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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9 15:24

후쿠오카 자유여행(5.다자이후로)



                    후쿠오카 자유여행(5. 다자이후로)


다음날(6월 11일) 아침 일찍(일찍이라고 해야 아마 10시는 넘었을 것 같습니다. 전날 하우스텐보스에서의 여독이 다소 심했기 때문이죠. ). 아침에
다자이후로 가기 위해 다시 하까다역으로 가는 도중에 비로소 사진을 몇 장 찍기 시작했습니다 민박집에서 하까다역까지는 걸어서 15-20분정도의 거리에 있었습니다. 거리의 풍경이 우리나라의 거리와 흡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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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집 앞에서(바로 뒤쪽이 민박집으로 들어가는 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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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집 앞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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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까다역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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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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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이며 동상, 운동장이 우리나라의 초등학교와 너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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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후로 가는 열차편은 하우스텐보스로 가는 열차편보다는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까다역에서 다이자후로 가는 기차를 탔는데 어떤 종류의 노선인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노선뿐만 아니라 찍어 놓은 사진을 보고서도 어디서 찍은 사진인지, 언제 찍은 사진인지, 뭘 하고 있는 사진인지 등등 도통 기억이 나지 않네요. 아무튼 다자이후로 가는 열차는 개인석을 가진 하우스텐보스행 열차와는 달리 천장에 손잡이가 주렁주렁 달려있고 서로 마주보고 앉는 우리나라의 지하철과 비슷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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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후 가는 표 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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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후로 가는 열차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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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후역에서 내려 사진을 몇 장 찍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다이자후로 올라가는 길 양쪽으로 다양한 가게들이 아기자기하게 들어 서 있는데 그곳에서 찍은 사진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가족사진조차 한 장 없네요. 다만 어느 가게에서 한국인 연예인 사진이 담긴 부채들을 몇 장 찍었네요. 다자이후 역에서 다자이후 뗌만구의 입구까지 이르는 길 양쪽으로 형성된 가게들을 보면서 일본인들의 상인정신에 대해 생각을 했습니다. (더 많은 사진 참조 : 블로그 창밖에 비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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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후 역 근처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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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에서 찍은 한류 스타들


다자이후 뗌만구에 들어가서는 그냥 사진을 막 찍었습니다. 학문의 신(스와가라 미찌자네)을 모시고 있다는데 아이들 공부 좀 잘하게 해달라고 부적하나 써서 걸어 놓지 못했습니다. 다자이후 뗌만구에서 꼭 찍어야할 사진이 있는데 당시에는 잘 몰라 찍지 않았네요. 다자이후 뗌만구와 관련해서 전해지는 전설(아래 다자이후 뗌만구와 관련된 전설 참조) 속 소의 동상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제 보니 정작 찍어야할 사진은 찍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네요(앞으로 여행에서는 이런 실수는 하지 않겠다는 각오!) 이곳저곳을 찍다가 결혼사진 찍는 장면을 포착했습니다. 또 자동차 무사고를 비는 고사(?)인지 시승식(?)인 듯한 장면도 찰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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뗌만구 본전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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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 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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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후 신사 뒷 편으로
큰 연못이 있었고 이름 모르는 꽃들(아마 창포같기도 한)이 만발해 있었습니다. 그 연못에서 위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큐슈 국립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으로 향하는 사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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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슈국립박물관으로 오르는 에스컬레이터의 입구(처음에 박물관 입구로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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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컬레이터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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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이렇게 타고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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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슈국립박물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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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내부(전시실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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뗌만구내 식당가


또 사진 타령이지만, 어쩐 영문인지 큐슈 국립박물관과 다이자후 뗌만구를 둘러보고 나온 후와 다이자후에서 다시 하까다역으로 돌아오는 과정과 하까다 역에서 내려 후쿠오카 번화가로 가는 과정에서의 사진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마 버스나 지하철을 탔을 텐데 그런 사진들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다자이후 뗌만구와 관련된 전설

다자이후 뗌만구는 일본 전역에 산재해 있는 1만 2000여개의 뗌만구(天滿宮)의 총본산인 신사입니다. 학문의 신으로 숭상되고 있는 스기와라 미찌자네를 모시고 있는 유명한 신사입니다. 이 신사가 세워진 유래에 대한 재미난 전설이 전해오고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스기와라 미찌자네는 845년 교또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이미 5살 때 시조를 읊고, 11살 때 한시를 지을 정도로 보기 드문 신동이었습니다. 스기와라 미찌자네는 나이가 들면서 귀재를 더욱 발해 각종 관직을 맡으며 명성을 얻고 55살 때는 우대신(右大臣)에 임명되어 덕망있는 정치가의 면모를 보였습니다. 훌륭한 정치가로 서민들 사이에 명망이 높아 다른 정치가들의 질시가 심했습니다. 결국 스기와라 미찌자네는 정치적인 음모로 인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901년 바로 다자이후로 좌천을 당하고 맙니다. 그리고 2년 뒤에 세상을 뜨고 맙니다. 장례식날 그의 유체는 우마차에 실려 장지로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우마차가 멈추면서 마차를 끌던 소가 꼼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쩔수 없이 그의 제자가 바로 이곳에 스기와라 미짜자네를 유체를 묻고 뗌만구의 전신인 안라꾸지(安樂寺)라는 절을 세웠습니다.


그 뒤 이상하게도 스가와라 미찌자네를 좌천시키기 위해 음모를 꾸민 인물들이 아무런 이유없이 사망하고 또한 교또 곳곳에 예기치 않는 재난들이 일어나자, 조정에서는 스기와라 미찌자네가 하늘에서 내린 노여움으로 판단하고 그를 신으로 모시는 사당을 안라꾸지에 만드는데, 그것이 바로 다자이후 신사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좀 더 높은 신사로 격상되어 현재의 다자이후뗌만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일본 백배 즐기기, pp.590-591, 랜덤하우스 중앙 참조)



*다자이후에서 하까다역으로 돌아와 둘러 본 일정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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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9 13:10

[음식]즉석 토스트피자



                   즉석 토스트 피자 만들기

만드는 법은 돼지고기 피자 만드는 법 참고하세요. 밀가루 반죽 대신 토스트로 바꾸기만 하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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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9 02:58

정통 이탈리안 스파게티(?) 만들기




스파게티를 만든다고 만들었는데, 그 성격이 좀 모호하네요. 인스턴트라고 해야 할까요? 정통 이탈리안(?) 스파게티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달리 뭐라 할까요?

            1)면을 삶고 물을 부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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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액체와 분말 스프를 준비합니다 (특정 상표 홍보가 아닙니다. 편집을 못해서
              요^^ 다른 제품도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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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준비한 야채와 베이컨을 약한 불로 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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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준비해 놓은 면에 양념장(스프?)를 뿌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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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그 위에다 볶은 야채와 베이컨을 올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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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마구 비비네요 (위 사진이 예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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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비비고 나니 별로 먹음직스럽게 보이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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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식후기>
그냥 먹는 것보다 느끼한 맛은 덜 하네요. 먹을 만 합니다만 정통식 일탈리안  스파게티를 먹고싶네요. 그걸 앞에 놓고 왠 슬데없는 소리냐구요?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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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8 15:36

t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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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8 15:25

몰입은 구원이요, 희망이다

몰입은 구원이요 희망이다


내가 처음 영어 몰입식 교육이란 말을 들었을 때 막혔던 길이 확 열리는 것처럼 눈부신 희망의 빛을 보았다. 공식적으로 몰입이 인정된다는 사실은 공식적으로 나의 행위를 정당화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DUJNBgbVmAD/Bdc7MzoMOB+YzuoNPPjUz9ZJCKHGIUM=


나는 20살, 대학교 1학년이다. 내 삶의 약 3분의 1 정도는 영어라는 신성한 제단위에 바쳐졌다고 해도 그리 과장은 아니다. 부모부터 발 벗고 나서서 영어 공부를 시켰다. 방학이면 어학연수다 특별과정이다 해서 영어와 살도록 했다. 그런데 영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하는 사실에 자신의 지적인 능력에서부터 언어감각에 이르기까지 원망하고 또 원망을 했다.


내가 영어와 더불어 살아 온 삶은 동시에 분노와 절망과 실의의 나날이기도 했다. 왜 유창하게 안 되는가? 이 질문은 그저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하는 처절한 질문이기도 했다. 그 엄청난 돈과 시간들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가? 그 엄청난 돈과 시간들은 무엇을 남겼는가?  


영어 몰입식 교육이 공식적으로 발표되면서 나는 가장 먼저 몰입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했다. 그 엄청난 돈과 시간에도 불구하고 내게서 부족했던 것은 바로 영어에 대한 몰입이었던 것이다. 몰입! 나는 진정으로 영어에 몰입했던 적이 있는가? 답은 아니오였다. 방학 때의 어학연수도, 특별과정도 진정한 몰입이 아니었던 것이다. 바로 답은 몰입에 있었다. 오랜 동안 지쳐있던 내게 몰입은 구원이고 희망이었다. 동시에 큰 위안이 되어주었다. 몰입하지 않았던 나, 이제 몰입하자! 나는 이렇게 결심을 했던 것이다.


나는 내 삶에서 한국말을 완전히 지워버리기로 했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그렇다고 한국말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건 기본적인 상식이 아닌가. 넌센스일리도 없다.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몰입이란 단어를 보통명사화 하고 있지 않은가. 몰입을 위해 영어 외에는 당분간 모든 것들을 몰수하기로 한 것일 뿐이다. 몰수! 그렇다 바로 몰수였다.


누가 무어라 하던 나는 한국인이 아니라는 자기 최면을 하루에도 수십 번 씩 했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언어는 영어 밖에 없다. 영어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I am not Korean. I am not Korean. I can just speak English. I couldn't live without English!)’ 나는 이렇게 철저하게 한국인인 자신을 지우고 부정했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내 모국어는 영어다.


몰입을 하려면 이토록 자신의 정체성과 언어마저 부정하면서 철저하게 몰입하기로 했던 것이다. 몰입이란 단어가 보통명사화 되어가는 마당에 그렇게 영어에 몰입하는 삶을 어느 정도는 이해해 줄 것이라고 자기 변병처럼 중얼거리기도 했다. 물론 더듬거리는 영어로 말이다.


‘People around me will understand me speaking only Enlgish in my daily life! 오렌지 wrong, 오뤤지 right!’


가족들은 대체로 나를 이해해 주는 입장이었다. 부모님은 영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알고있기에 나의 이러한 몰입에 대해 가끔씩 짜증을 내기도 했지만 지지해주었다. 아버지는 카튜샤 출신으로 미군들로부터 영어 못한다고 수모를 많이 당했다고 한다. 욕과 일상적인 언어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욕을 들어도 흰 이를 드러내 놓고 히죽거리곤 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미국 대사관 근처에서 사진관을 하는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미국인들을 많이 목격했다고 한다. 가끔씩 사진을 찍으러 오는 미국인들과 손짓 발짓을 하며 의사소통을 하려고 했다 한다. 그러면서 영어에 호기심이 생겼고 카튜샤 출신의 아버지와 만났다는 것이다.  


나의 형은 더욱 나의 편이 되어주었다. 형은 미국 LA 유학시절 슬럼가에서 흑인들과 몰려다니면서 흑인영어를 배웠다. 형은 LA 코리아타운에서 한국말을 하는 한인들을 무시했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지, 영어를 배우지 않고 한국말만 하는 태도는 미국을 너무 무시하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아무리 그렇지, 위대한 나라 미국에서 위대한 영어를 마다하고 한국어를 사용하다니!’ 형은 언제나 이렇게 중얼거렸다.


형은 한국을 증오했다. 한국말이 촌스럽다고 했다. 한국의 문화가 쪽팔린다고도 했다. 형이 왜 이런 삐뚤어진 생각을 갖게 됐는지는 잘 모른다. 단지 형은 유학시절 한국에 남아있던 여친으로부터 배신을 당한 적이 있고, 방학 중에 귀국해 한국에서 마리화나와 LSD를 하다 불구속 입건이 된 적이 있고, 영어를 뒈지게 못하면서도 잘난척하는 인간들을 자주 욕했던 것으로 판단해 보면 그런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가족 외의 주위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기에는 수준 차이가 났다. 그들은 몰입이라는 말을 들어보기는 했을 테지만, 진정한 몰입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나의 진정성을 이해하기에 그들이 나와 영어로 소통하기란 불가능 할 것 같았다. 동네 이발소 최씨 아저씨나 정육점의 박씨 부부, 패밀리 마트의 아르바이트생이 어떻게 몰입에 대해 영어로 소통을 할 수 있겠는가. 


' Please, understand me! I am not Korean. I can't speak Korean. Please try to speak in Enligsh. '


이런 말이 입속을 맴돌았지만 침묵해야 했다. 단지 나는 그들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영어로만 말을 했다. 이발소 최씨 아저씨는 이해한다고 고개를 끄덕거려주곤 했지만 그것이 다였다. 그리고는 입을 딱 닫아버렸으니 말이다. short cut 정도에서 멈춰버리는 것이다. 대화는 대충 이런 식이었다.


정육점 박씨 아저씨: 어서와 오랜만이네!

나: How's everything ?

정육점 박씨 아저씨: 만사형통

나: Can you speak English?

정육점 박씨 아저씨: 물론이지

나: What is your favorite movie?

정육점 박씨 아저씨: 오케이, 오케이



길거리에서 외국인을 만나면 가장 이상적이다. 의도적이지만 자연스럽게 접근을 하여 가능하면 많은 영어를 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한가한 외국인을 만나는 것이다. 흑인이나 백인을 가릴 필요도 없다. 나의 몰입에는 인종적인 편견이나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영어만 하면 되지 흑, 백 따질 필요가 없다. 또한 빈부귀천, 학벌도 따질 필요가 없다. 영어에만 몰입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사 오케이인 것이다. 본국에서 노숙자를 했던, 마약자던, 전과자던, 범죄인이던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나 그녀가 미국인이면 되고, 영어를 하면 되는 것이다.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이면 되는 것이다. 오로지 영어에 몰입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앞으로 10일 후에는 3개월째 영어에만 몰입한 100일이 된다. 하늘에 두고 맹세코 말하지만 단 한 번도 한국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누가 뭐라건 영어만 했다. 진정한 몰입의 실천이라고 자신한다. 진정한 몰입! 앞으로도 나에게서 모든 한국적인 것을 몰수해 버리고 오직 영어에만 몰입할 것을 다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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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8 15:08

Homo Microorg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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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http://kr.image.yahoo.com/GALL 


Homo Microorganism


<‘인간은 미생물(Homo microorganism)이다. 스스로를 미생물이라 정의할 수 있는 미생물이다. 그리고 인간은 우주에 존재하는 아주 유익한 미생물이다.>


크고, 작음이란 상대적인 비교의 부산물이다. 절대적인 큼과 작음이 없다는 말이다. 크기뿐만이 아니라 질적인 수준 또한 마찬가지이다. 더 잘났다, 더 우수하다 등도 상대적인 비교의 부산물이며 절대적인 기준이나 근거가 없다. 항상 비교의 대상이나 이미지가 있어야 한다. 개미는 인간 보다 작다거나, 인간은 사고를 하는 유일한 동물이다라고 하는 상대적인 비교대상이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의 경우는 인간을 제외한 다른 모든 생물체들을 비교대상으로 통칭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자신들을 비교의 대상으로 삼지 않거나 비교를 하는 경우에 자신을 중심에 놓는 좋지 않는 버릇이 있다. 아니, 좋지 않은 버릇이라기보다는 자기중심적인 버릇이다. 그 비교는 항상 ‘우등비교’ 이거나 ‘절대적인 우위’, 또는 유일성 등으로 표현된다.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다.’ 라거나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라는 정의가 바로 그런 경우들이다. 하지만 어느 누가 인간이 이성적인 동물이라는데 절대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란 정의에 동의할 수 있는가? 이렇게 ‘인간은 …… 이다’ 라는 식의 정의는 아주 인간중심적인이며 절대적인 사고이다. 이러한 잘못된 정의 자체가 인간이 이성적이지 않으며 만물의 영장도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전혀 이성적이지 않은 정의들을 남발하는 인간이 어떻게 이성적일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잘못된 인간에 대한 정의가 인간을 오만하게 만들어 온 역사임을 인간은 깊이 있게 성찰해야 한다. 만물의 영장이기에 독단적인 행위를 스스럼없이 자행해 온 것이다. 이것은 아리안 족이 우월성을 보존하기 위해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의 생각과 거의 일치하는 것이다. 인간의 우월한 문명을 유지하고 보존하기 위해 자연을 학살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이 살아남아 학살 원흉들을 단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은 인간에게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단죄의 형벌을 내릴지도 모른다. 이러한 징조가 지구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고 과학자들이 경고하고 있다. 지구 멸망의 영화가 유난히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이야 말로 인간다운 인식이 아닐 수 없다.


시간과 공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언제나 현재를 점유하고 있으며 공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행세하는 것이다. 2008년으로 정의하는 현재의 시간과 인간이 건설한 도시들이 우주의 중심적인 공간이라는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인 습관이 너무나도 단단하게 굳어져 버렸다. 인간이 정의한 인간 중심적인 잘못된 인간에 대한 정의 때문이다.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2008년이란 시간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인간이 차지하고 있는 지구라는 공간은 거의 사라지고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렇게도 초라하고 작은 인간이 그 스스로를 너무나도 과대하게 과장되어 버린 것이다. 작은 좁쌀이 확대된 뻥튀기에 불과한 것이다. 


우주를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 보면서 인간 자신이 이 우주라는 유기체속의 작은 미생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면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비상식적인 왜곡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인간에 대한 정의를 내려야 한다. 이것은 당장 실행해야 할 인간의 과제이다.  현실적으로 인간은 너무나도 오만에 갇혀버려서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식의 정의를 반복하고 있고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이러한 생각에 균열을 일으키는 위기의식들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이제 인간은 자신 스스로가 정의하는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라는 식의 정의를 폐기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주의 입장에서 보는 ‘인간에 대한 정의’ 는 어떠해야 할까? 그것은 ‘인간 은 미생물이다.‘ 라는 혁명적인 인식의 전환이다. 우주의 관점에서, 지구는 광활한 우주 속의 작은 행성에 불과하며 인간은 작은 미생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면 인간이라는 미생물은 지구상의 다른 미생물들과는 달리 스스로를 정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정의 할 수 있는 미생물’ 인 것이다. 이 정의는 우주적인 관점으로써 인간의 왜소함과 동시에 겸손을 드러내는 참으로 인간적인 정의가 되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인간중심적인사고나 지구중심적인 사고를 버리고 우주 중심적인 사고로 자신을 정의해야만 할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우주 중심적으로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겸허한 생물이길 바란다.


이렇게 인간에 대한 정의를 다시 선언하고 싶다; ‘인간은 미생물(Homo microorganism)이다. 스스로를 미생물이라 정의할 수 있는 미생물이다.‘


인간이 유기체의 균형을 파괴하는 미생물을 박멸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처럼 어쩌면 우주는 자신의 균형을 파괴하는 인간이란 미생물을 박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겸허한 생각을 해야 한다. 만약 인간이 우주라는 유기체의 균형을 깬다면 이러한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솔직히 인간들은 우주라는 전체 유기체의 관점에서 보면 쓸데없고 잘못된 짓을 너무나도 많이 하고 있다. 지나친 상업주의가 낳는 자원 고갈과 쓰레기 배출을 통한 환경파괴가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업그레이드되는 문명의 이기들이 인간의 편리만을 추구하면서 디스토피아적인 문명으로 변이되고 있다. 오존층의 파괴, 각종오염 등…… 인간이 지구에 미치고 있는 영향이 어쩌면 태양계, 더 나아가 우주 전체의 질서와 조화를 깨고 있다면 미생물인 인간은 박멸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주가 인간을 가만히 내버려 둘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또 지겹게 반복하는 소리이지만 인간은 과학의 성과물에 얼마나 기고만장해 있는가. 마치 이 우주의 주인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을 위해 우주가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거만하고 기고만장한 태도는 가장 비인간적인 태도이다.


인간은 더 이상 만물의 영장이 아니다. 혁명적인 정의로 과거의 모든 잘못된 정의를 대체해야만 한다. 그리고 새로운 정의를 겸허하게 수용해야 한다. ‘인간은 미생물이다(Homo microorganism).’ 그러나 인간이란 미생물이 우주의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로 불리어 지기를 바라자.


이것이 인간을 정의하는 새로운 혁명적인 정의의 완결판이다: ‘인간은 미생물(Homo microorganism)이다. 스스로를 미생물이라 정의할 수 있는 미생물이다. 그리고 인간은 우주에 존재하는 아주 유익한 미생물이다.’

*이전에 '인간에 대한 새로운 정의' 라는 글을 새로 제목 수정하여 올립니다.
DUJNBgbVmAD/Bdc7MzoMOB+YzuoNPPjUz9ZJCKHG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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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5 03:15

돼지고기 피자 만들기



               돼지고기 피자 만들기

돼지고기 피자 만드는 방법     
(자세한 설명 생략. 적당 대충 따라하세요^^)

1)야채를 썰어서 준비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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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돼지고기와 야채를 썩어 양념해 두네요
    돼지고기가 좀 큰데 물어보니 원래 찌개용(?)으로 준비해 놓았던 것이라
    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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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밀가루 반죽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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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야채, 돼지고기 양념해 놓은 것을 후라이판에 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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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후라이판에 밀가루 반죽을 깔고 야채, 돼지고기 볶은 것을 올려놓고 굽는
   지, 지지는지 아무튼 열을 가하네요(어휴, 싸구려 후라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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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위에다가 치즈 가루를 듬뿍 뿌리네요(어휴, 후라이판 옆에 뭔가 잔뜩 묻었
   는데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삭제하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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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접시에 들어 놓고 나니 그래도 제법 먹음직스럽게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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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한 판 더 구워 먹다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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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식후기>

돼지고기를 넣으니 소고기 만큼 부드러운 느낌은 없네요. 선입견인지 비린내 같은  냄새도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배가 고파서인지 맛있게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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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5 01:57

[꽁트] 몰입은 구원이요, 희망이다.



 

몰입은 구원이요 희망이다


내가 처음 영어 몰입식 교육이란 말을 들었을 때 막혔던 길이 확 열리는 것처럼 눈부신 희망의 빛을 보았다. 공식적으로 몰입이 인정된다는 사실은 공식적으로 나의 행위를 정당화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나는 20살, 대학교 1학년이다. 내 삶의 약 3분의 1 정도는 영어라는 신성한 제단위에 바쳐졌다고 해도 그리 과장은 아니다. 부모부터 발 벗고 나서서 영어 공부를 시켰다. 방학이면 어학연수다 특별과정이다 해서 영어와 살도록 했다. 그런데 영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하는 사실에 자신의 지적인 능력에서부터 언어감각에 이르기까지 원망하고 또 원망을 했다.


내가 영어와 더불어 살아 온 삶은 동시에 분노와 절망과 실의의 나날이기도 했다. 왜 유창하게 안 되는가? 이 질문은 그저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하는 처절한 질문이기도 했다. 그 엄청난 돈과 시간들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가? 그 엄청난 돈과 시간들은 무엇을 남겼는가?  


영어 몰입식 교육이 공식적으로 발표되면서 나는 가장 먼저 몰입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했다. 그 엄청난 돈과 시간에도 불구하고 내게서 부족했던 것은 바로 영어에 대한 몰입이었던 것이다. 몰입! 나는 진정으로 영어에 몰입했던 적이 있는가? 답은 아니오였다. 방학 때의 어학연수도, 특별과정도 진정한 몰입이 아니었던 것이다. 바로 답은 몰입에 있었다. 오랜 동안 지쳐있던 내게 몰입은 구원이고 희망이었다. 동시에 큰 위안이 되어주었다. 몰입하지 않았던 나, 이제 몰입하자! 나는 이렇게 결심을 했던 것이다.


나는 내 삶에서 한국말을 완전히 지워버리기로 했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그렇다고 한국말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건 기본적인 상식이 아닌가. 넌센스일리도 없다.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몰입이란 단어를 보통명사화 하고 있지 않은가. 몰입을 위해 영어 외에는 당분간 모든 것들을 몰수하기로 한 것일 뿐이다. 몰수! 그렇다 바로 몰수였다.


누가 무어라 하던 나는 한국인이 아니라는 자기 최면을 하루에도 수십 번 씩 했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언어는 영어 밖에 없다. 영어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I am not Korean. I am not Korean. I can just speak English. I couldn't live without English!)’ 나는 이렇게 철저하게 한국인인 자신을 지우고 부정했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내 모국어는 영어다.


몰입을 하려면 이토록 자신의 정체성과 언어마저 부정하면서 철저하게 몰입하기로 했던 것이다. 몰입이란 단어가 보통명사화 되어가는 마당에 그렇게 영어에 몰입하는 삶을 어느 정도는 이해해 줄 것이라고 자기 변병처럼 중얼거리기도 했다. 물론 더듬거리는 영어로 말이다.


‘People around me will understand me speaking only Enlgish in my daily life! 오렌지 wrong, 오뤤지 right!’


가족들은 대체로 나를 이해해 주는 입장이었다. 부모님은 영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알고있기에 나의 이러한 몰입에 대해 가끔씩 짜증을 내기도 했지만 지지해주었다. 아버지는 카튜샤 출신으로 미군들로부터 영어 못한다고 수모를 많이 당했다고 한다. 욕과 일상적인 언어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욕을 들어도 흰 이를 드러내 놓고 히죽거리곤 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미국 대사관 근처에서 사진관을 하는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미국인들을 많이 목격했다고 한다. 가끔씩 사진을 찍으러 오는 미국인들과 손짓 발짓을 하며 의사소통을 하려고 했다 한다. 그러면서 영어에 호기심이 생겼고 카튜샤 출신의 아버지와 만났다는 것이다.  


나의 형은 더욱 나의 편이 되어주었다. 형은 미국 LA 유학시절 슬럼가에서 흑인들과 몰려다니면서 흑인영어를 배웠다. 형은 LA 코리아타운에서 한국말을 하는 한인들을 무시했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지, 영어를 배우지 않고 한국말만 하는 태도는 미국을 너무 무시하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아무리 그렇지, 위대한 나라 미국에서 위대한 영어를 마다하고 한국어를 사용하다니!’ 형은 언제나 이렇게 중얼거렸다.


형은 한국을 증오했다. 한국말이 촌스럽다고 했다. 한국의 문화가 쪽팔린다고도 했다. 형이 왜 이런 삐뚤어진 생각을 갖게 됐는지는 잘 모른다. 단지 형은 유학시절 한국에 남아있던 여친으로부터 배신을 당한 적이 있고, 방학 중에 귀국해 한국에서 마리화나와 LSD를 하다 불구속 입건이 된 적이 있고, 영어를 뒈지게 못하면서도 잘난척하는 인간들을 자주 욕했던 것으로 판단해 보면 그런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가족 외의 주위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기에는 수준 차이가 났다. 그들은 몰입이라는 말을 들어보기는 했을 테지만, 진정한 몰입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나의 진정성을 이해하기에 그들이 나와 영어로 소통하기란 불가능 할 것 같았다. 동네 이발소 최씨 아저씨나 정육점의 박씨 부부, 패밀리 마트의 아르바이트생이 어떻게 몰입에 대해 영어로 소통을 할 수 있겠는가. 


' Please, understand me! I am not Korean. I can't speak Korean. Please try to speak in Enligsh. '


이런 말이 입속을 맴돌았지만 침묵해야 했다. 단지 나는 그들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영어로만 말을 했다. 이발소 최씨 아저씨는 이해한다고 고개를 끄덕거려주곤 했지만 그것이 다였다. 그리고는 입을 딱 닫아버렸으니 말이다. short cut 정도에서 멈춰버리는 것이다. 대화는 대충 이런 식이었다.


정육점 박씨 아저씨: 어서와 오랜만이네!

나: How's everything ?

정육점 박씨 아저씨: 만사형통

나: Can you speak English?

정육점 박씨 아저씨: 물론이지

나: What is your favorite movie?

정육점 박씨 아저씨: 오케이, 오케이



길거리에서 외국인을 만나면 가장 이상적이다. 의도적이지만 자연스럽게 접근을 하여 가능하면 많은 영어를 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한가한 외국인을 만나는 것이다. 흑인이나 백인을 가릴 필요도 없다. 나의 몰입에는 인종적인 편견이나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영어만 하면 되지 흑, 백 따질 필요가 없다. 또한 빈부귀천, 학벌도 따질 필요가 없다. 영어에만 몰입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사 오케이인 것이다. 본국에서 노숙자를 했던, 마약자던, 전과자던, 범죄인이던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나 그녀가 미국인이면 되고, 영어를 하면 되는 것이다.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이면 되는 것이다. 오로지 영어에 몰입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앞으로 10일 후에는 3개월째 영어에만 몰입한 100일이 된다. 하늘에 두고 맹세코 말하지만 단 한 번도 한국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누가 뭐라건 영어만 했다. 진정한 몰입의 실천이라고 자신한다. 진정한 몰입! 앞으로도 나에게서 모든 한국적인 것을 몰수해 버리고 오직 영어에만 몰입할 것을 다짐한다. (*)

몰입과 관련된 또 다른 꽁트: 몰입은 너의 운명
 

(2008.6.25.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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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4 18:29

[꽁트] 몰입은 너의 운명



 



몰입은 너의 운명


난 지금 굉장히 심각하다. 이렇게 심각한 적이 별 없었다. 초등학교 2학년때 “내게 왜 엄마가 없냐” 는 질문에 할머니가 “너를 낳다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참 심각했었다. 할머니는 너무 솔직하셨다고 생각한다. 그냥 ‘죽어다‘ 라는 표현보다는 좀 더 인간적이긴 하지만 나를 너무 사실적으로 개입시킨 것은 너무 비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의 판단으로는 별 대수롭지 않게 한 말이었겠으나 나에게는 크나큰 슬픔이었고 절망이었다.   


그리고 아빠가 중 2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을 때 난 또다시 참으로 심각했었다. 나에게 아빠가 있다는 사실을 아빠의 죽음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내게 아빠가 있었다니! 한 밤중에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외할머니는 아빠의 존재를 확인했다. 길바닥에서 얼어 죽은 아빠! 엄마가 죽기 전에 이미 내게서 죽음보다도 더 하얗게 지어져 버린 아빠의 존재. 그렇게 아빠의 죽음으로 아빠의 존재를 알았던 것이다.


엄마는 내가 세상에 태어나면서 세상을 떠났고, 아빠는 당신의 죽음으로 내게 다시 살아났던 것이다. 세상에 죽음과 삶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 동전의 양면처럼 잇닿아 있다는 생각을 그 어린 시절부터 했던 것이다.


외할머니와 외삼촌과 함께 살아온 지 이제 4년, 내게 또 다른 위기가 찾아 들었다. 연세가 많이 드신 할머니는 경제적으로 어렵다. 외삼촌을 부양하기에도 힘이 드신다. 외삼촌이 머리가 비상해서 경제적인 부담보다는 도움을 많이 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삶은 고달프시다. 당신은 손녀 용돈이라도 쥐어주려고 봄이면 시장통 구석진 한 모퉁이에 앉아 상추를 팔곤 하시고, 여름이면 바닷가에서  환경정화 활동으로 젊은 사람들이 생각 없이 버린 오물이나 휴지를 처리하거나 주우시고, 가을에는  각종 스티커나 광고물들을 나누어 주신다. 추운 한겨울도 예외는 아니다. 연말연시 대목을 맞은 식당에서 청소도 하고 주방에서 일당으로 일을 하시기도 한다. 그러나 나의 위기가 할머니 때문은 아니다.


외삼촌은 비상한 머리의 소유자라고 이미 말했다. 과외 한 번 시킨 적도 없고, 좋은 책 한 번 사준 적이 없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혼자서 척척 잘해서 외할머니가 입에 댄 적이 단 한번 도 없다고 하셨다. 지금은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그곳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다. 나도 외삼촌 같은 사람이 되어 외할머니를 호강시켜 드리고 싶다. 그러나 나의 위기가 또한 외삼촌 때문은 아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전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나의 위기는 영어 때문이다. 영어 몰입식 교육에 대해 그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에 대해 나는 어떤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당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영어에 몰입해야 하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다. 알지도 못하는 영어의 웅웅거림에 스스로 최면상태처럼 몰입해야 한다는 사실이 정말이지 고역이 아닐 수 있겠는가? 내게 들리는 것이라곤 한국의 지명이나 인물의 이름들, 그리고 숫자들이 고작이기 때문이다. 사실  남들에게는 대수로운 일이 아닐지 모르지만 나는 정말 심각하다. 나는 국문학자나 사학자가 되는 것이 장래의 꿈이다. 국문학자가 되기 위해 영어권 대학으로 유학갈 일이 있을까? 나는 또한 학자가 아니라면 멋진 한정식 식당 주인이 되고 싶다.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해 영어가 정말 필요한 것일까?  


내가 생활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두 가지의 상반되는 경우가 나를 심각한 딜레마로 빠지게 한다. 어쩌면 아이러니인지도 모르겠다. 영어 몰입에 몰 자도 모르고 살아오신 외할머니를 보면 영어는 필요 없는 것 같은데, 오히려 할머니는 “앞으로 니가 이 할미처럼 고생 안할라믄 영어는 꼭 유창하게 해야 하닌기라, 알겠나! 니 외삼촌을 바라, 영어 잘하니까 유학도 가고 얼매나 좋아.” 하고 마치 영어의 필요성을 간절하게 느끼시고 있는 것처럼 강조를 하신다. 언젠가는 영어 몰입교육이 무엇인지를 교회에서 듣고 오셨다고 하시면서 “몰입 거, 좋은 거라더라! 니는 영어에 몰입해서 영어 그거 콱 아작을 내비리야 하는 기라. 알겠나! 한국말은 몰라도 영어는 유창하게 해야 되는 기라, 알겠나!” 나는 할머니께서 살아오신 삶을 되돌아보면서 할머니가 몰입되어온 신산스러운 삶이 나를 영어 몰입으로 내 모는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당신께서는 어려운 삶을 살아오셨지만 내게 만은 그런 삶을 물려주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리라.


할머니와는 달리 국비 유학을 떠나 작년에 영국 옥스포드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빋고 교수생활을 시작한 외삼촌은 영어 몰입 교육에 조소를 보내기만 한다. 삼촌의 빈 방 책꽂이에 꼽혀있는 영문 원서들하며, 논문 자료들, 각종 서류들을 보면, 또한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것을 보면 외삼촌은 영어 몰입식 교육의 필요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외삼촌은 영어 몰입식 교육에 조소를 보내면서 “모든 국민들이 영어를 다 유창하게 할 필요가 어디에 있냐? 할머니를 봐라, 할머니가 영어가 필요하냐? 영어가 없이도 잘 살아 오지 않으셨냐? 삶에는 영어보다 더 필요한 가치들이 너무나도 많은 데 모든 사람들을 영어에 몰입시킬 필요가 어디에 있겠냐. 심지어 영어 공용어를 주장하는 분들도 있더라. 가슴 아픈 건 내가 존경하시는 분이 영어 공용어를 주장하시는 거야. 몰입도 안되고 영어 공용어도 안되는 거야. 영어 때문에 좀 불편은 하겠지만 말이야. 그건 말이야,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기독교인으로 전도하려는 생각과 같은 거야, 알겠냐.” 외삼촌의 편지를 읽고 있노라면 외삼촌이 영국에서 보내 온 편지가 맞는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할머니와 외삼촌의 영어 몰입에 대한 상반된 생각 사이에서 혼란스럽다기보다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그 상반된 생각들이 할머니와 외삼촌사이에서 뒤바껴 주장된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했던 것이다. 즉, 할머니야 말로 영어 몰입식 교육에 대해 영어 없이도 다 살아가는데 뭐 필요한가하고 비판을 했어야 하고, 외삼촌이야 말로 외국물 먹은 경험으로 봐서 영어 몰입식 교육에 대해 적극적인 수용을 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반대였던 것이다.


사실 나는 몰입식이니 비몰입식이니에 관심이 없었다. 나라에서 한다면 할 수 밖에 없고 뭐 별수 있나 하는 식의 체제와 정책에 순종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그런데 자꾸만 주위에서, 특히 할머니와 외삼촌의 영어 몰입식 교육에 대한 상반된 생각에 몰입에 가까운 강요를 당하면서 그것의 타당성에 대한 나 자신의 생각이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영어 몰입식 교육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과 호기심은 무학의 할머니에서부터 최고지식층이랄 수 있는 외삼촌에 이르기까지 커지면서 다양한 의견으로 폭발하고 있는 것이기에 이제 나 자신도 국가와 민족을 떠나 나 자신을 위해 과연 영어 몰입식 교육이 필수적인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자 했던 것이다.


할머니는 영어를 배우신 적이 없다. 영어와는 상관없는 삶을 살아오셨다. 그런데 할머니는 영어 몰입식 교육을 찬성하신다. 이러한 할머니의 태도는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자신은 영어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삶을 살아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영어 몰입식 교육이 꼭 필요하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긍정적이고 개방적인 자세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이 배우지 못한 것을 손자에게는 시켜보겠다는 그 한의 읊조림일까?


또 외삼촌은 어떤가? 외삼촌은 누구보다도 영어가 필요한 사람이다. 영어가 외삼촌의 삶의 근거마저도 지탱하는 일부가 되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외삼촌은 영어 몰입식 교육에 대해 비판하고 심지어 조소를 보내기까지 한다. 삼촌의 그 태도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깊이 안자의 깊이 있는 통찰의 결과일까? 그럴 수 있다는 생각도 충분히 들었다. 그렇다면 영어 몰입교육이 외국에 여행 몇 번 하면서 영어가 필요하더라, 의사소통이 필요하더라는 피상적인 판단에서 나온 것일까? 오렌지가 아니라 오뤤지로 정확하게 발음하기 위해 몰입식 교육은 정말 필요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할머니와 외삼촌의 상반된 주장은 우습기까지 하다. 영어가 절실히 필요한 외삼촌은 몰입이라는 단어에 조차 알레르기와 스트레스를 보이고, 영어가 전혀 불필요한 외할머니는 몰입이라는 단어 하나가 벌써 나의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는 것이라는 듯이 찬사를 보내시니 말이다.


나는 외할머니와 외삼촌의 생각을 블렌딩하기로 했다. 그리고 쉐이킹하고 스티어링해서 내어 놓기로 했다.


할머니는 영문도 모른 체 당신의 삶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영어를 죽어라고 하라는 것이다. 할머니에겐 놀랍도록 영어가 도구화 되어 있는 것이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너무나 순박한 생각을 하고 계신거다. 즉, 할머니는 영어의 가치를 너무 일방적이고 맹목적으로 성공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고 계신 것이다.


그러나 삼촌은 달랐다. 비록 나의 생각 속에 할머니의 생각과 외삼촌의 생각을 뒤섞여 놓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외삼촌의 생각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영어에 대해 왜? 라는 질문을 심각하게 던지는 것이다. ‘내게 영어는 무엇인가?’ ‘나는 왜 영어를 배우는가?’       삼촌에게도 영어가 수단인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할머니와 다른 것은 영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 목적인 경우에까지 영어를 수단화하고 도구화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가 되겠지만 영어가 필요 없는 할머니의 삶에서 영어는 그야말로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할머니처럼 삶에 대한 간절하고 절실한 의지를 보일 것. 그러나 맹목적이지는 말 것! 

외삼촌처럼 삶의 목적에 따라 다양한 수단들을 생각해 볼 것. 영어가 정보화 세계화의 도구로 긍정적으로 작용하긴 하겠지만 인간의 삶은 정보화 세계화가 다가 아니라는 것! 실용화가 다가 아니라는 것!


그래서 나의 영어 몰입식 교육에 대한 가치 판단은 상대적이라는 것! 민족과 국가이전에 나의 외할머니와 외삼촌의 생각이 나의 생각을 잉태하고 있다는 것! 몰입을 절대적인 가치처럼 주장하는 인간들과 교육제도에 대해서는 중이 절을 떠날 수 없는 상황에서 몰입을 강요하더라도 몰입하지 않을 것임!

그러나 나는 내 수동적인 독백에 불만스러워 이렇게 덧붙인다
몰입은 그저 니 운명이라고, 내 삶에 몰입을 강요하지 말라고!(*)

(2008.6.22.14:10)   



몰입과 관련있는 또 다른 꽁트: 몰입은 구원이요,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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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2 23:55

후쿠오카 자유여행(4.하우스 텐보스)




            후쿠오카 자유여행(4.하우스 텐보스)


하우스텐보스를 둘러본 여정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단지 유람선 타고, 클래식버스타고 걸으면서 이곳 저곳 둘러 보았습니다(
www.huistenbosch.co.jp). 티켓을 사서 들어가는 브루켈렌 구역은 입국장이라고 한답니다. 네델란드로의 여행의 시작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테디베어 킹돔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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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디베어 킹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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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디베어 킹돔에는 1500개의 테디베어가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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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디베어 킹돔을 둘러보고 근처의 캐널 크루즈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탔습니다. 선착장이 있는 곳이 킨델다이크라고 합니다. 책을 보니까 킨델다이크에 대해 이렇게 적혀 있네요. “조그만 풍차 마을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입구의 캐널 크루즈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면 킨델다이크 → 뉴 슈타트  → 뮤지엄 스타트 → 프리스란트 → 유트레히트를 40분 동안 일주할 수 있죠. 먼저 이 배로 일대를 돌아 본 뒤 본격적인 여행에 나서는 것도 요령입니다.”(일본 100배 즐기기, p,610 랜덤하우스 중앙 ). 이 책자에 따르면 먼저 유람선을 탄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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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을 타고 가면서 이국적인 정취를 경치를 구경하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아이들이 참 좋아했습니다.  사진이 별로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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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의 종착지(사실 종착지는 아니고 반환지점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 듯. 근처를 둘러보고 시간에 맞추어 다시 킨델다이크로 갈 수있음)인 유트레히트에서 내려 네덜란드에서 가장 높은 첨탑을 재현했다는 105m의 탑인 돔투른에 올랐습니다. 그곳에서 하우스 텐보스의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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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의 종착점인 유트레이트(한가운데에 있는 105m 높이의 교회 첨탑 돔투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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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투른에서 내려다 본 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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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 내려오면 1,2층에 월드 레스토랑이 있더군요. 세계 각국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더군요. 한식당도 있었는데, 그곳에서 식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우스텐보스는 나가사키와 가깝고 나가사키눈 짬뽕이 유명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나가사키 짬뽕을 먹기로 했습니다. 중국의 얼큰한 짬뽕과는 맛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모르겠네요. 워낙 오래되어서^^ 아무튼 담백하고 순한 맛이 독특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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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짬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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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버스를 타기도 하고 걷기도 하면서 뮤지엄 스타트, 스파켄부르크, 뉴스타트 등을 둘러보았습니다. 여기부터는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습니다. 정리가 안 될 정도로 사진들이 뒤죽박죽입니다. 아니 솔직히 제 머리 속이 뒤죽박죽이네요. 사진을 여기저기서 많이 찍었는데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클래식버스 사진이며, 각 구역들에서 찍은 사진들. 관람장 안에서 찍은 사진들이 거의 없어졌네요. 어이쿠 이런! 너무 없네요, 흑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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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유트레히트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킨델다이트로 돌아갑니다. 킨델다이크에서 구경을 하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구경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아쉬움이 참 많이 남았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더 그렇구요. 혹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아이들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놀 수 있도록 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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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하우스텐보스 역에서 후쿠오카로 가는 기차를 타려고 기다렸습니다. 후쿠오카로 가는 직행이 아니라 미도리역(?)인지에서 다시 갈아타야 했습니다. 적막에 휩싸인 하우스텐보스역의 모습이 하우스텐보스의 화려함과는 확연히 대비가 되면서 이별이랄까 뭐 그런 감정이 밀려 오더군요(너무 감상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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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의 내부(거의 텅비어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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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도리 역에서 내려 기차를 기다리다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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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타고 활기찬(?) 모습으로 과자를 먹고 있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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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피곤이 몰려와 잠에 푹 빠진 모습(죄송요^^)


이제 하우스 텐보스는 이것으로 끝입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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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1 16:14

스폰지밥과 닮지 않았나요?




                   스폰지밥

아래 그림은  후쿠오카의 하까다 국제 여객터미널의 모습인데요. 스폰지 밥의 모습과 닮지 않았나요? 저는 닮은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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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글:후쿠오카 자유여행

첫번째 스폰지밥 이미지 출처:출처를 잃었습니다. 다시 찾아 올리겠습니다. 양해바랍니다.
두번째 스폰지밥 이미지 출처:
www.flickr.com/photos/chris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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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1 15:31

[꽁트] 전어



 

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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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2.hani.co.kr/board/ns_world

나는 그 늦가을의 전어를 잊을 수가 없다. 맛 때문은 아니다. 그런 잊혀지지 않는 인상 속에는 이해할 수 없는, 그리고 부조리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한 사건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해할 수 없고 부조리적이라 이름 붙였지만, 다른 이름을 달아주어야 하는 건 아닐런지 모르겠다.


흔하게 지나치는 자잘한 일상 속에서 역시나 흔하고 자잘한 일이 왜 그토록 돌발스럽게 내 가슴속에 각인 되었는지 모르겠다. 인간의 주위에는 부조리한 일들이 언제나 넘쳐나는데도 말이다. 인간인 나의 눈에 비치는 세상 속에는 수많은 부조리들로 우글거린다. 이를테면 전쟁에서 학살되는 인간들이나 도살장에서 도살되는 동물들의 운명 같은 것들이 그렇다. 부조리의 경우로 말한다면 도살되는 동물들이 그러한 경우에 가깝다. 전쟁이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인간의 노력에 의해 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차 대전도 피할 수 있는 전쟁이었다(피할 수 있는 것임에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부조리한 사실일까.) 그러나 인간의 식욕은 끊임없는 육고기를 원하고 끊임없이 동물들을 죽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살기 위해 죽여야 하는 이 모순! 삶과 죽음이 서로를 집어  삼키는 이 순환의 부조리함.


내가 그 늦가을 어느 횟집의 수족관 속의 전어를 보면서 평화롭고 낙관에 가득 찬 이 세상에도 불구하고, 느닷없는 세상의 어찌 할 수 없는 부조리에 대한 강한 인상과 회의와 무기력은 이상할 정도로 강한 것이었다. 내가 전어의 세계를 인간의 입장에서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전어로 <변신>이 되어 수족관에서 <이방인>의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기 때문이었을까? 이전의 무수한 부조리 앞에서도 무감각하게 지나쳐 온 나 자신을 생각해보면 그것은 너무나도 강렬하고 인상적이었다. 친구와 함께 전어회를 먹고 출입문 밖으로 나와 커피를 홀짝이며 수족관에 있는 전어를 보면서 친구가 내게 한 말이 그러한 감정을 촉발시켰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 친구의 말은 그다지 대수로운 것도 아니었다.


“저 놈들은 저들의 운명을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면 얼마나 큰 공포에 휩싸여 있을까? 모를 꺼야! 모르는 게 약이란 이런 경우에는 딱 어울리지 않을까.”


그 친구의 그 말을 듣고 나는 강한 전류에 휩싸인 듯 전율했던 것이다. 나는 저 놈들의 어미나 새끼들을 맛있게 먹고 나왔을지 모르며 저 놈들의 눈에 비친 현실은 얼마나 부조리하며 나의 모습이 얼마나 가증스러울까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던 것이다. 불고기집, 보신탕집, 곰장어집, 횟집 등등의 앞에서는 전혀 느껴보지 않았던 그러한 감정이었다. 친구는 계속해서 수족관의 전어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불쌍한 자식들. 한 치 앞 제 운명도 내다보지 못하는 구나. 하지만 그게 낫지. 이렇게 유유한 것이 나아. 저 유유함에 은근히 화까지 나는데.”


나는 그때 전어들이 ‘살육 청부업자‘ 인 나와 친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하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을 전어가 한다고 한들 뭐 대수냐! 전어가 그 따위 철학적인 생각을 해, 제기럴! 나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괜한 감상이려니 생각했다. 나는 애써 그러한 병적인 감상을 막으려 먹이사슬이나 생존 욕구 따위의 단어들을 들먹거렸다. 그러자 내 마음도 조금 위안이 되었지만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전어들 앞에서 뱃속에 한 가득 전어회를 채우고 포만감에 만족하며 커피를 홀짝이는 나 자신이 구토를 느낄 정도는 아니었지만, 무기력하고 무각감하다는 생각은 완전히 지울 수가 없었다. 그것은 나를 둘러싼 주위의 자그마한 부조리한 현실의 영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어에게 나의 존재처럼 나에게 세상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닐까란 무기력과 무능력과 더 나아가 무감각 같은 것 말이다. 나는 수족관을 보고 있는 친구 옆에 나란히 서서 초조(?)하게 유영하는 전어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다 나는 괜한 감정 따위를 떨쳐낼 요량으로 친구에게 말했다.


“야, 2차 노래방 가야지! 뭐 그리 쓸데없는 소리를 주절거리고 있냐, 너는!”


친구는 계속 전어에 시선을 드리운 채 입을 열었다.


“야, 정말이지 모르는 게 약이야, 약!”


나는 친구에게 다시 한 번 모르는 게 약이다, 약 하고 퉁명스럽게 쏘아대고는 친구의 팔짱을 끼고 근처의 노래방으로 향했다. 노래방에서의 이야기는 노래를 계속 불렀다는 것 외에는 그다지 언급할 것이 없다. 허전한 김에 한 가지 언급한다면, 나는 서툴긴 했지만 팝송을 연속으로 불렀고 친구는 평소와는 달리 센티멘탈한 노래를 불렀다는 점이 될 것이다. 마흔에 이른 우리는, 제목을 [마흔 즈음에]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마지막으로 함께 목이 터져라 부르고 난 뒤 노래방을 나왔다. 그 날 밤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다음 날 아침, 부고가 날아들었다. 그 친구의 부고였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정말이지 모르는 게 약이었을까? 아무 준비도 없이 이 세상을 떠나버린 친구에게 모르는 것이 정말 약이었을까?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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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0 23:27

후쿠오카 자유여행(3.하우스텐보스 로)




후쿠오카 자유여행
 

*후쿠오카 자유여행(하우스 텐보스로)


10일 오전(7시쯤?)에 하까다 항에 도착해서 그 날 오전 하우스텐보스로 간 것은 민박 집 주인의 조언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12일 오후에 출국이라서 시간이 촉박했기에 기왕 아이들과 함께 우선적으로 하우스 텐보스를 다녀오는 것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사실 여행 계획을 세울 땐 하우스 텐보스는 생각지 않았고 후쿠오카 관광지들과 다자이후 정도를 둘러볼 작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민박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하우스텐보스를 향해 출발했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소 무리가 있었지만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오히려 거의 한나절 걸려(시간을 기록해 놓지 않아 정확치 않지만 오전에 출발해 오후 8~9시 기차를 타고 늦게 돌아온 것으로 추측해 보건데) 둘러본 것에 대해 후회보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하우스 텐보스는 촉박하게 둘러 볼 것이 아니라 1박 2일 정도의 일정으로 좀 느긋하게 둘러보는 것이 그곳 방문의 목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죠. 밤하늘을 배경으로 불꽃이 피어오르는 등 야경이 만만찮은 매력을 발산하기도 하고 이국적인 정취 속에서 사색의 시간도 가져보기도 하고 다양한 놀이시설을 이용하면서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기에는 하루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하우스텐보스(Huis Ten Bosch, ハウステンポス)는 숲속의 집을 뜻한다고 합니다. 네덜란드 여왕의 별궁이라고 하는데 그 크기가 잠실 주경기장의 30배가 넘는다고 합니다. 하우스텐보스는 10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고 40여개의 매력적인 구경거리가 있다고 합니다 (일본 100배 즐기기, p,610 랜덤하우스 중앙 참조). 그 10개의 구역(브루켈렌, 킨델다이크, 뉴 슈타트, 뮤지엄 스타트, 프리스란트, 유트레히트, 비넨 슈타트, 스파켄부르크, 포레스트 파크, 팰리스 하우스텐보스)을 차례로 둘러보는데 하루 만에 둘러보기가 무리일 정도라고 합니다. 비록 하우스텐보스 곳곳을 운행하는 클래식버스와 작은 유람선이 있긴 하지만 구석구석 둘러보는 데는 발품을 팔아야 합니다. 저도 클래식버스와 유람선을 타면서 전체적인 정취를 둘러보긴 했지만, 본 것보다는 보지 않은 것이 더 많은 것 같은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네덜란드는 의미있는 국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그 당시 네덜란드와 활발한 무역을 하고 있던 일본과는 달리 일본으로 가는 도중(1653년)에 표류하다 제주도에 상륙한 네덜란드인 하멜은 단순히 우리나라에서 14년 동안이나 억류되었다 탈출하면서 조선이라는 나라를 <하멜표류기>를 통해 유럽에 알렸다는 그 의미밖에는 없습니다. 또한 하멜이 히딩크로 부활했다는 정도일까요. 이에 반해 일본은 이미 1542년 포르투갈 선박이 표류에 들어와 개항으로 이어지고 포르투칼인이 전해준 조총은 임진왜란으로 이어졌습니다. 임진왜란을 생각해 보면 왜 일본은 총을 들고 달려드는 데 조선은 왜 창과 활밖에 없었는가 하는 의문도 바로 여기에서 불립니다. 바로 그것은 서양의 문화를 개방적으로 받아들인 일본과의 차이인 것입니다. 17세기 초에는 네덜란드와 활발히 접촉하면서 난학을 꽃피우던 일본과는 달리 우리는 네덜란드와 무역은커녕 문화적인 교류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고의 폐쇄성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고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일본의 목판화는 곧 유럽에 전해진 일본 문화의 자존심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고호가 일본을 상기시키는 광고효과도 상당하겠죠. 만약 고호의 그림에 우리의 예술작품이 등장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우스텐보스는 일본과 네덜란드간의 역사적인 관계와 문화적인 교류의 기록인 동시에 일본인들의 개방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의미있는 공간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동시에 조선이 얼마나 유학의 늪에 빠져 관념적이고 형식적인 전통에 얽매이고만 있었는가 하는 통절한 자기반성의 측면에서도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하우스텐보스 가는 데 하까다 역 안내소의 한국인 여성 안내원의 도움이 컸다고 이미 적었습니다. 이외에도 고마운 일이 하나 더 있는데 한국에서 가지고 간 일본 여행 책자를 잃어버렸는데 알고 보니 안내소에 놓아두었더군요. 한국인이라 저를 알아 보셨던지 책을 보관하고 있다가 주시는 거 있죠.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일본인이었더라면 저를 기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기억을 해도  하우스 텐보스로 어떻게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표를 구입하는 것도 낯설었고 하우스텐보스행 플랫폼 입구도 어디인지 모르겠습니다. 한 번 더 가면 기억날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책을 보니까 이렇게 되었네요. “하우스텐보스까지는 JR을 이용하는게 가장 편하고 빠릅니다. 후꾸오까에서는 약 1시간 간격으로 특급 하우스텐보스 ハウステンポス 호가 출발하죠. 나가사끼에서 갈때는 JR 쾌속, 보통 열차를 이용하세요. 역시 약 한 시간 간격으로 운행합니다.”(일본 100배 즐기기, p,610 랜덤하우스 중앙 ) 이러한 정보로 판단해 볼 때 분명히 하까다역에서 특급 하우스텐보스 호를 탄 것 같습니다. 다른 열차편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2층으로 올라간 것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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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텐보스행 열차 플랫폼. 시간이 11시 5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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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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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에 비친 카오스크(간이상점?)에서 도시락을 샀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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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하나만 찍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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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라 열차에서 먹기 위해 플팻폼에서 도시락을 샀습니다(이 때는 하까다역 내 식당가에서 도시락을 판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니 식당가가 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이런 것들을 미리 알고 갔어야 할 정보였는데 말입니다. 하까다역 내에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쇼핑몰이 있습니다. 식당가도 있습니다. 다양한 도시락을 팝니다.). 일본은 도시락의 나라라고 할 정도로 도시락이 다양하게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도시락이란 그 자체를 이어령 선생은 축소지향의 한 전형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만, 음식이나 문화란 측면에서 볼 때는 음식들의 배열과 미적인 디자인이 가져다주는 정성과 깔끔하고 단순함을 지향하는 일본인의 미의식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서구사회의 햄버거와 같은 역할을 일본에서는 도시락이 하고 있다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나 햄버거가 역동적인 의미보다도 정크 푸드로 전락한 것처럼, 도시락 또한 과거에는 일본 사회의 경제적인 성장 상에 역동성을 가져다주었다고 할 수 있지만 이제는 하타쿠로 상징되는 개인주의 문화를 넘어 심지어 자아가 지워지면서 특정한 대상에 몰입하는 자아해체와 특정대상에 대한 병적인 몰입 현상의 특징을 대변할 수 있지는 않을까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아니 약간은 벗어나서, 우리의 몰입식 영어 교육은 인간을 개방적으로 나아가게 하는 긍정적인 부분이 있지만 동시에 영어에 다른 소중한 가치를 빼앗기는 부정적인 측면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몰입해서 영어를 하느냐, 소설이나 독서를 하고 여행을 떠나느냐는 문제도 아닌 문제를 잉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어라는 수단에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있는 여러 가치들이 간과되는 것이지요. 이것은 정말 넌센스입니다. 우리의 삶, 아니 좁혀서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 어쩌면 대학교까지 영어에만 몰입한다는 것은 영어로 인해 얻는 것도 많겠지만 동시에 그 이상을 상실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 시간쯤 달린 후 하우스텐보스 역이 보였습니다. 이국적인 모습의 역사였습니다. 다소 의외로 역사가 무척이나 작았습니다. 아마 교통편을 불편하게 해놓고 하우스텐보스 안에서 소비를 많이 하도록 의도한 것은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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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텐보스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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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텐보스로 가는 다리 위에서


이제 하우스 텐보스에 도착했습니다. 유람선도 타고 클래식 버스도 타고 하면서 곳곳을 둘러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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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킷팅 하기 전에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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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길어지네요. 하우스텐보스내 관람사진들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할께요.  
 다음은 하우스 텐보스 관람 사진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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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7 17:58

후쿠오카 자유여행(2.후쿠오카 첫째날)



후쿠오카 자유여행



*후쿠오카 첫째날


다음날(6월 10일) 아침 하까다 항에 도착해서 선실에서 찍은 사진들입니다. 하까다 항 국제 터미널입니다. 이제야 일본에 도착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하까다 항 국제 터미널은 지금 보니 스폰지 밥을 닮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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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가다항 국제 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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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福岡)는 ‘행복한 언덕’ 이란 뜻입니다. 후쿠오카는 16세기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상업 부흥책에 따라 상인의 마을 번성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쿠로다 나가마사가 후쿠오카성을 세우면서 도시 중심을 흐르는 나까가와를 경계로 동쪽에는 상인의 마을 하까다, 서쪽에는 무사의 마을 후쿠오카로 자리 잡으면서 지금과 같은 도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고 합니다. 1889년에 시제도가 시행되면서 시의 이름을 후쿠오카, 역의 이름을 하까다로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은행, 회사, 공항 이름에는 후쿠오카, 항구, 기차역, 기념품, 축제에는 하까다라는 이름이 많이 쓰인다고 합니다. (일본 100배 즐기기, p,571 랜덤하우스 중앙 참조)



선실은 아직도 한 밤중입니다. 선실 밖의 바다와는 완전히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호기심에서라도 분주할 법도 한데 제 혼자서만 일어나 호들갑을 떨고 있는 듯 합니다. 한국이니 일본이니 별 생각 없다는 듯이 자고 있습니다. 선실의 내부도 다시 한 번 찍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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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밤중인 선실의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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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기 전 예약한 민박집이 하까다 역에서 걸어서 15~ 20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하까다 역까지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하까다 항에서 하까다 역까지 가는 버스 안입니다.  버스가 참 깨끗했습니다.  요금 체계가 달라 다소 혼란스러운 면이 있었지만 금세 익숙해진 듯 합니다. 버스 차창으로 펼쳐진 모습이 이국적인 것도 같고 한국과  비슷한 것도 같았습니다. 묘한 느낌이 났던 기억이 납니다. 기사분도 참 친절했고요. 습관적으로 갖추어진 친절같았습니다. 기사분은 영어로 한국인냐, 일본은 처음이냐 하면서 친절하게 대해주면서 하까다 항까지 잘 안내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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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까다 역에 도착해서 한 컷 했습니다. 그런데 하까다 역 전경 사진 한 장 남겨놓지 못했네요. 그땐 몰랐는데 이렇게 블로그에 올리려고 하니 아쉽네요. 하까다 역 앞이긴 한데 어느 위치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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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까다역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없네요^^;


하까다 역에서 민박집까지는 도보로 15~20분쯤 걸립니다. 기억으로는 민박집까지 가는 동안 사진을 찍은 것 같은데 착각인 것 같습니다. 사진이 한 장도 없으니 말입니다. 사진을 많이 찍지 않은 것이 또 안타까움을 몰고 옵니다.  후쿠오카 거리와 사람들의 모습 한 장 남기지 못했네요. 민박집의 한국인 주인을 사무실에서 만나 돈을 지불하고 주지 사항을 듣고 걸어서 5분 거리쯤에 있는 민박집까지 안내를 받았습니다. 민박집에 도착(아마 오전 10이전으로 기억하는데)해서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습니다. 짐을  풀어 놓고 바로 하우스 텐보스로 출발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그래도 그렇지) 하우스 텐보스로 가는 방법을 몰라 좀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책자가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책자보다는 하까다 역에 있는 관광 안내소가 더욱 더 도움이 되었습니다. 친절한 한국인 안내원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은 것이 참 아쉽네요). 한국인 안내원은 정말이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참 친절하게 잘 설명해 주었으니까요. 다시 한 번 더 감사를 드립니다.  

*다음은 하우스 텐보스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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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5 11:34

[꽁트] 그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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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www.flickr.com/photos/petervan

 
 
        그 나무


어느 외국 시인이 노래했던가. 나무처럼 아름다운 시를 결코 본적이 없다고...... 그렇다, 나무처럼 아름다운 시를 그 어디서 볼 수 있으랴. 봄, 여름, 가을, 겨울, 흙 속에 서러움 쥐어뜯듯 애잔히 뿌리 붙박은 체, 상처 같은 헐벗은 몸뚱이 하나로 고독의 기나긴 시간들을 묵상하듯 숨쉬어 가는 나무가 어찌 아름다운 시의 모습이 아닐 수 있을까. 그런 나무를, 가볍게 업신여기는, 인간은, 시를 파괴하는 어리석은 미물. 시를 파괴하는 인간은 잔인한 시간을 견뎌내지 못할 테지. 시를 파괴하고 묵상을 압살하는 인간은 시간의 손에 들린 비수에 심장을 찔리고 말테지. 그런데도 인간은 어리석은 앞날의 꿈을 꾼다니. 그 타락한 꿈을 아름다울 것이라 하다니.


한 그루 나무만큼 위대한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그저 위대한 인간은 나무를 닮았을 뿐이다, 라고 할 수 있을 뿐. 그러기에 나무를 한낱 인간 주위 흔해빠진 미물이나 인간을 위한 도구로 본다면 그건 인간의 가치를 너무 과대하게 평가하는 짓이다. 오히려 나무는 아름다움으로 그런 인간들을 사랑하고 있으니. 나무가 없어진 세상을 상상한다는 것은 가능할까. 상상은 인간의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가슴을 상실하고 죽음에 몸을 내맡긴 괴물 같은 인간의 모습. 그런 상상 말라고, 나무는 인간을 사랑한다. 그토록 고요하고, 무던하고, 희생적인 사랑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런 시가 있을 수 있을까.


그 나무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그 나무가 사랑한 인간들 중에 한 노인이 있었다. 그 나무가 노인을 사랑했다는 사실에, 무슨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하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 사실이다.


모년 춘 사월의 어느 날이었다. 환하게 피어오르는 생명의 계절과는 달리 노인의 마음은 차갑게 식어있었다. 생명을 거스르는 죽음의 징후였다. 노인은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노인은 죽음만이 그가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 결론을 내리고는 산을 올랐다. 노인은 나무에 목을 매달아 이 세상을 떠나고자 산을 올랐던 것이다. 노인이 산으로 오르자 그 차가운 공기를 가장 먼저 감지한 것은 그 나무였다.


노인이 그 나무에 다다라 굵은 가지 아래 돌을 놓고 서서 밧줄을 묶는 동안 그 나무는 슬픈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 방울이 노인의 얼굴에 떨어졌다. 하지만 노인은 밤새 고인 이슬이려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밧줄 묶기를 계속했다.

그 나무는 더욱 슬퍼 스스로 가지를 꺾었다. 그 가지에 밧줄을 묶던 노인은 조금 놀랐지만 밤  사이 심했던 바람이 마른 가지를 꺾어 놓았다고 생각했을 뿐 밧줄을 풀어 다른 가지에 묶기 시작했다. 그 나무는 자신의 마음이 전해지지 않는 안타까움에 고통의 신음소리를 내었다. 그러나 노인은 산 속 이름 모를 새들의 울음소리로 생각했다.

그 나무는 낙담했다. 한 인간의 죽음을 막을 수 없는 그 나무의 고통은 너무나도 깊고 깊었다. 어떻게 할거나, 어떻게 할거나! 움직일 수 없는 자신의 몸이 한스러웠다. 죽음의 도구로 쓰이는 자신의 가지가 안타까웠다. 그 가슴 아픈 무기력에 그 나무는 절망 속에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 나무는 그 깊은 고통 때문에 순식간에 꽃이 시들기 시작했다. 그제야 노인의  마음이 조금 동하는 듯 했다. 노인은 그 나무가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도 잠시였다. 그 자신의 슬픔을 그 나무에 이입시킨 것일 뿐 정말로 그 나무가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고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노인은 그 나무의 꽃들이 시든 것은 메마른 땅과 바람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주위 나무들의 생동하는 꽃들을 보고서 잠시 눈가에 눈물이 맺혔으나 자신의 추측을 거두어들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가 목을 매달기에 안성맞춤의 나무라 여겼다. 꽃잎 지고, 가지 부러진 그 나무가 자신의 처지와 어쩌면 이토록 흡사할 수 있는가 생각하면서 말이다.

노인은 가지에 밧줄을 다 묶고는 튼튼한지 아닌지 확인하려고 몇 번을 잡아당겼다. 그 나무는 밧줄의 차갑고 거친 감촉에 찢어지는 슬픔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밧줄을 찢어 버릴 수만 있다면, 찢어 버릴 수만 있다면......노인은 자신의 목을 둥근 밧줄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 순간 나무는 파르르 떨었다. 그저 바라 볼 수밖에는 없는, 이겨낼 수 없는 슬픔과 참담한 무기력함과 애절한 안타까움의 몸부림이었다. 죽음을 막으려는 간절한 몸부림이었다! 노인은 잠시 나무의 떨림에 멈칫했지만, 다시 죽음의 유혹에 이끌려 갔다. 


노인은 죽었다. 노인이 죽은 바로 직후부터 이상하게도 그 나무는 더욱 싱그러워졌다. 누가 보더라도 탐스러워 보였다. 가지에 매달린 노인의 주검을 애도하면서 그 나무는 발악하듯 생기를 발했다. 주위의 나무들 보다 그 나무는 더욱 자신을 뽐내고 과시하는 듯 우람하게 서있었다. 다른 나무들은 그 나무가 노인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미쳐버렸다고 생각했다. 다른 나무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그가 죽은 그 직후부터 그 나무는 슬픈 얼굴로 햇빛을 받아들이고 식욕 잃은 뿌리로 물을 빨아들였으니 말이다.


미친 듯한 사랑 바로 그것이었다. 그 나무는 노인의 관으로 쓰이거나 상주(喪主)들의 상장(喪杖)으로 쓰이길 간절히 기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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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4 02:56

권력자와 여성편력



 

권력자와 여성편력


올림프스(Olympus)는 신들의 거처였다. 신들만이 지극한 복락을 누리며 영원성을 확보하고 암브로시아(ambrosia)와 넥타(nectar)를 즐기며 생활했다. 물론 기독교의 유일신과는 달리 그리스/로마의 신들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변덕스러웠다. 따라서 올림프스가 언제나 조용하지 만은 않았다.


제우스는 올림프스를 내팽개치고 땅위에서 연애를 즐겼고 헤라(Hera)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제우스에게 바가지를 긁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우스는 언제나 원칙에 충실하고자 했으며 헤라는 지적이면서 미모를 갖춘 여신이었다. 제우스의 원칙에의 충실은 다른 신들에게 단호함을 의미했다. 기간테스(Gigantes)와 타이탄족(Titans)족의 저항 이후로 그에 대한 아무런 저항이 없었다는 것은 제우스의 이러한 단호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올림프스는 세계지배의 중심이며 제우스는 그 세계지배의 중심에 있었다. (1.그리스 신들의 가계도 )


지금 백악관(White House)은 부시의 거처이다. 부시(bush)는 관목이란 뜻으로, 부시맨들의 고향인 남아프리카의 트라켄스버그 산맥(2.트라켄스버스 이미지와 글) 이 주로 관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부시맨이란 이름이 유래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백악관 정원에도 관목이 많다. (3.백악관 관목이미지) 부시를 부시맨이라 불러도 그다지 틀린 표현은 아니지 싶다.


부시 이전에는 클린턴(Clinton)이란 바람둥이 대통령이 거처했다. 클린턴은 부시와는 다르게 외모상으로는 스마트하고 이름상으로는 깨끗한(clean)이미지를 풍긴다. 그런 클린턴이 제우스처럼 속세로 내려와 힐러리 몰래 바람을 피운 것이 아니라 아예 백악관에서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던 것이다. 세계를 떡 주무르듯이 하는 클린턴은 요정이나 어여쁜 공주 같지도 않는 르윈스키라는 여성과 백악관의 집무실이란 부적절한 장소에서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으니 정말 세계를 떡 주무르듯이 하는 그 이상의 대담한 짓이었다.


그런 클린턴이 또 다시 영화배우 지나 거손과  섹스 스캔들로 화제가 되고 있다. 힐러리의 경선 패배에 때 맞춰 터뜨린 <베니티 페어> 잡지의 무책임하고 비열한 기사(매일 경제 6월 5일자 보도)인지는 아직 확인할 수는 없지만 힐러리에게는 설상가상의 일이 아닐 수 없다.


민주당 경선 패배로 가슴이 찢어질 판인데 남편이라는 작자는 섹스 스캔들이나 일으키고 있으니 말이다. 딸인 첼시 역시 힐러리의 경선 중에 클린턴의 과거 있었던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 에 대한 껄끄러운 질문들을 수차례 받았다고 한다. 힐러리나 첼시에게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은 현재에 되살아난 괴물이 된 것이다.


모니카 르윈스키던 지나거손이던 고급 창녀들이던 그런 섹스 스캔들이 발생하는 그 때, 그 시각 힐러리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헤라처럼 그녀는 민첩하지 못했다. 신화에서의 제우스는 여자들을 만날 때 언제나 자신을 변장했다. 인간이 맨눈으로 제우스를 보게 되면 타죽기 때문이었다. 제우스의 여성편력에는 낭만적인 이야기가 많고 은밀함은 거의가 감추어져 있다. 그러나 1998년 르윈스키와의 추문 사건을 담당한 스타(Starr) 특별검사의 보고서에서 낭만을 찾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그의 아내 힐러리(Hillary)는 불같은 헤라와는 달리 품위를 잘 유지했고 침착했다. 물론 힐러리의 대권욕에 기인했겠지만 아마도 그리이스와 미국의 문화적 차이인 듯 하다. 하지만 사생활의 영역에서 클린턴이 힐러리에게 얼마나 쥐어 뜯겼는지는 아무도 확인할 수는 없다.


권력과 미인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특히 타락한 독재 권력인 경우 권력 주위에는 여자들이 우글거린다. 권력이 여자들을 필요로 하는 만큼 여자들 또한 돈과 더불어 권력을 필요로 한다. 남자, 여자 구분 없이 모든 인간들의 속성일 것이다. 이렇듯 권력이 미인들을 차지하는 것은 어색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속성일 것이다. 지배의 대상에는 예외가 없는 것이다.


제우스의 여성편력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권력의 속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다른 예를 들자면 대장장이인 헤파에스투스(Hephaestus)의 아내였던 아프로디테(Aphrodite)가 군신(軍神)인 아레스(Ares)에게 넘어간 것은 권력과 미인의 불가분의 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다.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아름다운 여신인 아프로디테가 아레스에게 넘어간 것은 권력의 속성에 대한 일종의 비유인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에도 과거 요정정치 (4.요정정치의 산실이었던 삼청각 둘러보기: http://blog.naver.com/zizibaek/70011789912)  란 요상한 용어가 존재했다. 이러한 요정정치도 바로 이런 선상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하겠다. 하지만 최상의 민주주의라고 자찬(自讚)하는 미국의 권력 중심부인 백악관에서 제우스적 발상을 실천한 클린턴은 시대를 잘못 읽은 것은 아닌지.


권력은 더 이상 순수한 용어가 아니다. 온갖 불순물이 녹아 들어간 용광로와 같다. 그러한 권력을 잡은 사람은 결코 순수할 수 없다. 권력의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우스가 그랬듯이 빌(클린턴의 애칭)이 그랬듯이 더 이상 권력이 타락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1.그리스 신들의 가계도 http://en.wikipedia.org/wiki/Family_tree_of_the_Greek_gods

2.트라켄스버스와 관련한 자료: http://blog.empas.com/dwlee0426/28551803

3.백악관 관목이미지: http://ko.wikipedia.org/wiki/%EB%B0%B1%EC%95%85%EA%B4%80

4.요정정치의 산실이었던 삼청각 둘러보기: http://blog.naver.com/zizibaek/70011789912

  참고:1950년대 요정정치
h
ttp://media.daum.net/society/affair/view.html?cateid=1010&newsid=20080201160215099&cp=il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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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9 20:29

[꽁트] 기억의 교차



 

기억의 교차


떠오를 듯 말 듯한 기억으로 가슴이 답답해질 때가 있다. 아무리 기억하려 하여도 기억에 가려진 사물이나 사실의 실체가 떠오르지 않을 때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비등점에 도달하곤 하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기억도 마찬가지다. 어디서 본 듯한 사람 인 듯한데 도무지 기억할 수 없을 때 그 호기심은 의외로 질기게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하지만 그럴 경우 기억하고 싶지 않는 무의식적 억압이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하며 호기심의 끈을 끊어버린다. 기억하고 싶지 않을 때 그것은 참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런데 참 우스운 것은 애써 기억하려는 노력을 그만 둔 순간에 느닷없이 떠오르는 기억이다. 기억은 긴장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긴장이 풀려 있을 때 잘 떠오르는 것일까? 기억에 관한 한은 이렇듯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이도 일어나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지금 그의 앞에 앉아 있는 여자가 그의 머릿속에 잡스러운 생각들을 떠오르게 하고 있다. 그는 지금 강릉으로 가는 기차의 좌석에 앉아 그 여자의 뒤통수를 보며 기억을 더듬고 있다. 그는 기차가 강릉에 도착할 때까지 그 여자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려고 무척 애썼다. 무려 2시간 가까이나. 때로 자유연상기법이란 황당한 짓까지도 해보기도 했고 하느님께 기도도 해보았다. 하지만 도통 기억을 할 수가 없다.


그는 좌석에 앉아 조용히 자는 척을 했지만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생각들과 단어들과 장소들과 인간들과 사건들과 사물들이 어지럽게 맴돌았다. 그러다 여자에 관한 한 그는 좋은 기억들이 없어 술이나 마시고 잠에나 곯아떨어지자고 작정하고 통로를 지나다니는 카트 상인에게 캔 맥주 두 개와 마른 오징어를 사가지고는 마시기도 했지만 잠은커녕, 정신이 더욱 말똥말똥 해지면서 기억해 보자는 각오가 더욱 샘솟는 것이 아닌가.


따지고 보면 막상 기억을 해낸다고 해도 기억을 해낼 만한 가치가 있는 여자가 아닐 것은 분명하다. 그런 여자가 그의 삶 속에 존재하는가 생각해 보면 그런 여자는 없었다. 그에게 여자들은 기억의 대상이 아니라 망각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도대체 어디서 본 듯한 저 여자 얼굴은 떠오를 듯 말 듯 기억의 언저리를 맴돈다.


그는 도무지 참을 수가 없다. 강릉에 도착하기 까지 달아난 기억을 다잡고 싶다.  그는 여자에게 다가가 직접 물어보려고 한다. 취기가 한 몫을 하고 있다. 별 대수롭지 않는 일이 때로 뻥튀기처럼 커질 때가 있다면 바로 이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이러다 보니 기억을 돌이키려 고민하느니 차라리 당사자에게 직접 다가가 기억을 환기시키고 싶다. 아주 쉬운 길이 있음에도 우회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할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그녀 앞으로 가 선다. 그리고 더듬더듬 입을 땐다.


“저, 죄송하지만......구면이 아닌가요?”


그의 갑작스런 말에 그녀는 경계심을 풀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누구신지......”


그는 괜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심 망설이면서도 이왕 내친김이라 말을 잇는다.


“어디서 뵌 듯 하거든요. 제 기억을 확인해 보고 싶어서요.”

“전 기억에 없는데요. 죄송하군요.”


그녀는 등받이에 고개를 기대고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는 죄송하다고 말하고는 자리로 돌아와 앉지만 갑작스런 충격이 밀려든다. 그는 충격 속에서 중얼거린다.


‘죽은 여자, 죽은 여자.’


그의 머릿속에 여자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 그의 차에 치여 죽은 바로 그 여자가 분명하다. 그녀가 다시 살아나 그의 앞에 앉아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이번에는 그녀가 그의 옆으로 다가와 허락을 구하지도 않고서 그의 옆자리에 앉는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제겐 죽은 언니가 하나 있었지요.”

“쌍둥이였나요?”

“그래요. 그런데 저도 당신을 보는 순간 너무나도 놀랐어요.”

“놀랐다구요?”

“당신도 쌍둥이시죠?”

“그걸 어떻게......?”

“전 타살된 당신 쌍둥이 형을 죽인 당사자이니까요. 전 언니를 죽이고 뺑소니를 친 인간을 꼭 죽이고 싶었거든요. ......당신으로 착각하고 당신의 형을 죽였지만 말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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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3 02:36

[생각 돌아보기] 숨은 그림 찾기



 

숨은 그림 찾기


숨은 그림 찾기를 모르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교묘하게 숨겨진 그림들을  찾아내고 좋아하던 적이 있을 것이다. 대체로 쉽게 찾아내지만 한 두 개의 그림은 찾기가 꽤 까다로워 시간이 많이 걸린 적도 있을 것이다. 그림 속에 기발하게 사물을 숨긴 화가의 재주에 감탄하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침내는 찾아내고 뿌듯해 했을 것이다.


인간 세상도 하나의 거대한 그림이라면 그림 속에 숨어있는 그림들이 있을 법하다. 그리고 인생 자체도 숨은 그림 찾기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숨 쉴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 해도 숨겨진 그림, 좀 더 말을 붙이자면 설계도가 있지 않겠는가. 콘크리트 덩어리의 건물을 하나 짓는 데도 정교한 설계도가 필요한데 콘크리트의 무기질 덩어리와는 차원이 다른 인간이란 존재에 더 정교한 설계도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하나의 예를 더 들어보자. 인간이 태어나고 죽는다는 사실은 또 어떤가. 우리는 당연하게 살아가지만 삶과 죽음에 대해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무에 가깝다. 그야말로 우리가 찾지 못하는 숨은 그림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가시적인 현상불가시적인 본질로 표현하면 어떨지 모르겠다. 하지만 골이 타분한 말이다. 현상이니 본질이니 하는 용어를 좀 더 현실적인 용어로 바꾸어 본다면 아마도 ‘그냥 보이는 것’과 ‘보이는 것에 대한 해석’ 이라고 하자. 어차피 본질이란 보이는 것에 대한 인간 해석의 한계를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종교에서의 신의 의지나 무(無) 등은 인간 해석의 산물인지 아닌지의 논란이 없지 않겠지만 이데아니 절대정신이니 존재자니 하는 것들은 결국 인간들의 보이지 않는 것, 즉 숨어있는 것에 대한 해석일 뿐이다.


하지만 숨은 것을 찾아보려는 인간의 이러한 노력은 대단히 의미있는 일이다. 그저 살아가는 동물이 아니게 할 수 있는 것, 성찰의 깊은 곳에서 인간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음미해 본다는 것, 여기에서 보이는 것에 대한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가 싹트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보이는 것을 무시하고 허튼 꿈만을 꾸자는 것은 아니다. 그저 보이는 것에만 몰입하면서 숨어있는 것에 대한 성찰이 없다면 그 얼마나 동물적인 존재로 추락하고 말 것인가. 숨어있는 것에 대한 성찰, 즉 숨은 그림 찾기를 할 수 있기에 인간은 위대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날을 보이는 것에의 몰입의 시대로 규정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보편화된 성형수술이 그 좋은 예가 아닐까 한다. 즉흥성과 말초성에 근거한 감각에 삶을 의존하고 있는 것이 절정에 달해 있음을 부정할 수 있을까? 보이는 것, 즉 표피적인 것에 대한 집착은 감각에 대한 믿음이다. 예를 들면 대중문화가 깊이 있는 사색과 성찰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의 고도화된 과학 기술(컴퓨터와 카메라, 편집과 이미지) 에 의존하여 감각적인 자극을 극대화 시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닌가. 연예 프로그램의 감각적인 쾌락의 제공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관습화되고 일반화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는 않는 것이다. 감각적인 쾌락이라는 그 화려한 꽃의 이면에 감추어진 숨어있는 삶의 그림을 찾으려는 노력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과학과 기술은 보이는 것을 더 잘 보이게 하고 심지어 보이지 않는 것조차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기에 더 이상 숨은 그림 찾기는 의미가 없는 일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종교의 영역조차 과학이 축소시키고 있는 형국이다. 개인적인 판단으로, 인간에게 꼭 꼭 숨어있어야 할 것조차 과학은 유별나게 드러내 보여주는 느낌이다. 심지어 인간의 감정이나 감수성마저 과학의 연구 대상이 되고 감정을 가진 로봇이 만들어지기까지 한다. 이제는 숨어있는 것이 자꾸만 드러나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얼마나 즉흥적이고 감각적이고 표피적인가. 과학과 기술이 제공하는 모든 것들은 대체로 감각적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놀랍도록 차갑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그렇다.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합리주의가 극대화되면서 이제는 [보고 즐긴다, 고로 존재한다]는 과학에 기반을 두는  과학적 합리주의가 입증할 수 있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가져다준다.


입증하고 볼 수 있는 것에 의지한다는 것, 다시 말해 과학과 기술, 그리고 세속적인 감각주의(이러한 표현이 가능하다면)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허상에 사로 잡혀 보이는 것조차 보지 못하는 이상주의 보다 보이는 것을 좀 더 합리적으로 보고 즐기는 현실주의가 뭐 나쁘고 사악할 수 있겠는가. 문제는 가슴이 빠진 머리처럼 머리 없는 맹목적인 가슴에 있는 것이다. 생태계가 파괴되고, 지나친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이 소외되는 세계에서 합리성이 유익한 역할을 할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합리성은 브레이크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우리는 과학적인 합리주의의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사색과 성찰도 없고 보이는 것에 대한 합리성도 없다. 무지가 있다. 무지하기에 고리타분한 것은 싫은 것이다. 놀고, 놀고 또 놀거나 자기중심의 미몽에 쉬 빠진다. 타인과 사회와의 관계성에 어떤 합리성도 부여하지도 못한다. 이 어정쩡한 현실 속 우리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자. 숨은 그림을 찾아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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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1 19:13

미로(Labyrinth)속의 미노토(Minotaur)와 야만적 정치인들



 

미로(Labyrinth)속의 미노토(Minotaur, 미노타우로스)와 야만적 정치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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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노토는 포세이돈(Poseidon)이 크레타(Crete) 섬의 왕 미노스(Minos)왕에게 내린 보복의 산물이었다. 포세이돈은 소 한 마리(a Bull)를 자신을 위한 제물로 바치도록 미노스 왕에게 하사했으나 미노스왕은 그 소를 보호했다. 이에 분노한 포세이돈은 미노스의 아내인 파시파에(Phasipae)가 그 소와 사랑에 빠지게 하는데 그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 바로 반인반우(半人半牛)인 미노토였다. 미노스왕은 이 해괴한 존재를 다에달로스(Daedalus)가 설계한 미로(labyrinth)에 가두어 두었다.        


이 당시 크레타는 그리스를 지배하는 강력한 나라였는데 미노스의 아들 안드로게오스(Androgeos)가 그리스를 방문했다가 죽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이에 미노스는 그리스로 쳐들어가 공물로 9년마다 각각 7명의 남녀를 보내게 하여 미로속 미노토의 먹이가 되게 했던 것이다. 


이 이야기에는 미노토를 죽이고 미로를 빠져나오는 테세우스(Theseus)라는 출중한 영웅과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Ariadne)도 관련되어 있지만 산만함을 피하기 위해 이 글에서는 언급을 피하기로 한다.


미로속의 반인반우 미노토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반쯤 개화된 크레타의 문명이었을 것이고 여전히 주술적인 제의(祭儀)에 인간의 운명을 의존하고 있었을 것이다. 즉 자연과 분화되지 않은 인간의 자의식(自意識)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겠다. 자연에 대해 인간의 의지나 해석이 조금씩 개입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자연에 대한 경외감은 바로 종교와 다름없었던 것이다. 미노토에게 인간을 바친다는 것은 야만적인 신정(神政)에 다름 아니며 이것은 그리스 본토에서 건너간 테세우스에 의해 중단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정치판은 어떠한가? 미노스가 지배하던 크레타의 정치 수준보다 개화되어 있는가? 우리의 정치판이란 미로속에는 미노토가 불을 내뿜으며 인간들을 잡아먹고 있지는 않는가? 종복(從僕)으로 자처하는 정치인들이 미노토와 같은 반인반수의 괴물이 되어 인간들을 제물로 삼아 배를 채우고 있지는 않는가? 최근의 여러 사건들은 이러한 제물을 집어삼키는 미노토를 상기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광우병 사태와 관련해서 그 시사하는 바가 심장하다. 국민을 위한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반수의 마각을 드러내고 온갖 제물을 삼키고 있는 것이다.


미로속에 갖힌 미노토와는 달리 스스로 미로에 자신들을 폐쇄시켜 놓고 온갖 부정과 부패를 자행(自行)하고 있는 것이다. 개혁(改革)의 대상이면서 개혁을 떠드는 저 반인반수의 괴물들은 정말이지 미노토를 닮아있다. 아니 차라리 미노토가 더욱 순박하고 동정이 간다. 미로속의 괴물을 칼로 베어줄 테세우스가 나타나주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Minotaur: 일반적으로 미노타우로스로 표기하고 있으나 이 글에서는  발음대로 미노토로 표기했다.
*이미지출처:http://www.utexas.edu/courses/larrymyth/18Theseu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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