌하다거나 나쁘게 여겨지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그들은 비행기가 도착지에 가까워오자 오히려 아내와 함께했던 시간들을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 비행기를 내리면서는 모두들 맑고 유쾌한 웃음을 아내에게 보내주었다.

뉴욕 케네디 공항에 도착한 건 오전 11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뉴욕에서 마중 나온 막내아들과 함께 자동차편으로 보스턴으로 갈 예정이었다. 한국에서 보냈던 전날의 오전 11시를 여기 또 뉴욕에서 맞이한 것이다. 아내도 시간이 이상타며 퀭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미리 미국에는 아침에 도착할 것이라고 알려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내는 아침이란 사실에 신기해하기만 했다.

“이상쿠먼유. 이짝은 밤인지 알았는디 아참이구먼유. 시계 바닐을 꺼구러 돌리났다 봐유.”

아내와 함께 여권과 입국허가증을 들고 수하물 검사대로 갔다. 검사대 앞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아내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거나 미소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막내 아들에게 보낼 물건은 이미 보낸 터라 우리에게는 작은 수하물 가방 두 개가 전부였다. 둘 다 하드 케이스의 가방이 아닌 일반 천 가방이었다. 우리 차례가 되어 검사대에 작은 가방 두 개를 올리자 무슨 콤콤한 냄새가 나는 듯 했다. 나는 그때서야 둔한 코를 원망했다. 김치 냄새였다. 나는 검사대에서 재빨리 가방을 내리려고 했으나 직원이 이미 가방 지퍼를 열어 놓은 상황이었다. 손쓸 틈이 없었다. 자극적인 신김치의 냄새가 심하게 코로 전해져 왔다. 검사대의 직원이 잠깐 미간을 찌푸렸지만 금세 다시 미소를 띠며 가방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었다. 잡동사니들이 튀어나왔다. 터진 신김치 봉지, 김치 국물에 저려진 양말들, 수저, 화투, 된장, 고추장……예상하지도 못한 돌발적인 상황이었다. 곁눈질을 하니 나와는 달리 아내는 뒤에 있는 한국 사람과 히히거리고 있었다. 가방에서는 신김치 냄새가 더욱 진동을 했다. 터진 신김치 봉지에서 흘러나온 국물이 검사대에 흥건하게 고였다. 그래도 직업의식 탓인지 검사대 직원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미소임이 틀림없었다. 나는 김치, 김치 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는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검사대 직원은 미소를 띠었지만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쥐구멍에라도 기어들어가고 싶었다. 그때 아내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아내는 신김치의 포장지를 더 크게 찢더니 김치 죽지 하나를 꺼내 두 손으로 쭉쭉 찢어 검사대의 아가씨에게 내미는 것이 아닌가. 검사대 직원이 뒤로 주춤 물러서자 아내도 김치를 들고 팔을 더 쭉 뻗었다. 요렇게 먹는 거다는 식으로 아내는 입을 크게 벌리고 혀를 내밀고 김치를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한 입 가득 우물거렸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주위의 한국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었고 파안대소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 개인적인 인상은 김치가 세계화되기에는 이렇게 어려운 고비가 많아야 하리라는 것이었다.

출국심사대를 통과하고 출구쪽 공항 로비로 나가자 막내아들 녀석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는 막내 아들를 안고는 떨어질 줄을 몰랐다. 등을 다독이고 두 손을 꼭 잡고 뺨을 문질러 댔다. 아내를 안고 있던 막내아들이 코를 컹컹거렸다.

“이거 신김치 국물 냄샌데? 엄마 김치 포장지 터졌지? 와우 엄마, 고생 좀 했겠네.”

막내아들 녀석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연방웃기만 했다.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나도 미국 처음 올 때 김치 포장지 터져서 난처했었어. 김치 때문에 망신 많이 당했지. 그런데 말야, 여기서 공부하면서 보니까 미국사람들이 김치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더라구. 비만의 나라 미국이 날씬해지려면 김치가 딱이지 싶어, 엄마. 그리니 엄마는 미국인들에게 경종을 울려준 거라구요. 김치 국물 세례를 해준거라구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 엄마. 엄마한테 좋은 말이야. 정말 잘했어, 엄마.”

엄마를 위로하려는 막내아들이 살갑게 느껴지긴 했지만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아내의 모습은 분명 지나친 데가 있었다. 아니 지나쳤다. 그런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나는 다소 화난 표정으로 오랜만에 만난 기쁨도 저만치 젖혀두고 막내 아들에게 쏘아 붙였다.

“세례긴 이놈아! 망신도 그런 망신은 없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정도였는데 넌 한다는 소리가 고작 그런 말장난이냐? 어디 이래 가지고 널 다시 만나러 올 수나 있겠냐. 검사대에 새어나온 흥건한 신김치 국물하고, 냄새는 또 어떻고. 거기다 더해 네 엄마가 김치를 쭉쭉 찢어서 검사대 직원에게 내밀었으니 …… 세계적인 망신이 아니고 무엇이냐. 도대체 망신스러워 혼났구나.”

그런데 막내아들 녀석이 하는 말이 걸작이다.

“김치 세례가 맞는데 아빠도 참. 그럼, 엄마에겐 고통스러운 통과의례였다고 해줄께. 아빠, 통과의례 그거 중요한 거 아니냐구? 이제 세계일주 해도 되겠다, 그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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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1 22:52

세계의 조상들(statues in the world)




조상(a statue)은 반신상(a bust)과는 대조적으로 그리고 적어도 실물 크기 이거나 또는 그 이상의 크기인 보통 전신으로, 인간이나 인간들, 동물들, 또는 사건을 표현하는 어느 각도에서나 볼 수 있는 조각이다. 

조상의 정의는 항상 명확하지는 않다; Equestrian statues( 마상의 조상들)로 불리는 말을 타고 있는 인간의 조각들도 분명히 포함되며, Madonna and Child  또는 Pietà 와 같이, 많은 사례에서,  두 사람의 조각이 또한 포함 될 것이다. 보통 집을 수 있는 작은 조상은 statuette 나 Figurine 이라 불린다.

많은 조상들이 역사적인 사건이나 위인(an influential person)의 삶을 기념하기 위한 대리물로 만들어 진다. 많은 조상들은 일반적인 단어들이 갖는 보통 사람들을 위한 고결함 보다 더 큰 고결함을 가지고서, 바라보는 이들을 고양시키기 위해 옥외나 공공 건물들에 전시되는,  public art(대중예술)로 간주된다.

아주 드문 경우에, 조상들 자체가 역사상 중요하고 그것들 자체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고취시킨다. Statue of Liberty (자유의 여신상)이 그것의 100주년 기념일을 축하 할 때인 1986년에, 그것을 기념하는 3일간의 100주년 기념일은 천 이백만명의 사람들을 불러들였는데, 그 날짜 현재로 세계에서 가장 큰 대중적인 행사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 행사의 게스트 목록은 퍽이나 독특했다. 그 행사의 연출자인 Jeanne Fleming 은 "우리는 자유의 여신상 기념일에 전세계의 모든 위대한 조상들을 초대했고 그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거대한 인형들을 만들었다. 각각의 퍼핏 조상들이 그 국가의 음악과 함께 입장했다." 고 말했다. 

말을 탄 조상들에 대한 관습(a code)에 관한 도시의 전설이 있는데, 그것으로써 말의 발굽들이 어떻게 기수가 최후를 맞이했는가를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하나의 말발굽은 기수가 전투에서 당한 부상으로 죽었거나, 부상당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바닥에 떨어진 두개의 말발굽은 전투에서 죽었다는 것을 암시했다. 대부분의 주요한 유럽 국가들에서 마상 조상들의 예들은 이것이 사실이 아님을 보여준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었다 하더라도, 그러한 관습은 19세기에 사라진 것처럼 여겨진다. 

조상들은 Seven Wonders of the Ancient World (고대 세계의 7가지 불가사의들) 가운데 Colossus of Rhodes (Helios의 거상) 과 Statue of Zeus at Olympia(올림피아 제우스의 입상) 그리고 현대 세계의 불가사의들 중에는 Easter Island (이스터 섬)의 모아이와 더불어, 세계의 불가사의들 가운데도 존재한다.
 

번역본의 원문은 이곳 입니다

아래 이미지들의 출처는 위키피디아 입니다. 아래 이미지들은 조상들의 예들로 사용되었습니다.



원문

더보기




Seokguram Buddha. The grotto was completed by the Silla court in 774





The statue of Admiral Yi overlooking central Seoul.




Auguste Rodin, The Thinker, Bronze, c.1902, Ny Carlsberg Glyptotek in Copenhagen, Denmark




Lion man, from Hohlenstein-Stadel, Germany, now in Ulmer Museum, Ulm, Germany, the oldest known zoomorphic statuette, Aurignacian era, 30,000 BC-26,000 BC




Venus of Willendorf, one of the oldest known Statuettes, Upper Paleolithic, 24,000 BC-22,000 BC




The Great Sphinx at Giza, 3rd millennium BC, Egypt




Venus de Milo, c. 130 - 100 BC, Greek, the Louvre




Laocoön and his Sons, Greek, (Late Hellenistic), circa 160 BC and 20 BC, White marble, Vatican Museum




Moai of Easter Island facing inland, Ahu Tongariki, c. 1250 - 1500 AD, restored by Chilean archaeologist Claudio Cristino in the 1990s




The Great Buddha of Kamakura, c. 1252, Japan




Michelangelo's David, 1504, Florence, Italy




Auguste Rodin, The Burghers of Calais (1884–c. 1889) in Victoria Tower Gardens, London, England.




The Statue of Liberty, New York Harbor, USA, c.1886




Christ the Redeemer, Rio de Janeiro, Brazil, 1931




A closeup of the replica statue of Roman Emperor, Marcus Aurelius, 1981, The original c. 200 AD is in the nearby Capitoline Museum, Rome




The Ushiku Daibutsu, Amitabha Buddha, 1995, Japan. The second tallest statue in the world.




Stone statue outside Moscow's New Tretyakov Gallery




Perseus with the Head of Medusa (Benvenuto Cellini, 1545-54) in the Piazza della Signoria in Florence, Italy after the statue's cleaning.




Jeté (Enzo Plazzotta, 1975), at Millbank, Westminster, London, illustrates the material's capabil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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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9 21:32

[노래가 있는 꽁트] 원더풀 투나잇

원더풀 투나잇


강아지 한 마리가 도로 위에 쓰러져 있었다. 죽은 것이 분명했다.  나는 신호에 걸려 있는 동안 건널목 중앙선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강아지를 내려다 보았다. 나는 강아지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면서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바뀌기를 기다렸다. 언제나 그렇듯이 출근길은 나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일찍 집을 나와 일찍 직장에 도착하는 여유로움을 누리기에는 나의 아침은 분주하고 여유가 없었다.

그것은 야행에 길들여진 나의 생활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직장을 다녔지만 나 혼자 가질 수 있는 밤의 시간을 즐겼다. 영화를 보고, 소설이란 걸 끌쩍거려 보기도 하고, 책을 보면서 보내는 혼자만의 시간은 그 무엇보다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방해하는 것들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 그것은 더 없는 행복이었다. 독신을 고집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육체적으로는 힘든 생활이었다. 두, 세 시간의 잠으로 직장생활을 견딘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었다. 짧은 잠을 깨우는 아침은 결코 반가울 수가 없었다.

시간에 맞추어 도착해야 하는 직장이 있었고 직장은 내가 한 눈을 파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출근길에선 나는 앞만 보고 달려야 했고 간혹 나의 차를 추월하려는 뒤차를 위해 백미러를 보아야 했다. 직장을 향해 나는 습관화된 몸놀림으로 핸들을 돌리고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를 밟고 경적을 누르고 주위를 살폈다. 나는 도로 위에서 긴장해 있어야만 했고, 신호등은 때때로 나를 불안하게 만들곤 했다. 혹시 빨간 신호가 바뀌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에......하지만 10년 동안의 직장 생활 동안 신호등이 그렇게 고장이 난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만약 한 번이라도 신호등이 고장 났더라면 아마도 나는 신호등이 고장이라는 핑계를 대고 어디 다른 곳으로 핸들을 돌렸을 지도 몰랐다.

아직 신호등은 빨간 불이었고 사람들은 건널목을 건너고 있었다. 강아지는 움직임이 없었다. 힘없이 늘어져 있는 강아지의 시체는 도로 위에 버려진 쓰레기처럼이나 불필요하게 보였다. 건널목 신호등의 파란 불이 깜빡거리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더 빠르게 움직였다. 나는 클러치를 밟으며 기아를 일단으로 위치시키는 동안 강아지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정말이지 귀엽게 생긴 강아지였다. 잘 다듬어진 옅은 갈색의 털은 아침 햇살에 반들거렸다.



*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긴장에서 해방된 여유가 있었다. 직장 동료나 학교 동창들과 함께 술자리를 즐긴다거나 혼자 극장에 들러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여유 같은 것 말이다. 보이지 않는 끈이랄까, 뭐 그런 것으로부터 풀려나는 느낌이었다. 퇴근길도 출근길 못지않게 차들의 정체가 심했지만 집으로 향한다는 여유로움은 직장으로 향하는 마음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확실히 아침에 잡았던 핸들보다 각도 선택의 폭이 넓었다. 나는 어디로든지 핸들을 돌려 원하는 곳으로 갈 수가 있었다. 고속도로를 달릴 수도 있었고, 국도를 달릴 수도 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무엇이던 하거나 어디로든 갈 수가 있었다. 해변의 모래사장을 거닐 수도 있었고, 산의 숲 속을 거닐 수도 있었다.

나는 아침에 보았던 강아지 같은 것은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기억 할 필요도 없었다. 대수롭지 않는 사고였을 뿐이었다. 보통의 하루가 다 그랬다. 자질구레한 것들은 기억의 저장고에 오래 머무르게 해선 안 되었다. 나는 가능하면 정신과 육체를 피곤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부족한 잠 때문이라도 느긋해질 필요가 있었다.

여유로운 퇴근길이었지만 나는 동료들이 함께 하자는 술자리를 거절하고 일찍 집으로 들고 싶었다. 오후부터 나에게 엄습한 미열(微熱)과 두통 때문이었다. 잠을 실컷 자고 싶었다. 나의 경험상으로 미열과 두통은 부족한 잠에서 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내게 잠은 모든 자유 중에 최고의 자유이기도 했다. 그래서 죽음 같은 잠을 잔다는 것은 나에겐 행복이었다. 세상 모든 것 접어두고 잠을 자고 싶을 때는 그냥 잠에 빠져들어야만 했다. 나는 오직 달콤한 잠을 위해 달콤하게 핸들을 움직였고 달콤한 음악을 듣기 위해 카스테레오를 틀었다. 시계가 오후 여섯 시를 가리켰다. 라디오의 FM에서 팝 음악을 들려주는 프로 ‘6시 팝송’ 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DJ의 미성이 음악처럼이나 감미로웠다. 도로 위였지만 너무나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집으로 향하고 있고 감미로운 음악이 있는 이 시간이 어찌 행복하지 않겠는가.

아침의 그 신호등에 다다랐을 때 다시 나의 시선으로 강아지의 모습이 들어왔다. 하지만 나의 동공에 박혀든 것은 원래의 강아지의 형체를 상실해 버린 강아지 같은 그 무엇이었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던 옅은 갈색의 털은 피로 얼룩져있었다. 아침과는 달리 강아지의 형체는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그 귀엽던 형체는 사라지고 일그러진 괴물체처럼 도로를 더럽히고 있을 뿐이었다. 수많은 자동차들이 강아지 위를 밟고 지나갔던 것이다. 나는 다시 아침과는 반대편에서 완전히 일그러져 형체조차 알기 어려운 강아지를 내려다보면서 집으로 빨리 달려가고 싶어졌다. 따듯한 물에 샤워를 하고 간단한 저녁을 먹고 뜨거운 커피 한잔을 마신 뒤 깊이, 깊이 단잠에 빠져들고 싶었다. 라디오에선 ‘원더풀 투나잇’ 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에릭 클립튼 <Wonderful To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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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8 14:45

한글이 없다면?(2)

세계 언어 지도상(지도1)으로 볼 때 많은 국가들이 라틴 알파벳으로 글을 표기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메리카 대륙은 전부 라틴 알파벳을 사용하는 국가들이다. 이러한 사실은 아메리카 대륙이 유럽의 식민지였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면 이러한 일개 언어의 독식 현상은 인간과 인간의 비정상적인 관계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라틴 알파벳이 단일한 언어로 통일되었다는 것은 그 통일의 이면에는 인간의 잔인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화하기 이전에 다양한 언어가 존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라틴 알파벳의 언어 지배 현상이 그래도 차단된 곳이 아래 언어 지도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대체로 러시아어와 아랍어, 한자어, 동남아시아 국가들, 그리스지역, 일본, 그리고 대한민국이 전부이다(회색부분). 이러한 국가들은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 부족들과는 달리 일찌기 문명이 태동한 곳이고 국가 단위로 민족적인 동질성이 유지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러시아와 중국, 아랍권 국가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사실상 대륙이나  마찬가지이다. 라틴 알파벳의 영향을 벗어날 만한 역량을 가졌거나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이러한 사실은 인디아를 보면 알 수 있다. 문명을 잉태하고 거대한 대륙에 가까운 인디아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것은 영국의 식민지가 되지 않은 국가들에게는 행운일 수가 있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또한 독창적인 언어라기 보다는 한자의 파편어라고 부르는 편이 나을 정도로 한자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다르다. 이러한 대륙과 거대지역들과는 달리 우리는 한글이라는 한민족의 독창적인 언어를 창조해내고 면면히 이어오고 있다. 한글의 면역력은 일본 지배 36년에서 살아남은 것으로도 충분히 입증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일본이 일본어 나마 지킬 수 있었던 것도 과장일지는 모르지만 독창적인 한글을 가진 한반도가 대륙의 일본 진출을 그나마 막아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볼 수 있다. 만약 일본이 중국의 지배를 받았더라면 일본어는 어쩌면 일본내 소수언어로 전락하고 말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도1. 라틴어 알파벳으로 표기하는 국가들




이러한 한글과 비숫한 역량을 가진 것이 그리스어가 아닐까 한다. 그리스는 라틴 알파벳이 지배하는 유럽에서 유일하게 그리이스 알파벳을 지키고 있는 유일한 국가(물론 그리이스 알파벳은 유럽연합국가들에서 사용되고 사이프러스에서는 공식어로 사용되고 있다. 이태리, 알바니, 터키의 지역에서도 소수 언어로 사용되고 있다) 이기 때문이다. 위의 지도에서 보고 알수 있듯이 그리이스와 대한민국은 위도상으로 참 비슷하게 보이며(실제는 어쩔지 모르겠다) 또한 반도국가라는 것도 흡사하다.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명을 가졌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지도2. 그리이스 국가 지도




이러한 라틴 알파벳 일변도의 지배적인 현상에서 그 고유적인 언어를 지키기란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독창적인 언어를 발명하고 그 고유어를 민족적인 단위로 유지하면서 사용해왔다는 것은 그 자체의 민족적인 역량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대한민국이나 그리이스는 민족 국가 단위의 독창적인 언어로 자부심을 느낄만하다고 본다.

단일한 국가에서 단일한 민족이 독창적인 언어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사실상 대한민국이 유일하 나라들 중에 하나라고 생각된다. 러시아어권과 중국어권, 아랍어권등 거대한 지역들은 사실상 소수민족들로 구성되어 있거나(러시아권, 한자어권) 영향을 받기보다는 영향을을 주는 위치(러시아권, 한자어권) 에 있거나 종교적, 문화적인 동질성(아랍권)을 가진 국가들이다. 

 
지도3. 러시아어가 공식어로 사용되거나 러시아어로 말하는 지역들(짙은 청색이 러시아어가 공식어로 사용되는 지역이며, 초록색이 러시아어로 말하는 지역이다. 대제국을 이루었다는 사실이 무색하게도 몽고는 러시아를 말하는 수단으로 상용하고 있다.)


 
 
지도4. 한자어권 지역들(방언들은 물론이고 티벳을 비롯한 소수민족어가 용광로처럼 녹아 있다. 언제 폭발할지 알수 없다.)




지도5. 아랍어권 사용지역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지역이 동남아시아 지역이다. 이 지역도 라틴 알파벳 영향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족 단위의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언어라기 보다는 여러 방언들이 뒤섞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같은 국가들은 라틴 알파벳을 표기법으로 차용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방언의 표기법이 다양하고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라틴 알파벳으로 통일한 경우가 아닐까 한다(이와 관련해서는 추측이 아니라 베트남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 있을 것이다) . 표기법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은 독창적인 글이 창조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베트남어로 된 Vietic어는 라틴 알파벳을 차용하여 표기되고 있고 Khmer어는 캄보디아의 공식어로 사용되고 있으나 그외의 말들은 소수 민족의 말로 이용되고 있다. 
 

지도6. 동남아 지역들에 흩어져 있는 Austro-Asiatic 언어들(대표적으로 베트남어, 캄보디아어가 이에 속한다.  캄보디아어는 태국어, 라오스어, 베트남어, 참어에 의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아왔다)
 

 

지도7. 동남아 지역들에 흩어져 있는 Tai-Kadai languages(중국의 남부어, 태국어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사실과는 달리  한반도라는 작은 나라가 외래어의 큰 영향없이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한글을 발명하고 유지해왔다는 것은 세계사적으로도 너무나 큰 자랑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한글은 다른 어떤 표기법(특히 영향력이 강한 라틴 알파벳)과도 (말은 아니지만) 표기법은 아주 독창적인 인류의 자산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미지는 모두 위키피디아 로 부터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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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8 00:51

사랑은 아프다

사랑은 아프다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그 날은 비극적이면서 동시에 희극적이었다. 사랑하는 여자가 나를 떠났고 나는 그녀와의 관계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녀는 막 비행기를 탔다고 휴대폰에 메일을 남겼다. 퇴근 후 나는 그녀에게 나오라고 한 카페의 화장실에서 똥을 누면서 그녀가 남긴 메일을 읽고 말았으니, 운치 없고 분위기를 모르는 휴대폰이었다.

남녀 사이에 흔히 벌어지는 결말의 한 방식일 뿐이었지만 나는 가슴속에 마침표를 찍고 나서도 몇 방울의 눈물을 더 떨어뜨려야만 했다. 나는 치질이 심했고 그 통증은 참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치질의 쓰라림. 그녀와 나란히 앉아 어렵게 영화를 보던 시간들, 나의 속사정도 모르고 똥침을 놓던 그녀의 천진난만함, 공원 벤치에서 그녀가 내 허벅지에 앉아 하늘의 별들을 세며 꿈과 사랑을 이야기하던 그 기나긴 시간들, 돼지고기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는 날이면 몰래 화장실에서 여성용 생리대를 차야만 했던 기억들...... 이렇게 그녀는 깊은 고통의 흔적을 남기고 떠났던 것이다. 변기 속을 내려다보니 붉은 핏물이 포도주처럼 진하 디 진했다. 악화 일로를 걷는 치질! 나는 물 내림 버튼을 신경질적으로 꾹 눌렀다.

내가 아파트에 도착한 시간은 9시. 나는 카페 근처의 포장마차에서 술을 한 잔 더 하려다 그만두었다. 나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비극적 사실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서글펐다. 사랑하는 그녀는 떠났고 나는 밤새 술이라도 들이키며 슬픔을 달래는 작별의 의식을 거행해야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현실적인 생각으로 나 자신을 설득했다. 치질 따위 생각하지 말자, 내일 업무관련 보고가 있으면 어때......하면서도 내 이성은 현실을 직시하라고 나를 유혹했던 것이다.

나는 힘없이 아파트 입구 계단을 터벅터벅 걸어 올라갔다. 입구 왼쪽에 있는 경비실 창으로 창백하게 굳어있는 초로의 경비원 김씨 아저씨와 고개를 떨구고 있는 동년배의 여인이 앉아 있었다. 나는 목례를 하고 그들을 지나치면서 그들에게 서려있는 이상한 슬픔의 기운을 감지하고 말았다. 김씨 아저씨도 치질일까? 나는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엘리베이터에 올라 10층 버튼을 부드럽게 눌렀다. 버튼이 무슨 잘못이 있을까, 나는 신경질을 꾹 참았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거실 카펫 위에 대자로 엎드렸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덩어리가 밀려왔다. 잊으려, 잊으려 해도, 후끈거리는 치질 덩어리가 느껴졌다. 아침에 차고는 시간이 없어 갈지 못한 축축해진 생리대가 불결한 느낌을 자아내었다. 아, 이런 상태 위에 더해진 처절한 사랑의 비극이라니! 이런 고통 위에 그녀와의 작별의 슬픔이라니! 그녀는 이런 착잡한 나의 심정을 알기라도 할까! 그녀는 모를 것이다. 그녀가 남긴 메시지는 얼마나 건조했던가, 철없었던가!

“나를 치질 같은 존재라 생각하고 그냥 니 머리 속에서 지워버려. 아니, 잘라버려. 나 보다 좋은 여자 만나.”

나는 카펫 위에 엎드려 고통인지 슬픔인지 모를 눈물을 흘렸다. 눈물은 뺨을 타고 흐르며 카펫 위로 떨어졌다. 그 순간 거실 벽면에 부착된 인터폰으로 혀가 꼬부라진 김씨 아저씨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떤 실수로 인터폰의 전원이 켜진 것 같았다. 김씨 아저씨는 그 사실을 모른 채 신세 한탄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아, 끝내 당신은 떠나는구나! 나이 들어 혼자서 살고 싶다고 하더니...... 자식들 다 컸겠다, 임자도 이제 자유를 누려야지, 암. 나 같은 사람 만나 고생만 실컷 하고는......젊어선 술에 절여 사는 남편한테, 늙어선 애먹이는 자식들 때문에 호의호식 한 번 못해 보고......딱(탁자 위에 병 같은 것이 부딪치는 소리.) 카~~. 아이구, 처량하구만. 그래, 뭐 혼자 이렇게 살다 가는 거지 뭐! ”

아저씨의 한탄은 마치 힙합처럼 흘러나왔다. 나는 아저씨의 힙합이 정말 좋았지만 아파트 입주자들은 황당했던 모양이었다. 아마도 그들은 김씨 아저씨의 황당한 행동에 짜증을 내었을 것이다(구체적으로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반응을 상상해 본다는 것은 재미있을 것이다. 나는 좀 더 구체적인 상상력을 발동해 보고 싶지만 치질의 고통이 워낙 깊어 그만두련다.) 사람들은 이별의 슬픔을 이겨내려는 아저씨의 모습, 그 모습을 아름다웠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을까! 이 후로 나는 아저씨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나는 그날로부터 3일 뒤에 있었던 반상회에서 아저씨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할 수가 있었는데, 비난과 질책과 황당함과 짜증과 욕설과 매도가 반응의 전부였다. 그리고 아저씨는 해고가 되었다. 그의 해고나 나의 이별이 어찌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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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6 23:22

운수 나쁜 날

운수 나쁜 날

김 교수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자신의 차를 타고 학교로 가는 것이었다. 구입한 자가용을 운전하는 첫날이었다. 김 교수는 문명의 이기(利器)라는 차를 여태껏 구입하지 않았다. 면허증은 오래 전에 발급 받았지만 왠지 차를 구입하는 것이 그리 마음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교통 문화에 대해 너무 회의적이었고 지하철이 편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내의 닦달과 아이들의 성화를 견뎌낼 수가 없었다. 사실 어디 여행이라도 갈라치면 차가 없는 것이 불편하기도 했다. 마침 이름 있는 자동차 회사에서 ‘왕창 파격 세일’ 이란 이름을 걸고 승용차를 판매했기에 내친김에 구입을 했던 것이다.

일주일 간 도로 연수를 했지만 혼자서 차를 몰고 도로를 나선 김 교수는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차들을 신경쓰랴 신호등과 보행자들을 주의하랴 정신이 없었다. 학교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로터리에서는 택시와 간발의 차로 충돌을 모면하기도 했고 뒤에서 달려오는 오토바이를 보지 못하고 우회전을 하기도 할 뻔했다. 정말이지 끔찍한 순간들이었다. 하늘이 도와 준 탓에 김 교수는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 그 위험천만했던 로터리를 지나고 무사히 학교에 도착했을 때 김 교수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 숨을 내 쉴 수가 있었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을 너무 일찍 내 쉰 것일까. 자신의 학과 건물 앞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는 순간 얼얼한 충격과 함께 쿵하는 굉음이 그의 귀로 전해졌다. 조심스럽게 후진을 한다는 것이 그만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왼쪽에 주차해 있던 흰색 그랜저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들이박고 만 것이었다. 그는 침착하게 자신의 차를 다시 주차시키고 흰색 그랜저 쪽으로 다가갔다. 박 교수의 차였다. 박 교수는 김 교수와는 앙숙이었다. 국내파인 박 교수는 유학파인 김 교수를 견제했다. 교수 세계의 학벌과 파벌 같은 것이었다. 비록 나이가 젊은 박 교수였지만 이미 오염되어 버린 늙은 교수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김 교수는 전혀 그런 걸 의식하지 않았지만 박 교수는 출세 지향적인 사고에 빠져 김 교수를 장애물로 간주하고 있었다. 김 교수는 난감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박 교수를 찾아가 사고의 전말을 이야기하고 보상을 해야만 했다.

박 교수의 연구실 문을 노크했다. 박 교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요.”

김 교수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박 교수의 얼굴색이 달라졌다. 그를 찾아올 김 교수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김 교수가 사고의 전말을 이야기하자 그제서야 박 교수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일었다.

“조심하지 않고선. 김 교수 어제 고사를 지내지 않았지. 오늘 사고야 액땜이라고 하겠지만 앞으로 계속 그런 사고를 낼 수는 없잖은가 말야. 당장이라도 고사를 지내야 될 걸세.”

“고사는 무슨......앞으로 조심하면 되겠지”

김 교수가 그렇게 말하자 박 교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쏘았다.

“자네 그런 생각이 화를 불러들이는 거네. 고사를 미신만으로 볼게 아냐. 내가 잘 아는 곳이 있으니 그곳에서 성대하게 고사를 지내자구, 알겠나.”

김 교수는 피해자인 박 교수가 그렇게 떠드는 바람에 미안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후회가 되었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김 교수는 보통 고사는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사거리나 로터리 등의 도로변에서 지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박 교수는 자신을 데리고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도로 지점으로 데리고 갈 것이라 생각했다.

2시쯤 수업이 끝나고 김 교수는 학교 앞 가게로 가서 막걸리 한 통과 종이 컵, 실, 초, 마른 명태를 구입했다. 그것들을 차의 트렁크에 싣고 박 교수의 연구실로 전화를 했다. 박 교수가 전화를 받았다.

“어이, 김 교수. 어딘가?”

“학교 앞이네.”

“아직 좀 이른 시간인데......연구실에 학생들이 찾아와 있거든. 면담이 끝나려면 넉넉히 한 시간 정도는 필요할 텐데 어쩌지? 아, 그리고 말야, 차를 정비소에 맡겼는데 견적이 70 만원이더 구만. 새차였는데 어쩔 수가 없지 뭐.”

“미안하네......새찬데 말야. 연구실에 가 있을 테니. 그리로 연락해 주지 않겠나?”

“자네 차가 더 새차 아닌가. 그래 자네 차 견적은 얼마나 나왔던가.

“......”

“그래, 연구실로 연락을 하지. 조금 있다가 보세.”

김 교수는 연구실로 향했다. 연구실에 틀어박혀 책을 읽고 싶었다. 차를 구입한 것도 괜한 허영이다 싶었다. 사고가 나고 바로 보험 처리를 하고 조치를 다 취했지만 마음은 편하지가 않았다. 새차를 뽑고 첫날의 사고라니, 불길한 예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아내에게 전화를 하니 다치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라고 위로해 주었지만 후회는 깊어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고사를 지내면서 앞으로 사고가 더 이상 없기만을 빌어야 할뿐이었다.

5시쯤 박 교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김 교수, 이제 슬슬 나가 보지.”

김 교수는 전화를 끊고 연구실을 나섰다. 박 교수가 이미 자신의 차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김 교수 옆에는 2명의 여학생이 서 있었다.

‘고사를 지내는 데 학생까지 필요는 없을 텐데......’

김 교수가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김 교수의 속마음을 알아 차렸는지 박 교수가 입을 열었다.

“고사를 지내려면 필요한 게 있잖은가. 그래서 애들을 불렀지. 학과에선 참 모범적인 여학생들이지.”

헌데 김 교수에게는 낯선 학생들이었다. 학생들의 숫자가 많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이미 준비 할건 다 준빌 했지. 학생들까지는 필요 없을 걸세”

“어, 그래. 준비를 다 해놓았다는 거지. 그럼 애들은 보내야겠군.”

김 교수가 학생들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이미 박 교수의 말을 들은 학생들이 인사를 했다. 아주 눈치가 빠른 학생들이었다. 그 중 머리가 길고 얼굴이 가냘프게 생긴 여학생 하나가 작별 인사 치곤 과감한 인사를 했다.

“교수님, e-mail 보낼게요. 교수님, 지방에서 학술회 할 때 꼭 함께 가셔야 해요.”

박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고 학생들이 총총히 멀어져 갔다.

그들이 탄 차는 아침에 김 교수가 무지 고생한 그 로터리를 돌고 있었다.

“박 교수, 여기가 어떤가?”

“고사 말인가? 이젠 그 고사 이야긴 그만 하세. 그냥 해본 소리라네. 사실은 말야, 자네와 함께 있고 싶었지. 정말 오랜만이 아닌가. 그리고 총장 선거가 내일 모레잖아. 겸사겸사 자네와 만나고 싶었어.”

“그랬군.”

“CNN 단란주점에서 몇 몇 교수들이 모이기로 했어. CNN 알지? 제일 서적 뒤쪽 술집 골목 말야. 거기로 가.”

김 교수는 속은 느낌이었다. 고사가 어찌 이렇게 변질이 될 줄이야. 그기다 어제가 스승의 날이지 않았는가. 김 교수는 정말이지 한 숨이 나왔다. 피해자의 요구였기에 고사라고 따라나섰지만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 교수 혼자 내리게. 난 오늘 일이 있어서.”

“어어, 자네 왜 이러나 여기까지 와서. 자네가 참석한다고 했는데 그럼 인사만이라도 하고 나오면 되잖아.”

불행하게도 어둠이 대기를 짙게 물들이고 있었다. 차가 문제였다. 밤길을 혼자서 차를 몰고 갈 자신이 없었다. 박 교수는 난감했다. 이런 자신의 심정을 알아챘는지 박 교수가 입을 열었다.

“차는 여기 주차장에 박아 놓으면 될텐데 뭘. 자, 같이 가서 기분내자고. 아침에 있었던 일일랑 훌훌 떨쳐버리고 말이야”

그렇게 나오는 박 교수의 애원을 야속하게 떨쳐버릴 수도 없었다. 인사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의 방향을 돌릴 수밖에.

“정 그렇다면 난 곧바로 나올 거네. 인사 정도만 하고 말이야.”

김 교수는 그들과 함께 앉아 술을 마시고 싶지도 않았고 쓸데없는 오해를 사고 싶지도 않았다. 여러 교수들이 있을 테니 그냥 인사만 하고 나오리라 다짐했다.

단란 주점은 2층에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서 자동문 앞에 서자 스르륵 유리문이 열렸고 김 교수와 박 교수는 함께 실내로 발을 내디뎠다. 단란주점의 실내는 참으로 호화로웠다. 자동문의 바로 오른쪽 카운터에 중년의 여자가 앉아있었다. 박 교수를 보자 반가운 표정으로 박 교수를 향해 돌진해 왔다. 그녀의 목소리가 실내를 진동했다.

“이게 누구예요, 박 교수님. 자주 좀 들리지 않구요. 교수님들께선 아직 도착하지 않았어요.”

그러면서 그녀는 박 교수를 안내했다. 안내를 받아 들어간 룸은 제법 큼직하고 고급스러웠다. 이미 테이블에는 예약된 손님들의 숫자대로 포크와 스푼, 물수건, 생수와 음료들이 놓여져 있었다. 박 교수에게 그녀가 거의 안기다시피 달려들면서 오랜만의 회포를 푸는 듯 했기에 김 교수는 눈치 없이 앉아 있을 수 만은 없었다. 마침 아랫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하면서 뒤가 마려워 왔다. 박 교수는 룸을 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은 룸에서 왼쪽 끝에 있었다. 김 교수가 변기에 앉자 말자 물기 많은 변(便)이 소리를 내며 변기 속으로 떨어졌다. 김 교수는 오늘 하루라는 시간도 이렇게 빠져 나가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 변은 꽉 막힌 듯한 느낌과 함께 아무리 힘을 주어도 나올 기색이 없었다. 변(便)과의 싸움으로 제법 시간과 힘을 들이고 있을 때 갑자기 타는 냄새와 함께 연기가 화장실로 스며들면서 다급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날카롭게 들리기 시작했다. 김 교수는 순간 화재가 났다고 생각했다. 화장실까지 연기가 가득하다면 이미 화재는 실내의 가연성 소재들과 함께 빠르게 번지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김 교수는 재빨리 나와 화장실의 창문을 열었다. 바로 아래는 조금 전 자신의 차를 주차한 주차장이었고 자신의 차가 있었다. 창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깊이 숨을 들이켰다. 화장실로 연기가 더 차 올랐다. 내실로 가서 누구를 구할 수도 없을 정도로 유독성 냄새가 금방이라도 자신을 질식시킬 것만 같았다. 위기감을 느낀 김 교수는 어쩔 수 없이 창문을 통해 자신의 차 위로 뛰어내려야만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김 교수가 뛰어내렸을 때 강한 충격이 그의 양쪽 발에 전해졌고 의식을 잃고 말았다.

김 교수가 눈을 떴을 때 박 교수와 다른 교수들이 그의 시선으로 들어왔다. 모두들 한마디씩 했는데 약 기운 때문인지 그들의 말을 생생하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김 교수는 어찌된 영문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 위기 속에서 자신은 황망히 2층에서 뛰어 내렸건만 박 교수를 비롯해서 다른 교수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넨 너무 성급하게 뛰어내렸네. 불이 커지기 전에 다행히도 스프링 쿨러가 잘 작동해 주었다네. 자네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오신 교수들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네. 물론 유독성 가스 때문에 고통스러웠긴 했지만 말야.”

박 교수의 말이 끝나자 정치학과의 마기아(馬基亞) 교수가 능청스럽게 말했다.

“부재자 투표도 가능하지, 그렇지.”

양 쪽 발목뼈가 부서진 김 교수는 응급실에 누워 ‘참 운수 나쁜 날’ 이라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멋진 시승식(試乘式)이었다고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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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4 20:05

콘돔 논쟁은 없다

콘돔 논쟁은 없다
-제목과 읽기의 현혹

사실 이 글은 콘돔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글입니다. 따라서 콘돔이란 단어와 관련된 것들을 상상하고 클릭해 들어왔다면 다소 실망스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글을 무시하고 바로 나가셔도 됩니다. 그리고 속았다는 모욕감과 부푼 기대에 대한 실망스러움, 욕구가 드러난 수치심 때문에 솟아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 고귀한 입으로 저질스런 욕설을 퍼붓거나 증오의 댓글을 달아도 상관없습니다. 기꺼이 받아드리겠습니다.

이 글이 콘돔과는 관련이 없다고 했지만 사실 물건으로써 '콘돔' 이 아니라 글의 제목으로써 '콘돔' 과는 아주 관계가 깊다고 할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의도되고 계획되었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해야겠습니다.

우선, 제목(기호)의 성격과 우리의 인식이 연결되는 경직성과 확정성에 대한 관찰입니다. 다시 말해, 콘돔이란 단어의 의미를 확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나아가서는 이 글의 내용을 확정적으로 추측하려는 태도에 대한 관찰입니다. 추측이란 다의미성을 뜻함에도 하나의 확정된 의미만을 고수하는 것입니다. 즉, 콘돔의 ‘성적의미‘가 글의 내용을 전적으로 규정하리라는 추측을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둘째로는 콘돔이란 단어의 현혹에 빠져 쉽게 지나쳐버렸을 ’논쟁’ 이란 단어는 이 글을 논쟁적으로 보는 독자들의 관점에서는 아주 중요한 제목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움베르코 에코의 <장미의 이름> 같은 소설은 그 제목의 의도가 아주 상징적이고 모호합니다. 에코 자신의 말대로 “제목은 독자를 헷갈리게 하는 것이어야 하지, 독자를 조직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라고 했습니다. 에코는 의미가 소외되지 않고 풍성한 의미를 제공해주는 ‘장미’ 라는 단어가 마음에 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더욱 심오하게 에코는 윌리엄 수도사의 시종인 아드소를 통해 ‘장미’ 를 종교적, 심미적, 감정적인 차원등을 포괄하는 논쟁의 핵심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장미를 수도승을 유혹하는 사탄적 의미나 콘돔을 성적 의미만으로 보는 경직성은 바람직한 자세가 아닙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예 <김밥 부인 옆구리 터졌네>와 같은 단선적인 제목으로 상상력과 의미를 확정하고 경직시키는 것은 바람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 이제 이 글을 쓰는 실제의 의도가 드러났습니다. 부제처럼 제목에 현혹되지 말자는 것입니다. <콘돔논쟁은 없다>라는 제목만을 보고 야릇한 내용을 상상했다면 그것은 진지한 읽기의 자세가 아닌 것입니다. 제목이 아주 직설적이고 원색적인 것만을 찾으며 소설이나 영화나 만화를 편식하는 것은 진지하지도 않거니와 정신적으로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직설적이고 원색적인 제목을 가진 소설과 영화와 만화가 가치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직설적이고 원색적인 제목이 가치 기준이 될 수도 없습니다. 다만 그러한 것들만 ‘편식’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문화의 영역은 다양합니다. 그 다양성을 체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진지와 경쾌, 순수와 감각, 정신과 육체 등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문화적 경험들을 균형 있게 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못해 당혹스러웠던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얼마 전 <스시 대혈투>라는 일본영화가 음식과 요리 실력을 겨루는 요리사들의 경쟁과 관련된 가족 영화라고 판단하고 아이들과 함께 보았다가 낭패를 본적이 있습니다. 그 영화에는 스시는커녕 노란무 한 조각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일식집에서 일어난 잔인한 살인사건과 스시칼을 휘두르는 살인자와 형사간에 벌어지는 엽기적인 대혈투를 다룬 영화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12세용이었습니다. 폭력물에 너그러운 것은 알고 있지만 스시칼을 휘두르며 형사를 죽이고 잔혹한 폭력을 행사하는 영화가 12세 관람가라는 것은 폭력에 대한 너무 관대한 태도가 아닌가 합니다.

한 달 전 일입니다. 일요일 날 아내가 친구와의 약속으로 외출을 하고 제가 아이 둘을 돌보아야 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할 일도 없어 인터넷으로 영화를 보여주었습니다. 제목이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무튼 제목도 유아틱한 인형극 영화였습니다. 영화의 처음 얼마를 아이들과 함께 보다가 잠이 오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아이들만 남겨놓고 안방에서 잠을 잤습니다. 아이들을 보는 데는 인터넷처럼 좋은 것도 없습니다. 아이들은 컴퓨터에 달라붙어서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영화를 보니까 말입니다. 방에 누워있자니 신음 소리같은 것이 간간히 들려왔지만 사람이 아파도 그런 소리를 내지 않습니까. 인형극인데 뭘, 하면서 그냥 잠을 청했습니다. 너무 무딘 겁니까? 이게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편리를 위해 자주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단이 났습니다. 보통 인형극하면 전체관람가로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번의 경우도 전체관람가로 알고 아이들에게 보도록 하고 잠을 잤던 것입니다. 그런데 뒤에 알고 보니 그 인형극이 성인용이었던 것입니다. 관습화된 생각을 완전히 벗어났던 것입니다. 인형극이라는 형식(제목, 겉) 만을 보고 내용(속)은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응당 인형극이란 전체관람가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며칠 뒤 아이들이 한 번 더 보고 싶다고 해서 다시 보여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 번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빠가 그러니 7살과 5살짜리 아이들은 그 영화를 당연히 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세 번을 보고나서 아이들에게 영화에 관해 물었지요. 아뿔싸, 인형들이 옷을 너무 자주 벗고 같이 붙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직접 확인해 보니 성인용이었던 것입니다. 참 황당했던 일입니다. 콘돔논쟁이란 이 글이 실망스러운 경우와는 반대의 경우가 되겠네요.

자, 이렇게 제목 또는 관습에 의해 내용을 판단하고 영화를 보게 될 때 황당한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별 충격이 없다고요? 도처에 널린 것이 그런 것들이니 당연히 그럴 수도 있다고요? 아무튼 정작 자신은 내용 확인이나 정보도 없이 아이들에게 보여준 것은 실수라고 해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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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2 01:28

만약 한글이 없다면 어떻게 글을 써야 할까?

만약 한글이 없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고 있을까? 참 궁금한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을 창조했기에 오늘날 우리는 우리말을 가지고 의사소통을 하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한글이 창조되기 이전에 오랜 동안 중국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한자가 우리의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로 존재해 왔고 또 우리말을 우리글로 적지 못하고 한자로 표현하는 처지였다. 오늘날 쓰기에 있어 한글과 함께 한자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한글 창조 이전의 한자 문화권의 영향이 얼마나 강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우리가 한자와 함께 중국말도 함께 공용어로 이용했다면 지금 우리는 중국의 한 성으로 전락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한국말이란 우리말을 광범위하게 사용하였기에 한국말을 지킬 수 있었으며 동시에 우리말 발음에 맞는 한글이라는 우리 글이 만들어 진 것이다. 따라서 훈민정음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온전히 지켜 올수 있었던 힘이 되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또한 일제 36년이란 식민지 지배하에서도 한국말과 한글이 탄압을 받았지만 일본어가 광범위하게 퍼지지 못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상황은 다르지만 19세기, 20세기초 유럽의 식민지화 된 여러 아프리카 국가들이 오늘날 그들을 지배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언어를 그대로 공식어로 사용하는 것과 무척 대조를 이룬다 하겠다. 

영어를


영어와 프랑스를 공식어로 사용하는 아프리카 국가들(왼쪽이 프랑스어, 오른쪽이 영어)


스페인어를 공식어로 사용하는 국가들




비록 한자와 일본어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는 있으나 우리말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었고 독창적인 한글이 존재했기에 우리는 아프리카 같은 언어의 식민지화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 몰입식교육과 지나친 영어교육의 강조, 그리고 이와 함께 기러기 아빠와 같은 가족들의 생이별은 이상한 현상히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영어를 공식어로 사용하는 나라들을 살펴보면 식민지배를 겪은 후진국가들과 영국에서 분화된 국가들이 대부분이다.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들

  

전세계적으로 영어를 공식어(official language)로 사용하는 국가들은  영국과 미국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아프리카  후진국가들과 필리핀, 인디아등이 대분이다. 그외 우리가 선진국이라 일컫는 미국, 캐나다, 호주, 영국 등이며 위의 지도상에는 표기되어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유럽 여러 국가들이 공용어나 제 2 외국어로 영어를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영어의 실용성을 평가할 때 영어의 영향력이  그다지 크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프리카 국가들과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의 경우를 보더라도 영어로 인해서 경제력이 월등히 높아졌다는 증거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른 요인들, 이를테면, 의식적인 측면이 더욱 영향력을 많이 미친다는 생각이 든다. 즉, 양심과 진실이 가장 중요한 사회 간접 자본이 되다고 본다. 예를들면 덴마크와 함께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국가 경쟁력은 영어에서 보다 양심과 진실이 경제력을 튼튼하게 만드는 강력한 사회 간접 자본을 형성한다고 판단된다. 

이렇듯 영어를 경제력의 가장 우선 순위에 놓는 교육목표의 설정은 잘못된 방향일 수 있는 것이다. 필리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지만 만연된 부패와 정치인들의 타락이 경제력과 관련하여 그 좋은 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라틴어 문자인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남미국가들의 경우도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양심과 진실됨의 문제가 더욱 큰 요인이라고 생각된다.

만약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면, 한글이 창제되기 이전 한자의 영향으로 글(문자)에서 한자가 쓰여지고 있지만 보편적이고 독자적인 한글문화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영어가 공용어로 사용된다고 하더라도 한글문화가 민족적인 정체성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그들만의 언어가 존재하는 국가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홍콩의 경우가 이러한 예가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에게 한글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우리말을 사용하고 의사소통을 할 지 참으로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식민지배를 받으면서 중국어, 영어, 일본어를 공식어로 상용하면서 우리말 표기를 영어로, 한자로, 일본어로 하게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볼수있다. 이러한 예를 인도네시아어와 베트남어에서 볼 수 있다. 

인도네시아어 분포도. 짙은 초록색이 인도네시아어이며 연한 초록색은 자바어를 비롯한 지방어이다.

인도네시아 공식어로 쓰여진 야후 인도네시아 사이트 캡처 화면. 라틴어로 쓰여진 인도네시아어. 예를들면 김치가 맵다는 표현을 'Kimch Ga Mapda' 는 식으로 표기하고 있다.


베트남인의 86%정도가 사용하고 있는 베트남어(프랑스 식민치하에서는 Annamese 로 알려졌음)는 라틴 알파벳을 차용하여 표기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공식어가 인도네시아이다. 이 인도네시아어는 말로써는 존재하지만 그 표기법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베트남 또한 마찬가지이다. 라틴 알파벳을 차용하고 있다(이 언급에 대해서는 아주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 미리 이것에 대한 지적이나 비판에 감사 드린다).  따라서 라틴어 알파벳을 차용해서 말을 표기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바로 한글이 창제되지 않았다면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김치가 맵다는 표기가 'Kimchi Ga Mapda' 하는 식이 되는 것이다. 만약 베트님어와 인도네시아어처럼 우리도 그렇게 되었다면 어떨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일 것이다.


우리의 한글은 너무나도 자랑스런 언어이다. 잘 모르는 처지이지만, 라틴어 표기도 아니며 한자표기도 아닌 아랍어와 함께 독자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물론 소수 언어들은 제외하고)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언어인 것이다. 어찌이런 언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한글을 사용하는 인구가 전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바로 이런 한글이다.

한글의 분포도. 따지고 보면 한국어가 전세계적으로 많이 분포되어 있으며 이러한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이점을 잘 활용하여 한글의 세계화에 노력해야 한다



아랍어 분포도.


만약 한글이 없다면 우리는 한국말을 한자, 라틴어 알파벳, 아니면 일본어로 표기하는 불행한 일을 겪고 있지 않을까. 마치 베트남어나 인도네시아어의 운명처럼......

*위 이미지들의 출처는 위키피디아와 yahoo! Indonesia, vietna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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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0 23:25

우리 시대의 역설


Paradox Of Our Times
우리 시대의 역설



We have taller buildings, but shorter tempers;
Wider freeways, but narrower viewpoints;
We spend more, but have little;
We buy more and enjoy it less.

우리는 더 높은 빌딩들을 가지고 있으나, 더욱 성미는 급해지고;
더 넓은 고속도로를 가지고 있으나, 더욱 좁아터진 견해를 가지고;
더 많이 소비하나, 아무것도 갖지 못하며;
더 많이 구입하고 덜 즐긴다.


이미지 출처: http://kr.blog.yahoo.com/dasol




We have bigger houses and smaller families;
More conveniences, but less time;
We have more degrees, but less common sense;
More knowledge, but less judgement;
More experts, but more problems;
More medicine, but less wellness.

우리는 더 큰 집을 소유하고 더 적은 가족을 가지며;
더 편리해졌으나, 여유는 더  없으며;
학위는 가지고 있으나, 분별력은 더 부족하며;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나. 판단력은 더 미흡하며;
더 많은 전문가들이 있음에도, 더 많은 문제들이 생기고;
더 많은 약이 있음에도, 건강 상태는 더 좋지 않다.



이미지 출처 http://kr.news.yahoo.com/servi



We spend too recklessly, laugh too little,
Drive too fast, get too angry too quickly,
Stay up too late, get up too tired, Read too seldom,
Watch TV too much, and don't pray often enough.

우리는 너무 무모하게 시간을 보내고, 잘 웃지도 않으며,
너무 빨리 운전하고, 너무 쉽게 화를 내며,
너무 늦게 자고, 너무 피곤한 상태로 일어나고, 거의 독서를 하지 않으며,
TV를 너무 많이 보고, 기도를 잘 하지 않는다.


이미지 출처 http://kr.blog.yahoo.com/jh3ch



We have multiplied our possessions, but reduced our values.
We talk too much, love too seldom and lie too often.
We've learned how to make a living, but not a life;
We've added years to life, not life to years.

우리는 소유물을 엄청 늘리지만, 우리 자신의 가치는 줄인다.
우리는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사랑하지 않으며, 너무 자주 거짓말을 한다.
우리는 생계를 꾸려가는 법은 배우지만,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는 않고;
우리는 몇 년을 더 살려고 하나, 삶의 의미를 생각지는 않는다.


이미지 출처 http://kr.blog.yahoo.com/leesa



We've been all the way to the moon and back,
But have trouble crossing the street to meet the new neighbor.

우리는 달을 다녀왔지만,
새로운 이웃을 만나기 위해 길을 건너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We've conquered outer space, but not inner space;
We've done larger things, but not better things;
We've cleaned up the air, but polluted the soul;
We've split the atom, but not our prejudice;
We write more, but learn less.

우리는 외부의 공간을 정복했으나, 내면을 정복하지는 못했으며;
더 거대한 일들을 하나, 더 좋은 일을 하지는 않으며;
공기는 정화시키려 하지만, 영혼을 오염시키며;
원자를 쪼갤 수 있으나, 편견을 쪼개지는 못한다;
우리는 더 많이 쓰지만, 적게 배운다.


이미지 출처http://kr.blog.yahoo.com/jinju



We've learned to rush, but not to wait;
We have higher incomes, but lower morals;
More food but less appeasement;
More acquaintances, but fewer friends;
More effort but less success.

우리는 성급히 달리는 것을 배우지만, 기다리는 걸 배우지 않으며;
우리는 더 많은 수입에도, 도덕은 추락하며;
더 풍족한 음식에도 덜 양보하며;
아는 사람은 많으나, 친구들은 더 적으며;
더 많은 노력에도 성공의 기회는 더 줄어든다.




We build better computers to hold more information,
Produce more copies than ever, yet have less communication;
We've become long on quantity, but short on quality.
These are the times of fast foods and upset stomachs;
More kinds of food, but less nutrition.

우리는 더 많은 정보를 갖기 위해 더 좋은 컴퓨터를 만든다,
유례없이 많은 복사본들을 생산하지만, 소통은 줄어들고;
양적으로는 풍족하지만, 질적으로는 떨어지고 있다.
이 시대는 패스트 푸드와 메스꺼운 위의 시대이다;
더 많은 종류의 음식이 넘쳐나지만, 영양은 줄어든다.


이미지 출처http://kr.news.yahoo.com/servi



These are the times of world peace, but domestic warfare;
More leisure and less fun;

세계 평화의 시대이지만, 국지전은 사라지지 않고;
더 많은 여가와 더 작아지는 재미;




These are the days of two incomes, but more divorce;
Of fancier houses, but broken homes;
Tall men and short character;
Steep profits, and shallow relationships.

맞벌이 수입의 시대이지만, 이혼은 더 늘어만 가고;
더 멋진 집을 소유하지만, 가정은 풍지박산이 나고;
키큰 사람들과 더욱 혐소해진 성격;
수익은 많으나, 얕아진 관계들.


이미지 출처 http://kr.blog.yahoo.com/qrepo



These are days of quick trips, throwaway morality,
One-night stands, and pills that do everything from
Cheer, to quiet, to kill.

이시대는 여유없는 여행, 일회용 도덕
하룻밤 즐기기와, 기운을 돋구는 것에서부터, 침묵케하고,
죽음에 이르게 까지 하는 모든 것들을 가능케 하는 알약들의 시대.




It is a time when there is much in the show window,
And nothing in the stockroom.

진열장에는 많은 것들이 진열되어 있으나 ,
창고는 텅빈 그런 때이다.




Think about it.

오역이 있을 것입니다. 지적해 주시면 사례  감사하겠습니다.

 
글출처: http://www.saddleback.edu/faculty/jfritsen/articles.html#parad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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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0 18:15

일본영화 음악 3곡(녹차의 맛, 우동,칠석의 여름)

일본영화 음악 3곡입니다. <녹차의 맛> 은 담백한 녹차의 맛처럼 덤덤하게 지나치는 인간의 일상이지만 또한 동시에 녹차의 맛처럼 깊이 우러나오는 인생의 맛이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우동> 은 <녹차의 맛>처럼, 꿈이란 어딘가 훌쩍 뛰어 넘어 있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소박한 무엇일 수 있다는 교훈을 얻습니다. 동시에 전통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합니다. <칠석의 여름> 은 영화의 작품성을 떠나 대동아공영이란 탈을 쓴 일제의 폭력과 억압, 고통스런 과거에서 진정으로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아주 뜻깊은 영화였습니다. 자 이제, 영화음악과 함께 영화 속으로 푹 빠져보시기 바랍니다. 



녹차의 맛(2003)
LITTLE TEMPO & 藤田陽子, 茶の味



Mountain Song




우동(2007)




칠석의 여름(2003)
엔딩곡 나고리유키(なごり雪)(철지난 눈) / 이루카(イル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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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7 17:51

최진실법(最眞實法) 꼭 필요하다!

인간이 만든 세상은 부조리요 질곡이라도 하고, 낙원이요 신세계라고도 한다. 세상을 이토록 상반되게 보는 시선은 그들 자신이 처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당장 굶어 죽어가는 사람이 세상을 신세계라 한다거나 낙원이라 하지 않을 것이다. 부족한 것 없이 풍요를 누리면서 살아가는 인간이 세상을 부조리하다거나  질곡이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도 맞는 것은 아니다. 세계 각국의 행복지수가 이를 잘 설명해 준다고 할 수 있다. 행복지수가 꼭 경제력과 비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http://kr.news.yahoo.com/servi

http://kr.news.yahoo.com/servi





이렇게 보면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대한 인간의 마음에 따라 세상은 달라지기도 하는 것이다. 세상을 질곡으로 보고 세속의 모든 것을 던져버리는 스님이나 신부가 되는 강남의 졸부 자식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본다. 역으로, 세상을 신세계요, 낙원이라고 보는 인간들이라고 해서 그 처지가 풍족하기만 한 인간들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들에게 세상의 질곡이라거나 신세계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물질적인 풍족함에 일정부분 의존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며 더욱 결정적인 것은 정신적인 측면이 크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비인간적이고 비정한,  양심과 진실이 사라진 사회가 아무리 경제적으로 풍족하다고 해서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가 이런 딜레머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심각하게 고민했으면 한다!



이미지 출처: http://kr.news.yahoo.com/servi


정신적인 평안을 누리기 위해서는 ☞모든 인간들이 속고, 속는 비정상적이고 비양심적인 관계의 끈들이 끊어져야 한다고 본다. 혼자만 고고하게 정신적인 평안을 누리기 보다 정신적인 평안을 누릴 수 있는 물질적인 상황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상황, 즉 양심과 진실이 인간의 마음에서 활짝 꽃 피웠으면 한다.


이미지 출처: http://kr.news.yahoo.com/servi




아주 비약적이고 너무 감정적인 과정을 거쳐 이 글을 이끌어 왔다. 부족해서 그렇고, 마음이 너무 앞서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러나 결론은 간단하다. 우리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 세상의 부의 차이를 바로 잡는 것과 더불어 양심과 진실이라는 정신적인 공기를 정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들이 맺는 모든 관계들이 양심과 진실만이 교류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는 것이다. 비록 이상적이기는 하다 하더라도 말이다. 비웃는 자들에게 이르노니, 동화는 진정 성인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지 않는가!


고 최진실씨의 명복을 빕니다



진실과 양심이 회복되는 세상을 위해서 우선적으로 진실과 양심을 회복하는 인간의 마음과 그것을 최소한 강제하는 법은 우리 마음 속에 자리잡아야 한다고 본다. 인간의 자발적인 양심회복과 진실추구, 즉최진실법은 꼭 필요하다고 본다!



*이 글에 언급하는  최진실법(最眞實法)은 현재 정부에서 무리하게 추진하려는 최진실법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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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6 21:33

K를 위한 변명


K를 위한 변명, 그 마을 모퉁이 작은 도서관



아마 이십년도 더 넘은 사건으로 기억된다. 그 사건이 일어난 곳은 B라는 도시 근교의 작은 마을로 반쯤 도시화된 아직은 농촌의 풍경이 남아있던 곳이다.

그 곳은 묘하게도 삼각형의 지형을 하고 있었는데 그 꼭지점에 해당하는 지점들에 각각 동쪽으로는 도서관, 서쪽으로는 나이트 클럽, 그리고 북쪽으로는 은행이 위치해 있었다. 이곳에서는 그 도서관, 그 나이크 클럽, 그 은행이 가장 두드러진 이정표가 되었다. 도서관 옆 어디, 나이크 클럽 뒤쪽 어디, 은행에서 한 정거장 가서 어디 하는 식으로 말이다.

지금은 추억거리에서나 이야기 되는 지나간 시간 속에 남아있는 사실들이다. 현대식 도시가 되어버린 이곳에 이제는 도서관이 무려 20곳 , 은행이 100여 곳, 나이트 클럽이 200여 곳이 난립하고 있다. 작은 농촌 마을이 이렇게 산전벽해가 되리라고는 이십년 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옛날 이곳의 도서관과 나이트클럽과 은행은 유명한 이정표라 일종의 홍보 효과 또한 컸다. 별다르게 놀이시설이 없던 곳이라 학생들은 도서관에 모여들었고 마을의 유지들은 은행을 비롯해 은행 주변에 형성된 다방촌 근처에서 커피와 쌍화차를 앞에 놓고 노닐기 일쑤였으며, 나이트클럽은 주로 외지에서 관광 온 젊은이들이나 마을의 논다는 놈들의 집합소가 되었다.

이렇게 단순했던 곳이 이제는 누구도 그 지역의 성향을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도서관과 은행과 나이트 클럽들이 뒤섞여 있는 것이다. 도서관에서도 놈팽이들이 지랄을 하고, 은행 근처에는 오락실과 사채업자들이 난리를 치고 나이트클럽은 학원가와 술집들이 뒤섞여 번쩍거리고 있다.

이제 이 도시에서 낭만이라고는 찾아 볼 수도, 찾을 수도 없다. 수 많은 인간들은 쉴 새 없이 지나다니고 있지만 인간성이 상실되었다는 탄식이 터져 나오고 있다.


*

이십년 전 그 사건의 주인공은 K이다. 은행에서 큰돈을 털어 아버지의 수술비로 쓰려던 K는 조여 오는 경찰의 포위망에 밀려 도서관으로 뛰어들었던 사건이다.

그 당시 신문의 한 모퉁이에 작게 취급된 K의 강도 사건은 동시에 참 황당한 사건이기도 했다. 교회나 절로 도망간 범인을 상상할 수는 있지만 도서관으로 뛰어 들어 간 범인은 믿거나 말거나 K가 세계 최초가 아닐까 한다. K 또한 머리에 머리털이 나고 처음으로 들어 간 도서관이었다.

경찰도 이런 K의 사정과 마찬가지인 것처럼 K가 도서관에 숨어있다고는 추측조차 않고 나이트클럽과 다방가 일대를 포위하고 은행에서 도시로 나가는 도로들을 차단하는 등 헛된 부산을 떨기만 했다.

만약 K가 도서관에서 나와 도서관 뒤쪽 야산으로 도망을 쳤다면 분명 K는 이 마을을 빠져나갔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작은 마을이었기에 경찰도 예상하지 못한 경우였다.

K는 도서관으로 들어가 4층 자유 독서실내에 있는 캐비넷에 돈 가방을 넣었다. 도서관내 어디에서도 K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유 독서실은 숨어있기에는 주위가 너무 트여 있다는 생각이 들어 K는 아래층 자료 열람실로 내려갔다. 바깥에서 기웃거리다 보니 높은 책꽂이들이 나란히 놓여있는 것이 숨기에 알맞은 장소처럼 보였다.

K는 자료 열람실로 들어가 책꽂이 사이를 천천히 거닐었다. 28년이란 힘든 삶을 살아오면서 책은 단 한 번도 K의 손에 잡혀있던 적이 없었다.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초등학교의 문턱조차 밟아보지 못한 K는 아버지가 한글 정도는 배워라고 하면서, 쓰레기통에서 주워 가져다 준 초등학교 우리말 교과서가 전부였다.

이후 책은 K로부터 완전히 멀어졌다. 그 속사정은 상당히 복잡하고 가슴이 아프지만 여기에서 다두기는 좀 적절치가 않다.

이런 K가 비록 숨어있는 곳이기는 하나 책의 오솔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이건 삶의 수 없이 많은 경험들 중에서 단 한 번의 경험이었다. 수많은 책들을 보면서 그 향기를 맡으면서 천천히 걷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상을 어떻게 할 수 있었겠는가.

K가 책꽂이 사이를 걷고 있을 때 K의 시선으로 들어 온 한 아리따운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K가 걸어가는 방향에서 K를 마주보고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가 몸을 피해 K를 지나치면서 가벼운 눈인사를 보내었다. 순간 K는 참을 수 없는 가슴의 고동소리를 들었다. K도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녀가 지나쳐 가면서 뿌려준 그녀의 체취는 도피의 불안감에 빠져있는 K에게는 마취와도 같은 것이었다. 감미롭기 이를 때가 없었다. 막다른 모서리에 몰린 쥐처럼 도피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린 K에게 이상하게 찾아 온 여자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었다. 상상하기조차 힘든 감정이었다. 책의 향기와 여자의 체취에 취한 K는 가슴 속 깊이에서 꿈틀거리며 올라오는 무언가에 그 자신의 육신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동시에 도피라는 극단적인 상황과 사랑이라는 애틋한 감정이 중첩되면서 K는 절규할 것만 같은 고뇌에 휩싸여들었다. K는 뒤돌아서서 그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책꽂이 앞에서 문득 문득 잃어버린 무엇인가를 발견하기라도 한 듯 그녀는 책꽂이 쪽으로 목을 쭉 빼고 한 참을 들여다보기를 되풀이 했다. 그러다 책을 빼는 그녀의 긴 손가락은 너무나도 희고 가늘었다.

그녀가 저만치 멀어지고 이내 그녀의 모습은 오른편 책꽂이 쪽으로 사라졌다. K는 서있던 자리에서 풀썩 주저앉았다. 책꽂이는 더욱 높아져 보였고 책들이 더욱 아득히 보였다.

별 필요도 없을 듯 한 수많은 책들이 한 곳에 모여 있는 이 이상한 곳이 K에겐 이상할 정도로 편안해졌다. 그리고 K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인간들은 왜 이토록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일까? 이 책들을 써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책을 쓴 사람들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상상해 보기도 했다.

그러다 K는 앉아있는 자리에서 무심히 책꽂이를 보았다. <슬픔없는 이별>이라는 어느 소설가의 자전 소설이었다. K는 <슬픔 없는 이별>을 책꽂이로부터 빼서 한 페이지를 넘겼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나는 이 도시를 떠납니다. 그녀와의 이별이라기보다는 이 도시와의 이별이라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비록 그녀를 떠나지만 그녀에 대한 나의 사랑을 거두어 들인 건 아니니까 말입니다. 이 도시에 남겨진 사랑이 있는 한 이 도시 또한 영원히 나의 마음 속에서 살아있을 것입니다. 안녕!”

K에게는 뜻하지 않게 찾아든 한 소설가의 느닷없는 작별의 인사였던 것이다. 은행에서 돈을 훔쳐 죽어가는 아버지의 수술비를 마련해야 했던 K이지만, 세상에 대한 원한과 원망만큼이나 인간에 대한 사랑도 무의식 깊은 곳에 깃들어 있었던 것일까? K의 머릿속에 ‘안녕’ 이란 단어가 메아리쳤다. 안녕, 안녕, 안녕! K의 눈이 촉촉이 젖어갔다.



*

K는 호주머니에서 메모지를 꺼내 볼펜으로 이렇게 써내려갔다.

“전 참 나쁜 인간입니다. 은행을 턴 강도입니다. 도서관에 숨어 들어와 있습니다. 돈가방은 4층 자유 독서실내에 있는 캐비넷에 넣어두었습니다. 저는 지금 이 도서관을 나가 바로 자수를 할 것입니다. 그런데...제 아버지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병원 한 번 가보지 못한 아버지입니다. 돈가방에서 수술비만 빼서 아버지 수술을 하게 해주시면......제가 감옥을 나온 후에라도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합니다. 제 집 주소는......”

K는 그녀를 찾기 위해 책꽂이들 사이를 주의 깊게 바라보면서 걸었다. 그녀는 K가 앉아 있는 책꽂이에서 2블록 떨어진 책꽂이 앞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K는 조용히 그녀에게로 다가가 그녀 앞에 섰다. 그녀는 K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고 책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다 가만히 서있는 K의 모습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 K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표정에는 경계심이 서려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K는 가만히 접은 메모지를 건네주면서 말했다.

“죄송합니다. 부탁드립니다.”

그녀의 표정은 경계심에서 의아함으로 변했다. 그녀가 멈칫거리며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K는 그녀에게 머리를 깍듯이 숙이고는 자료 열람실 문 쪽으로 달려가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녀는 K의 그런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미지 출처:www.flickr.com/photos/86946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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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6 02:11

세계 최고령 락 밴드는?

1.세계에서 최고령 멤버로 구성된 락 밴드의 이름은?
2.세계에서 멤버의 수가 가장 많은 락 밴드는?




비틀즈의 애비로드를 패러디 한 밴드들은 많이 있다. 그 중에서 The Zimmers 라는 영국의 밴드가 있다. 그 수 많은 패러디 앨범들 중에 The Zimmers의 앨범 커버 이미지는 참 인상적 것들 중에 하나이다. 아니 그 밴드를 인상적이게 하는 것이 단지 앨범 재킷 만은 아니다. The Zimmers 는 또 다른 이유로 아주 인상적인 그룹이다. 우선 밴드의 멤버수가 무려 40명이나 된다. 세계 최대의 락 밴드다. 그리고 더욱 더 인상적인 것은 밴드의 멤버들이 세계에서 최고령자들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이다. 40명의 총 나이의 합계가 3000세라고 하니 평균 80살에 이른다. 리더 싱어 Alf 가 90세이며, 최고령자인 Buster가 101세이다.

밴드의 이름은 Zimmer frame(walking frame 의 영국식 명칭으로 보조 보행기구를 뜻함)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 밴드는 영국의 BBC 방송이 2007 5월 28일에 처음으로 방영한 다큐멘터리의 특집프로그램으로 조직이 되었다.

Tim Samuels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Tim Samuels(팀샤뮤엘스)는 BBC 방송의 다큐멘터이 "Power to the People" 시리즈의 일부로써 영국 노인들이 고통받고 있는 고독과 소외감을 조사하기 위해 영국 전역을 여행한다. 이 과정에서 팀 샤뮤엘스는 양로원과 고층빌딩에 갇혀사는 은퇴 노인들(pensioners)들을 모집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불만들을 방송으로 토로하는데, "그들을 소외시킨 사회에 불만을 토로하는" 그룹의 첫 싱글곡의 녹음으로 절정에 달한다.
 
 The Zimmers는 The Who의 "My Generation" 으로 리메이크(cover version,: a new rendition of a previously recorded, commercially released song)한 싱글을 발표하는데 2007년 5월 28일에 영국 싱글 챠트 26위에 오른다. 이것은 마마도 비틀즈의 미국에 대한 브리티시 인베이젼에 버금갈 수 있는 '노령자들의 영국사회 침공' 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노래는 Abbey Road에 있는 비틀즈 스튜디오 2(the Beatles Studio 2)에서 녹음이 되었다. 또한 4백만회 이상의 YouTube(유튜브) 조회를 기록했다.

 2007년 7월 13일, Richard & Judy(리차드 앤 쥬디)쑈에서, The Zimmers는 Prodigy(프라디지)의 "Firestarter" 를 리메이크(a cover)해 그들의 새로운 싱글을 발표하는 기염을 토한다. 
               



이미지 출처: http://www.aboutmygeneration.com/




참고로 바로 위의 사진의 건널목 무늬는 비틀즈의 <Abbey Road>의 Zebra crossing과 같지만 횡단보도 가까운 곳에서 지그재그 선이 다르다. 이 지그재그 선은 Zebra crossing 이 가까이에 있다는 표시로 우리나라의 다이아몬드 표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지그재그 선이 zebra crossing 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The Zimmers My Generation @ Yahoo! Vi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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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4 22:40

♥한국, 한국인과 관련된 일본영화

일본 영화계에 한국인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최양일 감독이나 이상일 감독 의 경우는 최근 일본영화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포스트는 단순히 한국인 배우들이 등장하는 일본영화가 아니라 최양일감독이나 이상일 감독의 비중있는 작품들과 민족적인 정체성이 강한 작품을 포함해서 한국을 다루거나 한국적인 색채가 완연하게 드러나는 일본영화를 정리하고 소개하고자 한다. 정리라고 하기엔 부족하지만 좀 더 알아가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필자 주)  

작중 김준평으로 열연했던 기카노 다케시가 인상적이었던 <피와 뼈> (2004)는 감독이 재일 한국인인 최양일이다. 또한 원작이 된 동명 소설의 작가도 재일 한국인인 양석일이다. 한때 기타노 다케시 자신이 외할머니가 한국인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만약 이러한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실제로 이 영화는 일본영화라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한국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싶다. 그러나 정작 기타노 다케시는 이러한 사실을 부정하고 있으며 오히려 한국을 조소하는 일본영화감독으로 알려져있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알수가 없다. 

이미지 출처:www.japonsko.tnet.cz/kultura_k

이미지 출처http://kr.blog.yahoo.com/mr732

이미지 출처:http://kr.image.yahoo.com/GALL





<박치기> (2004)는 이즈츠 카즈유키(井筒和幸) 감독의 작품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실제로 재일 한국인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는 면에서 한국인과 밀착된 영화라 할 수 있다. 특히 영화음악으로 등장하는 ‘임진강’은 한국인 박세영이 작사하고 고종한이 작곡한  노래이다. 이 노래는 일본에서는 1968년 ‘더 포크 크루세더스’ 가 일본어로 번역하여 음반을 내었으나 금지곡으로 선정되어 화제를 낳았던 곡이다. ‘더 포크 크루세더스’ 는 1960년대, 70년대에 인기절정을 달리던 밴드로 카토 카즈히코가 영화음악을 직접 맡았다.

이 <박치기>와 <피와뼈>는 한국에서 만든 어떠한 영화 못지않게 '민족의 분단' 이나 '남북분단'의 가슴 아픈 현실을 이념이나 국가주의라는 감정에 함몰없이 민족의 문제를 좀 더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볼 수 있다는 면에서 일본인들 보다 우리에게 더 감동으로 다가오는 역작들이다. 이러한 면에서 이 영화들은 독립된 포스트에서 독립적으로 다루어질 만 하다.



이미지 출처:http://www.maxmovie.com



영화 <박치기> 중 한 장면


임진강


이상일 감독은 <69 식스티 나인> (2004) 과 <훌라걸스> (2006)로 유명한 한국인 감독이다. 물론 이 영화들은 한국적인 정서가 스며있는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특히 <훌라걸스>는 한국인 감독 이상일 뿐만 아니라 제작도 재일 한국인 제작자 이봉우 선생이 한 작품으로  일본 거대 영화 제작사가 석권하던 일본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최우수상등 11개 부분을 석권한 사실은 개인적인 영광을 넘어 무언의 민족적인 자긍심을 느끼게 한다는 면에서 무엇보다도 더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또한  2006년 최고의 화제를 모았던 영화에 주어지는 특별상인 ‘화제상’ 을 수상함으로써 이상일 감독의 <훌라걸스>가 2006년 일본 최고의 영화임을 보여주었다.



이미지 출처:http://www.maxmovie.com



이미지 출처:http://www.maxmovie.com



<해협을 건너는 바이올린> (2004)는 일본 후지 TV가 ‘아시아의 스트라디바리우스’로 불리는 재일 한국인 바이올린 제작자 진창현선생의 일대기를 그린 2부작 특별 드라마이다. 비록 영화가 아니지만 포스트에 추가한다. 

"일제 치하에서 경상도 시골에서 태어난 진창현(74)은 어린 시절 일본인 선생님으로부터 들어봤던 바이올린 음색에 푹 빠져 14살 때 혼자 일본 유학길을 떠난다. 그러나 한국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 때론 좌절하기도 했지만, 거의 독학으로 바이올린 제작법을 터득한다. 마침내 그는 76년 국제 바이올린ㆍ비올라ㆍ첼로 제작 콩쿠르 6개 부문 중 5개 부문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다. "(출처:주간한국 http://weekly.hankooki.com/lpage/culture/200411/wk2004113011252045210.htm
 

이미지 캡처 출처: 야후, 코리아 검색. 검색을 하시려면  여기 를 클릭하세요

 

<고(GO)> 는 재일 한국인의 정체성을 다룬 일본영화로 조연으로 김민과 명계남이 잠깐 나와 열연한다. 이 영화는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인 고교시절에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며 방황하는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재일 한국인 젊은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미지 출처:http://www.maxmovie.com




<칠석의 여름(チルソクの夏: Summer Of Chilsuk> (2003) 은 시모노세키와 부산간 정기 고교 육상 대회를 통해 만난 한국의 남학생과 일본 여학생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하이틴 청춘물이다. 영화 자체의 구성이 엉성하고 줄거리가 판에 박은 듯하며 촬영은 부산에서 상당 부분 이루어졌지만 연기자들이 모두 일본인인 탓에 연기와 언어가 너무나도 어색한 그다지 수준높은 영화는 아니지만 우에노 주리가 조연으로 열연한다. 이 영화는 단순히 한국을 다루고 있다는 측면을 넘어 전후 세대 한, 일 양국의 십대들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







김인덕씨가 쓴 '우리는 조센진이 아니다(격랑의 민족사가 낳은 재일조선인 이야기)'를 보면 "스포츠계에서 많은 재일조선인이 활동한 것처럼, 일본 연예계에도 많은 한국계갸 예전에는 물론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의 대중매체는 이런 사실을 감추고자 하는 것이 사실이다"라고 나온다.

김씨는 "영화쪽에는 스가와라 분타, 다카쿠라 켄, 가네다 겐이치, 마츠자카 게이코, 이시다 히카리, 미야시타 준고, 야스다 나루미, 구도 유키 등등이 있다"고 밝혔다. 다카쿠라 켄은 국내 개봉한 일본 영화 '철도원'의 주인공을 맡아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joins! 연예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2417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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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뼈  (1) 2008.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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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3 21:04

가을 전어의 맛




아직도 전어의 고소한 맛이 입안에서 상큼하게 맴도는 군요~~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한그릇 맛있는 음식]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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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3 13:20

노인들을 위한 신체 장착 에어백

일본에서 노인들을 위해 발명한 것이라고 하는데요, 목과 허리에 에어백을 장착해서 낙상하는 경우 부풀어 올라 충격을 완화시켜준다고 하는군요.  노인들을 위한 착한 발명품이라 생각이듭니다. 동영상 원본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동영상 출처: http://www.reute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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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3 02:45

일본영화 음악 3곡(환상의 빛,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유레루)

일본영화 음악 3곡입니다. <환상의 빛(幻の光)> 은 고레이다 히로카즈 감독의 데뷰작으로 알고 있습니다. <환상의 빛>은 개인적으로 참 감동적으로 본 작품입니다. 안타깝게도 리뷰를 적어놓았다가 날려버린 영화이기도 합니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인 <아무도 모른다>가 강한 인상을 심어주어서 인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을 떼어놓고 보더라도 문학성이 있는 영화라는 그런 느낌이 든 영화였습니다.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일상의 지루상을 아주 기발하고 상상적이며 재미있게 벗어나고 있습니다. <유레루>  '흔들리다' 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흔들리는 인간의 심리, 흔들리는 가족, 특히 형제간의 관계와 남녀간의 사랑을 진지하게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살인 사건을 둘러싼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한 영화입니다. 자 이제, 영화음악과 함께 영화 속으로 푹 빠져보시기 바랍니다. 




환상의 빛, trailer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南風
レミオロメン(레미오르맨)



南風, LIVE Version
レミオロメン(레미오르맨),





유레루, 집으로 가자(うちに帰ろう)
 Caulifl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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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2 21:20

목돈 버는 원숭이(?)



원본 동영상을 보시려면 여기 를 클릭하세요


인도에서 목돈 버는 직업

한 인도남성이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고상한 방식 - 원숭이로 분장하고 원숭이들을 쫒아내고 돈을 번다 - 생각해 내었다. 

Guddie 라는 별명을 가진 Acchan Miyan이란 이 남성은 승객들을 위협하는 원숭이들을 쫒아내기 위해 인도 북부 Uttar Pradesh, Lucknow에 있는 철도청(the railway administration)이 고용을 했다.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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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2 20:33

보수논객 복거일씨 "李대통령은 탐욕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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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1 20:12

돌하루방과 이스터 섬 모아이(2)

이스터 섬은 칠레령으로 Rapa Nui(라파 누이)섬이라고 합니다. 이스터 섬은 폴리네시아를 구성하는 큰 삼각형에서 하와이, 뉴질랜드와 함께 동쪽의 꼭지점에 자리하고 있습니다(Polynesian triangle). 폴리네시아의 여러 섬들 중에서 이스터 섬이 가장 동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하와이와 뉴질랜드, 그리고 이스터 섬을 잇는 폴리네시아는 너무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어 어떤 단일한 또는 공통적인 요소가 없는 듯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인상은 잘못된 것으로 아시아, 유럽, 남미라고 지칭하는 것처럼 폴리네시아라는 공통적인 특성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글에서 언급하기로 하겠습니다. 단 이 글과 관련하여 앞서 알고 싶으신 분들은 영문판 위키피디아  Polynesian triangle 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물론 다른 자료들을 참조하셔도 되겠습니다.)

아래의 이미지는 폴리네시아를 구성하는 삼각지역(Polynesian triangle)과 그 내외의 섬으로 이루어진 국가들입니다.     돌하루방과 이스터 섬 모아이(1) 바로가기




1. 폴리네시아 2.하와이주 3.뉴질랜드 4.이스터섬 5.사모아 6.피지 7.타히티







폴리네시아 지역의 국가들과 국가영토( the islands and island groups, either nations or subnational territories, that are of native Polynesian culture)


그러나 이스터 섬이 폴리네시아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아이(Moai)와 같은 석상을 발견할 수 있는 섬이 없는 것으로 추측됩니다(이 사실에 대해서는 좀 더 확인이 필요합니다). 이스터 섬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Pitcairn Islands(피트케언 군도)나 French Polynesia(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제도)에 속하는 Gambiers Islands(감비어 군도)에도 이스터 섬의 모아이와 같은 석상이들이 없다는 것은 바다의 영향으로 단절되어 있기는 하나 폴리네시아라는 공통된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로 판단해 보면 좀 의아하다 하겠습니다. 

이스터 섬의 서쪽, 즉 폴리네시아 쪽이 아니라 칠레쪽,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중남미 멕시코에는 그 유사성이 나 갯수는 다르지만 모아이를 떠올리게 하는 석상이 있습니다. 아래에 보이는 멕시코의 올멕 문명 석상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미지출처:http://kr.dic.yahoo.com/search/enc/result.html?pk=16474400&type=encimage&field=id&img_name=16474400001

 

이미지 출처:http://en.wikipedia.org/wiki/Image:Sanlorenzohead6.jpg
 
 

그러나 이 올멕문명(Olmec Civilization)의 석상은 모양도 다를 뿐더러 환경의 유사성도 없습니다. 실제로 이 석상은 인종상 흑인으로 분류되고 있어 아프리카와 교류 또는 그 기원을 갖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터 섬의 모아이는 특이하게도 어느 쪽으로도 전파되지 않은 고립된 문명의 특성일까요? 

실제로 문명이란 것은 거리상의 원근과는 관계없이 그 교류에 의해 유사한 문명의 특징을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위의 중앙아메리카의 올멕문명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아프리카와 중남미의 다신교적인 문명의 교류가 이러한 실례가 될 수 있고, 중국 문명의 일본과 동남아로의 전파도 그 한 예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터 섬의 모아이는 두드러지는 그 규모와 숫자에도 불구하고 특이하게도 이스터 섬 문명에만 고독하게 존재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렇게 고립된 듯한 모아이가 신기하게도(작위적인지는 모르겠으나) 제주도의 돌하루방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입니다. 이스터 섬의 모아이와 비슷한 석상인 돌하루방이 더 넓은 폴리네시아를 벗어나고 아메리카 대륙을 벗어나 동북아시아의 제주도라는 섬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은 참 재미있는 추측을 낳게 합니다.


 

제주도 돌하루방 이미지 출처: http://kr.blog.yahoo.com/scham

모아이 www.flickr.com/photos/monchan/





폴리네시아의 가장 동쪽 극단에 위치해 있는 이스터 섬의 모아이가 뉴질랜드도 아니고 하와이도 아닌 제주도에서 재탄생한 것이거나 그 기원을 갖는 다면 얼마나 재미있는 사실이 될까요. 돌하루방이 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모아이보다 좀 더 이후에 탄생한 석상이 아닐까 추측하게 하지만, 추상력이란 관점에서 보면 모아이가 더욱 진화한 석상일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과연 제주도의 돌하루방과 문명의 연관성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만약 그 연관성이 있다면 왜 하필 폴리네시아에서도 가장 거리가 먼 이스터섬인지 참 궁금해 집니다.


돌하루방과 이스터 섬 모아이(1)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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