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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31 11:17

미국산 소고기를 앞에 두고



미국산 소고기를 앞에 두고




아래 인터넷 기사를 읽은 지가 20일이 다 되어 간다. 철지나 버린 이야기 같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기다렸다고 하는 편이 적합할 것이다. MB가 자신의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하면서 (촛불) 시위자들이 미국산 소고기를 "먹지 않을까 싶다" 고 한 발언에 대해 그 대답은 여전히 진행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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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인터넷판 캡처화면



나는 촛불시위에 참가한 사람은 아니지만, 이 발언에 대해 많은 충격과 함께 모욕감을 받았다. 촛불 시위를 마음으로 지원한 사람으로서 위선자라는 말과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렇게 단순할 수 있는가 하고 치를 떨었다. MB의 실용주의라는 것이 이런 것이로구나.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으면 상대를 철저하게 위선적인 인간들로 만들어 버리는 것! 소고기 값이 싸지고 소비자들이 소고기를 값싸게 먹으면 신념이나 가치나 삶의 태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 그것이 실용주의라는 것이로구나! 간단히 말하면, 앞 뒤 가릴 것 없이, 복잡한 생각따위 하지 말고 먹어라는 식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MB 자신이 그토록 주장하는 실용주의와도 어떤 의미에서는 모순되는 발언이기도 하다. 나에게 MB의 발언은 모욕감 그 자체였다.
 

그러나 나는 미국산 소고기를 아직 먹지는 않고 있지만(이것은 잘못된 생각인지도 모른다. 모르는 가운데 음식물에 미국산 소고기가 재료로 섞여들어 있을 테니까), 만약 미국산 소고기가 당장 나의 앞에 있다면 아무런 생각 없이, 아무런 갈등 없이 그저 값이 싸서 최고라는 실용주의적인 생각만으로 미국산 소고기를 맛있게 먹기만 할 것인가 하고 자문했다.  답은 분명히 아니오이다. 아무리 깞싸고 질이 좋고 맛이 있다고 하더라도 먹지 않을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해 볼 때, 비록 어쩔 수 없이 먹는다 하더라도 그 먹는다는 말은 간단치가 않다. 심리적으로, 건강과 관련하여, 미래에 대한 가정으로, 어쩌면 분노가 그 먹는다는 행위에 응어리 질지도 모른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에 팀 랭(Tim Lang)과 마이클 헤즈먼(Michael Heasman) 공저인 <식품 전쟁 Food Wars>이란 책은 광우병 뿐만 아니라 건강에 대해 모르고 있는 사실들을 상기시켜주었다. 또한 대통령은 광우병 만이 아니라 모든 조건들, 이를테면 국민의 건강, 위생, 미래의 식품정책 등을 신중하게 고려하면서 신중하게 발언을 했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MB는 철저하게 미국의 공급자들인 미국육류협회를 두둔하는 발언만을 했다. 한국의 소비자들의 입장에 대해서는 단순히 '값싸다'는 경제적인 혜택(?)을 누려라는 식이었고 이걸 실용주의라고 하는 모양이었다. 이것은 공급자 중심의 식품 정책에서 소비자 식품정책으로 나아가는 전세계적인 조류와도 맞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소비자를 배려한다는 것이 고작 '값싸다' 는 이유 하나로 한정할  수 있는 것일까?

<식품 전쟁>에서 식품 제조업자들(공급자들)이 사람들의 건강을 도외시하고 얼마나 상업적인 이익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지를 알 수 있다.

"미국의 많은 식품 제조업자들은 국가적 식단 가이드라인 도입을 망설여왔다. 예를 들어, 미국 농무부(US Deartment of Agriculture, USDA)는 '가축에게서 얻은 식품의 소비를 강조' 하는 식단을 시종일관 장려해 왔는데, 육류 제조업체와 유제품 제조 업체가 로비를 해왔기 때문이다. 1992년에 개정된 가이드라인인 '미국 식품 가이드 피라미드' 는 육류를 적게 먹으라고 제안했다. 상업 단체들은 공중위생국에서 주장한 식단 조언을 무너뜨리느라 상당한 에너지를 쏟는 한편 농무부의 생산주의 성향을 강하게 지지했다." (pp.133-134)


검역주권은 논외로 하더라도, 미국내의 식단 가이드 라인 마저도 무시하고 상업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려는 제조업체들에 대해 MB는 비판적이고, 공공 위생적이고, 질병 예방의 차원에서 신중하게 발언했어야 하는 것이다. 육류 공급에 단지 ' 값싸다' 는 생각만을 하면서 실용주의라는 하는 태도는 너무나도 서글픈 것이다. 미국산 소고기가 수입되어 값싸게 먹는 혜태을 누리는 것이 실용주의일까? 그것이 실용주의가 아니라는 증거들은 <식품전쟁>에서 수도 없이 많이 발견된다. 값싸게 먹고 난 뒤에 파생되는 심리적, 사회적인 비용은 막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2001년에 WHO가 설립한 거시 경제 및 건강 위원회(Commission on Macroeconomics and Health)는 건강 향상과 경제는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관계이며 특히 저소득 국가에서는 더욱  크게 작용한다고 주장했다......개발 도상국에서는 퇴행성 질환의 치료비용이 심각한 문제점으로 등장하고 있다. 건강과 관련된 지출 증가는 때때로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  GDP)의 성장보다 높다......이 비용은 부자들에게도 막대한 금액이다.(식품전쟁, p.92)
음식물과 관려된 질병이라는 맥락에서 볼 때, 건강 악화에 따라 직접 그리고 간접적으로 재정적 비용이 드는 점은 건강을 증진시키는 식품 공급 체인을 통해 긍정적인 정책 제도를 만 들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p.92)



이제 소고기를 앞에 두고 광우병을 포함해서, 식품(육류)와 관련한 비만이나 여러 질병들을 야기시키는 미국산 소고기를 먹느냐, 먹지 않는냐, 그것이 문제로다는 말은 내게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대통령인 사람은 '먹지 않을까 싶다' 하고 속도 모르는 발언을 하니 화를 참을 수가 있겠는가! 내가 위선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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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9 23:51

원정화, 탈북 간첩인가 섹시걸인가?




원정화 탈북간첩인가 섹시걸인가?



탈북 간첩 원정화 사건을 보도기사로 접했다. 이 사건은 안보공백에 대한 우려와 함께,  또 한편으로는 보도기사가 너무 일방적으로 성을 전면에 부각시키면서 사건 자체를 선정적으로 다룬 것은  불만스러웠다.

따라서 사건을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보기보다는 원정화의 성로비, 성접촉에 촛점을 맞추면서 선정성이 사건의 본질처럼 변질 될 정도였다. 이것은 간첩으로 퍼진 위기의식의 조성과 더불어 선정성이 더해져 안보와 성산업이 합쳐진 듯한 이상한 사건처럼 보였다.
 

아래 원정화 사건 발표 기사는 그나마 차분하면서 균형감을 갖추고 있다. 만약 보도 기사를 쓸려면 이러한 공식적인 사건 발표의 내용을 근거로 차분하고 객관적이고 균형감있게 보도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보도 기사들은 하나 같이 선정적인 제목을 붙이면서 원정화의 '성을 이용한 간첩 활동' 을 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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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 뉴스 8월27일자 <'성로비 간첩'...어떻게 활동했나>보도 기사 내용에 따르면 이번 간첩사건의 특징이 첫째, 위장 탈북 간첩 활동, 둘째, 성로비 포섭 활동, 셋째, 경제적 자립형 간첩이라고 열거하고 있지만 실제로 제목은 '성로비' 라는 단어로 장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제목을 단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성산업(섹스 산업)의 단맛을 보려거나 보고있다는 반증이 되는 것이이라 추측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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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기사들의 제목들은 예외없이 성적인 요소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그나마 파이낸셜 뉴스 8월 27일자 <'성로비 간첩'...어떻게 활동했나>는 분석적 내용 마저도 거의 사라지고 없다. 간첩 보도는 차분하고 객관적이고 균형있게 보도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객관적인 대책이 나올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같이 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행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도덕 불감증이나 섹스산업이 번창을 반영한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혹 이러한 행태가 우리 국민들의 정치, 사회 문화에 대한 비판적이고 자각적인 의식을 무디게 하는 것은 아닌지 공인인 기자로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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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적인 제목 더 감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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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9 02:08

아프리카에는 야후가 없다?(3)




아프리카에는 야후(Yahoo)가 없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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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캡처 이미지에서 보는 것처럼 아프리카 대륙에는 국가별 야후 없다는 것은 이미 이전 글들 에서 몇 번 언급을 했습니다. 물론 중동에서도 야후의 국가별 포털 사이트가 없다 는 것도 주목할 만한 사실입니다. 미래의 경제적인 잠재력을 가진 수많은 아프리카의 국가들을 등한시한다는 것은 야후의 미래를 보아서도 바람직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아프리카의 국가들 중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South Africa)같은 국가는 경제규모도 크고(이미 인도네시아와 비교를 했습니다) 전략적으로도 중요하다고 여겨지는데 야후 포털이 없다는 것이 의외였습니다.
 
아직까지 확실한 이유를 모르겠지만 아직은 경제성이 없다는 결론이 타당하게 보입니다. 야후가 미래의 잠재력을 보고 불확실한 현실에 모험적으로 뛰어들지 만은 않겠지요. 물론 표독스러운(?) 시선으로 아프리카 대륙을 집어 삼킬 자세로 아프리카 진출 프로젝트를 이미 완성해 놓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수익성이 있겠다는 판단이 나오는 순간 사바나의 굶주린 사자처럼 아프리카의 원시림으로 뛰어들겠죠. 물론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생리가 다 그렇겠지만 말입니다. 혹시나 오바마의 특수가 기대될지도 모르겠고 말입니다.

아무튼 야후의 아프리카 포털 진출에 관심을 갖고 있는 기사나 뭐 그런 것이 없을까 하고 야후 미국(Yahoo!)에서 짧은 영어로 why there are no yahoo sites in africa? 로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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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후 검색 결과 갭처 화면
   


검색 결과를 보면서 만족스러운 대답을 얻을 것 같다는 기대와 함께 동시에 약간은 실망스러웠는데, 이유는 야후에 대한 이러한 의문이 제가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위의 캡처 화면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2년 전의 다 낡아 빠진 Q & A 라는 사실에서 너무나도 늦게 의문을 가지고 뒷북을 치고 있다는 사실에 좀 그렇더군요.

아무튼 위의 붉은 사각형 안의 링크들을 차례로 클릭을 하였습니다. 아래는 바로 답변들입니다. 모두 2년전에 Q&A로써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이 민망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사실은 2년 전의 아프리카에 대한 야후의 인식이 현재에도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2년 동안 아프리카에 변화가 없었다는 뜻일까요? 이 사실이 또 다른 의문을 갖게 만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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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에는 왜 야후는 없는 가에 대한 Yahoo의 Q&A 캡처 화면 (이미지 클릭하면 원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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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에는 왜 야후는 없는 가에 대한 Yahoo의 Q&A 캡처 화면 (이미지 클릭하면 원본으로)



위의 답을 대략적으로 정리를 하면 결국 한마디로 귀결이 됩니다. 경제성이 없다 는 것입니다. 그러나 첫 번째 답변에서 아프리카 국가들의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에 진출하지 않는 야후가 어리석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2년이 지난 지금도 왜 야후는 그토록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야후가 어리석은 것일까요, 아프리카의 현실이 첫번째의 답변에서 과장되고 있는 것일까요?

어쨋거나, 야후가 아프리카에 진출하지 않는 것은 아직은 경제성이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습니다. 물론 위의 글들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들의 의견에 불과하니까 말입니다. 야후의 입장만이 완전히 신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로 야후 코리아에서  아프리카에는 왜 야후가 없을까? 로 검색을 하니 실망스럽게도 아래와 같이 전혀 질문에 맞지 않는 답변이 검색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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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에는 왜 야후가 없는가에 대한 야후 코리아 캡처 화면




다른 검색창으로 검색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네이버와 엠파스도 야후 코리아와 마찬가지로 관련된 답변이 없었습니다. 참고하시거나 직접 검색해 보시기를.....

네이버 검색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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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파스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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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8 02:35

피와 뼈



피와 뼈


낯선 삶이었다. 영화의 역사적 배경이나 공간등 간과 할 수 없는 여러 주제들, 이를테면 광기의 역사적 상징성, 불행한 가족사의 부조리함, 개인의 병적 심리 등 역사라는 거창한 주제에서부터 가족사의 비극과 한 개인의 심리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감상의 자료를 제공해주었지만, 나의 생각은 인상적인 한 인간의 괴물 같은 삶(연기)에 주로 매달렸다. 아마도 낯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화 내내 김준평(기카노 다케시)의 ‘괴물성‘ ’야수성‘의 근원이 어디에서 있는지를 찾고자 했다.


하지만 그의 ’괴물성‘ 과 영화의 어디에도 그 인과성을 찾지를 못했다. 김준평의 괴물성을 일본 제국주의에 항의하는 메시지로 읽고자 했으나, 그것은  넌센스 같았다. 아니 관객인 내가 그렇게 해석한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 제국주의를 이해하기에는 김준평은 너무 속물적이었다.


그냥 다소 낯선 한 한인 가족사가 1920년대 초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 일본이란 배경만을 달리하며 기록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해 보였다. 그냥 즐기면 되는데 괜한 헛수고를 한 듯했다. 가족들과의 관계조차도 파괴하는 가장은 있을 수 있는 것이고, 그 가장을 사실적으로 묘사를 한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만 넘어가자니 어딘지 허전하고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미지 출처:http://www.slrclup.net/Common/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상처’ 라는 단어였다. 답답하던 가슴이 조금 트였다.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관계들이 엮어놓고 있는 인간들의 실존이었다. 역사도 이데올로기도 어쩔 수 없는 인간 실존의 모습이었다. 절망을 만들고, 절망에 순응하고, 절망에 저항하는 삶들은 깨어진 관계 속에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비극적인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 절망들은 전 근대적인 인간관계 속에 처해진 실존들의 상처이고 절망들이기에, 과거 우리의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게 해준다. 특히 김준평으로 상징되는 억압적인 한국의 유교적인 가부장제와 그것에 얽힌 문제들에 대한 성찰이 그랬다.


그리고 죽음이 있었다. 죽음이 끝인 인간의 삶은 그 자체가 한 장의 유서일수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제법 긴 유서를 쓰고 있다는 오싹한 느낌이 몰려왔다. 이 영화에 나오는 죽음들이 인상적인 까닭이기도 했다. 딸의 주검 앞에 김준평이 나타났을 때, 상가에는 큰 소동이 벌어지고 그 소동을 피해 딸의 시신을 이리저리 옮기는 장면은 현실의 고통을 피해 죽음을 선택했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고통스런 현실은 죽음과 현실의 끊임없는 악순환을 느끼게 했다. 현실은 좀더 아름다운 곳은 될 수 없는가? 인간은 좀더 선한 존재가 될 수는 없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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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8 00:28

형제와 사탄사이



형제와 사탄사이


이미지 출처:뉴시스
이미지 출처: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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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후미디어 뉴스 에서 기사 내용 캡처

                               

기독교는 관용을 모르는 종교이다. 기독교는 배타의 종교이며 그 자체로 중심이다. 신의 섭리만이 존재한다. 기독교는 그 테두리에서는 모두가 형제이고 자매이며 사랑과 희생과 평화와 봉사를 부르짖지만 그 바깥 테두리의 이교들에게는 잔인하다. 함께 살아 온 이 자연과 전통과 민족이라는 테두리는 중요하지 않다. 이교도란 한낱 사탄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온화한 기독교인들이라고 해도 그 마음의 밑바탕에는 신의 섭리만을 믿는다. 관용이란 없다. 관용을 누릴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는 오직 하나님과, 그 독생자 예수와 성령의 존재를 믿는 신자들이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다. 휴거를 예언한 목사가 있었다. 그 목사는 휴거 의 예언을 철저하게 성경을 근거로 했다고 했다. 교회의 신자들은 한복으로 갈아입고 밤새 휴거를 기다렸다. 제법 센세이션널한 뉴스거리였다. 방송도 신문도 앞 다투어 보도한 기억이 난다. 그러나 밤사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기억하기에, 그 목사는 그런 소동을 일으키고 난 뒤 신조차 부정하는 소리를 했다. 신이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고.

이후 기독교의 자성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독교는 관대했던 것 같다. 적어도 그들은 사탄은 아니었다. 죄라면 신을 너무 맹목적으로 믿었다는 것뿐. 신을 영접하고 믿기만 하면, 용서는 강물처럼 흐르고, 회개가 있으면 사랑은 바다처럼 깊어진다.

이런 관용과 용서와 사랑이 기독교내에서 또 일어났다.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정말 그러나, 이교도들에 대한 관용은 없다. 오직 사탄일 뿐이다. 선교의 대상일 뿐이다. 스님들이 선교하기에 가장 힘든 존재들이라고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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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후미디어 뉴스에서 기사내용 캡처




관용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문제는 종교내의 관용 뿐만 아니라 종교간의 관용 또한 중요하다는 것이다. 종교는 이교도들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본다. 자신만의 종교를 위해서 전쟁을 일으키고 살육을 하면서 신의 섭리라는 궤변이 인간의 역사에는 수없이 많은 상처로 아로새겨왔지 않는가?
 
이렇게 말하는 나 또한 신의 섭리를 부정하는 사탄이라고 하면 도대체 기독교에 대해 기독교인들에게 대해 무슨 말을 해야 하며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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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6 21:42

토니 타키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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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타키타니


단편소설을 ‘보여주는’ 듯한 느낌의 이 영화는 실제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토니 타키타니>를 영상화한 것입니다. 다른 영화들에 비에 다소 짧은 편(76분)이지만 진지하고 무게감 있게 다가옵니다. 간결하고 경쾌한 문체에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주제를 담고 있는 하루키의 소설(읽는 것은 《상실의 시대(Norwegian Wood)》가 유일하지만)과 마찬가지로 경쾌하고 간결한 문체를 마치 눈으로 보는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문장이 간결하면 경쾌해지고 또 스타카토의 강렬한 인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단문과 단문사이의 여백은 ‘인상’을 만드는 유용한 공간으로 존재합니다. 선에 비유하자면, 점선이 완전한 선은 아니지만 더욱 인상적인 선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점과 점 사이의 공간 덕분입니다. 실선은 완전하나 점선보다 인상적이지 못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이런 이유로 점선이 끊는 선을 상징하게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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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http://www.dvdactive.com/news/releases/tony-takitani.html

인생에 비유하자면, 인간의 인생은 마치 점선과도 같습니다. 여러 사건들의 인상들로 구성되어 있는 셈이지요. 지나온 시간들은 하나의 긴 흐름처럼 느껴집니까, 아니면 기억 속에 존재하는 여러 사건(장면)들이 인상을 만들어 놓고 있습니까? 개인적으로, 그림이나 사진처럼 파편으로 남아 인상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기억은 인상을 만들 뿐 그대로 재연하지는 못하죠.) 모래를 생각해 보면 될 것입니다. 하나하나의 알갱이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모래를 이루고 있습니다. 알갱이들 사이에는 연결고리가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소설의 문장들이 아니라 인간들의 관계로 생각해 보면 사실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들이 간결하고 경쾌한 관계들로만 구성된다면 ‘인상’ 은 만들어 내겠지만 끈끈하고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하지는 못하겠지요.

단문들로 쓰인 소설들은 대체로 차갑고 냉정합니다. 단편인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단편소설이란 이름처럼 인간들의 ‘단편적인 관계’가 되겠지요. 이 영화에도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아주 단편적인 접점만을 갖습니다. 예를 들면, 남자 주인공 토니 타키타니(잇세 오가타)와 여자 주인공인 에이코(미야자와 리에)가 만나 이렇게 대화하는 장면이 그렇습니다.


에이코: 옷이란 자신의 내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제 멋

           대로에요. 게다가 굉장히 사치스러워요. 그래서 급료의 대부분이 옷을 사

           는 비용으로 사라져버려요.

토 니 : 나는 그림도구 외에는 어디에도 돈을 쓸 일이 없어.


이렇듯 그들의 만남에는 인간적인 공감이라기보다는 단편적인 접점으로서의 옷과 돈이 전제되고 있습니다. 토니와 그의 아버지의 대화에서도 인간적인 공감이 아니라 단편적인 접점만을 확인해 줍니다.


토  니:머랄까, 사랑에 빠져 버린 것 같아. 처음으로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

          어.

아버지:그래서 어디가 마음에 든 거야?

토  니:뭐라 말해야 할까? 옷을 입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아.

아버지:그것 참 굉장하군.



이러한 인간의 단편적인 관계에는 서로가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공감할 수 없다는 그 사실에 의해 어떤 막연하고 근원적인 고독이나 외로움을 동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토니 타키타니와 에이코는 운명에 순종하는 무기력한 인간처럼 여겨집니다. 마치 허수아비처럼 말입니다. 비록 함께 있지만 대책 없는 고독과 외로움이 그들 주위를 맴돌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외로운 존재인 것입니다. 그 무엇으로 채울 수 없는 외로움인 것입니다. 단지 망각하는 것 밖에는 그것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어떠한 종류의 관계를 맺는다고 해도 일시적인 위로일 수는 있되 영원한 구원은 되지 못합니다. <토니 타키타니>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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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http://kr.image.yahoo.com/GALL

이렇게 보면 피상적인 관찰이기는 하지만 《상실의 시대》(1987)에서 우울하기는 하나 인간관계에 대한 희망이 단편 <토니 타키타니>(1997)에서 인간관계에 대한 무기력으로 나타나는 것은 다소 안타깝습니다. 꼭 10년만입니다. 성숙인지 퇴폐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상실의 시대》에서는 하나가 되고자 하는(존재로서 공감하고 일체감을 갖는) 인간관계의 희망을 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 <토니 타키타니> 를 보고나면 연민과 인간 실존, 그 자체에 대해서는 공감하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소중한 체험입니다. 일본 영화라는 편견을 버리고 이러한 영화를 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이제 이 영화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들을 몇 가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장면들 사이의 검고 두터운 벽들입니다. 이 벽은 인간을 가두고 차단시키는 외로움을 상징하고 있는 듯 합니다. ‘외로움은 감옥’ 이라는 말이 암시하듯이 장면들 사이에 놓여있는 검은 벽들이 창살처럼 여겨집니다. 고독은 우리 인간이 깨기에는 너무나도 큰 벽처럼 여겨집니다.


둘째는 인간들이 남긴 흔적들에 관한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그다지 유쾌한 생각은 아닙니다만 이런 생각이 문득 떠오릅니다. ‘우리의 삶 뒤에 남게 되는 것은 흔적뿐’이라는 말 말입니다. 도대체 죽음 뒤에 우리가 남기는 것이 무엇일까요? 종교는 우리에게 영생이 있고, 환생이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죽음 뒤에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에 직면합니다. 우리의 육체가 빠져 나간 자리에는 마치 뱀의 허물처럼 헐렁한 옷 몇 벌만이 덩그러니 남으리라는 상상은 쉬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남아있을 옷들에 발악적으로 집착하는 에이코에게 우리는 연민을 느낍니다. 에이코는 옷을 반품하고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다 신호등에 걸려있는 중에 다시 그 옷이 생각나 차를 돌리다 사고로 죽습니다. 에이코를 죽인 것은 그녀의 옷인 셈입니다. 토니 타키타니의 아버지가 죽은 뒤의 흔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남긴 것이라고는 고작 낡은 레코드들이 전부입니다. 에이코의 옷들이 머물러 있던 텅 빈 방에 남겨진 그 레코드들은 에이코의 옷들과 함께 연민을 자아냅니다.


셋째는 인간에 대한 연민입니다. 토니 타키타니는 죽은 아내를 기억하고자 아내와 체형이 같은 여자를 비서로 채용해 아내의 옷을 입고 출근하도록 하는데, 바로 히사코가 그녀입니다. 히사코는 리에가 에이코와 함께 1인 2역을 맡습니다. 히사코는 에이코의 옷을 고르기 위해 에이코의 옷방으로 들어갑니다. 여기에서 그녀는 에이코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연민을 느끼고 눈물을 흘립니다.


몇 백 벌이나 되는 아름다운 옷이 그 곳에 쭉 늘어서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옷을 잔뜩 남겨 놓은 채 죽어버렸다는 것은 “어떤 기분이 들까?” 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옷도 구두도 마치 그녀를 위해 만들어진 것과 같이 정확히 사이즈가 맞았다.


그리고 그녀는 흐느껴 웁니다. 그녀의 눈물은 바로 연민의 눈물인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공감인 것입니다. 토니 타키타니는 아내의 옷 방에서 흐느껴 울던 히사코를 잊지 못합니다.


그는 때때로 아직껏 그 방안에서 아내가 남기고간 옷을 보고 눈물을 흘렸던 잘 알지도 못한 여자를 떠올렸다. 그녀의 흐느껴 울던 소리가 기억 속에서 되살아났다. “이렇게나 많은 예쁜 옷을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떠올리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러 가지를 완전히 잃어버린 후에도 이상하게도 그 여자를 잊을 수가 없었다.


      


토니 타키타니 UK trai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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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6 06:52

일본영화 음악 3곡(스윙 걸즈, 하나와 앨리스, 4월 이야기)



일본영화 음악 3곡입니다. <Swing girls>는 음악으로 하나가 되는 재기발랄하고 왁자지껄한 여고생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와이 순지 감독의 <하나와 앨리스>는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의 청소년들의 우정과 사랑과 예술을 담고있는 아름다운 성장소설입니다. 마지막부분 쯤에 나오는 아오이유우의 솔로발레 장면은 이 영화의, 아니 청소년들의 갈등과 고뇌를 아름답게 승화하는 장면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역시 이와이 순지 감독의 <4월 이야기>입니다. 마츠 다카코의 섬세한 연기가 인상적인 영화입니다.


Swing Girls(2006년)
러브 사이코델리코, Everybody needs somebody




하나와 앨리스(2004년)
워아이니 아라베스크




4월이야기(2000년)
April fr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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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5 00:33

일본영화 음악 3곡(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박치기, 아무도 모른다)




일본영화 음악 3곡입니다. <세상의 중심에서사랑을 외치다>은 카세트 테입에 담긴 젊은 날의 상처를 테입을 재생시키듯 다시 찾아가는 성찰의 영화이며 동시에 성장의 영화이기도 합니다. <박치기>는 일본영화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영화입니다. 우리 민족을 다룬 영화이며 분단을 다룬 영화입니다. 우리의 슬픈 역사가 일본에서 살아가는 재일 교포들에게 한 처럼 맺혀있는 영화입니다. <임진강>으 너무도 감동적인 노래입니다. 마지막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입니다. 이 영화는 일본영화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보시면 어떨가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만난 것이 참 행운이었습니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2004년)
瞳をとじて(눈을 감고)



                  히라이 켄(平井 堅,ひらい けん)의 원곡이 아닌 마사미 버전





박치기(2006년)
임진강



영화 <박치기> 중 한 장면


임진강




아무도 모른다(2005년)
보석

                                                 타테 다카코 <보석>




다른 일본영화음악 3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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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4 06:44

대한민국 야구팀 축하 축하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야구 대표팀이 9전 전승을 거두면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참으로 장한 대한민국 야구 선수들의 경기였습니다. 오랜 기간동안 세계 아마 야구 최정상을 지켜오면서 미국 프로 야구 실력에 버금가는 쿠바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얻은 금메달이란 사실에서 더욱 더 자랑스러움을 느낍니다. 대한민국 올림픽 야구 대표 선수들에게 뜨거운 박수와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9회말 1사 주자 만루 상황에서 병살로 처리하고 금메달을 확정짓는 순간




일본과의 준결승 승리 후 2점 홈런을 친 이승엽 선수의 눈물




일본과의 준결승 전에 2점 홈런을 치는 이승엽 선수. 동영상 출처:싱아흉아 in 엠엔캐스트.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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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4 04:23

중동에도 야후가 없다?

 
중동에도 야후(Yahoo)가 없다?


아프리카에는 야후(yahoo)가 없다?(2)에서 약간의 언급이 있었던 바와 같이 사실상 중동(Middle East)에도 국가별 야후 사이트가 없었습니다. 이 중동지역도 아프리카 대륙과 더불어 야후에게는 예외적인 지역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일 달러로 경제적으로 풍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또한 의외였던 겁니다. 아랍에미레이트 연합(두바이로 유명한)이라던가, 이스라엘, 사우디 아라비아, 쿠웨이트, 카타르 등 중동 국가들은 IT 기술 자체는 그다지 발달해 있지는 않지만 인터넷 네트웤이나 세계화 수준이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야후 캡처 화면
          글로벌 야후 캡처 화면. 아프리카 대륙과 마찬가지로 중동지역의 국가별 야후 사이트가 보이지 않는다



야후가 중동 국가들에 왜 국가별 야후 사이트를 개설하지 않고 있는 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단지 야후의 의도라기 보다는 중동 국가들 자체의 이유때문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 추측해 볼 수 있다.  아래는 yahoo saudi arabia 검색한 결과이다. 국가별  사이트 바로가기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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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후 사우디아라비아 검색 결과 캡처 화면. 국가별 바로가기가 보이지 않는다.



혹시나 해서 야후 미국으로 들어가서 saudi arabia와 united arab emirates 를 검색해 보았으나 역시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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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후 미국에서 saudi arabia  검색 갭처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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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후 미국에서 united arab emirates 검색 캡처 화면. 이스라엘, 쿠웨이트 다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중동에는 왜 야후가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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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는 야후가 없다?(1)
아프리카에는 야후가 없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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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3 02:45

아프리카에는 야후(Yahoo)가 없다?(2)



아프리카에는 야후가 없다?(1)

      아프리카에는 야후(Yahoo)가 없다?(2)



아프리카에는 왜 국가별 야후 사이트가 없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보는 것 처럼 모든 대륙에 야후의 국가별 사이트들이 있는 데 반해, 아프리카 대륙에는 국가별 야후 사이트가 없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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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표에서 아프리카 대륙상의 국가별 야후 사이트는 하나도 없다


아프리카 대륙에 국가별 야후 사이트가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기업의 이윤 추구의 특성상 경제성이 없다는 사실 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의 대체적인 인식도 아프리카의 국가들이 대체적으로 후진국이라 경제성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남아프리카 공화국(South Africa)나 이집트(Egypt)같은 국가들은 경제적으로 그렇게 후진국이라 생각지 않았기에 야후 남아프리카 공화국(Yahoo! South Africa) 이나 야후 이집트 (Yahoo! Egypt) 정도는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아시아 대륙의 국가 중 야후 사이트가 있는 인도네시아의 예로 들면, 그 경제력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나 이집트에 결코 앞서지 않습니다.  2004년 기준으로 1인당 GDP가  3,500달러로, 2004년 기준으로 11,100 달러인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4,200달러의 이집트 보다 훨씬 뒤처집니다. 이렇게 보면 단면적인 비교이기는 하는 경제력이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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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후 인도네시아 사이트


또한 인터넷 이용자수를 이유로 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인테넷 이용자수도 그 기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2002년을 기준으로 인터넷 이용자수가 8백만영으로 추산되는 반면, 이집트의 경우는 2005년 기준으로 고작 인터넷 이용자수가 4백 2십만 명에 그치고 있습니다.  더 놀아운 것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 인터넷 이용자수가 2002년을 기준으로 인도네시아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3백 십만명에 그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경제력은 약하지만 인터넷 이용자수가 많은 인도네시아에 야후 사이트가 있는 것이라 판단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야후가 인터넷 이용자수를 근거로 아프리카 대륙에 국가별 야후 사이트를 개설하지 않았다면, 이용자수가 남아프리카공화국보다 적은  뉴질랜드(2백 십일만, 2003년 기준), 베트남(3백 5십만, 2003년 기준), 싱가폴(2백 3십1만, 2002년 기준) 같은 나라들에 야후 사이트가 있는 이유를 설명해 주지는 못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 개인적이 추측으로 판단해 보면 이집트의 경우 회교국이란 사실입니다. 위의 지도를 보면 사실 대륙상으로는 아프리카 대륙에만 야후의 국가별 사이트가 존재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중동지역 대분분의 국가들에도 야후 사이트는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집트를 비롯한 아프리카의 회교국들의 경우는 종교적인 이유가 아주 많이 작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추측도 문제인 것이 인도네시아도 회교국가이며, 말레이지아 또한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일단 별개로 하겠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는  너무나 의외입니다. 경제적인 수준도 상당하고 다국적 기업인 야후의 전략상으로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야후의 사이트가 있을 법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남아프리카의 경우는 2002년을 기준으로 인구가  흑인 79%, 백인 9.6%, 혼혈인 8.9%, 인도인/아시아인 2.5% 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랜 동안의 인종 차별로 인한 부의 편중과 빈부의 격차는 심각합니다. 이러한 빈부격차가 인도네시아 보다도 인터넷 사용자수가 적은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야후의 입장에서 바로 80%에 이르는 흑인 인구의 경제력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결론 적으로 말하자면 경제적인 이유와 종교적인 이유가 아프리카 대륙에 국가별 야후 사이트가 없는 이유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잠정적인 결론에 불과합니다.

*위에 인용된 모든 수치는 The CIA World factbook 을 인용하였습니다.

아프리카에는 야후가 없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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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2 19:07

아프리카에는 야후(Yahoo)가 없다?



                
아프리카에는 야후가 없다?(2)

                   아프리카에는 야후(Yahoo)가 없다?

아프리카에 대한 야후 사이트 정보를 검색하다가 보니 국가별 아프리카 야후 사이트가 없더군요. 야후하면 전세계적인 포털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의외였습니다. 제 검색이 미치지 못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아프리캉 야후가 없는지 너무나 궁금하군요.

혹 이유를 알고 계신 분 있으시면 좀 가르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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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 야후 사이트에 아프리카 대륙은 빠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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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hoo korea 로 검색을 하니까 야후 코리아 바로가기 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바로가기를 클릭하면 아래와 같은 화면이 나타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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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해서 yahoo spain 을 검색해 보니까 yahoo korea 나 마찬가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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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가기를 클릭하니까 역시 아래의 화면이 나타났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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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yahoo  south africa 와 yahoo egypt 로 각각 검색을 해보니까  아래와 같이 그 나라별 야후 사이트가 없더군요. 그 나라 관련 웹 정보들만 검색이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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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아프리카에는 국가별 야후 사이트가 없는 것일까요?

아프리카에는 야후가 없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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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1 02:07

발우공양: 개인의 자각으로써의 생태주의




 발우공양:개인의 자각으로써의 생태주의


발우공양 체험하는 일본 관음성지 순례단 출처:NEWSIS

발우공양 체험하는 일본 관음성지 순례단 출처:NEWSIS

인간의 음식문화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떼어 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육식은 육식대로 채식은 채식대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전제하지 않고는 생각할 수 없다. 육식은 사냥감의 사냥을 위해 칼과 창을 필요로 했을 것이고, 그 조리나 보관을 위해 여러 식물들과 향신료를 필요로 했을 것이다.


음식의 보관은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인간들에게도 절실한 문제였다. 고기를 익혀 먹는 것은 네안네르탈인의 불의 이용 시기와 어느 정도 일치 한다. 음식을 끊여먹기 시작한 시기도 기원전 5000년 경에 이르서야 가능했다고 한다.

그러나 보관의 문제는 상당히 복잡한데 육식을 위주로 하는 유럽인들은 단순히 소금이나 훈제로 고기를 보관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천문학과 항해술의 발달로 동양으로 진출한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고기를 장기간 정장할 수 있는 향신료의 획득이었다. 유럽인이 향신료를 구하기 위해 동양으로 항해하다 우연히 발견한 것이 바로 인도, 곧 신대륙이기 하다. 결국 고기의 장기간 보관이나 저장을 위해 우연하게도 신대륙을 발견했고, 그들 탐욕의 충족을 위해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살육을 당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역사의 비극은 우연의 결과라는 생각도 든다.


다양한 현상들을 일반화하고 논리를 심하게 비약한다는 걱정이 앞서지만, 역사상의 비극을 초래했던 유럽의 육식 위주의 음식문화와 달리 불교의 발우공양은 자연과 인간 자신들에게 가한 비극을 돌아보고 그 비극을 잉태한 서구화된 오늘날의 음식 문화를 성찰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확신한다.

"발우공양이란 스님들의 식사를 말한다. 스님들의 식사는 일반사람들의 식사방법과 다르다.

발우공양은 식당작법(食堂作法)을 따라 하게 되는데 이 식당작법을 살펴보면 한끼의 식사까지 불교의 수행정신이 스며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흔히 발우공양은 음식을 남기는 법이 없어 낭비가 없으며, 음식을 남기지 않아 설거지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없고, 설거지로 인해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다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러한 특징은 지혜의 반영일 뿐이다. 식당작법을 통해 스님들의 식사란 수행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출가 수행자가 음식을 매개로 중생과 함께하는 지혜의 정신이 숨어있는 것이다.

식당작법 중에 공양할 때 반드시 관상(觀想)하는 오관게(五觀偈)가 있다. 오관게를 오관상념게(五觀想念偈)라고도 하는데 다섯 시귀의 내용을 관상하여 염하는 것을 말한다.

이 공양이 여기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피와 땀의 고통이 배어있는가를 헤아리고(計功多少 量彼來處) 자기의 덕행이 공양을 받기에 부끄럽지 않는가를 생각한다.(忖己德行 全缺應供) 마음을 악으로부터 보호하고 허물을 여의는 것은 탐·진·치 삼독(貪·瞋·癡 三毒)을 버리는 것이 으뜸이니,(防心離過 貪等爲宗)이 음식을 약으로 알아 육신의 고달품을 치료하여,(正思良藥 爲療形枯)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爲成道業 應受此食)

이러한 오관게를 통해 발우공양의 불교적 정신를 되새겨보면 첫째 시귀는 은혜, 둘째 시귀는 음식을 받을만한지의 자격, 셋째 시귀는 음식을 받는 이유, 넷째 시귀는 육신의 건강을 위해 음식을 받는 것으로 수행의 조건인 건강한 육체, 다섯째 시귀는 수행하기 위해서 음식을 받는 것, 즉 수행은 깨달음을 목적으로 하는 것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것을 일상생활에서 적용시켜보면 불교의 음식에 대한 지혜를 그대로 응용할 수 있다.

발우공양의 불교정신이 사회에 지속되려면 오관게를 관상하는 운동이 불자들의 실천을 통해 확산되어야 할 것이다. 관상하여 잊어버리지 않으면 몸에 배여서 일상생활에서 그대로 나타나게 된다. 이제 발우공양의 정신을 일반화하여 각 가정에서 직접 실천해 보면 절약하는 습관과 음식의 소중함을 깨닫고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까지 저절로 갖게 될 것이다. 이것이 확대되면 환경오염을 예방하고 경제적인 이득을 얻게 됨은 물론이다."
인용글 출처: 현대불교미디어 센터 



우연이긴 하지만 유럽의 육식문화가 어메리칸 인디언의 대학살과 유럽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와 직접적으로 관계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또한 현대의 기아와 비만과 음식으로 인한 질병은 곧 인간의 탐욕과 탐식의 결과라는 사실을 볼 때는 과연 인간의 탐욕이 인간 스스로를 옥죄는 쇠사슬이 되고 있다. 과거의 비극을 통해, 음식에 대한 탐욕 앞에서 평화로움과 자비와 사랑은 무용지물일 뿐이었다는 뼈아픈 교훈을 얻어야 하며, 또한 오늘날의 비극을 통해  음식은 사랑이고 자비이고 평화롭게 함께 공유하는 정신임을 자각하는 통절한 반성이 요구된다.


세계적인 영장류 학자이며 환경운동가 그리고 <희망 밥상>의 저자인 제인 구달 박사가 2006년 우리나라 화계사를 방문하여 발우공양을 1시간에 걸쳐 체험하였다. 짐작컨대 구달 박사는 발우공양에서 본질적인 생태주의 운동을 목격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음식을 먹는 행위를 생태계 순환의 일부로 여길 수 있을 만큼 자연과 동식물에 적대적이며 않으며 음식의 질과 건강을 의도적으로 추구하는 의식조차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제인 구달 박사와 불교와의 만남은 동서양 함께 20세 이념과 민족과 국가이기주의를 넘어 21세기는 기아와 비만, 음식으로 인한 질병이 사라지는 것에서부터, 생태계의 보호와 보전에 이르기까지 인간에 대한, 자연에 대한, 생태계에 대한 근본적인 자각이 일어나는 녹색 생태주의로 나아가는 조화와 화해와 평화의 큰 걸음이 아닐까도 싶다.


이 지점에서 육식이나 채식을 떠나, 또한 종교를 떠나서,  인간이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누리고 있는 경제적인 풍요라는 것이 생태계의 파괴를 기반하고 있는 인류 위기에 다름 아니라는 진지하고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하며, 이러한 고민 속에서 발견하는 발우공양의 정신은 우리 인간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참고  제인구달 박사의 화계사 발우공양 체험
         희망은거창한 구호에서가 아닌 개인의 작은 실천에서 오는 것   
         외국인들의 발우공양 체험 동영상
         제인 구달, "환경문제는 자연과 동떨어진 삶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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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0 02:11

일본영화 OST 3곡(키쿠지로의 여름, 하울의 성, 러브레터)




일본영화 음악 3곡입니다. <키쿠지로의 여름>은 참 재미있게 본 영화였습니다. 잊고 있던 동심의 세계를 마구 일깨워 주더군요. 다음이 <하울의 성> 메인 테마곡이고, 마지막으로 이와이 순지 감독의 <러브 레터> MV입니다. 


 
키쿠지로의 여름(1999년)
히사이시 조, 메인 테마곡







하울의 성(2004년)
히사이시 조, 메인 테마곡







러브 레터(1995년)
Winter Story 메인 테마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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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9 00:39

일본영화 OST 3곡(조제,호랑이,그리고 물고기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지금 만나러 갑니다)



일본영화 음악 3곡입니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은 아직 보지 못했지만 <말은 삼각, 마음은 사각> 이 노래는 작년 여름에 접하고 참 좋았던 음악입니다. 쿠루리의 <Highway> 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엔딩 스코어로 흘러 나올 때는 잔잔한 여운이 계속 남았던 기억이 나는 군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쿠루리,  Highway






 
마을에 부는 산들 바람
쿠루리, 말은 삼각 마음은 사각







지금 만나러 갑니다
Orange 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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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8 19:44

비틀즈의 'Penny Lane' 과 흑인 노예 수송로(2)




                    비틀즈의 ‘Penny Lane’ 과 흑인 노예 수송로(2)



앞 글에서 계속

2006년 7월에 한 리버풀 시의원이 특정한 도로명들을 개명할 것을 제안했는데, 그 이유는 그 도로명들이 노예무역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리버풀은 18세기 후반 노예선들을 위한 주요한 항구 였다. 아프리카에서 운반해온 흑인들을 다시 노예선으로 옮겨 싣고 미국으로 운반하는 노예선들의 중심항들 중에 하나였다. 그 당시 도시 경제의 상당 부분이 노예 무역에 의존하고 있었다. 18세기 노예선의 소유주이자 강경한 노예폐지 반대론자인 제임스 페니(James Penny)의 이름을 딴 Penny Lane도 이러한 도로들 중에 하나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강경한 노예폐지 반대론자들의 이름을 딴 도로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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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http://kr.news.yahoo.com/servi





도로 개명에 대해서는 이견도 있었다. 에릭 린치(Eric Lynch)는 도로의 개명을 독일인이 아우츠비슈 수용소를 없애는 것에 비유하면서 ‘역사를 바꾸는 불명예스러운 시도’ 라고 반박했고, 이에 대해 제안자인 바바라 매이스(Babara Mace)는 역사를 다시 쓰려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 리버풀의 역사는 역사책에 존재한다고 맞섰다. 이 도로명들을 2006년 7월 10일, 최초의 제안은 Penny Lane을 제외하고 개명하자는 수정 제안으로 바뀌어 통과되었다.

말하자면 지금 리버풀의 노예 무역과 관련된 도로들은 인종 차별로 희생된 흑인의 이름이나 인종 차별을 폐지를 부르짖었던 활동가들의 이름을 따 개명이 되었지만 Penny Lane은 여전히 노예 페지 강경론자인 제임스 페니의 이름을 그대로 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비틀즈에게는 수치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이미지는 진보적이고 자유적이며 반문화적인데 반해 그들이 읊었던 Penny Lane은 억압과 차별과 폭력의 상징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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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200여년이라는 시차가 있지만, 비틀즈가 정감어린 노래에 담았던 Penny Lane이 끌려가는 흑인 노예들에게는 어떠한 길이었던 가를 생각하면 노래<Penny Lane>은 그야말로 우리들을 당혹스럽고 고통스럽게 하기에 충분하다. 흑인들은 목과 손과 발에 쇠사슬이 묶여 고통스러운 발걸음을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을 것이다. 쓰러져 죽기도하고 고통에 신음했을 것이다. 짐승처럼 끌려가면서 그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비틀즈의 흥겨운 노래 뒤에 이러한 흑인 노예들의 고통과 피와 절규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은 비극적인 사실이다. 대영제국의 영광과 비틀즈의 모던한 음악의 이면에는 이렇게 어두운 역사의 비극들이 그림자처럼 길게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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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8 04:05

생태주의와 관련하여

                                        생태주의와 관련하여


1.정치적 생태주의와 생태주의 정치

생태주의의 관점으로 볼 때 인간이 창조한 문명은 생태를 파괴하는 것이다. 인간의 평등과 해방을 부르짖는 사회주의도 그것이 간과하고 있는 여성, 식량, 환경 따위의 사각지대로 말미암아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두 말 할 것도 없다.

현재 인간 문명의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만약 인간의 욕망과 탐욕을 제지하지 못한다면 어쩌면 인류는 공멸의 위기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바로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에 생태주의가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솔직히 늦은 감이 있다. 2040년이 되면 북극의 얼음이 다 사라진다고도 하고 인간의 자원도 고갈의 위험에 처할지도 모른다. 이 위기 앞에서 이념 따위는 어쩌면 사치인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생태주의를 어떻게 인류에게 확산시키고 실천을 도모하는가가 당면한 문제다. 이와 관련하여 생태주의 정치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이상적인 정치행태라고 할 수 있다. 후쿠야마가 틀린 것은 생태주의 정치에 대한 통찰이 부족한 것이다. 완전한 민주주의로써 생태주의를 그는 몰랐다고 생각한다. 인간 중심의 민주주의는 인간을 포함한 생태계상의 민주주의로 확대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생태주의 정치 는 가능할까? 대답은 아니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 중심적인 역사는 그 해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느 인간도 그 해체의 주체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민주주의 정치를 넘어 생태주의 정치로 나아가는 실험을 하고 현실적으로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면 그는 역사의 성격을 바꾸어 놓은 최초의 인간이 될 것이다.

단지 이러한 노력이 가능하려면 정치적 생태주의를 지향하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그 나마 가능한 일이다. 생태주의자들이 정치로 진출하여 부분적으로 정책의 방향을 생태주의로 변화시키고, 개선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녹생당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제도 정치로의 진출이 아니더라도 그린피스등의 환경 단체들이 여론을 환기시키고 정치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 생태주의 정치는 소집단에서 실험될 수는 있겠으나 국가 단위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보며, 다만 정치적 생태주의가 어느 정도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본다.

이 세상에 인간의 행위가 정치적이 아닌 것은 없다. 아니 좀 더 좁혀서 국가 정책과 관련한 경우 그것은 당연히 정치적이란 이름을 띠게 된다. 농민의 쌀 수입 시위, 이를테면, 미국의 대량 생산된 유전자 변형 농산물에 대한 유기농 쌀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당연히 정치적인 생태주의라 부를 수 있다. 또한 생산주의와 인간중심주의 비순환적인 개발 등 근본적인 메커니즘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가장 효율적인 정치적 생태주의라 부를 만 하다.

그러나 ‘정치적‘ 이란 단어의 함의가 너무 협소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실적인 정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고 그 대립적인 존재로 위치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생산주의, 자연파괴등을 근거로 존립하고 있는 기존의 정치를 인정하는 것과 다름이 아닌 것이다.

또한 그러하면 굳이 정치적이란 단어로 생태주의를 수식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정치적‘ 이란 단어는 생태주의의 본질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따라서 여성주의, 종교, 문화, 생명과학, 공동체 등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생태주의를 발전시키고 강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주의 다양성의 원리에도 맞다.


2.정치적인 생태주의에서 ‘정치적‘ 이라는 용어의 함의가 다양성의 정치를 의미하는 것일까?


위에서도 이미 언급했지만 ’정치적‘이란 말의 함의는 기존 정치의 입장에서 본다면 다양성의 정치를 의미할 수는 있겠으나 그것은 기존 정치의 안티테제로 의해서며, 생태주의 그 자체의 입장에서 보면 다양성을 협소화시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종교적인 생태주의, 식량 생태주의, 문화생태주의, 생태여성주의 등 다양한 생태주의를 협소화할 위험이 있다고 본다.


3.생태주의적인 행동양식의 변화는 ‘정치적‘ 인 행위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

정치적 생태주의가 권력으로 환원되지 않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정치적 생태주의는 그 용어상에서 정치권력을 지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권력으로의 화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다. 그것은 단순히 권력에 대한 대안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에 대한 비판이나 대안제시를 목적으로 하기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A라는 권력을 쥐고 있는 인간이 B에게 아무런 조건도 없이 그 권력을 내놓지 않으려는 것과 같다. 정치적 생태주의는 생태주의 정치를 펼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생태주의 정치라는 용어 자체가 언어로만 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말이다. 아마도 리피에츠가 가장 이상적인 정치형태임에도 불구하고 생태주의 정치란 말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바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4.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


5.동양정신의 언급은 이분법이 아니라 생태주의로의 진정한 환원을 의미한다.

위대한 정신들은 (이건 참 잘못된 표현이었다.) 대체로 동양에서 존재했다. 예수도, 부처도, 공자도, 노자도, 간디도 그들이야 말로 진정한 생태주의자들이다. 희랍의 철학은 생태 사슬의 순환에서 인간을 독자적인 존재로 만들었고 이성과 합리성으로 자연을 개발의 대상으로 삼는 비순환적인 생산주의를 초래했다. 그리고 산업주의의 결과로 지속 불가능한 발전을 통해 인간은 풍요 속에서 동시에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금 서구가 위기의식을 느끼고 녹색 혁명을 부르짖고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인간의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그들의 생태주의 이론을 호들갑스럽게 받드는 지식인이 있다면 그것 또한 부끄러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스스로에게 눈을 돌려보아도 생태주의는 생활 속에 존재하고 있고 있다. 왜 가까운 곳을 두고 먼 곳에서 그토록 야단법석을 뜨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민주주의는 서구가 전해준 위대한 유산이다. 산업주의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제 민주주의와 산업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생태주의는 동양의 정신에서 찾았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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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6 02:28

비틀즈의 'Penny Lane' 과 흑인 노예 수송로(1)





비틀즈의 ‘Penny Lane’ 과 흑인 노예 수송로(1)

비틀즈(The Beatles)의 <Penny Lane>이라는 노래가 있다. 이 <Penny Lane>은 비틀즈의 멤버들이 태어난 도시 리버풀(Liverpool)의 어느 거리의 이름이다. Smithdown Road와 인접한 주변 지역을 일반적으로 Penny Lane 이라고 부른다. 위치상으로는 Penny Lane 이라는 말은 Allerton RoadSmithdown Road 그리고 그곳의 쇼핑지역 일대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The area that surrounds its junction with Smithdown Road is also commonly called Penny Lane. Locally the term "Penny Lane" was the name given to Allerton Road and Smithdown Road and its busy shopping area.)

<Penny Lane>은 그들이 어린 시절 생활하면서 보아왔던 노변의 정경과 인간들과 사물과 자연(하늘)을 노래하고 있다. 물론 당시에 유행하던 속어와 전후 현실의 기억도 포함하고 있다. 전쟁에 대한 기억은 없을 것이지만 폭격의 굉음과 사람들의 비명이 무의식의 내상을 잉태했을 것이다.

그들이 태어나던 때(존과 링고가 1940년생, 폴이 1942년생, 죠지가 1943년생)는 2차 대전이 한창인 시기로 독일군의 폭격기가 영국 본토를 매일같이 공습하던 시기(Liverpool Blitz)였다. 런던을 집중적으로 공습하였지만 항구 도시들도 공습의 대상이 되었고 그 중에 Merseyside 자치주의 도시들 중에 하나인 리버풀도 해당이 되었다.

2차 대전 동안 Merseyside 자치주에 가해진 80차례의 공습으로 2500명의 시민들이 사망하고, 자치주 지역에 있는 거의 반정도의 집들이 손상을 입었다(During World War II there were 80 air-raids on Merseyside, killing 2500 people and causing damage to almost half the homes in the metropolitan area.) 따라서 리버풀의 곳곳에는 대피소(shelters) 가 있었다.

비록 나이가 어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들의 무의식중에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었을 것이고 또한 전쟁의 비극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정감이 넘치고 인정 많은 이웃들이 등장하고 아름다운 푸른 교외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감상에 젖고 있지만 전쟁의 흔적 또한 지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노래속에 그 상흔들이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노래에 깃든 정서는 고향에 대한 긍정적인 회상이고 아름다운 추억이다. 이렇듯 <Penny Lane>은 그들의 귀와 눈에 자리하고 있는(Penny Lane is in my ears and in my eyes) 리버풀의 고향 마을에 대한 한 폭의 풍경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는 Penny Lane의 가사이다.

more..

                                        Penny Lane 뮤직동영상
 





매카트니(McCartney)에 따르면, 노래에 언급된 이발사는 비올레티(Bioletti) 씨로, 자신이 레논과 매카트니 죠지 해리슨이 어렸을 때 이발을 해주었다고 한다. 이빌소와 이발사의 기억은 고향의 추억에서 바질 수가 없는 것 같다.

노래에 등장하는 소방차(fire engine)Allerton Road를 따라 약간 걸어가면 나오는 Rose Lane 의 초입에 있는 소방서에 있었다. 소방차를 깨끗이 닦는 소방수의 모습과 깨끗한 소방차(hia clean machine) 가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그 소방서는 레논이 다녔던 Quarry Bank School에서 가까웠다.

모터카(a motorcar)
를 가진 은행원(a banker)은 Barclays Bank 의 Penny Lane 지점의 직원이었을 것이다.

A four of fish는 4페니 어치의 피쉬 앤 칩스(fourpennyworth of fish and chips)를 뜻하며, finger pie는 그 당시의 성적인 속어로, 흔한 만남의 장소로 이용되던 대피소(shelter)에서 10대들이 행하던 친밀한 애무를 뜻한다(The mysterious lyrics "Four of fish and finger pies" are British slang. "A four of fish" refers to , while "finger pie" is sexual slang of the time, apparently referring to intimate fondlings between teenagers in the , which was a familiar meeting place.).

그리고 로터리(a roundabout) 한 복판에 있는 대피소 뒤에서 귀여운 간호사(The pretty nurse)가 쟁반에 양귀비를 올려놓고 팔고 있었다. 이날은 11월 11일로 우리의 현충일에 해당하는 날로 양귀비꽃을 전사자들을 위한 헌화로 사용했기 때문에 Poppy Day라고도 불린다. (참고:Remembrance Day also known as Poppy Day, Armistice Day (the event it commemorates), or Veterans Day in the United States is a day to commemorate the sacrifices of members of the armed forces and of civilians in times of war, specifically since the First World War. It is observed on 11 November to recall the end of World War I on that date in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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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ny Lane(낙서가 된 푯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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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ny Lane sign은 언제나 수난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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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ber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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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anker'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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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ndabout shelter(현재는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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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ndabout shelter




그러나 실제로 노래를 위한 홍보용 영상은 Penny Lane에서 촬영되지는 않았다. 비틀즈는 리버풀로 여행하는 것을 꺼렸고 London에서 촬영을 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실이다. Penny Lane은 노래의 실제적인 배경이 되는 그들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왜 그들은 리버풀의 Penny Lane으로 가기를 원치 않았을까?  아마도 고향 Liverpool에 낙인처럼 찍혀있던 다른 이미지, 부정할 수도 지울 수도 없는 역사적인 사실 이 그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위의 글 증 가사와 인명, 지명을 제외한 모든 영문 및 사진들은 영문 위키피디아 사전(http://en.wikipedia.org/wiki/Main_Page)을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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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5 15:03

광복절에 바라는 것

광복절에 바라는 것
위선적인 이벤트나 쑈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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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쿠키뉴스



지금까지 광복절에 바라는 것은 없었다. 이번에 광복절에 바라는 것이 생겼다. 참 늦었다. 늦었지만 절실하다. 나라가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되면서 새롭게 시작하는 의지가 싹텄던 것처럼, 대한민국이 다시 새롭게 시작하기를 바란다.

이것은 다른 무엇으로부터가 아니라, 정치인들이 비양심과 부정과 부패와 위선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정치인들부터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정치인들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광복절이 되는 것이다. 국민들이 정치인들의 비양심과 부정과 부패와 위선으로부터 해방되는 진정한 광복절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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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세계일보



정치인들이 대사면의 주체가 아니라 국민들에게 대사면을 호소하는 객체가 되는 것이다. 국민들 앞에서 엎드려 용서와 뉘우침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다시는 타락하지 않겠노라고, 이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진정으로 양심을 회복하겠노라고, 위선적인 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겠노라고. 이것은 박태환의 금메달보다도 더욱 감격스러울 것이다. 어떤 드라마보다도 감동적일 것이다. 이 나라가 얼마나 아름다워 질 것인가! 이 대한민국이 얼마나 사랑스러워 질 것인가!

제발 광복절에 바란다. 정치인들이 참회의 눈물을 흘리기를. 이 바램이 허황된 상상이나 꿈만으로 그치지 않기를. 부질없는 짓이 아니기를. 작은 촛불의 바램이 끄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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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3 22:56

순두부 찌개 비빔면 & 덮밥

                       
순두부 찌개 비빔면 & 덮밥


제가 이런 음식을 만들고자 하는 의도는 아주 단순합니다. 반찬 없이 한 그릇으로 먹고 음식물 지꺼기를 없애자는 취지입니다. 이것은 음식 지꺼기가 없어 환경 보전에 도움이 되면서 간편하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음식들은 [한 그릇 음식]이란 코너 아래에 묶을 생각입니다.

한 그릇 음식 운동으로 확산되는 것이 저의 작은 꿈이기도 합니다.
한 그릇 음식이란 말은 우리 한정식의 그릇이 너무 많은 것에 대한 약간의 반발로 지어진 용어입니다.  한 그릇으로 간단하게 먹지만 엄마의 손 정성이 담겨있고 영양가도 있는 음식을 지향합니다. 여기에 실린 인스턴트 재료들은 편의상 사용한 것이며 실제 가정에서 직접 만들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순두부 찌개소스로 활용해서 순두부 찌개 비빔면순두부 찌개 덮밥 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찌개를 소스로 활용하여 다수의 그릇을 사용해야 하는 불편함을 없앴습니다.  찌개를 떠먹는 다는 제약에서 벗어나 순두부 양념찌개를 라면 사리나 밥 위에  곁들이는 비빔소스로 이용했습니다. 순두부찌개 비빔면과 더불어 다른 음식들도 구경해 보세요. 삼겹살 시리즈( 카레 삼겹살, 카레 양념 삼겹살 )와 카레 시리즈(카레 삼겹살, 카레 양념 삼겹살, 카레 토스트,카레 낙지볶음), 그리고 초밥시리즈(베이컨 초밥, 족발 초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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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부찌개 양념 1봉지, 파, 양파,ㅖ란,순두부,라면사리 1봉지, 밥, 김치(옵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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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두부를 넣고 잠시 뒤 파를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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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을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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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두부 찌개 비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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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두부 찌개 덮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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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두부 찌개 비빔면과 덮밥


시식후기

먹을 만한 맛이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시도는 찌개를 먹다가 사리를 넣어 먹는 것과 비슷합니다만, 주요리로 만든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면 위에 순두부 찌개를 올려 비벼 먹는 것 보다는 처음부터 순두부 찌개에 라면 사리를 넣고 순두부 찌개 라면을 만드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사리에 순두부 양념이 배여들면서 더욱 맛갈스럽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다음에는 순두부 찌개 라면을 만들어 봐야 겠습니다.  순두부 찌개 덮밥은 밥에 찌개를 올려 비벼 먹는 것과 다를 게 없지만 하나의 독립된 음식으로 만들어 진것에 의의를 부여할 수 있겠습니다.


검색후기

검색을 해보니  비슷한 음식으로 이미 순두부찌개 라면이 있었습니다.  비숫한 음식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거의 같았습니다. 시식 후기에서 이미 밝혔던 것 처럼 순두부 찌개 라면 이 오히려 좋을 것 같다고 했는데, 제 마음을 읽고 있었다는 듯이 순두부찌개 라면을 꽤 오래 전에 만들어 놓으셨네요.  

올림픽 선수들에게 만들어 드리고 싶네요. 괜찮을 것 같네요^^;;
대한민국 선수단 파이팅!!!

관련 사이트
jiwooangelos :http://blog.daum.net/jiwooangelos/4837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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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3 11:27

서태지, 그리고 블로그 광고





                        서태지, 그리고 블로그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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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블로그의 스킨을 변경하면서 배너, 위젯, 광고들을 다양하게 배치하였습니다. 팁들을 따라가면서 배너를 달고, 위젯을 설치하고, 광고를 배치하는 작업들이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이전의 밋밋했던 모습보다 다양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론 만족할 수준은 아닙니다. 계속 업그레이드를 해나가야겠죠.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것이 광고였습니다. 애드센스, 알라딘 TTB, 애드찜 등을 추가로 배치하면서 이게 좀 염치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괜찮은 블로그이길래 떡 줄사람 생각은 하지 않고 떡 받아먹을 것만 생각하는지 말입니다. 과연 광고를 유치할 만큼 괜찮은 포스팅을 하고 있는가 말입니다. 제가 숱하게 보아왔던 프로페셔널한(?) 블로그의 질이나 정성에 미칠 수 있는가 생각하니 커다란 의문부호가 떡 블로그 가운데에 찍히더군요! 이것도 위젯이라면 위젯이랄 수 있을까요?

2005년인가 2006년쯤에  블로그를 만들어 놓고 얼마간 포스팅을 하다 중단하고 올해 다시 웹2.0을 접하면서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올해 초 올블로그와 블로그코리아 등 매타블로그를 접하면서 너무나  놀라운 블로그의 세계에 신기하고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이런 걸 모르고 있던, 좋게 말해서, 저의 둔감함이 아쉽기만 하더군요. 나쁘게 말하자면 시대에 뒤진다고 할까요.

아무튼 이 블로그의 세계에 환상에 가까울 정도로 감탄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특히 놀라웠던 것은 블로그의 광고 수익이었습니다. 가끔씩 블로그를 접하는 경우에 애드 센스같은 배너가 달려있는 경우를 보면서도 개인블로그의 수익용 광고가 아니라 사이트가 획일적으로 제공하거나 유명세를 탄 블로그가 갖은 어떤 혜택같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나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지요. 웹2.0도 블로그 광고도 모르던 때였으니까요. 뭐 그렇게 먼 과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여하튼 너무나도 둔감했던 탓입니다. 시간이 꽤 흐른 후에 블로그 광고니 전업 블로거니 블로그 광고 수입이니 하는 말을 듣게 되면서 놀랐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솔직히 저는 블로그의 의미나 역할과 함께 그 광고 모델에도 아주 큰 관심이 있었습니다. 아니 관심이라기 보다는 신기함이나 경이로움이라고 하는 것이 났겠습니다. 블로그가 수익을 가져온다는 사실은 상상조차 못했거든요. 블로그를 만든 목적 자체가 소통이나 정보의 제공이나 기존 언론 매체에 대한 비판도 한 몫을 했지만, 무엇보다도 블로그 광고 수익도 그 일차적인 동기였다고 하는 편이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물론 저의 그런 의도와는 달리 표면적으로는 좀 더 고상한 블로그를 지향한다고 했지만 의도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익명의 인터넷 공간에서는 그런 고약한 가장이 가능했습니다. 제가 상업적인 의도를 아무리 드러낸다고 해도 비상업적인 의도로 보아주는 이들이 있을 것이고 제가 아무리 상업적인 의도를 교묘하게 가린다고 해도 그 반대의 경우 또한 발생할 테니까 말입니다.

이미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배너 클릭 광고 수익은 관심이라는 표현보다는 놀람이나 경이로움에 가깝습니다. 아무튼 광고 모델을 통한 상업적인 의도는 제 블로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광고배너들이 그것을 증거합니다. 그렇다고 광고 배너를 배치하는 이상으로 블로그를 상업적으로 활용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하지도 못했습니다. 오프라인 상에서도 먹고 살기 바빴으니까요. 또 실제로 의도와는 다르게 이익이 발생하지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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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아무도 제 블로그의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파산이 되겠지요. 물론 제 의도의 파산일 뿐이지만 말입니다(만약 전업 블로거라면 실제적인 파산이 되겠지만). 의도야 언제든지 파산될 수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블로그 가게 그만두고 시골에 묻혀 살 수도 있는 일이고 다른 방식으로 얼마든지 삶을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떠한 종류의 경제적인 활동은 해야 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전업 블로거들이 존경스러운 것은 바로 이러한 제 처지를 초월해 있기 때문이라고 할까요.

제게 남은 과제는 열심히 포스팅하는 것입니다. 연예계나 스포츠계에서 형성된 광고료가 수억, 수십씩 터무니없이 치솟고 있지만 블로그 광고 배너의 클릭당 광고액은 참으로 민망스러울 정도입니다.

예가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음악과는 관계없이) 서태지라는 한 인간과 귀국 공연과 앨범 발행에 관련된 광고액은 엄청나리라 짐작합니다. 이러한 음악 외적인 면에서, 제 개인적으로는 서태지에 대해서 아주 비판적이고 부정적으로 봅니다. 상업주의의 광고가 일반인의 삶과는 유리된 허황된 현상이라 보고있습니다.

서태지와 광고주는 마치 좀비가 된 우리들의 머리 위를 유영하면서 돈을 낚아채는 것 같습니다. 클릭 같은 건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서태지는 유유하게 미국으로 사라지겠지요. 이것이야 말로 어느 대출 광고의 문안처럼 전형적인 'cash and ruch' 라는 말에 적합합나디. 돈 뿌려주는 사람 따로 있고 돈 갖고 튀는 놈 따로있는 비정한 상업주의의 세계 말입니다. 서태지가 문화 대통령이라고 하는데 저는 돈 먹고 튀는 데도 비상한 재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납득하지 못합니다. 서태지는 한국을 떠나있었고 그가 우리 사회에 공헌 한 바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서태지의 음악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비판이니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매니아들께서는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아무튼 이러한 광고와는 달리 열심히 포스팅한 글에 대해 한두 번 정도의 클릭은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당연히 그 정도의 혜택은 누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서태지에게 열광하는 매니아들의 후한 인심과 그를 중심으로 형성된 상업주의 광고의 규모에 비하면, 저는 타 블로거들에게 너무나도 인색했던 것 같습니다. 제 광고 배너에 대해서는 이미 체념하고 있지만, 타 블로거들의 포스팅 작업이라는 노동의 댓가에 대해 적당한 배너 클릭을 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자기 위안이기도 합니다. (*)


이미지 출처: http://kr.blog.yahoo.com/sur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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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3 00:02

일연의 자취를 찾아서






일연의 자취를 찾아서


이 글은 일연의 사상이나 삶 또는 삼국유사에 관한 글이 아닙니다. 일연의 삶과 관련이 있긴 하나 일연의 발자취가 서려있는 유서 서린 사적들을 둘러보려는 피상적인 글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직접 기행하면서 일연의 삶의 향기를 직접 맡고 사진에 담을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이 글은 이 글 자체로던 다른 지면(이 블로그의)을 통해 지속적으로 확장될 것입니다. 물론 여행기에 불과하겠지만 말입니다. 일연이나 삼국유사에 대한 내용을 보기 위해서라면 이 글은 참조할 만한 글이 아님을 미리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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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를 쓴 일연은 1206년에 1289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1206년칭기즈 칸이 몽고를 통일한 해로써 몽고의 침입은 실제로 일연의 삶에 있어서 떼어 놓을 수 없을 만큼 깊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삼국유사』를 집필한 동기 자체도 기실 몽고의 고려 침략 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연이 『삼국유사』를 쓴 목적은 무엇이며, 그 의도는 어디에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삼국유사』「기이」편의 맨 처음에 있는 ‘서왈(敍曰)’에 명쾌하게 나타나는데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자주 의식의 소산이다. 일연은 그당시 고려 전기의 지식인들이 주도하는 사회가 지나친 사대주의로 일관해 중국 문화의 주변 혹은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의식을 비판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고려가 떠받들던 중국 송나라가 망하고 중국인들이 그토록 무시하던 몽골족이 새롭게 원나라를 세운 사실은 거대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사실상 일연의 삶은 몽골의 침략에 따른 내정 간섭과 상당히 관련된다. 그러나 일연은 『삼국유사』를 통해 민족 자주적 입장에 서서 우리나라가 중국에 버금갈 만한 유구한 역사 민족임을 드러내려 하였다.“ (삼국유사, p.12. 일연지음, 김원중 옮김, 을유문화사)

이제 일연의 발자취가 서려있는 사적들을 돌아봅시다. 일연이 태어난 곳은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으로 당시에는 압량이라 불렸습니다. 일연이 태어날 때 그의 어머니는 밝은 해가 집으로 들어와 사흘 동안 배를 비추는 태몽을 꾸었다고 합니다. 일연의 성은 김씨였고 이름은 견명이었습니다.

아버지를 일직 여윈 일연은 9살 되던 1214년에 어머니와 함께 압량(지금의 경산)에서 전라도 광주 무량사로 갔습니다. 무량사로 간 이유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일연의 행장을 기록한 비문에 무량사에 취학(就學)했다는 구절이 있고 또한 승려가 된 것은 14살 때이기 때문에 승려가 되기 위해 무량사를 찾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14살이 되던 해인 1219년에 무량사를 떠나 설악산 자락에 있는 강원도 양양의 진전사 에서 구족계를 받고 승려가 되었습니다.

진전사는 당나라에 유학했던 도의선사가 선종을 전파하기 위해 세웠는데(821년) 당시 신라의 지도층에서 교종만을 인정하는 있던 터라 경주가 아니라 설악산 자락에 세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선종은 도의선사의 제자 염거화상을 거쳐 보조선사 체징(804-880년)에 이르러 신라 지배층의 인정을 받게 되는데 이후 신라에는 산을 중심으로 9개의 선종 분파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를 구산선문(九山禪門)또는 구산문(九山門)이라고 합니다. 보조선사가 세운 가지산의 보림사 는 구산선문의 하나인 가지산문의 본산입니다.

일연이 광주 무량사에서 강원도 양양의 진전사까지 가서 구족계를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광주 무량사 근처에 가지산문의 본산인 장흥 보림사가 있어서 가지산문의 정신적인 지주인 진전사를 선택했다고 보여 집니다. 진전사에서 구족계를 받고 승려가 된 일연은 가시산문의 승려가 되어 시간을 거슬러 도의선사에게로 이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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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http://www.seelotus.com/gojeon



일연이 스물 살이 되던 해에 승려들의 과거시험인 선불장을 치룹니다. 선불장은 교종과 선종으로 나뉘어 치러졌는데 선종은 개성의 광명사에서 치러졌습니다. 일연은 선불장에서 1등으로 합격하는 영예를 누립니다. 불교를 숭상하던 고려 사회에서 이것은 대단한 명예이기도 합니다.

선불장에서 합격한 후 일연은 경상북도 달성의 비슬산(당시에는 포산)으로 향합니다. 비슬산은 일연의 고향인 압량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습니다. 승려가 되어 속세를 떠난 일연이 고향은 찾지 못하고 근처의 비슬산을 찾지 않았을까 추측됩니다. 일연은 비슬산에서 30년 가까운 세월을 보냅니다. 비문의 기록에 따르면 비슬산 보당암에 거처를 잡았으나 여기저기를 옮겨 다녔다고 전해집니다. 이것은 몽고의 침략과 연관이 있습니다. 몽고의 침략은 1230년에 이후부터 본격화되는데 경주의 황룡사 구층목탑이 불타 사라진 것도 바로 이 시기입니다.

일연은 몽고군을 피하기 위해 문수보살에게 지혜를 구합니다. 기도가 통했던지 문수보살이 벽 사이에서 나타나 일연이 가야 할 곳이 무주(無住)라고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일연은 무주가 어디인지 몰랐으나 다음해 여름에야 비로소 묘문암의 북쪽에 있는 절이 무주라는 것을 기억해 냈습니다. 일연은 바로 묘문암으로 거처를 옮깁니다. 이 묘문암에서 일연은 깨달음을 얻습니다. 1236년의 일입니다. 그리고 선사가 되어 비슬산을 내려옵니다.

일연은 비슬산에서 내려와 경남 남해의 정림사 주지가 됩니다. 정림사는 장안이 자신의 집을 절로 만든 곳입니다. 비슬산을 내려와 일연이 정림사 주지가 된 것은 팔만대장경 간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정안은 몽고에 의해 불타버린 황룡사 구층목탑부인사의 대장경을 보면서 팔만대장경 간행을 통해 민심을 모으고 불교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려고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팔만대장경은 강화도에 있는 대장도감선원사에서 간행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팔만대장경이 대장도감이 아닌 분사도감에서 간행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분사도감 가운데 그 이름이 전해지는 곳은 남해뿐이라고 합니다. 이 남해에 바로 정안이 세운 정림사가 있었던 것입니다. 또 그 정암사의 주지가 바로 일연이었습니다. 일연은 1256년 정림사를 떠나 길상암으로 거처를 옮깁니다.

1261년에 일연은 왕의 부름을 받고 강화도로 갑니다. 무신정권이 무너지면서 원종은 불교계를 쇄신하면서 일연을 강화도로 불렀던 것입니다. 이때 일연은 대선사였습니다. 강화도에서 일연의 행적은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단지 강화도에서 일연은 여러 차례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일연은 3년 후에 강화도를 떠나 포항 부근의 오어사 (吾魚寺)의 주지가 됩니다. 1264년 일연은 경북 청도에 있는 인흥사로 갑니다. 이 인흥사는 이전에 일연이 머물던 비슬산에 있는 절로 일연의 감회가 남달랐을 것입니다. 비슬산에 머무는 동안 1268년 운해사에서 팔만대장경 간행을 축하하는 대장낙성회에 참석합니다. 1274년 충렬왕이 왕위에 오르고 인흥사에 사액을 내립니다. 인흥사에서 일연이 한 가장 큰 일은 『역대연표』를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이 『역대연표』의 일부가 현재 합천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1277년 일연은 왕의 명령으로 인근에 있는 운문사로 옮깁니다. 이때 일연의 나이가 고희가 지난 72살입니다.

1281년 일본 원정을 위해 출항하는 몽고와 고려의 연합군과 함께 경주에 머물던 충렬왕은 일연을 경주의 행재소로 일연을 불러 개경으로 함께 가자고 합니다. 일연은 왕명을 거역하지 못하고 개경으로 올라가 광명사에 머뭅니다. 그리고 국사에 책봉됩니다. 일연의 나이 78살 때입니다.

그러나 일연은 70년을 떠나있던 늙은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충렬왕으로부터 떠납니다. 이때 일연의 어머니의 나이는 95세였습니다. 일연이 광명사를 떠나 거처로 정한 곳은 운문사라고 추측됩니다. 비문에 기록되어 있는 구산(舊山)은 일연이 떠났던 안흥사가 있는 비슬산이라 짐작되기 때문입니다. 이듬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른 뒤 일연은 운문사를 떠나 인근의 인각사로 갑니다. 이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완성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언제부터 삼국유사를 시작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인각사에서 완성한 것은 분명하다고 합니다.

1289년 84세가 되던 해에 일연은 다시 인각사를 떠납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멀고 도 먼 입적의 길입니다. 그 해 7월 7일 칠석날입니다.

“『삼국유사』 에는 일연의 긴 발자취가 담겨 있다. 최남선은 일연의 『삼국유사』집필을 ‘일한사(一閒事)’라고 하였다. 하지만 『삼국유사』는 일연이 늘그막의 한가로움을 이기기 위해 쓴 책이 아니다. 일연은 삶의 황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삼국유사』를 마무리했다. 어쩌면 당시의 사람들은 『삼국유사』의 저술을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일연의 비에 『삼국유사』가 빠져있는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시간이 흐를수록 『삼국유사』의 가치는 커졌다. 만약 『삼국유사』가 전해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고대 세계로 가는 거대한 문 앞에서 막막한 표정을 짓고 있어야 했을 테니까. 『삼국유사』는 고대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다.“(우리 고대로 가는 길, p.50. 이경덕, 아이세움)

참고도서: 1.삼국유사,일연,김원중 옮김
              2.우리 고대로 가는 길, 이경덕, 아이세움
                [이 글은 전적으로 책 2의 내용과 흐름에 의존하였음을 밝힙니다]

인터넷 검색 과정에서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서울디지털 대학교 김대식 교수가 49회에 걸쳐 『현장에서 읽는 삼국유사』를 연재하시고 재개를 약속하면서 잠시 중단하고 있는 것을 알 수있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전문적인 답사 기행이 아니라 단순한 큰 인물 일연의 삶의 체취가 베여있는 유적지들을 가볍게 둘러 보고 일연의 삶의 향을 맛고자 생각하고 있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위의 글은 일종의 여행의 순서도유적지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많은 전문적인 기행기가 답사가 있어 공유할 수 있는 가치는 그다지 없으리라고 봅니다. 김대식 교수의 『현장에서 읽는 삼국유사』를 읽지는 않았지만 정독의 가치가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듭니다. 아래 글은 김대식 교수의 연재를 마치면서 쓴 글입니다.

  * 연재를 마치며
 
  나는 지난 10년 여 동안 혼자서 『삼국유사』를 읽고 그 현장을 찾아보는 일종의 순례를 해오면서, 말하자면 순례기를 써 왔다. 지난 3년 동안 이곳 <프레시안>을 통해서 발표된 것은 그 순례기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중간 점검 삼아 그 순례를 잠시 쉬면서 순례기 또한 잠시 쉬고자 한다.
 
  『삼국유사』에 관해서는 새삼스럽게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 책 한 권이 "조선 상대를 혼자 담당하는 문헌"이라든가, "문학적 상상력과 영감(靈感)의 원천"이라든가 하는 선학들의 평가가 있고 보면 『삼국유사』는 참으로, 차근차근 음미하며 두고두고 캐내어야 할 보배로운 고전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니 나로서는 『삼국유사』를 읽는다든가, 그 현장을 찾는 일은 그만둘 수 없는, 일상의 작업이 되어 있다.
 
  언제 어디서가 될지 모르겠지만, 머지않아 다시 『삼국유사』의 현장에 대한 순례가 재개될 것이다. 그때 다시 뵙게 되기를 희망한다. 지금까지 『현장에서 읽는 삼국유사』를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김대식/서울디지털대 교수 (inkyu@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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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1 17:56

[꽁트] 신문팔이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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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팔이 소년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를 떠올린 것은 녀석의 몰골과 그러한 몰골을 가능케 해주는 추운 날씨와 간간이 날리는 눈발과 약간의 취기(醉氣)때문이었다.

‘아마 성냥팔이 소녀도 저러했겠지.’

녀석은 신문 꾸러미를 옆구리에 끼고 벤치 위에 앉아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았고 간혹 지나가는 사람들도 무관심하게 녀석의 옆을 총총 걸음으로 지나쳐가기만 했다. 성냥팔이 소녀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녀석에게 액수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지폐 두 장과 함께 가지고 있던 라이터를 녀석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 라이터는 어쩌다 한 번 갔던 단란주점에서 받은 것으로 겉에 상호와 전화번호가 큼직하게 새겨져있었다. 그땐 그런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성냥팔이 소녀처럼 불이라도 피워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손에 쥐어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라이터를 녀석에게 준 것은 실수였다. 혹 불장난이 큰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해, 사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그 라이터의 뒷면에는 여자의 적나라한 나체가 그려져 있었기에 라이터를 열 서너 살 안팎의 그 철없는 소년에게 쥐어주고 나서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모른다.

다음날 나는 라이터 때문에 무척이나 걱정을 했다. 어떤 면에서는 나의 생활의 무절제(?)함의 때가 묻어있는 라이터를 그 순수한 아이의 손에 쥐어준 것이 내내 마음이 걸렸고 더해, 성냥팔이 소녀의 죽음이 자꾸만 불길한 생각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었다.

“성냥불이 다되어 동사한 소녀처럼 녀석도 라이터 불을 피워놓고 잠이 들어 얼어 죽거나 불이 신문이나 옷에 붙어......”

나의 불길한 상상은 그렇게 이어지면서 차마 끝말을 잇지 못한 기억이 났다. 일요일이었기에 나는 윗도리를 걸쳐 입고 전날의 그곳으로 가야만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을 느끼고 거리로 달려 나갔다. 그곳 벤치에는 녀석의 흔적조차 없었다. 나는 벤치 위에 검은 재의 흔적이 있는지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기도 했다. 라이터만이라도 어딘가에 떨어져있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실망스럽게 돌아서려다 벤치아래 돌멩이 틈 사이에서 바람에 나풀거리는 검게 탄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순간 녀석이 무언가를 태웠다고 생각하고 벤치 아래로 고개를 쑥 내밀고 보니 의외로 타다 남은 복권 조각이었다. 복권 위에 가능성을 품고 있던 숫자란 숫자들은 모조리 타 알아 볼 수가 없었다.

내가 그렇게 다 타버린 복권을 들고 인도 위를 서성거리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나를 힐긋힐긋 보기도 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좀체 복권을 태운 녀석의 심리상태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장난삼아 복권을 태웠단 말인가? 거액의 당첨금을 가져다주지 못한 얄미운 복권을 증오로 가득 찬 손길로 태웠단 말인가? 자신의 처지를 극복하고자 일확천금을 꿈꾸는 소년. 소년은 평소 손으로 찢어버렸을 복권을 라이터로 체념과 분노가 동시에 밀려오는 혼란스런 심정으로 태웠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소년과 복권과 라이터가 좀 더 명확해 지는 듯도 했다. 나는 성냥팔이 소녀의 이미지를 몰고 왔던 그 신문팔이 소년의 허황된 믿음과 발버둥이 못내 안타까웠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아침 준비를 했다. 직장 근처의 연립아파트였다. 30대 초반인 나를 결혼의 유혹에 빠트리는 것은 언제나 밀려드는 가사노동이었다.

“독신으로 남겠다고......빨리 장가나 갈까.”

나는 세탁기나 냉장고, 진공청소기 보다는 여자 한사람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여자들이 들으면 맞아죽을 소리겠지만). 총각 행세야 단란주점이 좋았지만 가사노동이 버티고 있는 현실에서는 총각의 꼬리를 떼고 싶었다.

나는 TV를 켜고 창문을 활짝 열고 실내를 환기 시켰다.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마다 비명을 지르며 외쳐대던 퀴퀴하고 느끼한 그 노총각 냄새를 약화시키기 위함이었다. 창문으로 실내와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겨울의 찬 기운이 들어와 무언가 새로운 각오를 용솟음치게 했다.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특히 복권 추첨이 있는 일요일 오전에는 더욱 그러했다.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소파에 앉아 복권 추첨을 조용히 시청했다. 복이 들어오려면 창문은 활짝 열려있어야만 했다.

나는 전날 밤에 구입한 복권을 소파 옆 옷걸이에 걸려있던 바지 주머니에서 꺼내었다. 그런데 내가 분명 3장을 구입한 복권이 두 장밖에 없었다. 전 날 밤 확인하지 않고 소년에게 주었던 지폐 두 장에 한 장의 복권이 끼어있었던 것이다.

복권 추첨이 끝나고 나는 나의 가장 큰 실수는 그 복권을 녀석에게 준 것이란 걸 알았던 것이다. 나는 녀석에게 엄청난 돈을 보시했던 것이다. 무려 오억이나. 내가 가지고 있던 복권 두 장 모두 1등 번호를 가운데 두고 있는 번호들이었기 때문이었다(그 복권들은 1등 하나만 당첨되는 복권이었기 때문에 나의 충격은 말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때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렸다. 아니 나는 완전히 미쳐버렸다.

“억, 억, 억, 재로 변해버렸어, 재로!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그 녀석은 또 무슨 짓을 한 거지? 제기럴.”

나는 온갖 욕과 저주를 녀석에게 퍼부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도, 일어날 수도 없는 대사건이었다. 도대체 5억원을 태워버린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이제 과거가 되어버린 그 일을 이렇게 완곡과 완곡을 거듭하며 무덤덤히 표현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열려진 창문 밖으로 획하고 자신을 던져버리고 싶을 정도로 나 자신이 저주스럽고 증오스러웠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무엇이던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면서도 나는 여전히 오랜 동안을 악몽 속에 시달려야만했다. 나는 거의 1년 동안을 5억을 되새기며 살았고 엄청난 스트레스와 신경증으로 신경과를 찾기도 했다. 재로 변한 5억은 두고두고 나의 가슴에 한으로 맺힐 것 같았다.

이제 20년이 지난 지금, 녀석을 찾은 지금, 불로소득인 5억은 내게 무의미하다는 것을 녀석의 삶은 교훈으로 전해주었다. 그 5억짜리의 복권은 재(灾)가 되었지만 노골적인 여자의 나신이 새겨져있던 라이터는 녀석의 삶에 엄청난 재(財)를 가져다주었던 것이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 밤에 녀석은 손을 녹이기 위해 돈이 아닌 그 복권을 근처에서 주워 모은 나무가지들과 함께 태웠고, 잠깐 신문에서 본 한 벤처기업가의 성공 기사를 보면서 성공의 의지를 불태웠던 것이다. 그렇게 타다 바람에 날려 버려진 복권 조각이었던 것이다.

그때 불태운 복권은 재(灾)로 사라졌지만 불태운 성공의 의지는 비록 신산(辛酸)하기는 했지만 20년 동안 녀석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그 라이터에 새겨져있던 여자의 나신(裸身)은 녀석의 성적인 타락이나 유혹보다는 도덕적 무장을 촉발한 특이한 정신적 효과를 가져왔던 것은 차라리 이상할 정도였다.

20년이 지난 지금 녀석이 나를 찾은 것은 내게 외관상 라이터를 돌려주기 위함이었지만 라이터가 자신에게 가져다준 의미를 고마움으로 표시하고 싶었던 것이다(그러나 사실 나는 부끄러웠다).

나를 찾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엄청난 재력가가 되어버린 녀석은 반복해서 언론매체를 이용했고 나 또한 그 엄청난 복권 소각(?)에 얽힌 그 녀석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라도 꼭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라이터는 아주 특색 있는 것이었고 라이터를 주고받던 상황이 우리 둘에겐 어떤 극적인 장면으로 남아있었기에 서로의 만남은 어렵지가 않았던 것이다.

"......전 그 라이터를 보면서 여자와 단란주점을 멀리하였습니다. 단란주점에 여러번 전화를 해서 누나들 좀 놓아주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도덕적 타락은 저의 성공의 의지를 약화시키는 가장 큰 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제 성공의 의미가 물질적인 것에 한정되지 않는 도덕적이고 사회지향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된 것입니다. 저는 그 작은 라이터에서 부의 사회적 환원이란 거대한 교훈을 얻었던 것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저의 아버지가 되어 주십시오."

그때 나는 복권 소각 사건을 이야기하려다 그만 두었다. 우리들의 이런 따뜻한 인간관계는 그 라이터의 교훈과 복권의 재(灾)가 있었기에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결코 나약한 신문팔이 소년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미지출처: blog.empas.com/jeongsg21/17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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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0 21:51

[베이징 올림픽] 최민호 선수의 눈물



                       최민호 선수의 눈물



최민호 선수
유도 남자 60 kg 급 금메달 획득(2008.8.9)
 

동영상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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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http://blog.daum.net/dudnjs5842/6330715?nil_profile=tot&srchid=IIMZ0uAz00






최민호 선수 정말 장합니다. 5경기 모두를 한판으로 물리치며 당당히 금메달을 딴 그 모습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릅니다. 금메달을 따고 매트에 엎드려 눈물을 짓는 모습은 최민호 선수에게 뿐만 아니라 최민호 선수를 지켜보는 우리 국민들에게 금메달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짐작하기에 남도록 만들었습니다.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준비 과정동안 유보했던 자신의 삶도 떠올랐고, 그 기간 동안 일어났던 모든 슬픔과 고통과 어려움들이 스쳐 지나갔을 것입니다. 그러한 감정을 우리 국민이 함께 공유하는 것은 어떤 소설보다도 감동적인 한편의 드라마 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약간 아쉬운 것은 금메달을 딴다는 것은 동시에 즐겁고 기쁘고 행복한 순간인 것입니다.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얻어낸 기쁨의 결정체인 것입니다. 이럴 때 눈물과 함께 환한 미소를 보여주었드라면, 패자에게 먼저  위로의 악수와 포옹을 전해주었더라면, 태극기를 펄럭이며 관중들에게 기쁨의 모습을 보여주었더라면, 덩실 덩실 춤이라도 춰 주었더라면, 눈물 속에 스며있는 고통과 슬픔들이 감격과 함께 더 큰 기쁨과 행복감을 얻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괜한 딴지를 걸려는 것도, 또한 감동과 감격을  지우려는 것도 아닙니다. 다소 과장된 감정이겠지만, 단지 한의 민족이라는 자위의 언어, 핍박과 억압의 한 맺힌 민족이라는 위축의 언어를 이제는 지웠으면 하는 바랍입니다.
 
최민호 선수가 너무나도 자랑스럽습니다. 최민호 선수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의 축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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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0 03:45

다시 비틀즈를 추억하며








                           다시 비틀즈를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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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http://coolmristuff.wordpress

최근에 John Lennon Confidential 다큐 영화가 상연되고 호평 여론을 접하면서 개인적으로 비틀즈(The Beatles)의 음악과 함께 했던 지나간 시간들이 새록새록 기억을 되새김질 하고 있다. 그들의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 참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고 그들의 음악이 아니었다면 삶이 조금은 우울했었을 시절이 있었다. 다른 어떤 것을 통해서도 그런 행복이나 위안을 받지는 못했다. 그 시절 비틀즈라는 이름과 그들의 음악들이 가슴 속에 너무나도 강하게 각인되어서 오히려 음악적인 편식을 앓게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1980년 12월 8일 존 레논(John Lennon)은 자신이 살고 있던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광적인 팬이 쏜 총탄에 맞고 사망했다. <Woman>의 레코딩을 끝내고 오노 요코와 함께 아파트에 막 도착하고 서였다. John Lennon은 뉴욕이 위험한 곳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John Lennon이 뉴욕을 떠나지 않은 것은 실수였다. 1980년 그가 죽었을 때 뉴스위크지, 타임지에 표지 인물로 실린 레논의 모습은 아직도 인상적이다. 눈물을 참지 못했다. 바로 전 해에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 되었을 때도 울지 않았던 나였다. 존 레논의 죽음은 나의 행복과 위안을 앗아갔기에 나는 슬펐고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런 상실감을 무엇으로 메워 갔는지는 기억나지가 않는다. 아마도 다른 무엇이기는 했을 테다. 아니면 그런 상실감 자체가 무엇이었거나.


혹 그들의 사진들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테입이나 앨범들은? 나는 비틀즈의 사진 한 장을 구하기 위해 내가 살고 있던 도시의 레코드점들과 헌책방과 백화점을 헤매고 다녔다. 그들의 사진 한 장을 발견하면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했다. 그 때 그들의 사진 한 장의 의미를 무엇으로 비교할 수 있을까? 내 삶 속에 그들은 또 무엇으로 비교할 수 있을까?


그리고 메카트니의 아내 린다가 1998년 자궁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어 죠지 해리슨(George Harrison)이 2001년 페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이 비극적인 사실들을 다 공교롭게도 라디오를 통해 알았다. 그들이 해체되고 멤버들과 가족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비틀즈는 점점 나로부터 멀어져 갔다. 아니 멀어져 갔다기 보다는 나의 일상이 비틀즈의 기억들을 조금씩 마모시켜 갔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시간은 망각을 부르는 마법사가 아닌가. 가끔씩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망각을 헤집고 나오곤 했다. 나는 그들의 공개 콘서트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나는 그들 중에 누군가를 단 한 번도 직접 본적도 없다. 오직 그들의 음악뿐이었다. 어쩌면 나는 불행한 비틀즈의 팬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레논도 해리슨도 영영 볼 수조차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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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http://kr.news.yahoo.com/servi


조지 해리슨은 내게는 너무나도 각별한 존재였다. 내게 조지 해리슨은 비틀즈의 멤버들 중에서 가장 우수에 차고 우울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지 해리슨은 내게 약간은 이율배반적인 존재이기도 했다. <Something>,<While my guitar gently weeps>은 (가사와 관계없이) 슬프게 들었지만, 한편으로 그의 <Here comes the sun>은 언제나 희망을 불러 넣어주었기 때문이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존 레논이야말로 가장 슬픈 존재였다. 그의 음악은 언제나 일관되게 우울하고 무거웠으며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존 레논의 <Strawberry field forever><Julia> 속에는 어린 시절의 불행했던 기억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존레논의 노래에는 자신이 들어가지 못해 발버둥치는 듯한 격정이 녹아든 꿈과 환상이 있다. 그가 역시나 우울하고 심각하게 보이는 오코 요코와 만난 것도 예술가적 정서를 공유하는 운명적인 동지애였을 것이다. 존레논은 죽기 바로 직전 <Woman>이란 노래를 남기고 죽었다. 그와 동지애로 함께 헌신한 오노 요코를 위한 헌사가 아닐까 한다. 존 레논이 1970년대 평화 반전 운동을 할 당시 오노 요코는 바로 아내이자 동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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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http://www.slashgear.com/rumor


판단컨대 이렇게 무겁고 진지했던 존 레논과 낙천적이었던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가 비틀즈를 이끌어 갔기에 불멸하고 위대한 음악들이 탄생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그들을 비틀즈로 영원히 묶지 못했던 것 또한 그 둘의 상반된 개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음악에서는 조화를 가져왔지만 삶에서는 불화를 초래해 버린 아이러니가 아닐까? 시간은 죽음을 잉태하고 그 죽음을 아무도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언제나 내게 젊음의 우상이었던 비틀즈의 멤버들은 기억속에서 조차 가물거린다. 레논과 해리슨의 영혼은 광할은 우주를 가로질러 떠돌고 있을 것이다. 세상에 살아 남아있는 폴 메카트니(Paul McCartney)와 링고 스타(Ringo Starr)도 세월과 함께 늙어간다. 그러나 그들의 음악만큼은 영원히 젊음의 광채를 발하며 내 가슴 속에 살아있을 것이다.(*)

비틀즈 관련 사이트:http://www.thebeatl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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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9 03:01

신 벌거벗은 임금님(2)




신 벌거벗은 임금님(2)

누드우스, 그리고 로라 리웬스키의 음모




“음식이 권력을 뒤엎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또 음식이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이 되는 이 현실 앞에서 그저 먹고만 있자니 가슴이 아프다.”

― 어느 무기력한 귀족의 넋두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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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임금님인 누드우스 임금님은 소의 통 바비큐를 참 좋아했다. 소의 통 바비큐는 소를 통째로 구운 바비큐로써, 줄여서 소통바비큐라고 불렸다. 특히 몬타넬로산 소통바비큐를 제일 좋아했다.


몬타넬로는 수도 조덴스덴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인구 15만의 소도시로써 해발 1500m의 에스틸뇨 산이 중앙을 차지하고 이 산을 중심으로 해서 사방으로 넓은 초원지대가 펼쳐져있다. 이 초원에 15만의 인구보다도 더 많은 30만 마리의 소와 15만 마리의 양들이 방목되고 있으나 또한 737만 마리의 쥐들이 서식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쥐들이 서식하는 이유는 몬타넬로가 왕국의 그 어느 곳보다도 인공적인 것이 하나도 없는 원형의 자연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박멸도구와 쥐약을 피해 전국의 쥐들이 몰려들어와 서식하게 된 것이다.


벌거벗은 임금님 누드우스 왕은 몬타넬로산 소통바비큐를 일주일에 4일, 그러니까 월, 수, 토, 일요일마다 보르도산 포도주와 함께 먹기를 즐겼는데 언제나 축제에 가까운 만찬을 베풀었다. 누드우스 왕은 왕궁의 정원에서 몬타넬로산 소통 바비큐를 즐기며 벌거벗은 몸으로 돌아다녔다.


하지만 몬타넬로 산 소고기를 백성들은 결코 맞볼 수가 없었다. 가격이 엄청 비쌀 뿐만 아니라 국가에서 귀족용 가축으로 제한하면서 일반 시중의 유통을 철저하게 막았기 때문이었다. 소고기뿐만이 아니었다. 소의 각종 내장과 유제품과 양털 또한 마찬가지였다.


백성들이 소통 바비큐를 먹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목숨을 무릎 쓰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50m의 담벼락을 넘거나 암석층을 뚫고 땅굴을 파서 몰래 훔쳐야 하기 때문이었다.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몬타넬로산 소고기를 먹어보는 것이 그야말로 일생의 소원이 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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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http://kr.blog.yahoo.com/openb



이런 이유로 몬타넬로산 소고기를 둘러싸고 언제나 소동이 벌어졌다. 담벼락을 넘다 추락사하는가 하면, 땅굴을 파다 매몰되기도 했다. 또한 몬타넬로산 소고기라고 속이고 비싼 값에 가짜 고기를 유통시킨다거나 일반 유제품을 몬타넬로산으로 둔갑시켰다. 귀족들의주변에서는 언제나 썩은 생선 냄새 같은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귀족들이 암암리에 몬타넬로산 소고기를 유통시키면서 막대한 부의 축재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몬타넬로산 소고기로 인해 민심은 흉흉해지고, 귀족들은 타락해 갔다. 벌거벗은 임금님 누드우스 왕의 실정으로 백성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고, 설상가상 몬타넬로산 소고기까지 그러한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이것은 왕국의 존재까지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로 확대되었기 때문에, 귀족들 사이에서는 몬타넬로산 소고기 개방이 심각하게 고려되기도 했다.

그러나 누드우스 왕은 단호했다. 그에게 몬타넬로산 소고기 개방은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몬타넬로산 소고기 한 번 먹는 것이 소원인 백성들에게 누드우스 왕은 “그까짓 몬타넬로산 소고기 안 먹으면 그만 아닌가! 안먹으려고 노력해라!” 하고 심장에 불사르는 짓까지 하니 백성들의 분노는 조젠스덴의 흐릿한 하늘을 찔러 갈라지게 할 정도였다.


누드우스 왕에게 백성들이란 신하의 확대된 의미에 불과했고 그들의 분노나 원망이란 한낱 이성을 잃은 개망나니짓에 불과한 것이었다. 누드우스는 백성이란 소통의 대상이 아니라 일방적인 지시, 명령의 대상일 뿐이었고, 그런 그들에게 소통바비큐 따위는 사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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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r.blog.yahoo.com/openb



그런 사치란 자신과 귀족들만이 누릴 수 있는 권한이었다. 백성들이 왕에게 고개를 쳐들고 ‘임금님이 옷을 벗고 있다느니, 옷을 입으라’ 느니 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물며 몬타넬로산 소고기를 먹고 싶다는 소동에 있었으랴.


이렇게 하루하루 심기가 불편한 일을 당하면서 아무리 똥배짱이 강한 누드우스 왕으로서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누드우스 왕이 마음을 둘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리웬스키 밖에 없었다.


리웬스키는 서글서글한 눈망울에 풍만한 가슴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리웬스키는 몬타넬로 시 출신으로 얼마 전 죽기 전까지 왕궁에서 집사로 근무했던 우엥 리웬스키의 딸이었다.


우엥은 왕궁에서 빼돌린 몬타넬로산 소고기를 로라가 어렸을 때부터 물리도록 먹였던 탓인지 로라 리웬스키는 몸매가 육중하고 가슴과 엉덩이가 엄청난 글래머였다. 누드우스는 이런 리웬스키의 넒고 깊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잠들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리웬스키는 누구보다도 권력과 부에 대한 욕심이 강했다. 옷을 벗은 채 흉포하고 잔인하고 엽기적인 짓을 하는 누드우스 왕과는 달리 그녀는 밝은 미소로 예의를 갖추고 남을 배려하는 척을 했다.

누드우스왕이 리웬스키에게 의지하면서 거의 집착에 가까운 신뢰와 애정을 보이자 리웬스키의 권력과 부에 대한 막연하고 추상적인 욕심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탐욕으로 돌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돌변에는 그녀에 대한 귀족들의 태도도 한 몫을 했다. 누드우스왕이 리웬스키에게 완전히 빠져버리자 리웬스키에게 온갖 아첨과 아부를 하는 귀족들이 하나 둘씩 늘어갔던 것이다. 흔히 말하는 베게머리 송사가 완전히 먹혀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욕심 많은 리웬스키가 어떻게 제정신을 차리고 한 마리 고고한 학처럼 자태를 뽐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누드우스 왕이 빠져버린 리웬스키라는 탐욕의 항아리는 그 좁은 입구와는 달리 깊고도 넓었다. 누드우스 왕이 그 좁은 입구를 거슬러 빠져나올 수 없을 만큼 리웬스키라는 항아리는 깊은 늪처럼 끈적끈적했다.


리웬스키는 고고한 척 하면서 몬타넬로산 소통바비큐를 굽는 바비큐 대를 돌리듯 누드우스 왕을 가지고 구워삶기 시작했다. 리웬스키는 누드우스 왕에게 몬타넬로산 소들에 대한 규제를 풀어줄 것을 눈물로 호소하는 척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신뢰하는 리웬스키라 하더라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귀족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리웬스키는 이런 점까지 꿰뚫고 있었다. 백성들의 신뢰를 받기 위한 일종의 포석이었다.


리웬스키는 영향력있는 귀족들을 협박과 회유로 한 사람 한사람씩 그녀의 사람으로 만들어 갔다. 얼마 뒤 귀족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게 됨으로써 리웬스크가 실질적인 권력의 핵심으로 부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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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웬스키는 몬타넬로에 살고 있는 삼촌 오르겐 리웬스키와 오빠 나발 리웬스키에게 자신은 몬타넬로 소의 규제를 풀고자 하지만 누드우스 왕이 완강하게 막고 있다는 사실을 백성들 사이에 퍼트리도록 사주했다.


누드우스 왕에게 분노하고 있던 백성들이 리웬스키의 그러한 숭고한 노력에 감동할 것은 뻔한 일이었다. 입으로 사실들이 전해지던 시대에 오르겐과 나발의 소문 확산은 효과적이었다. 백성들 사이에서 리웬스키는 졸지에 왕국을 지키는 잔다르크가 된 것이다.


백성과 소통 자체를 원하지도 않는 누드우스 왕이 이러한 소문을 접할 리가 없었다. 귀족들 중에 이러한 사실을 왕에게 직언하는 경우도 없었다. 귀족들은 이미 누드우스 왕에 대해 체념한 상태였다.


그저 목숨만이라도 부지해야했다. 누드우스 왕과 함께 벌거벗고 있어야 하는 처지에 대해서조차 벙어리처럼 말 한 마디 못하는 현실에서 그러한 직언은 불가능 일이었다. 또한 리웬스키의 막강한 파워가 현실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렇게 누드우스 왕을 둘러 친 인의 장막은 ‘누드우스의 담벼락’ 보다도 더 높아만 갔다.


리웬스키가 퍼트린 또 다른 소문은 그녀가 끊임없이 누드우스에게 옷을 입어라고 하지만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이었다. 백성들 사이에서는 들불처럼 소문이 퍼져나갔다.

“리웬스키가 누드우스를 인간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는군.”

“벌거벗은 누드우스에게 옷을 입힐 인간들이 그렇게도 없다니, 리웬스키보다도 못난 인간들이군.”

“저 왕궁에 벌거벗은 짐승들이 살고 있다는 것은 왕국의 수치가 아니겠나. 왕궁이 아니라 인간 동물원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듯하네. 그나마 리웬스키가 동물원의 조련사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군 그래.”


백성들은 ‘누드우스의 담벼락’ 과 ‘인의 장막’ 에 둘러싸인 벌거벗은 임금님 누드우스 왕에게 리웬스키가 옆에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나날이 리웬스키에 대한 칭송은 늘어갔고 이와 반비례해서 누드우스 왕은 몰락해갔다.


리웬스키에 저항하던 귀족들조차  마침내 흔들리면서 그녀에게 손바닥을 비비기 시작했다. 누드우스는 허물뿐인 존재였고 리웬스키는 실제적인 권력자가 되었다. 심지어 누드우스의 친위대가 리웬스키에게 복종할 것을 맹세하기까지 했다.이로써 누드우스 왕의 수족은 완전히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이러한 과정에 이르기까지 누드우스 왕은 완전히 무기력했는데 이것은 리웬스키가 몬타넬로산 소통 바비큐에 섞어 넣은 약 때문이었다. 그 약은 누드우스의 판단력을 마비시켰다.


정치적으로 백성들과 귀족들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하고 육체적으로 만신창이가 된 누드우스 왕은 이렇다 할 변변한 저항 한 번 하지 못했다. 침대에 누워 뒤척이거나 습관적으로 집무실에서 엽기적인 행위들로 소일하는 것이 전부였다.


한 보잘 것 없는 시녀 로라 리웬스키의 사사로운 음모가 왕국의 권력을 교체하는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에 이름을 어떻게 붙여야 할지는 개인들 각자의 몫이다. 그것은 단일한 의미로 평가하기에는 너무나도 다의성을 갖는 사건이기 때문이었다. 세계사에 로라 르웬스키의 음모와 왕위식이 기록되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러한 평가의 다의성에 기인하는 듯하다.


벌거벗은 임금님 누드우스 왕은 이렇게 리웬스키에 의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러나 백성들이 기대했던 것만큼 그들의 삶에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일시적인 분노와 원망의 감정 해소였을 뿐이었다.


얼마간 야만과 흉포의 시대가 사라진 듯이 보였으나 더욱 교할하고 위선적이며 가식적인 로라 리웬스키, 자칭 로라 엘리지아 1세 여왕이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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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 엘리지아 1세 여왕의 탄생과 함께 유일하게 백성들에게 돌아간 혜택이 있다면 몬타넬라산 소들을 가두고 있던 담과 철망들이 제거되고 몬타넬라산 소통바비큐가 백성들에게 일상적인 음식이 되었다는 것이다.


로라 엘리지아 1세 여왕이 개인적으로 소고기에 물려 더 이상 소고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 이러한 몬타넬라산 소고기의 규제 완화 조치는 고도의 정치적인 음모가 깔려있었다. 그것은 몬타넬라산 소통 바비큐에 신경 완화제를 주입하여 백성들의 정치적인 의식을 마비시키고자 하는 계산이었던 것이다.


몬타넬라산 소고기와 소통 바비큐가 로라 엘리지아 1세 여왕을 탄생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 또한 로라 엘리지아 1세 여왕의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는 이 사실을 백성들은 모르고 있었다.


백성들은 오늘도 힘든 노동 뒤에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집으로 돌아와 무표정한 모습으로 식탁 위에 놓여진 보잘 것 없는 음식을 먹었다.
(2008.8. 7.07:14)
 
*제일 위 사진 출처: http://kr.n2o.yahoo.com/NB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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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8 08:56

청와대와 소맥 파티





세상에는 수 없이 많은 말들이 영혼처럼 인간의 주위를 맴돈다. 보이지 않는 그 말들은 윤색되고, 반복되면서 인간의 삶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죽되 말들은 살아 인간의  입에서 항문을 거쳐 인간의 전신을 꿰어 버리기도 하고, 마취제처럼 코 속으로 스며들어 인간의 정신을 마비시키기도 하고, 삶을 전율하게도 한다.


이러한 말들, 인간의 주위를 감도는 수많은 말들이 나의 영혼을 좀 먹지 않도록, 온전히 나를 지켜 주기를 소망하면서......


술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고기이다. 고기하면 또 술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술을 마실 경우에는 안주 삼아 소고기, 돼지고기등을 먹는 경우가 많으며, 고기를 먹을 경우는 고기자체를 연하게 하거나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술을 곁들이거나, 소화를 돕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경우가 많다.


청와대는 소맥(소주 맥주 혼합주)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아니 잘 알려졌다기 보다 여러 번의 언론 보도가 있었다. 청와대에서 열린 18대 총선 당사자와 만찬에서 요란한 소맥주 파티 가 벌어졌다고 한다. 언론의 파급효과가 크기에 아마도 다수의 국민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청와대에서 이렇게 술을 흥건하게 마신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말씀이 떠오른다.


『상산록(象山錄)』에 이르기를, 술을 좋아하는 것은 다 객기(客氣)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를 맑은 취미로 잘못 생각하는데, 술마시는 버릇이 오래 가면 게걸스러운 미치광이가 되어 끊어려 해도 되지 않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마시면 주정부리는 자가 있고, 마시면 말 많은 자가 있으며, 마시면 잠자는 자도 있는데, 주정만 부리지 않으면 폐단이 없는 줄로 여긴다.……수령이 된 자는 술을  끊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정선 목민심서, 정약용, 다산연구회 역 p.52)



“청와대 상춘재에서 진행된 만찬 회동은
‘소맥’(소주와 맥주) 폭탄주가 돌아가는 가운데 적지 않은 농담과 웃음이 터져나오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2시간가량 진행됐다.”(서울신문, 2008.4.26.5면)


기사전문: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80426005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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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공관 청와대에서 폭탄주를 돌리며 2시간 동안이나 희희 낙낙 즐기는 이 광경을 다산 정약용 선생이 목격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다산 정약용 선생의 기준에서 보면 이것은 수령된 자로서 결코 있어서는 안되는 처신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폭탄주를 만들어 여러 차례 돌리는 행태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교육적으로 역할모델이 되어야할 지도자가 보여서는 안될 행동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가득이나 술문화 좋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청와대에서 벌어진 폭탄주 술판은 정서적으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상당한 악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 만큼 술에 대해 관용적인 나라도 없다고 한다. 그것은 주정이나 알콜중독에 대한 인식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관용적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관용적인 표현이다. 이 관용적이란 표현이 술문화에 대한 인간적인 면을 강조하는 것일테지만, 나쁘게 말하면,  무원칙과 방임적인 태도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어쩌면 청와대는 단순히 정치적인 공간만이 아니다. 청와대는 살아 꿈틀대는 맑고 깊은 정신의 원천이 되어야 하고 아름다운 영혼의 혈맥이 되어야 할 곳이다. 서글프게도 우리의 청와대는 국민들에게 그런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지금, 가정과 학교가 무너지고 인간의 기본이 무너지는 교육의 위기 상황이라고 한다. 기본이 무너지면 도대체 무엇이 살아 남을 수 있을까? 기본이 무너지는데 실용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부모도, 교사도, 사회의 어른도 청소년들을 포기하는 이러한 상황에서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는 겸허한 자세가 요구된다. 그 중심에 바로 청와대가 있어야 하고 대통령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청와대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청와대에서 이런 폭탄주 술판이나 벌이진다면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말씀처럼 "미치광이" 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수령이 끊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진정으로 바라건데, 청와대는 민족정신이 살아 꿈틀대고 아름다운 영혼의 혈맥이 되는 모든 국민들,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역할 모델이 되는 넓고 깊은 큰 정신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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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7 18:59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 폐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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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http://kr.image.yahoo.com/GALL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폐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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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http://kr.news.yahoo.com/servi

미인(美人)의 기준은 무엇일까? 아마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대답할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 라는 대표성까지 가질 정도이니 미의 기준으로 삼을 만 할 것이다. 하지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라는 미인들의 잔치가 과연 미의 대표성을 가질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아름답다’ 와 ‘미인’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을 선발이라는 해괴한 방식으로 골라낸다는 것도 그렇거니와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의 실제적인 존재이유조차 의심스럽다.



‘순수한 미의 겨룸’ 이라는 인식보다는 이제는 낯설지 않는 말이 되어버린 ‘연예계 진출’ ‘부적절한 관계’ 나 ‘은밀한 거래’ 그리고 ‘성형미인’ 등의 부정적인 말들이 떠오르니 유쾌하지만은 않다. 거기다 ‘미’을 이용한 계층상승 따위의 저속한 의도까지 내재하고 있다면 정말이지 기가 막힐 일이다.




또한 미인들이 선발되어서 궁극적으로 어떤 필요에 의해 어떻게 그녀들이 이용(?)될까하는 지극히 상품거래를 상기시키는 듯한 인식이 팽배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그 부정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열기를 더해가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둘러싸고 거대한 이해당사자들이 존재하리라는 것은 단순히 막연한 추측만은 아니라고 본다. 미용실과 성형외과, 각종 의상과 악세사리는 물론이고 TV등 각종 매체들이 창출하는 자본의 규모가 작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미‘ 의 이면에는 어쩌면 미와는 관계없는 상업주의가 거품처럼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미인 선발대회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상품생산 메카니즘의 일부로써 미인대회와 여성을 상품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미’와 여성을 상품으로 해서 원료 → 가공생산자 → 공급자 → 소비자로 이어지는 거대한 시장판을 형성하는 것이다.


더욱 문제는 상품 선발이 TV나 다른 대중 매체를 통해 중계가 됨으로써 별것도 아닌 흥정판이 화려하고 요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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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http://kr.image.yahoo.com/GALL.

확대가 되는 것이다. 시장판의 흥정은 요란하고 시끌벅적 할수록 좋으나 미인대회는 마치 유명 메이커의 상품이 고상하게 거래되는 것처럼 신성의 제단에 놓인 성배이기라도 한 듯 고상하게 선발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고상함의 이면에는 미와는 거리가 먼 저속한 흥정이 쉴새 없이 진행되는 위선적인 시장판 이기도 한 것이다. 아름답다는 말과 추하다는 말이 동시에 공존하는 모순의 시장판으로 말이다. “상품을 싸다오” “쌀 수 없다” “웃돈을 좀......” “상품을 싼다면야” 하는 이런 따위의 흥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해야 상품 공급이 가능하며 가공생산이 원활히 이루어져서 소비자들을 유혹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완전히 상품 선택에서 배제가 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층도 다양할 것이다. 상품 선택의 권리를 상실당한 체 군침만 질질 흘리면서 텔레비젼이나 보아야 하는 소시민에서부터 ‘연예인 매춘’ 처럼이나 ‘쓸만한 데 한번 불러봐!’ 하는 돈이 넘쳐 남는 한량(?)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다는 추측을 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돼지 한 마리가 유통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자본주의의 상품판매 경로를 통해서 대량으로 미인들의 소비가 진행되는 것이다. 이렇게 소비되어 거대한 자본과 명성이 넝쿨 채 굴러들어 오는데 여자들이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당사자만이 아니라 부모들, 온 가족들이 야단법석을 뜨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다.



미에 대한 인식도 이러한 획일화된 미의 기준에 의해 더욱 악화 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미는 인간 육체의 극히 일부분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여러 가지 요소들이 종합되어 판단되는 것이다.



특히 인격적인 요소는 미를 구성하는 가장 큰 부분이랄 수 있다. 그러나 온갖 대중매체에서 제공되는 미인들의 전형들은 키 크고 늘씬하고 갸름한 얼굴을 하고 있어 그 기준이 육체에만 집중되어 있다. 그러니 그러한 미에서 소외된 여자들의 소외감은 더욱 더 커져가고 다이어트와 성형과 같은 뷰티산업이 불황속에서도 호황을 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영상매체의 발달과 함께 더욱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미(美)는 규격화 될 수 없으며 개인들의 주관이나 취향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이렇게 규격화할 수 없는 미(美)를 규격화 시켜놓은 듯한 영상매체들 속에서 일부의 여자들은 얼마나 소외되고 있겠는가.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이렇게 여성의 소외에도 한몫을 하는 것이다. 성형수술로 얼굴이나 신체의 일부를 바꾸어 보겠다는 여자들은 결국 규격화된 미인의 모습에 일종의 강박감을 갖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폐지되어야 한다. 폐지되어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불필요한 것으로 잘못된 미의식(美意識)이나 소외 같은 부작용을 일으킬 필요는 없는 것이다. 미(美)는 한탕주의나 허영의 수단이 되는 가치가 결코 아닌 것이다.




*미스코리아 관련기사들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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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7 08:41

족발 초밥



                        
                            족발 초밥


족발로 초밥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초밥을 꼭 해산물로만 만드는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 돼지족발을 이용했습니다. 밥에 돼지발을 올리는 것이 조금은 어색하지만 이러한 조합은 음식에서 얼마던지 찾아볼 수 있는 흔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원래는 삼겹살 시리즈(카레 삼겹살, 카레 양념 삼겹살  베이컨 초밥)와 카레 시리즈(카레 삼겹살, 카레 양념 삼겹살, 카레 토스트,카레 낙지볶음)를 지속적으로 만들면서 양념 삼겹살 초밥 을 만들고 싶었으나 베이컨 초밥과 족발 초밥 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어제 베이컨 초밥과 함께 만든 것으로 여기에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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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초,설탕,소금,깨소금 약간을 뿌리고 골고루 섞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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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크기로 밥을 뭉쳐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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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위에 양념장을 적당하게 올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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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한 족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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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한 족발을 올려줍니다. 족발 연골이나 껍질 부위를 올려도 괜찮습니다. 살보다는 연골이나 껍질 부분이 더 고소하고 맛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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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겨장 간장을 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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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족발 초밥입니다.



시식후기

초밥 본래의 맛을 잃은 단순히 초밥을 닮은 모양만 하고 있다고 하면 되겠습니다. 새콤하면서도 해물의  상큼하고 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아니라, 덥덥하고 건조한 맛이 났습니다. 그러나 밥에 뿌리는 식초의 양을 조절하면 밥에서 씹히는 새콤한 맛과 양념장, 그리고 겨자간장 소스의 맛이 섞이면서 독특한 맛을 낼 것 같습니다. 김치나 젓갈을 함께 곁들이면 더욱 좋을 것 같구요.  이건 일종의 원시적인 형태 또는 아이디어차원에 불과해 앞으로 좀 더 개선된다면 괜찮은 퓨전음식으로 자리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검색후기

처음에는 양념 삼겹살로 하려고 했었는데 족발(베이컨도 함께)을 이용해 보았습니다. 삼겹살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잘 한 일이었습니다. 삼겹살 초밥이 이미 소개되어 있었더군요 (달콤한 살림꾼의 everyday food삼겹살 초밥). 너무 멋지게 만들어져 먹음직스럽게 보였습니다. 저의 족발 초밥도 좀 더 다양한 재료와 정교한 조리 과정을 거친다면 멋과 맛에서 손색이 없는 음식이 될 것 같았습니다.

(시식 후기와 검색 후기는 베이컨 초밥 의 후기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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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6 00:10

베이컨 초밥




                         베이컨 초밥


베이컨으로 초밥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초밥을 꼭 해산물로만 만드는 한계에서 벗어나 베이컨을 이용했습니다. 원래는 삼겹살 시리즈(현재까지 카레 삼겹살, 카레 양념 삼겹살 만들었음)의 일부로 양념 삼겹살 초밥을 만들고 싶었으나 시간과 기술의 문제로 베이컨으로 대체하였습니다. 베이컨도 일종의 삼겹살의 딴이름이라고 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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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에 식초,설탕,소금,깨소금을 넣고 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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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크기로 밥을 뭉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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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컨을 구워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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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이컨을 밥 위에 올리고 살짝 눌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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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에 담긴 소스는 태국산 해물용 소스로 맛의 배합이 어떨지 이용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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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것을 보니 문어 초밥 같아 보인다


시식후기

초밥 본래의 맛을 잃은 단순히 초밥을 닮은 모양만 하고 있다고 하면 되겠습니다. 새콤하면서도 해물의  상큼하고 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아니라, 덥덥하고 건조한 맛이 났습니다. 그러나 김치를 곁들여 입맛을 들이면 그런대로 괜찮을 것 같기도 합니다.



검색후기

삼겹살로 하려고 했었는데 베이컨으로 바꾼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삼겹살 초밥이 이미 소개되어 있었거든요(달콤한 살림꾼의 everyday food삼겹살 초밥)너무 멋지게 만들어져 먹음직스럽게 보였습니다. 저의 베이컨 초밥도 좀 더 다양한 재료와 정교한 조리 과정을 거친다면 멋과 맛에서 손색이 없는 음식이 될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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